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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데미의 무속성 마법사-16화 (16/175)

16화

우우웅―

마법진에서 웅장한 소리가 나더니, 이내 그곳에서 나온 빛이 내 몸속으로 빨려들어 왔다.

소리가 멈추고 마법진의 흡수가 끝나자, 나는 팔을 휘휘 휘둘러 상태를 체크해 보았다.

“별로 체감은 안 되네.”

“다 끝났어?”

“응.”

“무슨 버프였는데?”

“대미지 감소 버프.”

가장 먼저 이곳의 루트를 선택한 이유가 있었다.

방금 전 흡수한 대미지 감소 버프의 효율은 무려 90%.

받는 대미지의 90%를 감소시켜 주는, 버프 중에서도 가장 최상급 버프였다.

‘사실상 이 게임은 끝난 거나 다름없단 말이지.’

이제부터는 웬만한 대미지를 받아도, 게임 오버 해서 던전 밖으로 쫓겨나는 경우는 없을 것이다.

“그럼, 다른 버프를 찾으러 가자.”

“또? 방금 얻었잖아.”

루비의 말에 나는 살짝 음흉한 미소를 지었다.

“고작 하나로 만족하면 안 되지.”

나는 이 던전의 모든 버프를 독식할 생각이었다.

* * *

루비의 중력 감소 마법을 받고서 빠르게 던전을 휘젓고 다니다 보니, 어느새 버프를 꽤 많이 모을 수 있었다.

지금까지 수집한 버프는 총 여섯 개.

[받는 대미지 90% 감소 버프]

[마나량 30% 증가 버프]

[마력 20% 증가 버프]

[속도 50% 증가 버프]

[근력 30% 증가 버프]

[기본 신체 능력 20% 증가 버프]

그중에서 쓸모없는 ‘마나량 30% 증가 버프’만 루비에게 주고, 나머지는 전부 내가 사용했다. 사실상 이 정도면 이곳 던전의 핵심 버프는 거의 다 모았다고 볼 수 있다.

그리하여 우리는 마지막으로 ‘일회용 치유 버프’를 얻으러 가고 있었다.

“일이 되게 잘 풀리는 거 같네. 다른 팀들은 지금 뭐 하고 있으려나?”

“아마도, 지금쯤 함정에서 구르고 있을걸?”

“함정도 있어?”

“응. 그냥 함정만 있는 게 아니라, 디버프 함정도 있어.”

애초에 이 던전은 버프 시스템을 찾는 것으로 끝나는 게 아니었다. 마법진을 발동시키기 전까지는 그 효과를 알 수 없는데, 그중에는 디버프도 존재하여 매우 까다로운 던전이었다.

“그런데 정말 던전에 대해서 잘 아나 보네?”

“어, 어? 응……. 관심이 많았어 가지고.”

“그러고 보니 궁금한 게 있었어.”

“응? 뭔데?”

“왜 매직 미사일만 사용하는 거야? 아까 리자드맨 때도 매직 미사일 쓰려던 거 맞지.”

“어… 그렇긴 한데…….”

“설마, 너…….”

나는 루비가 이미 눈치챈 것 같아서 살짝 고민에 빠졌다.

이걸 말해야 하나, 숨겨야 하나.

생각해 보면 이미 아텔라 교수님에게 고유 마법을 사용하지 못한다고 말했었기에 처음은 아니었다. 애초에 루비가 다른 사람에게 떠벌릴 성격도 아니었고.

그래서 나는 루비에게도 그냥 말해 주기로 마음먹었다.

그런데 루비의 다음 말은 내 예상 밖이었다.

“그거 컨셉이지.”

“응. 맞아. 응? 으응?!”

아무래도 루비는 단단히 오해한 모양이다.

그것도 안 좋은 쪽으로.

“고유 마법을 안 써도 충분하다, 그런 거야?”

“아니 꼭 그런 건 아닌데…….”

“하긴 대단하더라. 그렇게 매직 미사일을 많이 소환할 수 있는 사람은 처음 봤어. 우리 아빠도 그 정도는 못 할 텐데.”

그녀의 아버지는 바로 아이작 버밀리온.

물질계 권좌이자, 마법 협회의 협회장 자리를 맡고 계시는 분이다.

‘아무리 내가 마나량이 많다 하더라도, 본인 아버지랑 비비는 건 좀 너무 띄워 주는 거 아니야?’

과장이 좀 심한 것 같았다.

그녀의 말에 나는 그저 멋쩍은 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어느덧 우리는 마지막 버프 시스템 구역 입구에 도착하게 되었다.

잠깐 구역을 살피던 나는, 입구 안에서 들려 오는 이상한 소리를 느꼈다.

“잠시만, 무슨 소리 안 들려?”

“무슨 소리?”

아마도 루비는 눈치채지 못한 것 같다.

그러나 내 귓가를 맴도는 이상한 소리는 어디선가 많이 들어 본 익숙한 느낌이었다.

크르르르르.

그리고 우리가 점점 입구에 다가서자, 그 소리는 더더욱 크게 들리고 있었다.

“어! 나도 들었…….”

나는 황급히 루비의 입을 손으로 막았다.

이제는 저 소리의 정체를 알 것만 같다.

저 크르르르거리며 던전을 울리는 소리는 일개 마물의 소리가 아니었다.

저것의 정체는 바로…….

- 나와라, 쥐새끼들아.

드래곤이었다. 그것도 그린 드래곤.

입구 안의 드래곤은 우리의 위치를 찾기 위해 육중한 몸을 일으켜 주위를 두리번거리기 시작했다.

“젠장, 들킨 건가.”

“저, 저게 뭐야? 저것도 중간 보스야?”

아니, 저건 중간 보스가 아니다.

저 그린 드래곤의 정체는 다름 아닌 에메릴 그린월드.

그녀의 변신계 마법이다.

“지금 저 녀석을 만나면 위험한데.”

‘아카마’ 게임의 히로인 중 한 명인 그녀는 평소에는 그저 도도하고 시크한 성격이지만, 저렇게 그린 드래곤으로 변신하게 되면 사납고 호전적인 성격으로 바뀌는 설정이다.

따라서 마주친 우리에게 공격해 올 가능성이 매우 컸다.

“게다가 우리 수준으로는 저 녀석을 감당 못 해.”

에메릴도 엄연히 권좌의 가문 그린월드의 여식.

무엇보다 고조할아버지가 우리 아카데미의 교장, 마계 대전의 영웅, 살아 있는 전설 히로빈 그린월드다.

순수 무력으로만 따지자면, 아마도 우리 기숙사에서 제이드 다음으로 강할 것이다.

내가 이런저런 생각을 하고 있는 사이 루비가 먼저 움직였다.

“일단, 내가 묶을게!”

「그라비타스 폰데라티(grávĭtas ponderátĭ)」

콰아앙!

루비가 외운 중력 마법과 함께, 그린 드래곤의 육중한 몸이 바닥으로 바짝 달라붙어 옴짝달싹 못 하게 되었다.

그린 드래곤을 단순히 마법의 힘으로 억누를 수 있는 거였나……?

역시 루비도 보통내기는 아니다.

다만 먼저 공격하겠다는 루비의 선택은 조금 틀린 것 같았다.

“조심해!”

그린 드래곤의 몸을 묶었다고 해서 끝난 게 아니었다.

그리고 이내 우려했던 결과가 일어났다.

그린 드래곤은 바닥에 붙은 상태에서 숨을 크게 들이쉬더니,

쓰으으읍.

콰르르르르르륵!!

브레스를 내뿜었다.

“꺄아아아아!”

브레스를 맞은 루비는 외마디 비명과 함께 사라졌다.

아마도 누적 대미지가 치명적이어서 던전 밖으로 강제 귀환된 것으로 보였다.

다행히도 나는 대미지 90% 감소 버프 덕분에 아슬아슬하게 버틸 수 있었다.

- 잡히면, 죽는다.

루비가 없어지자 중력 마법이 풀린 그린 드래곤이 몸을 일으켜 세웠다.

“젠장!”

그리고 나는 땅을 박차고 달려오는 그린 드래곤을 피해 반대쪽 방향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 * *

“역시 대단해, 제페토!”

던전의 중간 보스를 한 번에 처리한 제페토를 보고 에이체스가 감탄사를 연발했다. 그런 에이체스의 반응에 우쭐한 제페토는 머리를 뒤로 쓸어 넘겼다.

“이 정도쯤이야. 가뿐하지.”

“우리 벌써 버프를 두 개나 모았잖아? 디버프까지 포함하면 사실상 네 개나 모은 거네.”

“훗…….”

그들이 모은 버프는 ‘함정 무효화 버프’, ‘시야 30% 증가 버프’였다.

비록 ‘받는 대미지 10% 증가 디버프’, ‘속도 20% 감소 디버프’를 받긴 했어도, 그들 스스로는 만족하는 결과였다.

“아마 우리가 가장 많은 버프를 가진 거겠지? 아직 던전에 들어온 지 30분도 안 됐잖아.”

“너도 잘했다, 에이체스.”

그들, 제페토 골드버그와 에이체스 저니맨은 이 던전 토벌 수업에서 우연찮게 같은 팀이 되었다.

특히 이들 콤비의 장점은 에이체스의 마법, 개로 변하는 변신계 능력으로 빠르게 던전을 수색하여 버프 시스템을 공략할 수 있다는 거였다.

다만 둘은, 그들보다 훨씬 많은 버프를 차지한 팀이 존재하리라는 걸 알지 못했다.

“그래서 어떻게 할 거야?”

제페토는 에이체스의 질문에 잠시 침묵했다.

애초부터 그는 이 던전 안에서 다시금 제로 녀석을 혼내 줄 계획이었다.

그러기 위해서 주말 동안 열심히 훈련했던 것이었고, 결과적으로 도철 다음의 사역마를 소환할 수 있게 되었다.

아직도 저번 주, 녀석에게 당한 수치심 때문에 속이 부글부글 끓어 올랐다.

“제대로 반 죽여 놔야겠지.”

사실 저번 주에 제로에게 졌던 이유는, 진심으로 힘을 사용했다가 자칫 죽일까 봐 살살하느라 방심했던 것도 있었다.

그러나 이곳은 마법으로 보정을 받는 던전 안.

어차피 치명적인 대미지를 입으면 던전 밖으로 강제 귀환되기 때문에 힘 조절할 필요가 없었다.

게다가 일주일 동안 벼르고 벼르던 감정은, 아까 전 제로 녀석이 루비 버밀리온의 손을 잡고 뛸 때 폭발했다.

같은 팀인 것도 모자라서, 손까지 잡는 사이라니.

‘하필이면 그 자식이랑…….’

제페토는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다.

오늘 이 던전 안에서 마주치면 제로를 반쯤 죽여 놓을 생각이었다.

그런데 그때, 멀리서부터 미세한 진동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제페토, 소리 들려?”

“소리?”

제페토는 에이체스의 말에 들려오는 소리에 집중했다.

쿵―

쿵―

쿵―

던전의 깊숙한 안쪽부터 들려오는 소리.

소리는 점점 본인들에게 접근하고 있었다.

“이쪽으로 다가오는 것 같은데……?”

에이체스는 심상치 않음을 느껴서 마법을 사용해 개로 변했다.

제페토 또한 긴장을 놓지 않고, 소리의 근원지를 향해 경계 태세를 갖췄다.

그리고 개로 변신한 에이체스가 곧 무언가를 발견한 모양이었다.

“제페토! 그 녀석이야! 제로 녀석이 달려오고 있어!”

멀리서부터 달려오는 건 다름 아닌 제로였다.

마치 이동 속도 버프라도 얻은 듯 제로는 엄청 빠른 속도로 달려오고 있었다.

“어리석은 녀석. 제 발로 찾아온다 이거지? 근처에 루비는?”

“루비 버밀리온은 안 보여.”

“그럼 더더욱 봐줄 이유는 없겠네.”

제페토는 잠시 눈을 감더니 주문을 외웠다.

「수페르비아 페쿠스(supérbĭa pecus)」

우우우웅!

잠시 웅장한 소리와 함께 노란색 연기가 시야를 가리더니, 그의 앞에 모습을 드러낸 것은 거대한 멧돼지였다.

녀석의 이름은 도올.

몸은 멧돼지의 형상을 하고 있으나 발은 멧돼지의 것이 아닌 호랑이의 발이 달려 있고, 기다랗게 뻗은 꼬리는 세 갈래로 갈라진 괴수였다.

“지난번엔 운이 좋았지만, 이번엔 그냥 넘어가지 못할 거다.”

제로 녀석이 도철의 약점을 알고 있다는 거에 조금 당황했지만, 도올은 약점이 없었다.

게다가 사역마의 성격 자체가 잔인하고 폭력적이라서 제로를 유린하기에 더없이 좋았다.

점점 제로의 모습은 가까워지고 있었다.

그 모습에 제페토는 코웃음 쳤다.

“확실히 대가리가 없어 보이는군. 도올이 있는 게 뻔히 보이는데도 달려오는 꼬라지라니.”

“그, 그런데 제페토… 저 녀석 혼자가 아닌데?”

“응? 혼자가 아니라니.”

“뒤에 무언가 거대한 걸 달고 오고 있는데?”

“거대한 거?”

변신하여 시력이 좋은 에이체스와 달리 제페토는 그 거대한 무언가가 잘 보이지 않았기에, 눈을 찌푸려서 그것을 확인했다.

그리고 잠시 후 그 정체를 알 수 있었다.

“저건… 드래곤이잖아?”

제로의 등 뒤로 쫓아 오는 것은 다름 아닌 드래곤이었다.

아까부터 느껴지는 육중한 소리와 거대한 땅울림의 정체는 저 드래곤 때문이었던 것이다.

그럼에도 제페토는 당황하지 않았다.

오히려 제로를 잡고 나서, 저 드래곤도 잡을 생각이었다.

어느새 제로는 가까이 근접했고, 제페토는 빠르게 도올에게 명령을 내리려고 했다.

그런데 달려오던 제로가 갑자기 그들에게 뭐라 뭐라 소리치는 바람에, 제페토는 순간 멈칫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 내용은 전혀 생뚱맞은 내용이었다.

“도망쳐어어어!!”

도망치라고?

제페토는 어이가 없었다.

“도망칠 건, 네 녀석이다!!”

그리고 도올을 움직여 제로를 덮치려고 하던 그때.

콰르르르르르륵!!

드래곤의 브레스가 제페토와 에이체스를 뒤덮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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