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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데미의 무속성 마법사-18화 (18/175)

18화

* * *

갑자기 달려들어 안긴 캐서린보다, 매섭게 활강하는 그리핀이 나는 더 당황스러웠다.

그 긴박한 순간, 나는 캐서린을 끌어안고 바닥으로 굴렀다.

치이이이익!

가속도를 받은 그리핀의 발톱은 그대로 바닥을 긁으며 지나갔다. 버프 시스템으로 얻은 ‘속도 버프’가 없었더라면, 꼼짝없이 저 발톱에 꿰뚫렸을 것이다.

“이게 무슨 경우야?”

항상 평민을 멸시하던 그 ‘캐서린 골드버그’가 갑작스레 달려들어 안기지를 않나. 아직 보스 방에 도착하지도 않았는데 그리핀이 덤벼들지를 않나.

“뭐, 나야 좋지.”

던전의 보스는 보스 방에서 더욱 강한 능력치를 얻는다. 따라서 이 녀석이 던전 밖으로 나온 이상, ‘아카마’에서 상대했던 녀석보다도 훨씬 약할 것이 분명했다.

툭―

일단 끌어안고 있는 캐서린을 바닥에 내려놓았다.

그러고는 어깨를 빙빙 돌려 몸을 풀었다.

“그럼 어디 해 보실까, 이 깜찍한 녀석아.”

나는 곧바로 주문을 외웠다.

「마지아 미실레(magía míssĭle)」

피유우웅!

정확히 그리핀의 눈동자를 노리고 날아가는 매직 미사일.

그러나 매직 미사일은 채 닿기도 전에 그리핀의 바로 앞에서 소멸했다.

“역시, 매직 미사일로는 안 되는 건가.”

어차피 적중할 거라 생각하고 던진 것은 아니었다.

그냥 간을 한 번 봤을 뿐이었다.

그런데 그 순간, 이상한 점을 발견할 수 있었다.

“어라? 왜 방벽이 까여 있어?”

그리핀의 몸은 마력 방벽으로 항상 보호받고 있다.

마력 방벽은 그리핀이 대미지를 입을 때마다 실체화하는데, 조금 전 내 매직 미사일이 소멸한 것도 마력 방벽에 막혔기 때문이었다.

저 그리핀의 원래 마력 방벽 색은 진한 파란색.

그리고 마력 방벽이 점점 깎일수록 색이 하얀색에 가까워진다.

그런데 방금 전 그리핀의 마력 방벽 색깔은 살짝 연해져 있었다. 아마도 수치로 표현하자면 20% 정도는 까여 있는 것으로 보였다.

“왜 저게 까여 있지? 캐서린이 한 건가?”

어떻게 된 일인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내 입장에서는 이보다 좋을 수 없었다. 나는 마음속으로 방벽을 깎아 둔 그 누군가에게 살짝 감사를 표했다.

“물론 막타는 내 거지만.”

키에에에에엑!

방금 전의 매직 미사일이 그리핀의 화를 돋운 모양이었다.

그리핀은 펄쩍펄쩍 제자리에서 뛰며 소용돌이를 생성하고 있었다.

“저건… 좀 위험한데.”

비록 ‘대미지 90% 감소 버프’가 있을지라도, 상대방이 보스 방 밖에 나와 있을지라도, 저런 걸 직격으로 맞았다간 어떻게 될지 모르는 일이다.

키에에에엑!

외마디 포효와 함께 소용돌이에 날갯짓을 하는 그리핀.

그와 동시에 소용돌이는 던전의 바닥을 긁고, 또 벽을 파괴하며 맹렬한 기세로 나에게 날아오고 있었다.

휘이이익!

어떻게 피할까 고민하고 있던 와중, 소용돌이는 열 갈래로 갈라져 더욱 범위가 광활해졌다. 이제는 그냥 단순하게 도망쳐서는 도저히 저 범위 밖으로 빠져나가는 것이 불가능했다.

“이미 피하긴 글렀네. 저 녀석도 참, 어지간히 화났잖아?”

나는 도망칠 생각 없이, 여유롭게 소용돌이를 감상했다.

그리고 내 손은 목 부근의 목걸이를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마법이란 애초에 마나를 변환하여 실체화한 것이다.

그러므로 마나를 흡수하는 아이템은 곧 마법조차 흡수할 수 있었다.

휘이이이이이이이익!

소용돌이가 내 눈앞까지 닥쳐온 순간, 나는 목에 있는 오팔 목걸이를 앞으로 내밀었다. 그리고 중앙에 달린 보석을 문질렀다.

우우우웅―!

목걸이는 진동과 함께 하얀색 빛을 뿜어내었고, 내 앞의 소용돌이를 그대로 흡수해 버렸다.

콰과과과광!!

흡수된 소용돌이를 제외한 다른 소용돌이들이, 그대로 던전의 벽들을 강타하며 커다란 굉음을 내었다.

“벌써 이걸 쓴 건 좀 아깝긴 한데…….”

‘오팔의 목걸이’는 마나를 일시적으로 흡수하는 효과가 있지만, 쿨타임이 무려 24시간이나 된다.

이제 다시는 저 소용돌이를 막을 수 없다는 뜻이었다.

그래도 이걸로 만족했다.

이제부터는 나도 진심으로 갈 거니까.

키에에엑.

그리핀은 사라진 소용돌이에 어떻게 된 영문인지 몰라 놀랜 듯 보였다. 펄쩍펄쩍 제자리에서 뛰어오르는 게 귀엽게도 느껴졌다.

“그나저나 저 녀석, 엄청나긴 하네.”

괜히, 게임에서도 공략 없이는 깨기 힘든 녀석이 아니었다.

뒤쪽에 직격한 소용돌이는 던전을 깊숙이 뚫고 나갔다.

모르긴 몰라도 저거에 맞고 게임 오버 당한 학생들도 몇몇 있을 것이다.

역시 녀석은 강했다.

어차피 저 녀석을 상대로는 다른 수는 통하지 않을 것 같다.

결국 답은 언노운밖에 없었다.

나는 목소리를 잔뜩 깔고 그녀를 불렀다.

“언노운.”

그런데 반응이 없었다.

잔뜩 분위기를 잡고 언노운을 부른 나는 살짝 당황스러웠다.

“저기요, 언노운 님?”

여전히 대답 없는 언노운.

슬슬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왜 대답이 없으시죠? 어서 나와 주세요! 약속했잖아요!!”

그러나 언노운은 쥐 죽은 듯 자고 있을 뿐이었다.

내가 당황하고 있을 그때…….

키에에에에에엑!

또다시 그리핀이 소용돌이를 생성하기 시작했다.

“빨리 나와요! 약속과는 다르잖아!!”

틀렸다.

언노운은 묵묵부답이었고, 이미 소용돌이는 또다시 맹렬하게 돌격해 오고 있었다.

이대로 포기할 수 없다고 생각한 나는, 눈을 질끈 감고 마지막 희망의 끈을 소리쳤다.

“누블랑! 누블랑 제과! 누블랑 초콜릿케이크!!”

그러자.

언노운의 검신이 빛나기 시작했다.

사아아아―

뭉뚝한 검날 끝에서 뿜어져 나오는 하얀색 기운.

그리고 나는 생각할 겨를도 없이, 언노운의 손잡이를 비스듬히 쥐고는 앞을 향해 크게 내려 베었다.

쿠과과과광!

언노운에서 뿜어져 나오는 마나의 파동은 맹렬히 날아오는 소용돌이를 반으로 갈랐다.

거기서 끝나지 않고 검기는 공기를 가르며 나아가, 그리핀의 몸체에 그대로 적중했다.

키에에에엑!

그리핀의 마나 방벽이 검기를 맞고 부서지고 있었다.

연한 파란색. 아니, 이미 방벽의 색은 하늘색에 가까웠다.

마나 방벽이 연달아 부서지자 당황한 그리핀은 어쩔 줄 몰라 하며 날개를 퍼덕였다.

나는 그 모습에 일단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와 함께 머릿속에는 언노운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 누블랑?

빌어먹을.

조금이라도 늦었으면 큰일 날 뻔했다.

게다가 뭐? 나타나서 한다는 말이 누블라앙?!

“왜 이렇게 늦게 나타나요? 약속이랑 다르잖습니까!!”

- 자고 있었다. 그나저나 누블랑 케이크는?

“있을 리가요!”

- 네놈. 죽고 싶은 거냐?

적반하장 마검 님의 태도에 어이가 없었다.

애초에 약속을 깰 뻔한 게 누군데?

그나저나 설마 했는데 진짜로 케이크 얘기에 나올 줄은 몰랐다. 초콜릿케이크를 정말 좋아하긴 하나 보다.

“일단 한 번은 봐 드릴 테니까. 저 그리핀부터 처리해요.”

- 케이크는?

“저 녀석 몸값이 300다트거든요? 그건 끝나고 나서 정산해 줄게요.”

- 알겠다.

물론 300다트를 언노운에게 투자할 생각은 티끌조차 없었다. 오히려 자느라 늦게 나온 언노운이 괘씸할 뿐이었다.

‘어딜 내 피 같은 돈을 꿀꺽하려고.’

다음부터는 선불제가 아닌 후불제로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나저나 벌써 하늘색이라니…….”

얼핏 확인한 걸로 봐서 그리핀의 현재 방벽은 하늘색.

그저 언노운의 검기에 한번 맞았을 뿐인데, 방벽은 벌써 와해되기 직전이었다.

수치상으로는 아마 방금 전 일격으로 40%는 깐 듯싶었다.

‘이 정도면 제이드보다도 센 거 아니야?’

지금의 위력은 풀 버프를 도핑한 게임 속 제이드를 뛰어넘는 듯했다.

물론 나도 풀 버프 상태긴 했지만.

‘원래 언노운이 이렇게까지 강했나……?’

‘아카마’에서는 언노운을 별로 선호하지 않았다.

그야 언노운의 능력은 일반적인 방출계 마법사가 사용하는 마법과 비슷한 기능이니까, 굳이 사용할 이유가 없었다.

다만, 지금의 언노운의 위력은 확실히 ‘아카마’ 속 언노운의 위력보다도 강한 것 같았다.

‘내가 제이드보다도 마나량이 높은 것은 아닌데 말이지. 뭐, 기분 탓인가.’

언노운의 능력은 마나를 검기로 변환시켜 주는 능력.

제이드만큼은 아니지만 나 역시 마나 보유량이 많았기에, 충분히 위력을 발휘한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키에에에에엑!

그리핀은 방벽이 부서지는 충격에서 벗어난 뒤, 이내 정신을 차렸는지 앞발로 바닥을 쿵쿵 내리찍으며 발광하고 있었다.

그러한 녀석의 마지막 몸부림에 나는 피식 웃음이 나왔다.

“기다려, 마무리해 줄 테니까.”

나는 몸을 낮추고 천천히 검의 손잡이를 쥔 채, 발검의 자세를 잡았다.

“그럼 한 번 더 부탁할게요, 언노운 님.”

사아아아아―

검날의 끝에는 아까와 같은 하얀색 기운이 물들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보고 공포에 질린 듯 안절부절못하는 그리핀.

그러다 이내 도망가야겠다고 본능적으로 깨달았는지, 날개를 쭉 펴고는 하늘 위로 수직 상승했다.

“어딜 도망가려고.”

나는 그대로 그리핀을 조준해 검을 베었다.

콰과과광!

백색 검기는 하늘 높이 솟아오르는 그리핀의 마력 방벽을 뚫고 적중했다.

끼에에에엑!

검기를 맞은 그리핀은 외마디 비명과 함께 지면으로 곤두박질치기 시작했다.

쿠우웅!

곧 거대한 몸체와 함께 흘러나오는 둔탁한 소리.

그리고 그 자리에는 커다란 크레이터가 움푹 파이게 되었다.

“해치웠나.”

이미 몸에 기력을 잃은 듯 간신히 발끝을 꿈틀대는 그리핀.

조금 전 언노운의 검기로 방벽은 전부 까이고 이젠 마지막 일격만이 남아 있었다.

나는 바닥에서 꿈틀대는 그리핀의 목을 베기 위해 서서히 다가갔다.

그러다 문득 든 생각이 있었다.

‘잠깐만… 아직 서브 이벤트를 안 깼잖아?’

보상으로 무려 주문서를 주는 서브 이벤트.

물론 그 주문서가 나에게 큰 도움이 될지는 알 수 없었지만, 조금 고민이 되었다.

보스를 죽이면, 그 즉시 던전이 종료되기 시작한다.

그래서 서브 이벤트를 수행하려면 지금 당장은 이 녀석을 죽일 수 없었다.

그렇다고 보스 방에 갔다 오자니 누군가 막타를 먹을 수도 있었다. 분명 방금 전의 전투로 발생한 소음에 사람들이 몰려올 것은 뻔했다.

“어떻게 해야 하지…….”

300만 원이냐, 효과를 알 수 없는 주문서냐, 고민하고 있을 그때, 멀리서 누군가 다가오는 게 느껴졌다. 얻었던 신체 능력 증가 버프로 인해, 멀리 떨어져 있어도 누군지 단번에 파악할 수 있었다.

“저건… 제이드잖아?”

제이드는 ‘아카마’의 메인 여주인공, 샬롯 아메드와 함께 뛰어오고 있었다.

역시 게임에서처럼 그들은 같은 팀인 모양이었다.

그런 그들이 지금 이쪽으로 접근하고 있는 것이다.

“…까짓것 한번 양보해 줄게.”

‘아카마’에서 어차피 이 녀석은 제이드의 몫이다.

그리고 저 녀석은 양보받을 자격이 충분했다.

나는 300만 원과 학점보다는 알 수 없는 효과의 주문서를 택하기로 결심했다.

그리고 보스 방, 그리핀의 둥지를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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