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아카데미의 무속성 마법사-20화 (20/175)

20화

처음에는 이게 어떻게 된 건가 싶었다.

그야 모든 학생의 이목이 나한테 집중되고 있었으니까.

그리고 나는 곧 그 이유를 알게 되었다.

“저건… 모니터?”

대기하고 있던 학생들 앞에는 모니터로 보이는 커다란 화면이 펼쳐져 있었다.

물론, 지금은 스크린뿐이고 내용은 없었지만, 딱 봐도 방금 전까지 던전에 있었던 내용이 중계되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럴 리가 없는데…….’

이상했다.

원작에서 이 던전 수업은 모니터링을 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애초에 저런 모니터조차 존재하지 않았다.

오늘 던전 수업의 원래 목적은 그저 학생들이 얼마나 던전에서 오래 버티는지를 가늠하는 것이지, 보스를 처치하고 던전을 클리어하는 역량을 테스트하는 것이 아니었다.

‘대마물전 실전 전투’의 교수 스티브 로이드는 애초부터 이 던전을 설계할 때, 클리어를 불가능하게 만들어 놓았다. 학기 초가 끝나고 학생들이 어느 정도 성장하게 되면, 그때 다시 던전을 재활용할 생각이던 것이다.

그래서 원작인 ‘아카마’에서는 모니터 같은 건 원래부터 존재하지 않았다.

물론 ‘아카마’의 제이드는 이 던전의 보스를 잡는다. 그러나, 아무리 보스를 잡는다 한들 중계되지도 않을뿐더러 그냥 교수에게 ‘어떻게 던전을 클리어했지?’ 정도로 끝나는 이벤트였다.

그런데 지금은 명백히 원작 ‘아카마’의 내용에 벗어나 있었다.

이들은 언노운으로 그리핀을 단 두 방만에 때려잡는 내 모습을 실시간으로 보고 있던 것이다.

짝―!

누군가 박수를 유도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짝―! 짝―! 짝―!

또다시 학생 중의 누군가가 박수를 호응했다.

짝짝짝짝짝짝―!

곧 모두가 박수에 동참했다.

귀족 강경파 몇몇을 제외한 학생 대부분이 보내는 박수갈채.

나는 그러한 학생들의 광경에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지 당황스러웠다.

“역시, 칼루스 아카데미의 수석은 확실히 다르구나!”

스티브 로이드 교수가 다가와서는 자연스레 어깨동무를 했다. 그의 두꺼운 팔뚝이 내 어깨를 감싼다.

나는 이미 이 상황에 얼이 빠져도 한참 빠져 있어, 저항 없이 애써 미소 지을 뿐이었다.

“물론 전설급 마도구를 사용한 모양이더구나. 그럼에도 대단하다! 애초에 난 이 던전을 학생 수준으로 깨지 못하게 설계해 놨거든. 아마도 이 정도라면 이미 현역 마법사를 뛰어넘을 듯싶다!”

스티브 교수의 우렁찬 목소리에 학생들이 또다시 환호하며 박수갈채를 날렸다. 학생들 또한 보스를 가볍게 가지고 노는 내 모습에 존경과 깊은 감명을 받은 모양이다.

‘하긴, 내가 생각해도 좀 무지막지하게 강하긴 했어.’

물론 전부 언노운빨이긴 했다.

그런데 애초에 마법사가 마도구를 사용하는 건 금지가 아니다. 좋은 마도구를 가지고 있는 것도 마법사의 스펙 중 일부라는 소리다.

그리고 옛말에 그런 말이 있다.

장인은 도구 탓을 하지 않는다.

그러면 결국 도구가 안 좋은 것도 장인의 잘못이란 소리 아닌가? 도구가 좋은 것은 장인이 잘한 것이고?

적어도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나저나 이젠 완전히 수석 이미지네……. 이걸 다행이라 해야 하나…….’

‘아카마’에서 마법을 사용 못 해 공기화해 버리는 제로와는 정반대로, 지금의 나는 오히려 이들 사이에서 천재 우등생의 이미지가 되어 버렸다.

애초에 지금의 나에게는 제로가 ‘아카마’에서 입학 일주일 만에 겪게 될 ‘마법을 사용하지 못해 거품이 들통난다.’라는 이벤트조차 찾아오지 않았었다.

‘좋은 게 좋은 거지.’

이왕 이렇게 된 거 아카데미의 천재 라이프를 즐겨야겠다. 어차피 계열 마법을 쓰는 수업은 전부 수강하지 않았으니까, 계열 마법을 사용하지 못한다는 것을 들킬 염려도 적어졌다.

‘그리고 뭐, 지금의 내가 강한 건 사실이니까.’

실제로 지금의 나는 계열 마법만 못 쓴다 뿐이지, 약한 것도 아니었다. 여차해서 긴급한 상황이 찾아오게 된다면, 케이크를 빌미로 언노운을 꼬셔서 힘을 빌리면 된다.

나는 순수하게 이 상황을 즐기기로 했다.

그리고 여전히 나를 향해 박수와 찬사를 보내는 학생들에게 미소와 함께 손을 흔들어 주었다.

* * *

아직 수업이 시작하지 않은 이른 아침의 강의실.

루비 버밀리온이 창가 쪽에 앉아서 ‘기초 마법 개론’ 수업의 시작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그녀는 왠지 무언가 생각할 거리가 있는 듯 보였다.

‘그 힘은 도대체 뭐지?’

루비는 아직도 어제 봤던 제로의 모습이 주는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어떻게 고작 학생 신분으로 그 정도의 힘을 낼 수 있는 거야?’

어제 그린 드래곤의 폭주로 인해 일찌감치 탈락하게 된 루비는, 모니터 속 화면으로 제로의 활약을 감상하고 있었다.

자신의 탈락 이후, 에메릴 그린월드를 여유롭게 따돌리는 제로의 모습. 그리고 그는 곧장 보스 방으로 향해 그리핀을 상대했다.

그녀가 알기로는 그리핀, 그것도 보스급 그리핀은 절대 그렇게 쉬운 상대가 아니었다.

애초에 담당 교수님부터가 던전을 클리어하지 못하게 설계했다고 공언했다. 그런데, 그 보스 그리핀의 마력 방벽을 단 두 방만에 제거할 수 있는 실력이라니…….

‘그러고 보니 처음부터 평범하지 않았네.’

처음 그녀가 제로를 봤던 것은 입학식 날.

먼저 입학 테스트를 보고 나서 달시 세이피어의 순서를 기다리고 있다가 우연히 제로가 입학 테스트를 받는 것을 보게 되었다.

그녀가 알기로는 제로처럼 모든 학생의 테스트가 끝나기 전에 수석 자리를 확정받는 것은 상당히 이례적인 일이었다.

그때부터였을까, 계속해서 제로가 눈에 밟힌 것은.

우연히 훈련실에서 마주쳤을 때도, 제로는 그녀에게 놀라움을 선사했다. 현역 마법사조차도 그렇게 많은 매직 미사일을 소환할 수 없을 텐데 제로는 또다시 말도 안 되는 모습을 보여 줬던 것이다.

‘그리고 던전에서도 제로가 아니었으면 큰일 날 뻔했지…….’

루비는 일평생 마법을 사용하지 못하는 경우를 겪어 본 적 없었다. 그녀에게 마법은 숨 쉬는 것과도 같았다.

그리하여 보스를 맞닥뜨리고, 달시가 쓰러진 상황 속에서 마법을 사용하지 못한다는 사실에 순간 패닉에 빠졌던 루비였다. 그 당시의 루비가 느낀 공포는 마치 숨이 안 쉬어지는 듯한 절망이었다.

그런데 제로는 그 상황에서 침착하게 자신을 구해 주고, 오른팔에 심각한 부상을 입은 악조건 속에서도 혼자서 보스와 맞섰다.

그때부터 마음속 한구석에 제로에 대한 호감이 조금 자리 잡은 듯싶었다.

‘아, 아니 이건 순전히 사람으로서의 호감이야! 남자로서는 절대 절대 아니라고!’

그녀는 순간 자신의 마음속에 든 이상한 생각에 황급히 고개를 저었다. 이미 두 볼은 그녀의 로브 색처럼 새빨갛게 물들어 있었다.

‘내, 내가 이 수업을 들은 이유도 그저 기초 마법에 관심 있어서 수강한 거야. 다른 이유가 있어서가 아니야!!’

그녀는 절대로 제로가 기초 마법 수업을 들을 것 같아서 수강한 게 아니었다. 그렇게 루비 버밀리온은 수업이 시작할 때까지 스스로를 부정하고 있었다.

잠시 후 학생들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강의실에 들어오는 학생들 중 제로도 있었다.

역시 그녀의 예상대로 제로는 기초 마법 수업을 수강한 모양이었다. 제로는 그녀를 발견하자마자, 손을 흔들며 옆자리에 앉았다.

“안녕?”

“어, 어……? 안녕!”

“반응이 왜 그래?”

“그, 그냥… 아무것도 아니야.”

방금 전까지 루비가 무슨 상상을 했는지 제로는 절대 알지 못할 것이다. 물론 솔직하지 못한 그녀의 입과 머리와는 다르게, 두 볼은 새빨갛게 물들고 있었다.

“너도 이 수업 듣는 거야? 의외네. 기초 마법에 관심 있는 사람은 별로 없잖아.”

제로의 말이 사실인 게, 이제 곧 수업인데도 강의실에는 사람이 별로 없었다. 루비는 그런 제로의 말에 아무렇지 않게 대답했다.

“그냥… 최근에 관심이 생겨서.”

그 최근에 생긴 관심이 무엇에 대한 관심인지는 스스로도 모를 일이다. 제로는 잠시 고개를 갸우뚱하더니 이내 화제를 돌렸다.

“그나저나, 어제는 미안했어. 에메릴이 그렇게 폭주할 줄 알았으면 미리 경고하는 건데.”

“어, 어제? 아… 괜찮아. 어차피 에메릴이 잘못한 건데 뭐. 그리고 사과도 받았어.”

“사과를 받았다고?”

어제 던전 수업이 종료된 뒤, 에메릴이 그녀를 찾아왔었다.

그러더니,

‘…미안.’

이라는 짧은 사과를 했었다.

비록 그 말 이후에 순식간에 사라지긴 했지만 그녀의 진심이 어느 정도 느껴졌었다.

물론 이미 루비에게 어제 자신을 공격한 에메릴 그린월드는 안중에도 없었다.

“오히려 너한테 고마운걸. 덕분에 최고 점수를 얻었잖아.”

“하하… 운이 좋았지. 그나저나, 너 너무 버스만 타는 거 아니야? 이번엔 보여 준다고 하지 않았어?”

“뭐, 뭐라고?!”

또다시 짓궂은 농담을 하는 제로에게 발끈하는 루비였다.

* * *

‘기초 마법 개론’ 강의의 첫 주제는 ‘감지’ 마법이었다.

“감지 마법은 특정 대상의 마나를 감지하여 위치를 파악하는 아주 중요한 마술이에요오. 물론, 감지 마법에 사용되는 기본 마나량도 많이 들뿐더러, 정밀한 감지를 위해서는 엄청난 양의 마나가 필요하기에, 요즘 젊은 친구들은 잘 배우려 하지 않지만 그래도 정말 유용하답니다아.”

특유의 어투로 말을 굉장히 늘어지게 하는 ‘기초 마법 개론’의 교수 마하루타 스네일.

나는 그녀의 말에 머리를 한 방 맞은 듯했다.

‘마나를 감지하는 마법이 있었다고……?’

생각지도 못했다.

‘아카마’ 게임 속에서 애초에 주인공은 기초 마법 같은 건 필요하지도 않았고, 이런 수업에 쓸 학점이 아까워서 듣지 않았었다.

그런데 기초 마법에 이렇게나 훌륭한 마법이 존재했다니?

물론, 교수는 감지 마법이 상당한 마나량을 소모하는 마법이라고 설명했다. 그런데 그런 건 나에게 의미 없는 얘기였다.

‘애초에 마나가 쓸데없이 넘쳐 나는데? 그럼 사실상 내 전용 마법인 거잖아.’

나에게 감지 마법의 리스크 따위는 존재하지 않았다.

“그럼, 감지 마법을 다들 연습해 보실까요오? 자, 따라 해 보세요.「프레시스코(præscísco).」”

학생들은 저마다 감지 마법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마찬가지로 나도 눈을 감고 마하루타 교수가 알려 준 주문을 읊조렸다.

「프레시스코(præscísco)」

띠잉―

머릿속에 울려 퍼지는 맑은 소리.

그와 함께 주변에 있는 사람들의 모습이 어렴풋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여전히 눈을 감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강의실 안의 학생들의 위치와 그들의 대략적인 크기, 위치, 실루엣이 파악되고 있었다.

나는 눈을 계속 감고는 좀 더 이 감각에 집중해 보았다.

그러자, 단순히 강의실 안의 실루엣만 보이는 게 아니라 점차 그 범위가 확대되어, 복도에 있는 사람들, 아래층에 있는 사람들, 심지어는 기숙사까지도 닿는 듯싶었다.

‘이렇게 사기적인 마법이 있었다고?’

이 마법은 당장의 던전 수업이나, 대인전 수업에도 사용하기 좋았지만, 나중에 닥쳐올 안티 매지션들의 침공 이벤트 때도 유용하게 사용될 것이었다.

나는 새로운 유용한 마법을 알았다는 사실에 절로 기분이 좋아졌다.

‘기초 마법에도 쓸 만한 게 꽤나 많잖아?’

역시, 배움에는 끝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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