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화
* * *
“다들 모였나.”
학생들을 또다시 아카데미의 숲으로 집합시킨 이는 바로 ‘대마법사전 실전 전투’의 교수 케이든이었다.
삼삼오오 모여 있는 학생들을 한 번 쓰윽 훑은 케이든은, 천천히 입을 열기 시작했다.
“마법사는 마물을 상대할 수 있다고 해서 끝이 아니다. 적은 내부에 있을 수도 있다. 따라서 마법사에게 대마법사전은 매우 중요한 요소다.”
이 세계에는 크게 두 가지의 적대 세력이 있었다.
하나는 왜 발생하는지 그 이유를 정확하게 알 수 없는 마물들. 그리고 또 하나는 마법사 사회의 범죄자들 통칭 ‘안티 매지션’이라고 불리는 자들이다.
“비교적 지능이 떨어지는 마물들과 다르게, 안티 매지션은 사람이다. 너와 나 그 누구도 될 수 있지. 상대방은 물질계일 수도, 강화계일 수도, 원소계일 수도 그 어떤 계열일 수도 있다. 너희는 상대방의 계열을 모른다고, 대처할 수 없다고, 또 상성이 불리하다고 변명할 수 없을 것이다.”
케이든의 눈동자는 선글라스로 가려 보이지 않았지만, 그의 목소리에서 느껴지는 카리스마가 학생들을 압도했다.
“그럼 너희가 변칙적인 대마법사 전투에 익숙해지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답은 간단해. 그만큼 실전 경험을 쌓는 거다. 따라서 이 ‘대마법사전 실전 전투’ 강의는 너희들끼리의 대련으로 계속해서 이루어질 것이다.”
케이든은 잠시 말을 멈추고 학생들에게 불만 있냐는 듯 쳐다보았다. 그러나 어느 누구도 거기에 불만을 가지는 사람은 없었다.
“너희들의 입학 성적, 일주일간의 실적 등의 데이터를 토대로 파워 랭킹을 만들어 봤다. 앞으로 내 강의는 이 랭킹을 토대로 진행될 것이다. 어느 정도 실력을 기르려면 본인보다 높은 상대와도 겨뤄 봐야겠지만, 일단은 처음이니 초반엔 최대한 밸런스를 맞출 예정이다. 물론, 수업 결과가 우수할 경우 당연히 랭킹은 올라간다.”
갑자기 손가락을 한 번 튕기는 케이든.
그리고 그의 눈앞에 양피지가 나타났다.
케이든은 아무렇지 않게 양피지를 펴고는 읽기 시작했다.
“그럼, 여러분들의 랭킹을 불러 주도록 하겠다. 랭킹 1등…….”
나는 당연히 이 파워 랭킹의 결과를 알고 있다. 물론 오늘 수업이 종료되고 나서 ‘아카마’ 엔딩까지의 파워 랭킹도 알고 있었다.
당연히 1등은 제이드다.
그런데 케이든이 호명한 이름은 전혀 예상하지 못한 사람이었다.
“…제로.”
“네……?!”
그것은 바로 나였다.
나는 순간 놀란 마음에 벌떡 일어났다.
그러자 주변 학생들의 시선이 순식간에 나에게로 몰리는 것이 느껴진다.
그제야 나는 머리가 돌아가기 시작했다.
‘맞다. 나 수석이지.’
하도 게임 ‘아카마’에 익숙해 있다 보니, 자꾸만 수석인 걸 깜빡깜빡 잊는다.
그리고 케이든 교수의 랭킹 시스템은 단순히 마나 보유량으로만 갈리는 것이 아니었다. 내가 랭킹 1위인 이유는 아마도 그리핀을 처리했던 영상과 결과를 확인해서겠지.
그래도 랭킹 1위라니…….
‘아카마’에서 제로는 애초에 이 랭킹 시스템에 호명조차 스킵당한다. 지금의 나는 확실히 원작과는 다른 성공적인 데뷔를 한 듯싶다.
자리를 박차고 일어난 내 얼토당토않은 행동에, 케이든 교수의 의아한 눈빛이 선글라스를 뚫고 나에게 느껴졌다.
“…뭐지?”
“저… 부르면 대답해야 하는 건 줄 알고…….”
“딱히 대답할 필요는 없다. 그럼 이어서 부르겠다. 랭킹 2등 제이드, 랭킹 3등 에메릴 그린월드, 랭킹 4등 달시 세이피어, 랭킹 5등 루비 버밀리온, 랭킹 6등 제페토 골드버그…….”
케이든은 아무렇지 않게 계속해서 랭킹을 호명했다.
뒤로 이어지는 호명을 듣고, 새삼 지금의 내 입지가 매우 높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주인공 제이드는 물론이고, 에메릴이든, 달시든, 하물며 제페토든, 죄다 쟁쟁한 가문과 핏줄을 가진 사람들이다. 그런 사람들 사이에서 내가 1등이라니…….
나름 가슴이 벅차올랐다.
랭킹의 호명과 확인이 전부 끝나고, 케이든은 이어서 오늘의 수업 진행 방식에 대해 설명했다.
“오늘의 실전 전투 수업은 2:2 팀전으로 이루어진다. 그리고 저 던전이 오늘 너희들이 전투를 치를 무대라 볼 수 있지.”
케이든은 바로 앞의 던전을 엄지손가락으로 쿡쿡 가리켰다.
“저 던전은 마물이 없는 대인 전투 훈련용 던전으로, 치명적인 피해를 입게 되면 자동으로 던전 밖으로 귀환된다. 그러니 죽을 걱정은 말고 진심으로 싸우도록. 너희들이 저기서 할 것은 간단하다. 서로 정해진 스타팅 포인트에 거점이 있을 텐데, 상대방의 거점을 밟으면 승리한다.”
“그럼 서로 수비만 하면 어떻게 되나요?”
한 학생의 질문에 케이든은 고개를 끄덕였다.
“좋은 질문이다. 서로 수비만 하면 결과를 알 수 없겠지. 따라서 랭킹 시스템을 바탕으로, 정해진 밸런스에서 우위를 가진 팀이 공격팀, 나머지가 수비팀으로 정해진다. 물론, 수비팀도 공격을 할 수 있다. 다만 15분 안에 서로 거점을 점령하지 못할 경우 수비팀의 승리다. 이해했지?”
“네!”
학생들의 우렁찬 대답 소리.
본격적으로 랭킹이 정해지고 서로 경쟁하는 시스템이 시작되다 보니, 다들 의욕이 넘쳐 보인다.
“참고로 던전의 구조는 항상 랜덤으로 배정되니까, 먼저 한다고 불리하고 나중에 한다고 유리한 점은 없다. 그리고 오늘 수업은 시간 관계상 전부 진행할 수 없으니, 나머지는 금요일 재량 수업 시간에 연장하도록 하겠다.”
본인이 아우레인 기숙사의 기숙 사감이라고 금요일 재량 시간까지 수업으로 활용하려는 케이든이다.
“그럼 이어서 대진을 말해 주도록 하지. 비교적 랭킹이 높은 전투를 앞으로 배치해 놨다. 그 애송이들의 싸움을 보고, 배우고, 분석해서 본인 차례에 써먹도록. 1경기는 랭킹 3위 에메릴 그린월드와 랭킹 6위 제페토 골드버그가 공격팀. 랭킹 4위 달시 세이피어와 랭킹 5위 루비 버밀리온이 수비팀이다.”
나는 호명과 함께 던전으로 들어갈 준비를 하는 루비에게 말을 걸었다.
“자신 있어?”
“물론. 두고 봐, 이번엔 꼭 증명할 테니까.”
“딱히 증명해 달라는 말은 한 적 없는 것 같은데?”
“아, 아무튼!!”
루비는 또 어느샌가 새초롬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나는 그런 루비에게 웃으면서 손을 흔들어 주었다.
“꼭, 이기고 와.”
“응, 이기고 올게.”
그리고 루비와 달시, 에메릴과 제페토는 케이든의 지휘하에 던전 안으로 입장했다. 그리고 나머지 학생들은 입구 쪽에 있는 모니터로 그들의 상황을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그러고 보니 복수전이네?’
‘대마물전’ 강의의 던전 토벌 수업에서 루비는 에메릴에게 한 방에 아웃당했었다. 아마도 이번 전투가 그 복수극일 테지.
그러한 점도 이번 싸움의 묘미 중 하나였다.
그런데 사실 ‘아카마’에서는 이러한 대진이 아니었다.
아마도 내가 이 칼루스 아카데미에 개입하기 시작하면서 케이든의 평가와 랭킹이 바뀐 듯싶다.
예를 들어 저 에메릴의 랭킹이 높은 이유는 ‘대마물전’ 강의의 던전 수업에서 학생들을 학살하며 무력을 뽐낸 게 반영된 것일 테고, 달시 또한 던전에서의 활약 때문인 듯싶었다.
그리고 원래 ‘아카마’에서 제페토의 랭킹은 거의 2인자급으로 높다고 볼 수 있었는데, 지금은 별로 보여 준 게 없어서 랭킹이 낮은 듯싶다. 그것 또한 내 영향이 없진 않을 것이다.
‘그러고 보면 밸런스가 맞으려나…….’
사실상 랭킹 2위의 제페토와 랭킹 3위의 에메릴이 팀을 이루었기 때문에 루비와 달시 쪽이 조금은 불리해 보였다.
그러나 루비와 달시 쪽도 확실한 장점은 있었다.
그것은 바로 둘이 매우 친한 단짝이라는 것.
그렇기에 아마도 척척 맞는 호흡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내 예상이 틀리지 않았다는 듯, 모니터 속에서는 벌써부터 작전을 짜는 듯한 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 수비는 내가 맡을게. 최대한 상대방의 위치와 거점을 파악해 줘.
- 응, 알았어!
던전에 입장하자마자 역할을 분담하는 루비와 달시.
‘좋은 판단이네.’
나는 그녀의 판단력에 순수하게 감탄했다.
지금 상황에서 저것보다 더 좋은 오더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차피 수비는 루비 혼자서도 충분하다. 그녀의 중력 마법이라면, 둘이 동시에 공격하러 올지라도 시간을 꽤 벌 수 있을 것이다. 게다가 달시의 적성 자체가 수비보다는 기동력과 수색에 특화되어 있기도 하다.
반면, 제페토와 에메릴 쪽은 팀플레이에 있어 문제가 많아 보인다.
화면 속의 제페토는 일찌감치 용으로 변신한 에메릴과 말다툼을 벌이고 있었다.
- 어이, 내가 갈 거니까. 여기서 가만히 기다려라.
- 닥쳐라. 공격은 내가 간다.
- 뭐, 뭐라 했냐, 이 자식아? 닥치라고?!
시작부터 불안해 보이는 두 팀이었다.
아무튼 케이든의 신호와 함께 두 팀은 본격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런데, 제페토와 에메릴의 공격팀은 상황이 조금 재밌어졌다.
- 이 빌어먹을 자식아! 지키고 있으랬지!!
- 그러는 너야말로, 안 지키고 뭐 하는 것이냐!
신호와 함께 도철을 타고 달리는 제페토와 빠른 속도로 네발로 기어가는 그린 드래곤. 시작과 동시에 자리를 비운 둘이었기에, 그들 공격팀의 거점은 텅 빈 상태로 홀로 남겨져 있었다.
나는 그런 그들의 우스꽝스러운 모습에 웃음이 절로 나왔다.
‘이거 루비와 달시 쪽이 너무 싱겁게 이기겠는데?’
보나 마나 결과는 뻔했다.
그리고 역시나 공격팀과 수비팀의 구도는 내 예상대로 흘러갔다.
달시는 전투 시작 1분 만에 벌써 상대방의 위치, 거점의 위치를 전부 파악했다.
- 쟤네, 둘 다 달려오고 있는데?
- 그럼 내가 최대한 막아 볼게. 빠르게 가서 거점을 노려 줘!
그리고 달시는 순식간에 상대방의 거점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상시 발동 강화계의 육체를 가진 그녀는, 달려오는 그린 드래곤과 도철을 타고 오는 제페토의 속도에 전혀 밀리지 않았다.
양 팀 공격자의 속도가 비슷할 때, 결과는 수비하는 루비 버밀리온에게 달려 있었다.
루비는 자신의 마법 범위 안에 도철과 그린 드래곤이 들어오자마자 중력 마법을 발동시켰다.
「그라비타스 폰데라티(grávĭtas ponderátĭ)」
쿵―!
순식간에 바닥에 납작 엎드리게 된 그린 드래곤.
그리고 달리던 도철 또한 거센 중력과 가속도에 못 이겨 몸을 크게 비틀었고, 그 위에 탑승하고 있던 제페토는 도철이 급정거하자 튕겨 날아가 벽에 부딪혔다.
- 아아악!!
크게 타박상을 입어 비명을 지르는 제페토.
그와 동시에 케이든이 종료를 알렸다.
“종료, 수비팀 승리다.”
루비가 발을 묶자마자 어느새 달시가 거점에 도착한 것이었다.
던전이 종료되자마자 루비와 달시, 제페토와 에메릴은 던전 밖으로 강제 귀환되었다. 던전 밖으로 나와도 여전히 티격태격하는 제페토와 에메릴의 모습이 큰 웃음을 유발했다.
곧 케이든은 다음 대진을 호명했다.
“랭킹 1위 제로, 랭킹 12위 캐서린, 공격팀. 랭킹 2위 제이드, 랭킹 7위 샬롯 아메드 수비팀. 바로 준비해라.”
드디어 내 차례가 다가온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