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아카데미의 무속성 마법사-22화 (22/175)

22화

상대방이 무려 ‘제이드’다.

물론 어느 정도 각오하고 있던 부분이었지만, 실제로 호명됐을 때는 또 느낌이 달랐다.

‘아카마’의 주인공이자, 이 세계에 몇 존재하지 않는다는, 공격형 방출계 마법사. 거기다 알고 보면 영웅의 핏줄까지 달고 있는 녀석.

애초에 이길 수 없는 싸움이었다.

‘거기다, 내 파트너는 캐서린이잖아.’

파트너 차이도 무시 못 했다.

제이드의 파트너는 랭킹 7위의 샬롯 아메드. ‘아카마’에서 제이드의 메인 히로인이기도 한 그녀는, 빛을 다루는 원소계 마법사였다.

이 세계에는 이런 말이 있다.

근접 전투는 ‘강화계’. 원거리 전투는 ‘원소계’.

계열 마법이라고 다 비슷한 힘을 가진 것이 아니어서, 가장 클래식한 힘을 사용하는 두 계열이 인기도 성능도 뛰어나다고 평가받는다. 그것이 이 두 계열을 지망하는 마법사들이 많은 이유이기도 했다.

게다가, 그 원소계 중에서도 ‘빛’은 강력하다고 평가받는 원소였다. 그 빛을 다루는 샬롯 아메드는 절대 무시 못 할 전력이었다.

반면에 내 파트너는 캐서린 골드버그.

물론 가문 출신이라곤 하지만, 능력 자체는 자신의 쌍둥이 오빠인 제페토 골드버그보다도 못했다.

조금 불공평한 밸런스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어째서 우리가 공격팀인 거냐고.’

분명 더 강한 쪽의 밸런스가 공격팀을 갖는 것일 텐데 이해가 되지 않았다. 애초에 수비만 하면서 버티는 전략은 시도조차 할 수 없었다.

‘케이든 교수님이 날 어지간히 고평가 하나 보네.’

아무래도 그리핀을 잡은 영상이 퍼진 영향이 큰 것 같다.

어제 이후로, 제페토 무리와 몇몇을 빼고는 날 진정한 수석으로 인정하는 분위기가 됐으니 말이다.

‘그나저나 밸런스도 안 맞을뿐더러 제대로 할 수도 없겠네.’

제페토보다는 덜하지만, 그래도 평민을 싫어하는 저 캐서린 골드버그에게, 팀플레이는 기대할 수도 없었다. 캐서린 쪽으로 스윽 시선을 돌려 반응을 살펴보니, 역시 불만이 한가득한 표정이었다.

‘그냥 기권이나 해야겠다.’

어차피 이미 보여 줄 건 다 보여 줬고, 이 수업에 걸린 보상도 딱히 없고. 여기서 무리할 이유가 없었다.

이번 수업을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가득한 그때.

띠링―

눈앞에 이벤트 창이 떠올랐다.

〈서브 이벤트〉

[주인공을 넘어서는 자]

* 달성 조건: 주어진 미션 [거점 밟기]에서 승리한다.

* 제한 시간: 던전 종료 시점까지

* 실패 조건: 미션 패배 혹은 사망

* 보상: 당신에게 필요한 마법 주문서(???) 선택권

내역을 쭉 읽던 내 눈동자가 차츰 팽창하기 시작했다.

‘뭐야… 설명이 바뀌었잖아? 당신에게 필요한 마법 주문서 선택권? 선택권을 준다고……?’

지금까지의 보상은 확률형 가챠였다.

그저 운에 기대서 주문서의 효과를 챙기는 형식.

그래도 원체 주문서에서 나오는 효과들이 하나같이 쓸모 있는 것들이었기에 ‘성공의 주사위’나 ‘더블 캐스팅’이 중복으로 뜨기만 해도 만족하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선택이라니?

그것도 당신에게 필요하다는 수식어까지 붙었다니?!

기대가 생기지 않을 수 없었다.

게다가 지금까지 내가 모르고 있는 효과들이 잔뜩 있을 것이다. 가장 최근에 얻은 주문서 효과인 ‘성공의 주사위’만 해도 엄청나게 사기적인 효과였다.

‘무조건. 무조건 이겨야 해.’

이번 보상은 목숨을 걸 만한 가치가 있었다.

계속해서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생각에 잠겨 있던 나는, 케이든 교수가 계속해서 나를 부르고 있는지도 눈치채지 못했다.

생각을 정리하고 주위를 둘러보자, 이미 나를 제외한 모두는 던전 앞에 대기 중이었다.

“뭐 하나? 안 오고.”

“아? 예! 가겠습니다!”

그렇게 나는 캐서린과 함께 던전 안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 * *

“정말 끔찍해요! 최악이에요!!”

캐서린은 던전 안에 들어오자마자 바닥을 발로 차 대며 화풀이를 해 댔다. 이 전투를 무조건 승리하고 싶던 나는, 그 모습에 매우 불안해졌다.

어떻게든 캐서린의 비위를 맞춰 줘야 했다.

“왜……? 나랑 팀이 돼서 그런 거야?”

“물론 당신 같은 평민 따위랑 팀이 된 것도 충분히 기분 나쁜 일이지만요.”

“물론? 팀이 된 것도? 기분 나쁜 일이지만요? 뭐, 별다른 이유라도 있어?”

“네?! 다, 다른 이유라니요! 그저 당신 따위랑 팀이 된 게 역겨울 뿐이에요!”

캐서린의 입은 험했으나, 얼굴은 솔직했다.

한눈에 봐도 그녀의 얼굴이 조금 전 발언으로 인해 붉어져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나는 단번에 그 이유를 눈치채고는 씨익 미소를 지었다. 그러고는 캐서린에게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제이드 때문이지?”

“어, 어떻게 그걸……?”

당연하다.

그녀는 ‘아카마’에서도 제이드를 연모했으니까.

아마도 던전 수업 때부터 슬슬 제이드를 연모하는 빌드 업이 시작된 모양이었다. 그리고 그 소리인즉슨, 이제 곧 다른 히로인들을 질투하고 폭주하는 이벤트도 찾아온다는 거겠지.

이제 막 제이드를 좋아하게 된 캐서린의 입장에서는 항상 제이드와 붙어 다니는 샬롯 아메드가 꼴 보기 싫을 것이다. 심지어 둘이 같은 팀이 되어 버렸으니 캐서린 입장에서는 짜증이 날 만도 했다.

‘뭐, 아직은 폭주할 정도까진 아니겠지만.’

아무튼 나는 이번 대인전 전투에서 그녀의 질투심을 이용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떻게든 이번 미션에서 승리하여 이벤트 보상을 받고 싶었으니까.

“제이드가 샬롯이랑 팀 돼서 기분 나쁘지?”

내 얘기에 팽창하는 캐서린의 동공.

그녀는 말문이 막힌 듯, 멍하니 이어지는 내 얘기를 들었다.

“그 착한 척하는 여우가 계속 제이드한테 달라붙어 있고 하루 종일 꽁냥대는 게 꼴 보기 싫잖아?”

“…….”

“그럼 지금이 기회야. 그 여우의 콧대를 눌러 버리고, 더불어서 제이드한테도 네가 매력적인 여자라는 걸 어필하자, 어때? 요즘은 강한 여자가 매력 있는 트렌드잖아.”

“그, 그런가요?”

이미 캐서린의 반응을 보아 거의 다 넘어온 듯했다.

캐서린과의 팀플레이를 그다지 기대하지 않았는데, 의외로 잘만 이용하게 된다면 최고의 파트너가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그런데 저희가 어떻게 이기죠?”

“뭐야, 자신 없어?”

“상대방은 제이드와 샬롯이잖아요!”

의외였다. 그 자존심 높은 여자가 꼬리를 내리고 자기 객관화를 하다니……. 역시 사랑 앞에서 사람이 조금은 변한 것 같다. 물론, 캐서린의 말이 맞긴 했다. 지금 우리의 전력은 상대방 멤버에 비해 한참 밀리는 게 맞았다.

나는 걱정스러운 캐서린의 눈빛에 씨익 미소를 지었다.

“평민이라고 계속 무시하고 있지만, 나 이래 봬도 수석이야.”

물론 거품이 끼었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었다. 다만, 고유 마법을 사용할 수 없는 만큼, 이 세계를 게임으로나마 경험하여 쌓은 정보력과 그것을 바탕으로 한 판단력이 있었다.

나는 스스로 이것을 높게 평가했다.

“계획은 이미 생각해 뒀으니까, 너는 오더만 따르면 돼.”

캐서린은 침을 꼴깍 삼키더니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 콧대 높은 캐서린이 이렇게 얌전해지다니……. 역시 사랑의 힘은 위대하다.

“그럼.”

나는 일단 눈을 감고 주문을 외웠다.

「프레시스코(præscísco)」

주문과 동시에 눈을 감은 내게 일렁이는 무언가가 보이기 시작했다.

그것은 이 던전의 지형지물들.

사물이나 물체, 유기물이든 무기물이든, 심지어는 이런 지형들까지, 모든 객체는 미세한 마나를 가지고 있다.

따라서 감지 마법을 사용하면 주변의 지형을 쉽게 파악할 수 있었다.

문제는 이 감지 마법의 마나 소모량이 장난이 아니라는 점이었는데…….

‘내 마나는 지금까지 썩어 넘쳤단 말이지.’

나에게는 더할 나위 없는 최상의 마법이었다.

나는 눈을 감은 상태로 점차 그 범위를 확대해 갔다.

10m, 50m, 100m. 눈을 감은 칠흑의 세상에서 점차 하얀 마나를 뿜어내는 지형들의 지도가 그려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마침내.

“찾았다.”

하얀빛의 땅 위에 서 있는 남색과 보라색 빛.

틀림없이 제이드와 샬롯 아메드였다.

“찾았다고요?”

“응. 위치는 알아냈어. 여기서 상당히 멀리 떨어진 곳인데, 상대방들도 지형 파악이 안 되다 보니 섣불리 움직이지 못하는 모양이야.”

운이 좋았다.

이곳, 수업용 던전의 지형은 매번 바뀌는데, 지금의 경우는 매우 넓고 복잡한 지형이었다.

따라서, 제이드와 샬롯은 공격 대신 수비를 택한 모양이다. 애초에 수비팀이기에 딱히 먼저 선공을 할 이유도 없었고.

상대방이 오직 수비에만 집중하고 있다는 정보를 안 이상, 우리는 온전히 공격에 집중할 수 있게 되었다.

상황은 너무 완벽했다.

‘그런데, 의외네. 제이드 녀석의 성격이라면 무턱대고 공격할 줄 알았는데.’

의외로 침착하게 수비를 택하는 모습이 살짝 의아하긴 했다.

“그럼 이제 어떻게 할 건가요?”

“상대방은 아마 수비만 할 거야, 우린 그 수비만 뚫게 되면 이기는 거고.”

“방법은 있는 거겠죠? 무턱대고 갈 건 아니잖아요?”

“물론이지. 한 가지 물어볼 게 있는데, 지금 마법은 뭐 뭐 사용할 수 있어?”

“…아직은 사역마 하나밖에 소환할 수 없어요.”

그리고 캐서린은 바로 소환의 주문을 외워 자신의 사역마를 보여 주었다.

「무리누스 레냐토르(murínus regnátor)」

우우우웅―!

황금의 노란빛 물결이 캐서린의 몸쪽에서부터 뿜어져 나왔다.

그리고 잠시 후 그곳에서 보이는 것은 쥐였다.

그것도 거의 버스나 지하철 크기만 한 대왕 쥐.

“고작 이게 끝이야?”

“고작이라니요?! 레토리 님에게 사과하세요!”

사실 저 레토리라 불리는 대왕 쥐는 고작이라고는 표현할 수 없었다.

캐서린의 소환계 마법은 12간지의 소환.

아직 학기 초라서 쥐의 군주밖에 소환하지 못하는 모양이었지만 나름대로 강력한 사역마였다.

그리고 애초에 소환계나 변신계들이 기본적인 동물을 소환하거나 변신한다 해서, 절대 흔히 볼 수 있는 동물이 아니었다.

그것들은 기본적으로 마나로 인해 새로운 특성과 능력을 부여받은 신수에 가까운 동물들인 것이다.

‘그래도 좀 아쉽긴 하네, 나름 캐서린도 강한 편인데.’

본격적인 폭주 이벤트가 시작되면 그녀보다 강한 사람은 이 기숙사에 존재하지 않는다. 다만, 그렇게 되면 이미 인간이 아니겠지만.

나는 일단 이 정도로 만족하기로 했다.

“그럼 그 녀석의 능력으로 쥐 떼를 보낼 수 있지?”

“네, 맞아요. 어떻게 아셨나요?”

“그냥, 느낌이 그래서. 그럼 일단 쥐 떼를 산개시켜서 구역들을 정찰해 줘.”

감지 마법을 사용하면 제이드와 샬롯의 위치를 파악할 수 있지만, 감지 마법은 어디까지나 제자리에서 쓰는 마법이다. 우리가 이동 중에 상대방들도 이동할 수 있으니까, 만약을 위해서 수색해 두는 것이 좋다는 판단이었다.

“알겠어요. 그런데…….”

순순히 레토리에게 명령을 내려 쥐 떼를 보내는 캐서린.

그녀는 쥐 떼를 산개시키는 작업이 끝나자 말을 이었다.

“명령하지 마세요. 평민 주제에.”

그럼 그렇지.

역시 캐서린이다.

나는 그 말에 기분이 나쁘기보단 오히려 웃음이 나왔다.

“그럼, 이겨 보자고.”

그렇게 우리는 상대방의 거점으로 몸을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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