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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데미의 무속성 마법사-23화 (23/175)

23화

마치 개미굴 같은 구조의 통로로 이루어진 미로 같은 던전 속에서, 우리는 캐서린의 사역마이자 쥐의 군주, 레토리를 타고 상대방의 거점으로 이동 중이었다.

상대방의 거점으로 가는 지형은 매우 복잡했지만, 우리에겐 캐서린의 쥐 떼를 이용한 수색 능력과 나의 감지 마법이 있었기에 길을 헤맬 일은 없었다.

등 뒤에 타고 있는 캐서린은 여전히 내 작전에 대한 의심을 거두지 않았다.

“그래서, 구체적인 계획은 뭔데요? 설마 무작정 가겠다는 건 아니겠죠?”

“말했잖아. 계획은 있다고. 그것도 승리할 계획이자 성공률이 높은 계획.”

그러나 내 오더는 아마도 캐서린의 기대와는 조금 다를 것이다.

“일단 너는 어떻게든 샬롯을 맡아 주면 돼. 도발을 하든 시선을 끌든 그 방식은 너에게 맡길게, 그리고 내가 제이드를 맡는다. 그게 내 계획이야.”

“…고작 그딴 걸로 자신했던 거였어요? 한심하네요.”

“걱정하지 마. 네가 역할만 충분히 수행해 준다면, 실망시키지 않을 테니까.”

일단 가장 중요한 것은 수비하고 있는 둘을 갈라놓아야 한다는 점이었다.

방출계 제이드가 가지는 공간 지배력, 그리고 빛의 원소를 다루는 샬롯 아메드의 집중포화 공격은 시너지가 너무 좋았다.

다만, 둘이 떨어진다면 얘기는 달랐다.

샬롯의 빛의 마법은 초점에 섬광을 집중하여 공격하는 마법으로, 강력한 하나의 적에게는 강하지만 범위 공격이 아니기에 다수의 적에게는 살짝 효율이 떨어진다.

따라서 쥐를 떼거리로 사용하는 캐서린이라면 어느 정도 마크할 수 있을 거라는 판단이었다.

‘문제는 제이드인데…….’

샬롯만 떨어뜨린다고 해서 끝이 아니었다.

그야 제이드는 ‘아카마’의 주인공.

그 자체로 모든 먼치킨스러움과 치트를 타고난 녀석이기에, 웬만한 사람은 녀석을 상대로 단 1초도 버티지 못하는 게 당연했다.

‘어떻게든 되겠지.’

이미 생각한 바는 있었다.

물론 도박 수였지만.

“거의 다 도착했네요.”

“벌써?”

거점과 거점 사이의 거리가 상당히 있었는데도, 정확한 지형을 파악하여 지름길로 오다 보니 벌써 도착한 모양이었다.

“잠시 멈춰 봐.”

나는 캐서린에게 이동을 멈추게 한 뒤, 한 번 더 감지 마법을 사용하여 세부적인 지형을 파악했다.

“입구는 두 곳이네.”

개미굴같이 여러 구멍이 있다고 해도 결국 거점으로 통하는 입구는 딱 두 군데였다. 그리고 그러한 지리는 우리가 양동 작전을 펼치기에 마침 나쁘지 않았다.

자리는 잡았다. 이제는 적을 도발할 차례였다.

마침 상대방을 도발하기 딱 좋은 방법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어제 감지 마법과 함께 배웠던 또 하나의 기초 마법, 목소리 증폭이었다.

「복스―그란디오(vox―grándĭo)」

주문을 외우자 하얀빛이 목 부근을 감쌌다.

나는 살짝 성대를 어루만진 뒤, 목소리를 내보았다.

- 아― 아― 들리나―?

마치 확성기라도 쓴 듯, 던전을 쩌렁쩌렁 크게 울리는 나의 목소리. 이 정도면 거점에 있는 제이드와 샬롯에게도 충분히 들릴 정도의 소리였다.

- 제안할― 것이― 있다―

- 뭔―데에―?

그런데 놀라운 것은 상대방이 똑같이 목소리 증폭 마법으로 대꾸했다는 점이었다. 나는 언제 제이드가 저 마법을 익혔지? 라는 의문이 생겼지만, 이내 별 신경 안 쓰고 본론으로 들어갔다.

- 정정―당당하게― 일대―일을― 제안한다―

- 알았―다― 오바―

제이드는 내 말을 의심도 하지 않은 채 냉큼 수락해 버렸다. 확성기에서 묻어 나오는 장난스러운 목소리에서 알 수 있듯이, 제이드는 역시나 천연덕스러운 녀석이다.

나는 제이드가 제안을 수락하자마자, 곧바로 목소리 증폭 마법을 해제하고는 캐서린을 바라보았다.

“자, 그럼 빌드 업은 끝났고. 이제 넌 버텨 주면 돼.”

“아, 알겠어요.”

캐서린의 상태가 조금 이상해 보였다.

표정은 멍하고, 볼이 살짝 상기된 상태다.

설마, 방금 전 확성기를 타고 온 제이드의 목소리 때문에 이 지경이 된 건가? 참, 중증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럼 건투를 빌게. 꼭 콧대를 눌러놔야 한다?”

“네. 걱정 마세요.”

그리고 우리는 두 개의 입구로 각자 들어가기 시작했다.

* * *

쥐의 군주, 레토리의 등 뒤에 올라탄 뒤 캐서린은 생각에 잠겨 있었다.

‘제가 왜 이렇게 된 걸까요.’

스스로도 이유를 잘 모르는 캐서린이었다.

다만 계속해서 볼이 상기되고 가슴이 두근거렸다.

‘단지, 아무 의미 없는 행동이었을 텐데.’

던전 수업의 얘기였다.

어차피 치명적인 대미지를 입으면 던전 밖으로 강제 귀환될 텐데 그 남자는 굳이 자신을 지켜 주고, 또 그리핀과 맞서 싸우며 구해 주었다.

물론 던전 밖을 나와서 많은 사람이 제로가 그리핀을 처리했다고 얘기하는 것을 듣긴 했었다.

그러나 그녀는 제이드가 자신을 구해 준 것이고, 제로는 막타를 친 것뿐이라 생각했다. 그리고 오직 그녀만이 진실을 알고 있다고 굳게 믿고 있었다.

또다시 제이드 생각을 하던 그녀는 이내 고개를 저었다.

‘아직 제 마음을 잘 모르겠네요.’

캐서린은 의식을 잃기 전 안겼던 그 포근한 느낌을 아직도 몸에 새겨 두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을 다시 재현해 봐야, 자신의 마음이 이러는 이유를 확실하게 알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내 머릿속에서 제이드에 대한 생각을 떨쳐 버린 그녀는, 생각의 화제가 샬롯 아메드에게로 집중되었다.

‘그, 그 여우 같은 년. 꼭 붙어서 떨어지지 않는 얌체 같은 년.’

캐서린은 샬롯이 의도적으로 제이드를 꼬신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리고 자신이 샬롯보다 뛰어나다는 것을 제이드에게 보여 주고 싶었다.

그리고 곧 캐서린은 그 여우와 마주치게 되었다.

“오셨나요? 안녕하세요.”

샬롯은 거점으로 가는 입구 부근에서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

싱긋 미소를 지으며 단아하게 묵례를 하는 샬롯 아메드. 그녀의 모습에선 캐서린에게는 없는 기품과 우아함이 느껴졌다.

“저, 저 요망한 년 같으니라고… 그런 식의 태도, 참 재수 없어요.”

“죄, 죄송해요.”

캐서린의 날이 선 태도에 샬롯은 어쩔 줄 몰라 하며 미안한 기색을 내비쳤다. 캐서린은 샬롯이 예상하지 못한 반응을 보이자 살짝 당황스러웠다.

그러나 이내 그녀의 마음에는 독기가 가득 차올랐다.

“꼭 그 여우 같은 가면을 벗겨 주겠어요. 각오하세요.”

그 말을 들은 샬롯도 순간 표정이 진지하게 변했다.

“저도 전투에 있어서는 대충하지 않을 거예요. 그럼, 갈게요!”

말을 마치자마자, 샬롯 쪽에서 공격이 들어왔다.

「루멘 페티티오(lūmen petítĭo)!!」

지이잉―

콰아아앙!!

순식간에 샬롯의 손에서부터 뿜어져 나오는 빛의 섬광이 캐서린의 옆을 스쳐 지나갔다. 그러고는 던전에 겹겹이 쌓여 있는 벽들을 전부 두 동강 내었다.

‘이, 이거 쉽지 않겠는데요.’

그 파괴력에 캐서린은, 아까까지 품었던 독기마저 잊고는 침을 꿀꺽 삼켰다.

* * *

캐서린과 헤어진 뒤.

나는 터벅터벅 거점으로 향하는 길을 걷고 있었다.

찰랑―

던전의 천장에 달라붙은 종유석에서 물방울이 똑똑 떨어져 물웅덩이에 닿아 맑고 청명한 소리를 내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웃긴단 말이지.”

나에게 주어진 서브 이벤트의 이름은 ‘주인공을 넘어서는 자’. 이러한 이벤트를 주는 이의 정체가 무엇이든 간에 참 웃기는 센스였다.

그리고 지금.

알게 모르게 나는 주인공을 넘어서는 중이었다.

주인공 제이드의 수석 자리를 뺏기도 했었고, 던전 수업의 스포트라이트도 결국 내가 받게 되었다. 제이드 입장에서는 상당히 억울할 만도 할 일이었다.

다만, 나 또한 양보할 수 없는 부분이었다.

“이곳을 지키기 위해선 어쩔 수 없지, 뭐.”

모든 것은 전부 이 아카데미를 ‘안티 매지션’들의 침공에서부터 지키기 위함이었다. 그것이 내가 이곳에 오게 된 사명이기도 했고.

어쩌면 이렇게 흘러가는 흐름이, 제이드가 주인공이 아니라 내가 주인공인 듯한 느낌도 받는다. 물론, 내 입장이니까 그렇게 생각하는 거일 수도 있다.

누구나 자신의 인생의 주인공은 ‘나’ 자신이라고 생각하니까.

“그나저나 괜찮으려나, 이 작전.”

잠시 후 나는, 말 그대로 제이드와 일대일 승부를 할 예정이다. 그리고 지금의 나는 그 싸움에서 이길 생각으로 가득 차 있었다.

애초에 정상인의 머리라면, 게다가 제이드의 힘을 알고 있는 사람이라면 이런 무모한 작전 같은 건 떠올리지 않을 것이다.

가장 정공법은 내 쪽이 시선을 끌고, 캐서린이 샬롯을 돌파하여 거점에 닿기를 비는 것이겠지.

다만, 내 생각은 오히려 다르다.

나는 캐서린 쪽에 시선 끌기 역할을 준 것이고, 내가 제이드를 뚫고 거점에 진입할 생각이었다.

물론 믿는 구석은 있었다.

살짝 도박 수긴 하지만.

“안녕?”

걷다 보니 어느새 제이드가 기다리고 있는 구역에 도착하게 되었다.

제이드는 벽에 기대서 상큼한 미소와 함께 사람 좋아 보이는 눈웃음을 친다. 역시, 어느 여자라도 저 조각 같은 얼굴에 안 넘어갈 사람이 없겠지.

아마도 중계를 보고 있는 사람들도 나보다는 저 제이드 녀석에게 좀 더 응원을 보낼 것이다. 저 녀석은 평민인데도 불구하고 그만큼 사랑받는 녀석이니까.

“…이래서 인싸란.”

“응? 뭐라고?”

“아무것도.”

그럼 슬슬 빌드 업을 시작해 보실까.

“제안할 게 있어, 제이드.”

“으응? 뭔데?”

그것은 내가 이 작전을 세운 목적이자, 일대일을 유도한 이유였다.

“한 방. 단 한 방으로 싸우자. 그것도 풀 파워로 말이야.”

진심이 담긴 단 한 번의 일격.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강자들의 싸움이지 않을까?

내 말에 제이드는 걱정스러운 듯이 묻는다.

“괜찮겠어?”

“괜찮아. 어차피 죽을 정도의 대미지면 강제 귀환되기도 하고, 최소한의 안전장치는 있으니까. 그리고 너, 날 뭐로 보는 거야? 수석은 나지 네가 아니라고. 누가 누굴 걱정해?”

물론 저 제이드의 넘치는 자신감과 태도는 모든 것을 알고 있는 나로서는 충분히 이해가 갔다. 하지만 표면적이라고는 해도 지금의 수석은 나다. 녀석이 감히 나를 걱정할 위치가 아니었다.

나는 본격적으로 시작하기 전, 혹시나 해서 언노운의 이름을 작은 목소리로 속삭이며 불러보았다.

“언노운?”

그러나 언노운은 대답이 없었다.

다만, 예상한 결과였다.

‘어차피 그 나태한 마검 님의 도움을 받을 생각은 없었다 이거야.’

애초부터 언노운은 계획에 포함하지 않았었다.

내겐 다른 생각이 있었으니까.

“자, 그럼 와라.”

“응, 갈게.”

사아아아아―

순간 공기가 바뀌었다.

제이드는 말을 마치자마자 자신의 모든 마나를 끌어모아 몸 밖으로 방출하고 있었다. 그의 몸 주위에는 남색 빛의 마나가 짙은 농도로 그를 감싸 안았다.

나도 그에 질세라 매직 미사일을 연달아 생성했다.

「마지아 미실레(magía míssĭle)」

「마지아 미실레(magía míssĭle)」

……

「마지아 미실레(magía míssĭle)」

순식간에 내 몸 주변으로 불어나는 백색 구체들.

주문서 효과로 인해서 매직 미사일을 생성하는 속도가 눈에 띄게 늘어났고, 중간중간 거대한 크기를 자랑하는 대성공의 매직 미사일도 보였다.

“난 준비됐어.”

어느새 제이드는 몸의 실루엣조차 보이지 않을 정도로 짙은 남색 마나 안개에 감싸져 있었다.

그러나, 그것조차 제이드의 진심이 아니었다.

“풀 파워로 하랬지. 티 난다.”

“눈치챘어……? 들켜 버렸네. 그럼, 진짜 괜찮은 거지? 진짜 진심으로 한다?”

싸아아아아아아아―

순식간에 불어나는 남색 안개.

그것은 서서히 소용돌이치며 주변의 모든 것을 빨아들이고 있었다.

‘저게 원소계도 물질계도 아닌 순수한 마나의 방출계라니. 역시 대단한 놈이야.’

그러나 나는 그 모습에 전혀 쫄지 않고 오히려 웃고 있었다.

“그럼, 간다!”

제이드의 목소리와 함께, 주변을 빨아들일 정도로 거대한 마나의 집합체가 나에게로 던져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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