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화
* * *
한 주의 시작, 월요일 아침.
보통이었으면 곧 시작될 수업으로 잔뜩 짜증 났을 시간이다.
특히 월요일 1교시는 실라이 샌드윅스 교감의 ‘마법의 역사’ 강의 시간.
저번 주, 교무실에서 된통 망신살만 뻗친 실라이 샌드윅스가, 이번에는 어떤 꿍꿍이로 또 괴롭혀 올지 모르는 일이었다.
그러나 지금의 나는 그럴 걱정이 없어졌다.
그야 오늘의 1교시는 방금 취소되었으니까.
- 아― 아― 학생 여러분은 지금 강당으로 모여 주시기를 바랍니다! 교육 집합에 따라 1교시 강의는 자동으로 취소됩니다!
아침부터 기숙사 전체를 울리는, 교장 히로빈 그린월드의 목소리.
1교시가 없는 학생들은 짜증 내면서 몸을 일으켜 세우고 있었지만, 나 같은 사람들은 환호를 지르고 있었다.
‘그나저나 고작 교육 집합으로 강의 하나를 날려 먹어도 되는 건가?’
정말 이 아카데미는 알다가도 모르겠다.
그리하여 학생들을 강당에 모두 집합시킨 히로빈 그린월드.
150cm도 안 되는 키에 까치발을 들고 마이크를 쥔 교장의 모습은 여전히 어색하게 느껴진다.
“여러분, 아침부터 집합시켜서 미안합니다. 다름이 아니라 중요하게 전달할 공지가 있어서요. 일단은 먼저, 저번에 교육했던 내용을 다시금 강조해 드리고 싶네요. 아카데미 외부에서 마도구를 구입할 때는 부디 주의하길 당부드립니다.”
히로빈 교장이 말하는 내용은 저번에 했었다는 그 교육 내용과 동일한 것 같았다.
그땐 제페토와 한바탕하고 있어서 못 들었었지.
생각해 보니 그 이전의 원인으로, 풀밭에 누워 자고 있었던 내 탓도 있는 듯하다.
“저번에 강조해 드린 이후에도 사고 사례가 꾸준히 발생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특히 1학년생들은 더더욱 주의하셔야 합니다. 단순히 불량품뿐만 아니라, ‘마기’를 품은 사악한 마도구들도 발견되고 있습니다. 저희 아카데미 측에서도 문제를 심각하게 받아들여 철저히 조사하고 있으나, 혹시 모르는 일이니 다들 조심해 주세요.”
‘마기’, 그것은 칠계의 그 어디에도 속하지 않은 순수 악의 마나. 마물에서 쉽게 볼 수 있는 검은색 마나를 뜻한다.
그러한 마기가 마도구에서 발견되는 이유는 다름 아닌 안티 매지션들 때문이었다.
안티 매지션이란 이 세계의 마법사 범죄자를 의미한다.
안티 매지션들의 목적은 원래 있었던 현실 세계의 범죄자들과 다를 바 없었다. 그들은 대개, 이 사회에 대한 불만이나 원한으로 움직인다. 물론, 가끔 순수 악, 그 자체를 즐기는 또라이들도 있지만 말이다.
그리하여 그들, 안티 매지션들 중에는, 마기를 추출하여 마도구를 만드는 녀석들도 존재했던 것이다.
보통의 마법사가 마기에 잠식되면 ‘광폭화’가 진행된다.
일반적인 환수나 동물, 몬스터가 마기에 노출되어 ‘마물’이 되듯이, 인간은 ‘마인’이 되는 것이다.
그리고 이미 그 상태에 진입했을 때 돌이킬 방법은 없다.
“아무튼, 다시 한번 각별한 주의를 당부드립니다. 다음으로 공지할 내용은, 오늘 여러분을 집합시킨 진짜 이유입니다. 바로 이번 주부터, 1학년 비무제가 실시됩니다.”
‘비무제라고? 비무제를 벌써?’
교장의 이야기를 들은 나는, 순간 흠칫 놀랄 수밖에 없었다.
주변의 학생들 반응도 나랑 별다르지 않게, 비무제를 실시한다는 이야기에 크게 당황한 듯싶다. 곧 강당은 웅성거리는 학생들의 소리로 소란스러워졌다.
“그리고 2학년 비무제는 다음 주에 실시할 예정입니다. 다들 아시죠? 비무제의 결과는 졸업 후 진로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거. 모쪼록 여러분의 많은 참여 부탁드리겠습니다.”
비무제는 ‘칼루스 아카데미’에서 매년 실시되는 일종의 경연 대회로, 학년별로 우수한 인재를 뽑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보통 ‘대마물전’과 ‘대마법사전’ 두 가지 종목을 전부 활용하여 승자를 가리는데, 중간고사, 기말고사와 다른 점은 협회와 마경 소속 스카우터들이 경연을 보러 찾아온다는 점이었다.
취업할 직장에서 직접 스카우트를 오는 것이기 때문에, 학생들에게 그 의미는 남달랐다.
‘그런데 문제는 왜 벌써 하느냐 이 말이지.’
‘아카마’에서 비무제는 입학 한 달 뒤에나 있었던 이벤트였다. 그런데 그 시기가 꽤나 많이 앞당겨져 있었다.
‘이것도 내가 이 세계에 오게 된 영향인가? 아니면 내가 수석인 영향?’
확실한 것은 흐름이 달라져 있었다는 것이다.
게다가 이러한 흐름의 변화에 걱정되는 부분이 있었다.
‘설마 침공 이벤트도 앞당겨지는 건 아니겠지?’
원래였으면 안티 매지션들에 의해 아카데미가 멸망하게 되는 침공 이벤트는 학년말쯤 일어난다.
그런데, 이러한 흐름대로 흘러간다면 충분히 그것조차 앞당겨질 수 있겠다는 생각이 얼핏 들었다.
‘그래도 설마 경고 없이 시작하겠어? 적어도 시스템 창으로 경고는 해 주겠지…….’
나는 이내 불안한 생각을 떨쳐 버렸다.
그리고 조금 긍정적으로 생각을 바꿨다.
나에게 주어지는 시스템이 막 나가는 면도 없진 않았으나, 한편으론 큰 도움이 되는 것도 사실이었다. 실제로 지금, 칼루스 아카데미의 잘나가는 수석 입학생이 되기도 했고.
결국 나는 시스템을 믿기로 했다.
강당에서 진행된 히로빈 교장의 교육이 끝나고, 아우레인의 기숙 사감 케이든 교수가 다시금 학생들을 기숙사 뒤편으로 소집하였다.
“다들 아까 들었다시피, 당장 내일부터 비무제의 예선이 시작될 예정이다. 참가는 뭐, 개인의 자유에 맡기겠다.”
케이든 교수가 저런 식으로 말하는 이유가 있었다.
보통은 학생 대다수가 비무제에 참가할 거라 생각하기 마련이겠지만, 사실 비무제를 신청하는 학생은 그리 많지 않았다.
추후 진로에 도움이 되는 스카우터들이 오는 것은 16강 본선부터인데, 애초에 학생 200명 중에서 열여섯 명 안에 든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당장 우리 기숙사만 하더라도 괴물 같은 제이드 녀석도 있었고, 그 밖에 영웅의 가문 출신들이 수두룩했다.
‘나도 그 괴물들 중에 포함되려나?’
이젠 조금 당당해졌다.
이 ‘아카마’ 세계관에서 최강자로 설정된 제이드를 이겼으면 사실상 나도 강자 축에 포함된다고 스스로 평가하고 싶다.
물론 ‘템빨’이 없으면 조금 힘들겠지만.
“그리고 제로와 제이드. 너희들은 수석과 차석 입학생이므로 자동 16강 시드를 부여받게 된다.”
맞다. 이게 있었지.
‘아카마’에서도 수석인 주인공 제이드는 16강 시드권을 부여받았다.
마찬가지로 현재 수석인 나 또한 자동 본선 진출인 것이다.
주변을 스윽 둘러보자 학생들도 나와 제이드가 시드권을 부여받은 것에 대해서 딱히 불만은 없어 보인다.
제페토 패거리들을 제외하고는.
“고작 입학 초 마나 보유량 가지고 나눈 수석과 차석한테 저런 특혜를 주는 게 말이 돼?”
“그러게, 진짜 가지가지 한다. 평민 출신들에게 저런 특혜를 주다니… 이거 원 쪽팔려서 아카데미를 다닐 수가 있나. 어떻게 생각해, 제페토?”
뒤에서 수군거리는 패거리 녀석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 정도면 아무래도 들으라고 큰 목소리로 말하는 듯싶다.
그리고 저 녀석들 참 웃긴다.
이제 학생들 대부분이, 아무리 내가 평민 출신일지라도 실력만큼은 인정해 주는 분위기다. 게다가 저 녀석들도 분명, 저번 주에 내 활약을 전부 모니터로 확인했을 것이다.
그런데 지금까지도 저러는 태도가 참 한결같고 가소롭다.
흘깃 뒤를 돌아보자 역시나 제페토가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나는 보란 듯이 제페토를 향해 피식 미소를 날려 주었다.
그러자 제페토의 안 그래도 큰 눈이 터질 듯이 팽창하는 게 보였다. 지들도 다 들으라는 듯이 뒷담 까는데 이 정도야 정당방위지.
“칼루스 아카데미에서 비무제는 되게 중요하다 들었었는데… 그래도 난 이번엔 포기야. 어차피 16강 안에 드는 건 로또보다도 무리일 거 같아.”
“난 한 번은 도전해 볼까 싶기도 하고…….”
나머지 학생들의 반응을 살펴보니, 대부분이 자포자기한 분위기였다. 그런 학생들의 반응을 눈치챈 케이든이 입을 열었다.
“애송이들아, 너무 의욕을 잃진 마라. 마법사의 전투는 단순히 힘 차이로 갈리는 게 아니라 상성으로도, 상황 판단으로도 충분히 뒤집힐 수 있으니까. 아, 그리고 이번에 오는 스카우터들은 조금 특별할 거야…….”
그 말에 관심을 보이는 학생들.
“…무려 이번엔 협회장님과 마경청장님이 오시거든.”
“네?! 진짜요?!”
“협회장이랑 마경청장이 온다고? 이번 대에 무슨 일이 있는 거야? 왜 이렇게 스케일이 커?”
“이건 진짜 인생 역전의 기회인데? 못 먹어도 무조건 신청해야 하는 거 아니야?!”
갑작스레 학생들의 의욕이 되살아났다.
이 세계에는 세 개의 권력 기관이 존재한다.
‘협회’, 마물과 던전을 상대하고 관리하는 기관.
‘마경’, 안티 매지션 같은 마법 범죄자를 관리하는, 이 세계의 경찰과도 같은 조직.
‘마법부’, 마법사들의 인적 관리와 세금 같은 자잘한 행정을 담당하는 행정부.
그중에서 협회의 우두머리 협회장과 마경의 우두머리인 마경청장이 온다는 것이다. 당연히 학생들의 입장에선 솔깃할 수밖에.
보통 학생들은 실무를 담당하는 협회나 마경 쪽을 많이 지망하는 편이고, 사무를 담당하는 마법부는 저평가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능력이 애매한 마법사들은 졸업한 뒤 어쩔 수 없이 마법부를 지망할 수밖에 없고, 개중에는 취업을 하지 못하는 녀석들도 발생하기 마련이다.
그런 어중간한 마법사들에게는 이번 비무제만큼 큰 기회가 또 없었다.
“그럼, 다들 열심히 하도록.”
그 말을 끝으로 케이든은 모두를 해산시켰다.
우르르 기숙사나 강의실로 복귀하는 학생들 사이에서, 나도 다음 수업을 위해 강의실로 향하고 있었다. 그런데 루비 버밀리온이 뒤에서 나를 불러 세웠다.
“제로! 제로!!”
“응?”
루비 버밀리온은 급하게 나를 찾아 뛰어왔는지, 헉헉거리며 가쁘게 심호흡을 했다. 그러고는 어느 정도 진정된 이후 말을 이었다.
“이번엔… 반드시 증명할 거야.”
“또 증명한다고?”
나는 진지한 루비의 얼굴을 보고는 조금 장난기가 돋았다.
“증명할 수 있겠어? 지금까진 이래저래 실망이 큰데…….”
“뭐어?!”
그녀의 얼굴이 새빨개졌다.
역시 루비 버밀리온은 놀리는 재미가 있었다.
“농담이야. 그런데 왜 계속 나한테 증명한다고 하는 거야? 왜 그렇게 증명하고 싶어서 안달 났어.”
“아, 아니!! 꼭 그런 건 아니고…….”
“그런 게 아니면?”
“아, 아무튼 결승에서 기다려. 꼭 올라갈 테니까!”
그리고 루비는 빠른 걸음으로 기숙사 안으로 들어갔다.
나는 그녀가 왜 저러지 싶었지만, 이내 그 이유를 깨달았다.
그것은 바로 루비 버밀리온이 협회장 아이작 버밀리온의 딸이기 때문이었다.
이번의 비무제는 그녀의 아버지가 직접 보러 오기 때문에, 더욱 결승에 올라가고 싶겠지. 그래서 나한테까지 와서 각오를 다진 거였고.
‘굳이 나한테 와서 말하는 걸 보면, 날 라이벌로 삼은 건가? 그만큼 내가 실력이 뛰어나고 견제된단 이야기겠지?’
협회장의 딸이 나를 견제한다.
그러한 생각에 조금 뿌듯해졌다.
‘그나저나 이번 비무제도 보상 이벤트가 있으려나.’
지금까지 서브 이벤트의 발생 기준은 대부분이 ‘아카마’에서 주인공이 받았던 이벤트의 흐름과 비슷했다.
대부분이 메인 스토리 관련이었고, 인스턴트 던전 같은 플레이어가 직접 파밍하는 구간에서는 이벤트가 발생하지 않았다.
그 말인즉슨, 이번에도 분명 이벤트가 주어진다는 소리였다.
띠링.
역시나.
내 생각이 맞는다는 듯이, 곧바로 시스템 창이 눈앞에 나타났다.
〈서브 이벤트〉
[학년의 최강자]
* 달성 조건: 비무제에서 승리한다.
* 제한 시간: 비무제 종료 전까지.
* 실패 조건: 중도 탈락 혹은 사망
* 보상: 당신에게 필요한 마법 주문서(???) 선택권x5
“다섯 개?!”
나는 보자마자 놀랄 수밖에 없었다.
그야 이번 보상은 마법 주문서가 다섯 장이었으니까.
그것도 그냥 마법 주문서가 아니다.
마법 주문서 ‘선택권’이었다.
“…이번 대회는 무조건 우승해야 되잖아?”
무려 주문서 선택권 다섯 개가 달린 일이었다.
“목숨을 걸어야겠네.”
이번 비무제는 무슨 일이 있어도 꼭 우승해야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