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아카데미의 무속성 마법사-28화 (28/175)

28화

진행자의 멘트와 동시에 경기장의 중앙 모니터에 빛이 들어오더니, 예선전에 참가한 학생들의 모습이 보였다.

그들은 거대한 원반 위에 올라타 있었고, 그 밑으로는 떨어지면 한 방에 골로 갈 법한 낭떠러지를 볼 수 있었다.

- 이번 비무제 예선전에 참가한 1학년 인원들은 무려, 140명이나 됩니다!! 200명의 인원 중에서 대다수가 신청했다는 이야기죠! 그만큼 이번 비무제가 특별하다는 이야기일까요? 다들 아시죠? 이번 비무제 본선에는 협회장님과 마경청장님이 오신다는 것을요!!

와아아아아!

진행자의 말에 호응이라도 하는 듯 주변 관객들의 함성이 울려 퍼졌다. 1학년 대다수가 저 예선전에 참여하고 있기에, 관중석에 있는 것은 대부분이 2학년들이었음에도 열띤 호응이었다.

- 그럼 예선전의 진행 방식을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이번 1학년들이 치를 예선전 종목의 이름은 ‘지옥의 돌림판’입니다!!

지옥의 돌림판이라.

‘아카마’에서는 본 적 없는 내용이었다. 아마도 비무제 일정이 변경됨에 따라 예선전의 진행 방식도 바뀐 것으로 보였다.

그러고 보니 참가자들이 서 있는 거대한 원반은 마치 돌림판 같은 모양이었다. 그들이 밟은 원반의 사이 사이에는 돌림판처럼 각 구역을 나눠 놓은 표시가 보였다.

- ‘지옥의 돌림판’은 계속해서 회전합니다! 그리고 돌림판이 표시하는 안전 구역을 제외한 나머지 구역은 끔찍한 페널티가 주어진다네요? 그렇다면 참가자들은 돌아가는 돌림판 위에서 안전 구역에 계속 머물러야 하겠죠? 치명적인 대미지를 입거나, 원반 위에서 떨어지면 자동으로 탈락하게 됩니다!

설명만 들어도 어떤 시스템인지 대충 느낌이 왔다.

아마도 140명을 효율적으로 선별하기 위하여 만들어 낸 방식인 것 같았다.

- 그럼… 예선전 ‘지옥의 돌림판’을… 시작―하겠습니다!!

퍼어엉!

돔구장의 천장 위로, 마법으로 이루어진 폭죽 수십 개가 터졌다. 그와 함께 모니터 속의 돌림판이 서서히 회전하기 시작했다.

모니터 속에는 시작의 폭음과 함께 쏜살같이 돌림판 위를 뛰어나가는 선두가 눈에 띄었다.

그 정체는 역시나 달시 세이피어였다.

- 한 참가자가 매우 빠른 속도로 돌림판 위를 뛰고 있습니다! 그런데 과연 빠르기만 하다고 좋은 걸까요? 어디가 안전 구역인지 먼저 파악하는 게 최우선 아닐까요?! 게다가 그쪽은 심지어 역주행인데요?!

모니터에 클로즈업으로 잡힌 달시는 마치 진행자의 목소리가 들리기라도 하는 듯 씨익 웃어 보였다. 그러고는 더욱더 빠른 속도로 앞으로 뛰쳐나가기 시작했다.

“생각해 보니 저거 굳이 뛸 필요가 있나?”

나는 시계 방향으로 돌아가는 돌림판 위에서 역주행으로 뛰고 있는 달시의 모습에 의아함을 느꼈다.

“그러게, 처음엔 힘 빼지 말고 가만히 서 있어서 안전 구역을 파악하는 게 정공법으로 보이기는 하는데……. 그래도 난 저 학생이 활기 넘치는 것 같아서 보기 좋은걸?”

아텔라 교수는 그런 달시 세이피어의 에너지가 마음에 든 모양이었다.

역시 내 말이 틀리지 않다는 듯이, 대부분의 생각 있어 보이는 학생들은 애초에 뛰지 않고 처음 그 자리에서 돌림판이 회전하는 것을 가만히 기다리고 있었다.

반면, 출발점의 학생들과 꽤 많이 거리를 벌리게 된 달시.

그리고 그녀는 어느새 다른 구역으로 진입하고 있었다.

위이이잉.

위이이이이잉.

달시가 다른 구역을 밟자마자, 페널티 구역을 알리는 사이렌 소리가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퍼어어엉!

퍼어엉!

달시가 지면을 밟을 때마다, 지면에서는 수직으로 폭발하는 용암이 분출되었다. 다행스럽게도 그녀는 튀어 오르는 용암을 뛰어난 반응 속도로 쉽게 회피하고 있었다.

- 선두로 달리던 학생이 첫 번째 페널티 구역에 도달했습니다! 과연 저 학생은 폭발하는 용암을 뚫고 더 앞으로 나아갈 수 있을까요? 말씀드리는 순간, 출발 지점에 가만히 있던 학생들에게도 구역의 페널티가 적용되고 있습니다!! 무려 눈이 내리는 폭설 구역이네요?!

앞으로 뛰어나간 달시의 용암 구역과는 다르게, 뒤쪽에 남아 있던 학생들의 머리 위에는 눈보라가 내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눈보라는 순식간에 그들의 허리춤까지 차올라서 이동을 방해하고 있었다.

나는 그러한 광경을 보고 순수하게 감탄했다.

“스케일이 장난이 아니네…….”

‘아카마’에서의 예선전은 던전 안에서 강력한 보스를 피해 살아남는 식의 던전 서바이벌로 진행됐었다. 그거에 비하면 이번 예선전은 매우 화려하고 보는 재미가 있었다.

- 앗! 처음에 뛰쳐나간 학생이 드디어 안전 구역에 도착한 모양인데요? 역시 앞으로 무작정 뛰어나가는 방법이 맞았던 걸까요?!

어느새 용암 구역을 통과한 달시는 아무런 이상이 느껴지지 않는 안전 구역에 도착하여 여유롭게 제자리 달리기를 하고 있었다. 역시 체술로는 아카데미 넘버 원 다운 놀라운 실력이다.

반면, 출발 지점의 발판에 가만히 서 있던 학생들은 어느새 폭설 구역을 지나 새로운 구역에 도달했다.

콰지직.

콰르르르릉!

번쩍 하는 섬광이 꽂히고 천둥소리가 들리더니, 그들의 머리 위에 벼락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꺄아아아아!!”

“뭐, 뭐야? 번개잖아?!”

패닉에 빠진 학생들의 다급한 목소리와 비명이 모니터를 타고 흘러나왔다.

그들의 머리 위에선 계속해서 벼락이 떨어져 내렸고, 낙뢰에 맞고 강제 귀환되는 학생들도 몇몇 보였다.

- 이런, 이런! 폭설을 견뎠더니 이번엔 머리 위로 날벼락이 떨어지네요? 과연 이 낙뢰 구역을 무사히 뚫고 지나갈 수 있을까요?

그동안 돌아가는 발판 위에서 가만히 상황을 살피고 있던 참가자들은 결국, 번개를 피해 돌림판이 돌아가는 시계 방향으로 뛰기 시작했다.

어차피 뒤쪽으로 도망쳐 봐야 폭설 구역이니, 앞으로 돌파해야 한다는 판단을 내린 듯 보였다. 돌림판이 회전하는 방향으로 같이 뛰고 있었기에, 낙뢰에서 살아남은 학생들은 재빠르게 다음 구역에 도착할 수 있게 되었다.

- 과연, 낙뢰 구역을 벗어났다고 안심할 수 있는 걸까요? 발밑이 계속 푹푹 꺼지는 게 느껴지진 않으신가요?

낙뢰 구역 다음은 늪지대 구역이었다.

번개야 운이 좋으면 피할 수 있었다지만, 한 번 밟기만 해도 푹푹 빠져들어서 쉽사리 빠지지 않는 늪지대 구역은 마법의 도움 없이는 도저히 빠져나갈 수 없었다.

그 와중에 늪지대 구역에서 하늘로 솟아오르는 학생이 보였다.

- 어랏?! 한 참가자가 늪지대 구역 위를 날아서 통과하고 있습니다! 아니 자세히 보니 날고 있는 게 아닌가요? 마치 수영하듯이 공중에서 유영하고 있는데요?!

클로즈업되는 학생은 바로 루비 버밀리온이었다.

그녀는 본인에게 중력 감소 마법을 걸은 뒤, 하늘 위에서 공기를 가르며 마치 수영 선수처럼 유유히 나아가고 있었다.

그 밖에도 도철 위에 올라타서 늪지대를 통과하는 제페토 골드버그, 아예 빛의 마법을 사용해서 눈앞의 늪지대를 반으로 갈라놓아 길을 만드는 샬롯 아메드도 보였다.

“대충 어떤 구조인지는 알겠네.”

지켜보던 나는 돌림판 각 구역의 구조를 한눈에 파악했다.

12시 구역은 ‘안전 구역’.

2시 구역은 ‘용암 구역’.

5시 구역은 ‘폭설 구역’.

7시 구역은 ‘낙뢰 구역’.

10시 구역은 ‘늪지대 구역’이었다.

처음의 돌림판은 용암 구역과 폭설 구역 사이에서부터 시작되어 회전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그러고 보면 처음부터 돌림판의 회전 방향을 역주행하여 무모하게 돌진한 달시 세이피어가, 어떻게 보면 가장 최단 거리로 ‘안전 구역’에 돌파했다고 볼 수 있었다. 물론 나는 그것을 순전히 운이라고 생각하지만.

시간이 어느 정도 지나자, 학생들 대부분이 12시의 안전 구역에 도착해서 그곳에서 균형을 잡고 뛰기 시작했다.

마치 러닝머신을 타는 듯 제자리에서 뛰는 학생들.

아마도 속력은 대략 시속 10km 정도 되어 보였다.

달시 세이피어 같은 육체파 녀석들에겐 그다지 무리도 가지 않는 속력이었지만, 체력이 뒤처지는 학생들에게는 조금 힘들 수도 있는 속도였다.

“v는 rw인데…….”

모니터 속에서 뛰는 학생들을 보고 있던 나는 저번 주 수학 시간 때 배웠던 게 떠올랐다. 아무래도 돌림판의 중앙 부분에 근접해서 뛰면 외곽에서 뛰는 것보단 덜 힘들 것이다.

아마도 이 ‘지옥의 돌림판’ 예선전의 목적은 이러한 지능과 판단력, 그리고 체력 등등 여러 항목을 복합적으로 테스트하기 위한 목적으로 보였다.

“그게 무슨 소리야?”

옆에서 예선전을 보고 있는 아텔라 교수가 내 중얼거림을 들은 모양이었다.

“그… 그냥 회전하는 원 위에서 중앙에 가까울수록 속도가 줄어든다는 이야기였어요.”

“그런 거야? 은근히 똑똑하잖아?”

내 설명에 고개를 끄덕이는 아텔라.

문득 나는 그녀에게 궁금한 부분이 생겼다.

“그러고 보니 교수님도 칼루스 아카데미 출신이잖아요.”

“응, 맞아.”

“그럼, 비무제에서 우승해 봤어요?”

“당연…까지는 아니고 우승한 적은 있지. 2학년 때 한 번.”

역시 어린 나이에 칼루스 아카데미의 교수가 될 정도라면 학년 톱 정도는 되어야 하는 듯싶다.

“그런데 왜 2학년 때만 우승했어요?”

“음… 1학년 때는 괴물 같은 녀석이 있었거든.”

“그런가요? 그래도 대단하네요. 비무제에서 우승하기 쉽진 않잖아요? 어, 그럼 우승하고 난 다음에 여기저기서 잔뜩 스카우터들이 찾았겠네요?”

“그렇긴 하지. 그래도 난 아카데미 교수가 되고 싶었어.”

“그 잘생겼다는 검술 교수 때문에요?”

“으응…….”

볼이 빨개지는 아텔라.

그녀는 뭔가 털털한 이미지와는 다르게 의외로 소녀 같은 구석이 있는 것 같았다.

“그나저나, 이젠 소강상태네요.”

어느 정도 떨어질 학생들은 떨어지고, 다들 안전 구역에서 제자리 뛰기만 하다 보니 상황이 조금 정체되어 있었다.

“이번 예선전에서 응원하는 사람 있어? 다들 친구들일 거 아냐.”

“다들 친구…라고요? 그 전에 친구가 있는지부터 물어봐야 하는 거 아니에요……?”

“그, 그래? 너 의외로 교우 관계가 좁구나.”

생각해 보니 내가 이 아카데미에서 친구라고 부를 만한 사람이 있었나.

해 봤자 많이 엮여 있는 루비와 달시 정도?

지금은 ‘아카마’와는 다르게 히로인 외에도 교류할 사람들은 많았는데, 나도 참 사교성이 없는 편인 것 같다.

“그나마… 루비 버밀리온? 루비가 본선에 올라왔음 좋겠네요.”

“루비 버밀리온? 버밀리온 가문이야?”

“네. 이번에 아이작 버밀리온 협회장님이 오시잖아요. 저 녀석도 나름 아버지한테 잘 보이고 싶나 봐요. 그래서 뭐, 응원한다면 응원해요.”

“그 밖에 다른 이유가 있는 건 아니고?”

“네? 무슨 이유요?”

“아니, 그냥… 한창 젊을 때잖아.”

아텔라는 말을 마치고는 살짝 윙크를 보냈다.

나는 한참 생각한 뒤에야 그녀가 한 말의 의미를 깨달았다.

“그, 그럴 리가요. 루비는 그냥 동급생일 뿐이지 아무 사이도 아니에요.”

“그래 그래. 그럴 수 있지.”

다 안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는 아텔라 교수.

나는 굳이 그런 그녀의 말에 덧붙여 변명하진 않았다.

- 이젠 학생들 대부분이 안전 구역에서 벗어나질 않고 있습니다! 탈락할 사람들은 진즉에 탈락했기 때문일까요? 아무튼 이대로면 너무 평온하지 않겠습니까? 과연 이 평화가 계속될까요?

진행자의 말과 동시에, 돌림판 중앙 부분의 마법진에서 빛이 나기 시작했다.

우우웅!

그 빛이 사그라들자, 그곳에서 나타난 것은 다름 아닌 거대한 골렘의 상체였다.

골렘의 상체는 마치 돌림판의 일부인 듯 중앙에 박혀 있었고, 녀석의 두 팔은 돌림판의 끝을 짚을 수 있을 정도로 거대했다.

그리고 이내 골렘은, 그 거대한 팔을 안전 구역에 있는 학생들을 향해 휘두르기 시작했다.

- 과연 이곳에서 학생들이 살아남을 수 있을까요? 참가한 140명의 학생 중, 살아남는 학생은 단 60명! 반 이상이 이곳에서 살아 나갈 수 없습니다! ‘지옥의 돌림판’은 이제 막 시작이라고요?!

진행자의 말마따나, 예선전은 이제 막 시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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