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아카데미의 무속성 마법사-29화 (29/175)

29화

쿠웅!!

골렘의 거대한 팔이 안전 구역을 내리찍었다.

그와 함께 안전 구역 쪽 지형이 파괴되면서, 회전하던 돌림판도 멈추게 되었다.

거기서 멈추지 않고 계속되는 골렘의 공격.

육중한 몸집이어서 비록 속도 자체는 느릿느릿했지만, 아무래도 크기가 크기다 보니 미처 피하지 못하고 맞는 학생들도 생겨났다.

“우와아아… 저런 걸 직격으로 맞았다간 골로 가겠다.”

여유롭게 하늘 위에서 부유하고 있던 루비 버밀리온은 그 모습을 보고 눈살을 찌푸렸다.

사실 그녀의 몸은 공중에 있었기에, 아래 페널티 발판의 영향을 전혀 받지 않을 수 있었고, 이번 예선전은 손쉽게 통과할 수 있었다. 그런 그녀에게 위협이 될 만한 장애물이 나타난 것이다.

콰아앙!

콰아아아앙!!

골렘은 안전 구역의 학생들이 몰려 있는 곳을 위주로 손바닥을 내리찍고 있었다. 그리고 학생들은 그 거대한 공격의 범위를 피해 슬금슬금 페널티 구역으로 밀려나기 시작했다.

계속되는 골렘의 무자비한 공격.

그리고 그걸 피해 달아나는 학생들의 비명.

그런데 그 아비규환의 현장 속에서, 이상한 움직임을 보이는 학생이 있었다. 그 학생은 골렘의 공격을 피할 생각조차 하지 않고 안전 구역에서 가만히 서 있을 뿐이었다.

쿠오오오오!

골렘은 이내 그 소년의 모습을 포착했다.

그리고 골렘은 감히 도망치지 않는 건방진 소년의 머리 위에 거대한 손바닥을 내리찍었다.

쉬이이이익!

그러나, 손바닥이 소년을 빠른 속도로 덮쳤는데도, 파열음은커녕 고요한 정적만이 흘렀다.

- 이, 이게 어떻게 된 일일까요?! 한 참가자가 날뛰던 골렘을 멈췄습니다!!

경기장을 울리는 진행자의 목소리.

진행자의 말마따나 손바닥은 소년의 바로 눈앞에서 정지해 있었고, 골렘은 더 이상 움직이지 못하고 있었다.

“뭐지?”

공중에서 아래 상황을 지켜보던 루비의 관심도 이윽고 소년으로 향하게 되었다.

잠시 후, 가려진 골렘의 손바닥 아래에선 스멀스멀 올라오는 주황색 마나를 볼 수 있었다.

그리고 곧 골렘의 손바닥이 저항할 수 없는 무언가에 이끌리는 듯, 공중을 향해 서서히 들리고 있었고, 그 아래에 있는 것은 주황색 마나를 두 눈에서 뿜어내는 소년의 모습이었다.

“정신계 마법……?”

루비는 그 모습을 보고 갸우뚱했다.

정신계 마법은 시전자의 마법 능력이 상대보다 압도적으로 높아야 발동된다. 조건 자체가 매우 까다롭고 실용성이 떨어지는 것이다. 정신계를 지망하는 학생들이 그리 많지 않은 것도 그런 이유였다.

그런데 지금 저 아래에 있는 소년은, 그 정신계 마법을 사용해서 돌림판의 골렘을 조종하려 들고 있었다.

아니, 손을 서서히 들고 있는 골렘의 모습을 보아 이미 반쯤 성공한 것으로도 보였다.

“얼마나 괴물인 거야…….”

루비는 그 모습에 혀를 내둘렀다.

자신의 기숙사, 아우레인만 해도 제로와 제이드 같은 괴물들이 한둘이 아닌데, 다른 기숙사 소속인 저 소년도 괴물이라는 칭호가 어울릴 만한 능력을 선보이고 있는 것이다.

곧 소년의 몸에서 흘러나온 주황색 마나는 거대한 골렘의 몸체를 전부 뒤덮었다.

완전히 지배된 골렘은 손바닥을 정중히 뻗어 소년을 그 위에 올리더니, 자신의 머리 부근으로 손을 조심스레 치켜들었다. 그리고 소년은 골렘의 머리 위에 폴짝 뛰어올라 털썩 자리를 잡고 앉았다.

그와 동시에 골렘이 다시금 움직이기 시작했다.

쿠오오오오!

또다시 시작된 골렘의 무차별적인 공격.

아까와 차이점이 있다면, 저 골렘은 이제 소년의 의지로 움직이고 있다는 점이었다.

쿠우우웅!

콰아아아앙!!

방금까지 골렘을 멈춰 세운 소년 덕분에 안심하고 있던 다른 학생들은, 다시 정신없이 도망쳐야만 했다.

- 어, 어떻게 된 걸까요? 설마 고작 1학년생이 저 돌림판의 지옥 골렘을 조종한다는 소리인가요?! 단순히 멈추려던 게 아니었나요?! 참으로 놀랍습니다! 이제부터 저 참가자가 이 돌림판의 지배자입니다!!

돌림판의 지배자.

그 말에 어울리게도 골렘 위에 올라탄 소년은 골렘의 주먹을 자유자재로 조종해서 학생들을 하나둘씩 탈락시키고 있었다. 아까 전만 해도 느릿느릿하고 부정확했던 골렘의 주먹질은, 이내 소년의 명령을 듣고 난 뒤 더욱 정교하게 학생들을 노리기 시작했다.

“그런데… 느낌이 좀 이상한데?”

그 모습을 내려다보던 루비 버밀리온은 뭔가 이상한 점을 느끼게 되었다. 그리고 한참을 지켜보더니 이내 그 이유를 깨달았다.

“우리 기숙사 애들만 공격하고 있잖아……?!”

골렘의 손바닥이 주로 노리고 있는 대상은 ‘아우레인’ 기숙사의 소속 학생들. 실제로 골렘의 공격은 그 밖의 기숙사 학생들을 속속들이 피해 가고 있었다.

“왜……? 왜 우리 기숙사 학생들만 노리는 거야?”

절대 기분 탓이 아니었다.

저 골렘을 조종하는 소년은 명백히 아우레인 기숙사의 사람들을 노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루비 버밀리온도 예외가 아니었다.

이내 골렘의 머리 위에 올라타 있는 소년은 천장에 붙어 있는 루비를 발견했다.

그리고 곧 골렘의 손바닥은 공중 위를 부유하고 있는 루비 버밀리온에게 천천히 뻗어 오고 있었다.

“이, 이런.”

루비는 재빠르게 몸을 비틀어 손바닥의 범위에서 벗어나 공중을 유유히 헤엄쳤다. 무중력에 가까운 루비의 신체는 공기의 흐름을 타고 물 흐르듯이 앞으로 나아가기 시작했다.

뒤쪽을 흘끔 보니 골렘의 손은 루비를 잡기 위해 계속해서 허공을 허우적대고 있었다.

어느 정도 사정거리에서 벗어나자, 루비는 소년에게 큰 목소리로 대화를 시도했다.

“어이, 너! 왜 우리 기숙사를 공격하는 거야? 무슨 이유인데?”

그러자 소년은 공중에서 멀어지고 있는 루비를 올려다보며 히죽 웃었다. 딱히 대답할 생각은 없어 보였다.

“그렇게 나오신다, 이거지…….”

루비는 그런 소년의 태도에 살짝 열이 뻗쳤다.

가만히 있어도 물론 예선전은 무난하게 통과할 것이다. 다만 그녀의 성격상, 저 소년의 행태를 이대로 두고 볼 수 없었다.

루비는 곧바로 주문을 외웠다.

「그라비타스 폰데라티(grávĭtas ponderátĭ)」

쿠우우우웅!

루비의 주문과 함께, 상체뿐인 골렘의 몸통이 그대로 앞으로 고꾸라졌다.

- 아까부터 공중에서 부유하던 참가자가 반격을 시작했습니다! 본격적인 참가자들 간의 싸움이 시작되어 흥미진진한데요? 물론, 지옥의 돌림판은 단순히 돌림판 위에서 살아남기만 해도 돼서 서로 싸울 필요는 없지만요. 그나저나 지옥의 골렘을 조종하는 정신계 학생이나, 그 거대한 골렘을 단 한 번에 쓰러트린 저 물질계 학생이나 정말 대단합니다! 이번 대의 1학년들 정말 기대되네요!

또다시 쩌렁쩌렁 울려 퍼지는 진행자의 목소리.

그리고 그에 반응하여 움직이는 한 학생이 있었다.

크어어엉!

구이이이익!

쓰러져 있는 골렘의 등 위로 올라타는 검은 멧돼지와 검은 양.

제페토의 사역마 도올과 도철이었다.

가뜩이나 중력에 의해 몸을 못 가누고 있던 지옥 골렘은, 도철과 도올의 공격에 반항할 수 없었다. 그렇기에 두 손으로 머리를 감싸 안아 머리 부근에 올라타 있는 정신계 소년을 보호하기 급급해했다.

‘쟤가 뭘 잘못 먹었나? 무슨 일이래?’

루비는 그 모습을 보며 고개를 갸우뚱했다.

그녀가 생각하는 동급생 제페토는, 정의감에 움직이는 사람은 아니었다.

‘그래도 나름대로 정이 있는 건가?’

루비는 좋은 게 좋은 거지, 라는 생각과 함께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물론, 제페토가 움직인 이유는 당연히 루비 버밀리온에 대한 호감 어필도 있었지만, 그다음 이유는 의외의 소속감 때문이기도 했다.

“감히 내 기숙사를 건드려?!”

골렘을 조종하던 정신계 마법사에게 호탕하게 소리치는 제페토 골드버그. 마치 일진 학생이 다른 반 일진들에게 삥 뜯기는 셔틀을 위해 나서는 듯한 모습이었다.

그런 제페토 골드버그를 루비는 이상한 시선으로 보며 고개를 저었다.

루비의 중력 마법과 제페토의 사역마에 의한 합동 공격.

이것은 명백히 아우레인 기숙사의 연합이었다.

그리고 그러한 연합을 다른 기숙사 학생들이 가만둘 리 없었다.

이윽고 상대방의 기숙사, ‘아네락샤’ 측도 움직이기 시작했다.

- 저, 저기요, 여러분? 이번 예선전은 개인의 생존인데요……? 패싸움이 아니라고요!

진행자의 말마따나, 예선전의 양상은 묘하게 아우레인 기숙사 소속 학생들과 아네락샤 기숙사 소속 학생들의 전투로 번지게 되었다.

“저, 저 자식들, 뭐 하는 거야?!”

“가뜩이나 안전 구역이 파괴돼서 도망칠 곳도 없는데 어쩌라는 거야!!”

“사, 살려 줘!!”

난데없이 전쟁을 시작한 두 기숙사 때문에, 나머지 기숙사 학생들은 점점 고래 싸움에 밀려 안전 구역 밖으로 도망치게 되었다.

도망치다 돌림판 위에서 떨어져 탈락하는 사람들.

그리고 날아다니는 파이어 볼과 드래곤의 브레스 등에 맞아 강제 귀환되는 사람들.

두 기숙사의 전쟁은 순식간에 많은 탈락자를 발생시켰다.

한창 난장판이 과열되고 있던 그때,

- 자, 잠깐만요!!

진행자의 우렁찬 함성과 함께 일시적으로 모든 학생이 움직임을 멈추게 되었다. 그리고 그것은 참가자들의 의지가 아니라, 던전 안의 모든 마나가 증발해 버렸기 때문이었다.

- 축하드립니다. 지옥의 돌림판이 종료되었습니다!

어느덧 그들의 패싸움으로 인해, 돌림판 위에 살아남은 사람이 60명뿐이었던 것이다.

- 이로써 생존자 60명이 모두 결정되었는데요, 이 60명 중 본선에 올라갈 열다섯 명은 내일 이뤄질 파이널 예선전에서 결정됩니다! 그럼 지금까지 봐주신 여러분, 내일 또 뵙자고요?!

그렇게 칼루스 아카데미 1학년생들의 1차 예선전, ‘지옥의 돌림판’이 종료되었다.

* * *

“역시 이번 대 애들은 꽤 살벌한데?”

경기장 중앙에 있던 모니터가 종료되자, 아텔라 교수가 기지개를 켜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런데 원래 저렇게까지 사이가 안 좋았나요? 아우레인이랑 아네락샤요.”

물론, ‘아카마’에서도 두 기숙사의 묘한 경쟁 구도가 있었고, 실제로 그와 관련된 이벤트가 몇몇 있기는 했었다. 다만, 이 정도까지는 아니었다.

“두 기숙사가 치고받는 건 유구한 전통이지. 나 때도 종종 시비는 있었어. 물론, 이렇게 공적인 자리에서까지 싸우는 걸 보는 건 처음이지만.”

“그래도 덕분에 재밌긴 했네요.”

흥미진진한 예선전이었다.

내일 있을 파이널 예선전도 조금 기대가 되었다.

무엇보다 내일 파이널에 진출하는 사람이, 당장의 대진 상대가 될 수 있으니까 더더욱 관심이 생겼다.

아텔라는 이런 내 마음을 눈치챘는지 씨익 미소를 지었다.

“그럼, 난 가 볼게.”

“네, 들어가세요.”

“내일도 알지?”

“네?! 하, 하하…….”

내일도 있을 훈련을 생각하면 조금 끔찍하긴 하다.

그렇게 나는 경기장 밖을 나오고 나서 아텔라 교수와 헤어졌다. 그리고 나는 루비 버밀리온을 찾을 심산이었다.

“그래도 내일 파이널 예선전 잘하라고 격려 정도는 해 줘야겠지?”

아무래도 루비는 나를 라이벌로 생각하는 모양이니까, 격려해 주는 게 라이벌로서 마땅한 예의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하여 나는 루비를 찾기 위해 감지 마법을 시전하였다.

「프레시스코(præscísco)」

우우우웅.

순식간에 주변의 마나 정보들이 눈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그리고 곧 조금 떨어진 곳에 위치한 루비 버밀리온의 붉은 마나, 그리고 그 옆에 달시 세이피어로 추정되는 파란색 마나를 발견해 냈다.

“역시 ‘무빙 캐스팅’을 선택하길 잘했네.”

매직 미사일을 두 배로 증폭시키는 효과를 포기하고 선택한 주문서.

‘무빙 캐스팅’을 적용한 지금의 감지 마법은 그 성능을 확실히 발휘하는 것 같았다.

현재 이쪽으로 다가오고 있는 듯한 루비와 달시의 움직임뿐만 아니라, 아카데미 내부의 대략적인 학생들의 위치 정보까지 속속들이 파악할 수 있었다.

그런데,

“응? 으으응?!”

아무 생각 없이 루비와 달시를 맞이하러 가려던 찰나.

시야에 새까만 형상이 들어오고 있었다.

그것도 광폭화한 마법사에게서만 느껴진다는 흑빛의 마나.

그리고 보고 있는 이 순간에도, 그 검은 마나의 일렁임은 조금씩 커지고 있었다.

“이, 이건……!”

루비의 마중은 뒤로한 채, 나는 그 검은 빛 마나의 발생지를 향해 달려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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