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아카데미의 무속성 마법사-34화 (34/175)

34화

* * *

눈을 뜨자 보이는 것은 익숙한 풍경.

바로 아카데미의 의무실이었다.

“일어났어?”

그리고 깨어난 나를 반기는 것은 다름 아닌 이올렛 테오니르.

그녀는 의사 가운 주머니에 두 손을 집어넣고는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나는 떨떠름한 표정으로 시선을 올려 그녀를 마주 보았다.

“…저 살아 있는 건가요?”

“그럼 죽었겠니?”

이올렛의 시큰둥한 어투에 나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구나……. 나 살아 있는 거구나…….’

얼떨떨했다.

지금껏 몇 번의 죽을 뻔한 위기가 있었지만 이 정도까지는 아니었다.

생명력 그 자체가 빨려들어 가는 그 오묘한 느낌.

이른바 죽음의 경계선에 서 있는 듯한 기분을 느꼈던 것이다.

정신을 차리고 아까 전 일을 생각하자,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오스카 큐리어스였다.

“저기… 그 녀석은요……?”

“그 녀석? 아, 이 꼬마 말이지?”

이올렛이 병실의 가림막을 확 걷어 내자, 그곳에는 나와 같이 침대 위에 누워 있는 오스카 큐리어스가 있었다. 그는 모든 것을 잃은 듯한 공허한 표정으로 천장을 바라보고 있었다.

“다행히도 이 친구는 생명의 마나가 모두 소실된 건 아니어서, 생명에 그다지 큰 지장은 없었어. 오히려 위험한 건 너 쪽이었지. 거의 죽기 직전이었으니까.”

나는 대답 대신 오스카를 바라보았다.

그는 어째서인지 내 시선을 회피하고 있었다.

“그래도 다행이네요, 둘 다 무사해서. 그러고 보니 요 근래 신세를 좀 많이 지고 있네요. 감사합니다.”

“요 근래라니. 넌 입학할 때부터 계속 귀찮게 했잖아?”

“하하…….”

나는 멋쩍은 웃음을 지었다.

그러고 보니 내가 이 의무실에 들른 게 몇 번째인지 기억조차 나지 않았다. 칼루스 아카데미에 입학한 지는 아직 한 달도 되지 않았는데 말이다.

“몸은 괜찮은 거지? 아마 괜찮지 않을까 싶은데.”

“네. 완전 멀쩡한데요?”

어떻게 된 건지 아까 전만 해도 죽을 거 같았던 몸은 멀쩡해져 있었다. 역시 방출계 마법사의 의료술이야말로 이 세계의 큰 자랑거리가 아닐까 싶다.

물론, 이올렛 테오니르의 실력이 그만큼 뛰어난 것도 있었고.

“그럼, 슬슬 준비해야겠네.”

“네? 뭘요? 뭘 준비해요?”

“8강 준비해야지? 오늘 16강, 8강 전부 진행하잖아? 아까 비무제 진행 요원들이 깨어나는 대로 바로 보내 달라고 하던데.”

“네?!”

그러고 보니 8강이 있었지.

창밖엔 벌써 해가 서서히 저물어 가고 있었다.

이미 8강을 진행하고도 남을 시간이었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좀 너무한데…….’

아무리 당일 경기라 해도 그렇지.

방금까지 침실에 누워 있던 사람을 바로 비무제에 투입하려는 아카데미 측도 너무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 그런데 저 8강 진출한 건가요? 중간에 쓰러졌었는데? 경기 결과가 어떻게 된 거예요……?”

갑자기 16강 경기 내용이 생각난 나는, 오스카 큐리어스의 눈치를 살피며 말을 꺼냈다. 아까의 경기 내용을 언급하자, 오스카는 등을 휙 돌려 누웠다.

어지간히 미운털이 박힌 모양이었다.

그리하여 나는 다시금 이올렛 테오니르에게 경기 진행 결과를 물어보았다.

“혹시 아까 제 경기 보셨…….”

“…네가 이겼어.”

차갑고 무미건조한 어투로 입을 연 오스카 큐리어스.

그는 여전히 등을 돌린 채로 말을 이었다.

“16강은 내가 항복했어. 깔끔히 너의 승리야.”

왠지 그리 말하는 오스카의 뒷모습에선 그의 부끄러움이 느껴졌다. 나는 그 모습에 괜스레 웃음이 나왔다.

“그래, 고맙다.”

“…….”

오스카는 그 뒤로 말이 없었다.

“그럼, 어서 가서 준비해라.”

“아, 네. 감사합니다.”

나는 이내 일어나서 나갈 채비를 했다.

마음 같아선 이대로 계속 누워 있고 싶었지만 어쨌든 이미 몸 상태는 완전히 회복되어 있었고, 비무제에는 큰 보상이 걸려 있었으니까.

그런데 내가 자리에서 일어나서 의무실 문밖을 나서려던 찰나, 오스카 큐리어스가 말을 걸어왔다.

“…그런데 있잖아.”

“응? 왜?”

“왜 날 구한 거야……?”

오스카의 얼굴은 보이지 않았지만, 그의 목소리에 담겨 있던 차가움이 조금은 식어 있었다. 나는 그의 말을 듣고는 미소를 지었다.

“그야, 내가 그렇게 선택했으니까.”

그러고는 오스카를 뒤로한 채, 문밖을 나서 경기장으로 향했다.

* * *

오스카 큐리어스는 제로가 의무실을 나간 뒤 머리끝까지 이불을 뒤집어썼다. 그러고는 조금 전 제로의 말을 곱씹어 봤다.

‘…내가 그렇게 선택했으니까?’

제로는 아무렇지 않게 그런 말을 내뱉었다.

그리고 그것은 오스카의 가슴을 울렸다.

‘뭐야……. 그게…….’

생각해 보면 오스카는 지금까지 살면서 무언가를 자기 의지로 선택한 순간이 없었다.

아버지의 나약한 모습을 좇기 싫어 누구보다도 열심히 마법에 정진해 왔던 것이, 정작 자신의 선택이라기보단 오히려 아버지의 뒤를 좇는 행위였던 것이다.

‘제로…….’

오스카 큐리어스는 그 두 글자 이름을 가슴속에서 되뇌었다.

오스카의 ‘주인공’에 대한 생각은 더 이상 ‘증오’가 아닌 ‘동경’이 되어 가고 있었다.

* * *

“그러고 보니 허사였네.”

의무실을 나와 생각해 보니 살짝 억울한 마음이 들었다.

“결국 아무런 보상도 없던 거잖아.”

이렇게 불만이 섞인 이유는, 다름 아닌 아까의 16강전에서 고른 선택지 때문이었다.

16강전의 옥상.

오스카가 죽기 직전인 그 일촉즉발의 상황 속에서.

[▶ 오스카 큐리어스를 구한다.]

[▶ 오스카 큐리어스를 죽게 내버려 둔다.]

내 눈앞엔 두 개의 선택지가 나타났었다.

‘죽게 내버려 두겠냐!’

당연히 내 입장으로서는 선택할 만한 여지는 존재하지 않았다.

아무리 상대가 기분 나쁜 녀석이고, 나에게 호의를 갖지 않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어떻게 죽게 내버려 둘 수 있겠는가?

저 상황에서 ‘죽게 내버려 둔다.’라는 선택지를 고를 수 있는 사람은 분명 사이코가 틀림없었다.

그리하여 나는 ‘오스카를 구한다.’라는 선택지를 선택했을 뿐이고, 내 몸은 그와 동시에 마나의 흐름으로 이끌렸을 뿐이었다.

‘뭐, 좋은 게 좋은 건가.’

딱히 선택지에 따른 보상이나 이벤트는 주어지지 않았지만, 결과적으로 나는 무사하고 오스카도 무사한 거니까 좋게 좋게 생각하기로 했다.

경기장의 대기실에 도착하자 제일 먼저 루비 버밀리온과 달시 세이피어가 나를 반겼다.

“어? 왔어?”

“제로! 괜찮아?!”

아무렇지 않게 앉은 채로 손을 흔드는 달시와 달리, 루비는 매우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응, 괜찮아.”

“아깐 어떻게 된 거야? 그 아네락샤 기숙사 애는 어떻게 됐고?”

“다 괜찮으니까, 걱정 마. 그냥 뭐, 흔히 있을 법한 사고였으니까……. 그나저나 8강 대진은 어떻게 돼? 내 상대는 누구야?”

나는 걱정스러워하는 루비를 뒤로한 채, 벽면에 붙어 있는 대진표를 확인했다.

[8강 대진표]

* 1경기 루비 버밀리온 vs 달시 세이피어

* 2경기 샬롯 아메드 vs 벤자민 픽시노바

* 3경기 제로 vs 제페토 골드버그

* 4경기 에메릴 그린월드 vs 볼켄 치즈러쉬

“내 상대는 제페토네…….”

올 것이 왔다.

아마 그 녀석은 이 대진을 보자마자 벼르고 있겠지.

‘그 녀석한텐 지기 싫은데 말이지… 응?!’

당장 있을 제페토와의 경기를 생각하던 와중, 문득 1경기의 대진표가 눈에 들어왔다.

그것은 다름 아닌 루비 버밀리온 대 달시 세이피어.

“뭐야? 둘이 붙었었어? 누가 이겼어?”

“그, 그건…….”

“내가 졌어.”

루비는 말끝을 조금 흐렸다.

반면 달시는 자신의 패배를 담담하게 선언했다.

“그런데 어떻게? 아무래도 대인전은 달시 쪽이 조금 유리한 거 아니야?”

“운이 좋았어. 8강 종목은 마물 헌팅이거든.”

“아, 마물 헌팅이었어?”

마물 헌팅 종목은 어떤 방식으로 진행되는지 알고 있었다.

‘아카마’에서도 비무제 8강의 종목은 마물 헌팅이었으니까.

마물 헌팅은 말 그대로 제한 시간 안에 누가 더 많은 마물을 잡느냐로 갈리는 싸움.

서로 간의 전투는 이루어지지 않는다.

따라서 달시보다는 광역 공격을 할 수 있는 루비가 유리한 게 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였다.

“뭐, 당연히 루비가 좀 더 유리했겠네.”

“그렇지…….”

루비는 이기고도 조금 찝찝한 모양이었다.

그런 루비를 달시가 격려했다.

“아냐 아냐! 승부에 그런 게 어딨어? 진 건 진 거야.”

시무룩한 승자와 격려받는 패자라니, 참으로 웃긴 녀석들이다.

“그나저나 마물 헌팅으로 제페토와 대결이라…….”

사실 제페토와의 대인전은 별로 자신이 없었다.

마도구가 없는 이상, 나는 기본적으로 근접전에 약할 수밖에 없었고, 이런 나에게 제페토의 소환수 도철과 도올은 치명적이었다.

그리하여 제페토와 맞붙는 8강의 종목이 마물 헌팅인 것은 천만다행이었다.

- 8강 그 두 번째 경기, 승자는 바로 샬롯 아메드입니다!! 이렇게까지 폭발적인 화력을 신입생이 보여 주다니 정말 대단합니다! 그럼, 다음 대진을 소개하겠습니다. 다음 경기는 바로 제페토 골드버그와 제로 학생의 대결입니다!!

이윽고 내 차례가 다가왔다.

* * *

진행 요원의 안내에 따라 숲의 던전으로 향하는 와중.

나는 당장 있을 전투에 온 신경을 집중하고 있었다.

‘일단 지금 당장 제페토 녀석이 쓸 수 있는 소환수는 도철과 도올이잖아……. 그럼 일단 필드에 자석이 있었으면 좋겠네. 적어도 한 녀석은 묶을 수 있을 테니까.’

이제 세 번만 더 이기면 마법 주문서를 얻을 수 있었다.

또한 오스카에게서 기권 선언도 받았겠다, 그 녀석 몫까지 최선을 다해 이번 비무제에서 우승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그때, 멀지 않은 곳에서 여자들의 대화 소리가 들려왔다.

“따…라…오실…래요?”

“네? 무슨 일이에요?”

크게 반문하는 목소리는 샬롯 아메드.

그녀는 아마도 경기가 끝나고 대기실로 복귀하는 길인 듯싶었다.

그리고 그런 샬롯 아메드를 붙잡고 세우는 사람은 다름 아닌…….

‘캐서린?’

검은 드레스를 입고 있는 캐서린 골드버그였다.

‘자, 잠깐만, 그러고 보니 캐서린이 의식 어쩌고 이야기를 했었지……?’

하루 종일 경기에 몰입하느라 잊고 있었던 사실.

캐서린의 의식은 바로 오늘 시작되는 것이다.

“가… 보면… 알…아요…….”

“그래요.”

별 의심 없이 수락하는 샬롯 아메드.

멀리서 지켜보던 나는 그 모습에 어쩔 줄 몰라 했다.

‘아니, 이거 저렇게 보내도 되는 거야? 당장 따라가는 샬롯이 어떻게 될지 뻔한데?’

마음이 심란했다.

‘그, 그렇지만 저길 내가 따라가게 되면 비무제는 포기해야 되고, 주문서도 물 건너가는 거잖아? 아, 아니지 참… 생각을 해 보자. 애초에 이게 위급한 상황이면 선택지 창이나 이벤트 창이 뜨지 않을 리 없어. 지금까지 아무 일 없잖아? 별일 없겠지……?’

내적 갈등.

그리고 자기 합리화.

머릿속은 오만가지 생각들로 뒤죽박죽이었다.

“뭐 합니까? 곧 경기 시작입니다. 어서 갑시다.”

그리고 내 옆에 서 있는 진행 요원은 나를 재촉했다.

나는 불만 섞인 그의 표정에 얼떨결에 대답하고 말았다.

“네……. 가, 갈게요!”

* * *

그리하여 나는 8강의 던전 안으로 입장하게 되었다.

던전 안을 들어가자 옆에는 제페토 골드버그가 나란히 서 있었다.

제페토는 내 옆에서 눈을 부라리며 빈정거렸다.

“지금껏 잘도 나댔었지. 이번에야말로 주제 파악을 시켜 주마.”

그러나 내 머릿속은 제페토의 비아냥 따위 들어올 자리도 없이, 딴생각으로 가득했다.

‘선택지… 이벤트 창… 선택지… 왜! 왜, 도대체 아무것도 안 뜨는 거야!!’

분명 지금은 한시가 급한 상황이 맞았다.

벌써 샬롯이 캐서린을 따라간 지 몇 분이 지났다.

지금쯤 샬롯과 캐서린이 어떻게 됐을지는 모르는 일이었다.

그럼에도 시스템은 별다른 경고를 하지 않고 있었다.

“겁먹은 건가? 하긴 겁먹을 만하지. 그러게 적당히 분수를 알아야지.”

여전히 입을 나불대는 제페토 골드버그.

“어라? 진짜 대답이 없네? 뭐 이렇게 쫄아 있어? 바지에 지리기라도 한 거냐? 그렇게 쫄아 있을 거면 그냥 항복이나 하지 그래? 어차피 결과는 뻔할 테니까.”

“…그래.”

나는 결심했다.

“…뭐?”

“그래, 항복할게.”

“뭐, 뭐라고?!”

그리고 나는 고개를 젖히고 던전이 울릴 만큼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외쳤다.

“기권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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