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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데미의 무속성 마법사-35화 (35/175)

35화

* * *

이미 시간은 초저녁.

태양은 붉은빛을 내며 저물어 가고 있었다.

“헉… 헉…….”

나는 멈춰 서서 가쁜 숨을 몰아쉬며 잠시 호흡을 가다듬었다. 그러고는 다시금 아카데미의 숲속을 달려 나가기 시작했다.

‘괜찮겠지……. 괜찮을 거야…….’

당장 샬롯과 캐서린이 어떤 상황인지 모르는 일이었다.

그리고 만약 둘에게 무슨 일이 생겼다면, 그 책임은 나에게도 있었다.

‘제발 아무 일 없어라…….’

진행 요원한테는 오전의 후유증으로 기권한다고 말해 두었다.

혹시라도 마경이나 협회 측 인원들이 따라붙게 된다면 캐서린이 위험할 수도 있으니까.

조금 이기적인 생각이지만, 나는 샬롯과 캐서린 둘 다 구해 내고 싶었다.

‘그나저나 어디로 사라진 거야…….’

이상하게도 캐서린의 검은 마나는커녕, 샬롯의 보라색 마나조차도 감지 마법에 잡히지 않았다. 그들이 어디 있는지 알 수 없는 나로서는, 열심히 뛰어다니며 직접 찾아다니는 게 최선이었다.

그렇게 몇 분을 뛰어다녔을까.

띠링.

저번에 캐서린을 만났던 지점을 통과하자, 머릿속에 청명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와 함께 갑자기 주변의 마나 정보가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곧 캐서린의 검은 마나의 위치가 내 눈에 포착되었다.

‘젠장, 결계였나.’

아마도 캐서린 골드버그는 요 며칠 사이, 아카데미의 숲 안에 마력의 탐지를 막는 결계를 쳐 놓은 모양이었다.

모든 건 전부 그 ‘의식’ 때문이겠지.

정작 그 ‘의식’이라는 게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아카마’에서 마인이 된 캐서린은 출동한 마경에 의해 제압되고 사살됐었다.

나는 부디 그렇게까지 일이 흘러가지 않기를 바랄 뿐이었다.

그리고 곧 나는 숲 한가운데에 있는 캐서린 골드버그를 발견할 수 있었다.

“캐서린!!”

보이는 것은 정신을 잃고 있는 샬롯 아메드.

그리고 그런 샬롯을 품에 안고 숲 한복판 바닥에 앉아 있는 캐서린 골드버그였다.

그녀의 오른손에 들려 있는 단검.

캐서린은 내 외침을 무시한 채 서서히 단검을 든 손을 들어 올리더니, 샬롯의 가슴 부근에 가져다 대고 있었다.

“멈춰!!”

젠장.

나는 곧바로 주문을 외웠다.

「마지아 미실레(magía míssĭle)!!」

퍼어엉!

날아간 두 개의 매직 미사일은 그대로 캐서린의 얼굴 가에 적중했다.

갑작스러운 공격에 당황한 캐서린은 그제야 내 쪽을 노려보았고, 나는 그대로 달려들어 캐서린의 품에 안겨 있는 샬롯을 낚아챘다.

쿠당탕!

샬롯을 끌어안은 나는 바닥을 데굴데굴 굴렀다.

퍼억.

이내 내 몸은 나무에 부딪혀 멈춰 섰고, 나는 곧바로 샬롯의 상태를 살폈다. 다행히 그녀의 몸에 별 이상은 없어 보였다.

“…하! 하하핫핫!!”

캐서린은 고개를 푹 숙이고 기분 나쁜 웃음소리를 내며 서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분명 조금 전 매직 미사일이 그녀의 얼굴에 적중했었으나. 별 타격을 입지는 않은 것으로 보였다.

“정신 차려, 캐서린! 미쳤어?! 샬롯을 죽이려 한 거야?!”

분명 샬롯의 가슴에 단검을 가져다 대던 캐서린은, 그대로 샬롯을 찌르려던 것으로 보였었다.

이미 그녀는 제정신이 아니었다.

“샬롯? 또 샬롯. 당신도 마찬가지인 건가요? 당신도 마찬가지로 저년을 구하러 여기까지 온 거예요?”

고개를 푹 숙이고 있는 그녀의 얼굴은 머리카락에 가려져 표정을 읽을 수 없었다. 다만, 그녀의 자조 섞인 웃음소리만이 귓가에 맴돌았다.

“틀려! 난 샬롯을 구하러 온 게 아니야. 너를 구하러 온 거야!”

단순히 샬롯을 구할 생각이었으면 마경이나 협회 혹은 아카데미에 보고하면 그만이었다. 그럼에도 일을 이 지경까지 끌고 온 것은 순전히 그녀, 캐서린 골드버그를 구하고 싶다는 내 욕심이었다.

물론 딱히 방법은 알지 못했다.

그럼에도 나는 선택지와 이벤트 창을 믿었었다.

시스템이 위기를 알려 주겠지.

시스템이 방법을 알려 줄 거야.

그러한 생각으로 그녀의 광폭화를 모른 척하고 있었다.

그러나 시스템은 전혀 그럴 생각이 없어 보였다.

이미 거의 반 마인 상태의 그녀를 조우했음에도, 시스템 창은 여전히 묵묵부답이었다.

‘젠장, 캐서린이 애초에 이런 역할이라서 그런 거야? 애초부터 이럴 운명이었냐고!’

시스템은 너무나도 냉정했다.

“…저를… 구하러 오셨다고요……? 왜요?”

의아한 어투로 되묻는 캐서린.

나는 조심스레 샬롯을 안전한 곳에 내려놓으며 그 질문에 대답했다.

“그야 우린…….”

사실 그 질문에 대한 대답은 딱히 없었다.

사람이 사람을 구하는 데 이유가 있을까?

그럼에도 나는 이 말을 하고 싶었다.

“…승리를 함께한 파트너잖아?”

고작 한 번뿐인 교류.

그 이전에도 그 이후에도, 나와 캐서린에게 그 이상의 교류는 없었다.

그럼에도 나는 이 말을 그녀에게 해 주고 싶었다.

정신이 타락하고 온전하지 않은 지금, 캐서린에게 그때 그 승리로 기뻐하던 순간을 상기시켜 주고 싶었다.

내가 그때 본 캐서린의 미소.

그 순간만큼은 그녀의 순수한 진심이 보였으니까.

그러나 이미 반쯤 마인화가 진행된 캐서린의 생각은 역시 다른 것 같았다.

“…고작 한 번뿐인 파트너? 겨우 그런 걸로 날 구하겠다고 나서는 거예요? 하! 참 웃기는 사람이네요, 당신. 고작 평민 주제에 자기 분수도 모르고.”

“그 말, 어디서 많이 들어 본 거 같은데.”

“착각하지 마세요. 날 구해요? 전 이 의식으로 다시 태어날 거랍니다. 더 이상 무시 받고 뒤처지는 캐서린 골드버그가 아니라고요!”

그리고 갑자기 캐서린은 고개를 팍 치켜올렸다.

그러자 그녀의 고운 머리카락에 가려져 있던 얼굴이 드러났고, 그녀의 검게 물든 눈동자가 또렷이 보였다.

‘이미 상당히 잠식되어 있네.’

그래도 다행인 점은 그녀가 아직 평소에 사용하던 말투인 경어를 사용한다는 것이다.

아직 가능성은 충분했고, 기회는 남아 있었다.

“…그럼, 일단 좀 맞자.”

「마지아 미실레(magía míssĭle)」

「마지아 미실레(magía míssĭle)」

……

「마지아 미실레(magía míssĭle)」

나는 성공의 매직 미사일이 나올 때까지 주문을 읊조렸다.

곧 내 머리 위에는 하나둘씩 자리를 잡고 다음 명령을 기다리는 수많은 매직 미사일이 밀집하고 있었다.

운이 좋게도 성공의 매직 미사일은 얼마 지나지 않아 모습을 드러냈다.

“그럼…….”

나는 캐서린을 향해 손가락을 탁 튕겼다.

그러자 머리 위의 매직 미사일들이 일제히 그녀에게 달려들었다.

콰과과과광!!

강렬한 폭음과 섬광이 캐서린에게 작렬했다.

그리고 숲은 그 충격의 여파로 인해 잠시 흙먼지로 뒤덮였다.

그런데, 잠시 후 흙먼지가 걷히고 보인 것은 멀쩡히 서 있는 캐서린이었다.

“역시 안 통하는 건가……?”

대성공 매직 미사일은 일반적인 성인 마법사의 마법 위력을 훨씬 상회하는 힘이었다. 그럼에도 어떻게 된 일인지 캐서린에게선 생채기 하나 보이지 않았다.

“후훗. 고작 이 정도로 여기에 발을 들이민 거예요? 제가 경고했죠. 한 번은 넘어가 주겠다고.”

그러더니 캐서린은 고개를 팍하고 뒤로 젖혔다.

그러자 그녀가 입은 검은 드레스에서 무언가 스멀스멀 튀어나오기 시작했다.

“…당신은 그 경고를 들었어야 했어요.”

파앗!

캐서린의 말과 동시에, 정체를 알 수 없는 무언가가 그녀의 검은 드레스에서 튀어나와 내게로 달려들었다.

나는 급한 대로 언노운을 꺼내 방어를 시도했다.

캉!

다행히도 나는 달려드는 괴생명체의 입 사이에 언노운을 끼워 넣을 수 있었다. 그러나 검날이 뭉뚝한 언노운이었기에 그저 버티기에 급급할 수밖에 없었다.

“이, 이건…….”

내게 달려든 것의 정체는 다름 아닌 검게 일렁이는 개의 머리.

그것은 머리의 실루엣만 있을 뿐, 전체가 검은 그림자로 이루어져 있었고, 캐서린의 드레스와 기다랗게 연결되어 있었다.

‘그녀의 능력이 마인화한 건가.’

캐서린 골드버그의 원래 능력은 십이지신의 사역.

그런 그녀의 능력이 지금은 저 검은 드레스 안에서 그림자 짐승을 소환하는 능력으로 바뀐 듯싶었다.

심지어 원래의 캐서린이었으면 ‘쥐의 십이지신’밖에 소환할 수 없어야 하는데, 마인화를 한 지금의 그녀는 모든 짐승을 다룰 수 있는 것으로 보였다.

그때 반가운 목소리가 머릿속에 울려 퍼졌다.

- 이게 무슨 일이더냐?

언노운이었다.

아마도 본인의 몸체를 이렇게 막대기로써 사용하고 있는 걸 느낀 모양이겠지.

안 그래도 언노운을 부를 심산이던 나는 속으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거 보여요? 도와주세요.”

- 도와…달라고?

말을 흐리는 언노운.

지금의 나는 농담할 기분도, 그럴 겨를도 아니었지만 딱히 방법이 없었다.

“…케이크 드릴게요. 두 개든 세 개든 상관없으니까, 일단은 어떻게든 저 좀 도와주세요!!”

- 알겠다.

역시 언노운은 케이크 소리에 순순히 대답했다.

그리고 곧 언노운의 검신에 오라가 맺히기 시작했다.

사아아아.

어느덧 검신이 전부 흰색 마나로 물들자, 나는 검날을 물고 있는 그림자의 괴물을 그대로 베어 냈다.

촤아악!

그러자 그림자 괴물의 베어진 부분은 삽시간에 자취를 감추며 공기 중으로 사라지고, 나머지 부분은 다시금 캐서린의 검은 드레스 안으로 빨려들어 갔다.

“후우…….”

나는 심호흡을 내뱉으며 다시금 자세를 가다듬었다.

그러나 가만히 지켜보고 있을 상대가 아니었다.

이내 캐서린 골드버그의 드레스에서 여러 마리의 그림자 짐승들이 튀어나와 달려들기 시작했다.

“…괜찮겠지?”

나는 조심스레 자세를 낮추고 양손으로 손잡이를 세게 쥐었다.

사아아아.

언노운의 검날에 맺히는 백색의 청명한 기운.

“괜찮을 거야…….”

이내 마음을 다잡은 나는, 힘차게 언노운을 휘둘러 눈앞의 공간을 베어 냈다.

그러자,

쿠과과과과과광!!

엄청난 폭음과 함께 언노운에서 뿜어져 나온 거대한 마나 덩어리가 숲을 파괴했다.

검기가 훑고 지나간 자리의 나무들은 모조리 흔적 없이 증발해 버렸고, 땅은 마치 굴삭기가 지나간 듯 움푹 파였다.

그러나,

“푸흡… 푸하하하하핫!!”

캐서린은 멀쩡히 서 있었고 갑자기 미친 듯이 웃기 시작했다.

‘효과가 없는 건가? 아닌데 분명 대미지는 들어간 거 같은데…….’

나는 이 한 방에 캐서린이 죽을까 봐 걱정하고 있었기에 오히려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게다가 웃고 있는 여유로운 모습과는 달리, 캐서린의 검은 드레스는 반쯤 찢어져 그녀의 새하얀 팔뚝과 허벅지가 찢어진 드레스 틈 사이로 보이고 있었다.

가뜩이나 하얀 캐서린의 피부는 검은 드레스와 대조적이어서 더욱 선명하게 느껴졌다.

“크크큭… 크하하하하하!”

고개를 뒤로 젖히고 크게 웃어 대는 캐서린 골드버그.

또 어떤 공격이 들이닥칠지 몰라, 나는 침착하게 언노운의 손잡이를 고쳐 잡았다.

그런데 그때,

우지직.

콰과과과광!!

갑자기 캐서린의 검은 드레스에서 나온 기다랗고 거대한 무언가들이 땅속으로 박혀 들어가기 시작했다.

그 모습은 마치 뿌리를 내리는 나무의 모습이었다.

“이, 이건 또 뭐야?”

캐서린의 몸은 뿌리내림과 동시에 점점 하늘로 상승하고 있었다.

그 모습을 지켜보고만 있을 수 없던 나는, 다시금 언노운에 검기를 머금고 깊게 박힌 뿌리를 향해 크게 휘둘렀다.

콰과과과과광!!

정확히 뿌리 부근에 적중한 언노운의 검기.

그런데 뿌리는 그 거대한 충격파를 맞고도 멀쩡해 보였다.

게다가 드레스에서 나오는 뿌리들은 아까보다도 더 거세게 땅속에 박혀 들어가고 있었다.

“…언노운의 검기가 통하지 않는다고?”

멀쩡한 모습에 당황하고 있을 그때, 이미 5m가량은 하늘로 솟은 캐서린이 입을 열었다.

그러나 그것은 더 이상 캐서린의 목소리가 아니었다.

- 가여…운… 인간. 방…해…하지… 마라.

이미 캐서린의 온전한 마인화가 시작되고 있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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