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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데미의 무속성 마법사-38화 (38/175)

38화

벌써 시간이 시간인지라 하늘은 깜깜했지만, 기숙사에서부터 새어 나오는 불빛이 뒷골목을 밝게 비추고 있었다.

정작 나를 이곳으로 데리고 온 장본인은 말이 없었다.

그리고 아까부터 안절부절못하며 발만 배배 꼬고 있을 뿐이었다.

‘왜 사람을 불러 놓고 말이 없는 거야?’

제페토는 왜인지 시선을 회피하고 있었다.

솔직히 나는 제페토가 나를 비무제의 일로 불렀나 싶었다.

그야, 내가 제페토와의 8강 경기에서 기권을 선언했었으니까.

그래서 그 못다 한 승부를 보려고 불렀나 싶었는데, 저러고 있으니 매우 당황스러웠다.

한참을 말이 없던 그는, 이내 짐짓 헛기침을 하더니 입을 열기 시작했다. 그런 그의 입에서 나오는 것은 예상치 못한 말이었다.

“그동안… 미안했다…….”

“…미안하다고?”

이 녀석이 갑자기 뭘 좀 잘못 먹었나?

뜬금없는 사과라니.

“그리고 동생을… 캐서린을 구해 줘서 고맙다…….”

그제야 나는 제페토의 쭈뼛쭈뼛한 태도의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아마도 그는 케이든을 통해 동생과 관련된 이야기를 들은 모양이었다.

‘설마 병실의 꽃도 이 녀석이 갖다 놓은 건가?’

의외로 섬세한 녀석이었다.

게다가 더욱 의외였던 점은, 그 자존심 높던 녀석이 동생을 구해 줬다고 평민 출신인 나에게 이렇게까지 굽힌다는 점이었다.

‘그래도 그렇게까지 냉혈한은 아닌가 보네.’

평소의 제페토의 모습과 숲에서 말다툼하는 둘의 모습으로 봤을 때는 영락없이 사이가 좋지 않아 보였는데, 이제 보니 나름 좋은 오빠인 듯싶었다.

나는 그런 제페토를 오빠로 둔 캐서린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그리고 이걸 받아라.”

제페토는 잠시 품을 뒤적이더니 나에게 무언가를 툭 건넸다.

그것은 손안에 꼭 들어오는 크기의 작은 회중시계였다.

순금으로 이루어져 있는지 어둑어둑한 와중에도 노랗게 빛나는 회중시계는, 딱 봐도 매우 비싸 보이는 물건이었다.

“이건…….”

“그건… 우리 가문에서 대대로 내려오는 보물이다.”

“이걸 왜?”

“골드버그 가문은… 항상 남을 무시하라고 가르쳤었지……. 하, 하지만 이런 골드버그 가문에도 예외는 있는 거다!”

제페토는 딱히 가문과 자신의 지난 행태에 대해 변명하지 않았다. 오히려 담담하게 자신의 지난 죄를 뉘우칠 뿐이었다.

“대대로 그 보물을 물려받으면서 함께 전해지는 말이 있었다. 가문이 갚을 수 없을 만큼 큰 신세를 졌을 때, 그 빚을 이 가보로 대신 갚으라고. 그리고 난 그게 지금이라 생각한다.”

정말 의외네.

그의 표정과 어투에는 무엇보다 진심이 담겨 있었다.

나는 제페토의 말을 들으면서 골몰히 생각에 잠겼다.

‘이 녀석, ‘아카마’에서도 이런 적은 없었지?’

‘아카마’에서의 제페토 골드버그는 게임이 끝날 때까지 악역이었고 끝끝내 주인공과 대립했었다. 그런데 이렇게 하루아침에 바뀌다니.

‘하긴 애초에 ‘아카마’에서는 캐서린을 구하는 루트 따위 없었으니까.’

결국 ‘아카마’와는 다르게 지금 이 세계의 캐서린은 여전히 살아 있고 제페토는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며 반성했다.

‘좋은 변화잖아?’

나는 진심이 담긴 제페토의 모습에, 그의 지난 죄를 용서해 주기로 했다.

“그래 뭐, 이건 잘 받을게.”

“지, 진심으로 캐서린을 구해 줘서 정말 고맙다…….”

마지막 말을 끝으로 제페토는 연신 허리를 굽혀 감사의 인사를 하더니, 이내 호다닥 사라져 버렸다.

아마도 어지간히 부끄러운 모양이었다.

“그나저나 가문의 보물이라…….”

가문의 보물이면 꽤나 값이 나가는 물건임이 틀림없었다.

게다가 그냥 가문도 아니고 무려 영웅의 가문 ‘골드버그’의 보물이었다.

마침 언노운에 대한 빚도 있고 해서 돈이 필요했던 나로서는 이게 웬 횡재냐, 라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은혜를 갚는다고 준 보물을 판매하는 것은 예의가 아니긴 하지만……. 뭐, 그건 지난 제페토의 행보에 대한 소소한 복수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안 그래도 수지타산이 안 맞았는데, 이 정도면 적절한 보상이려나?”

비무제의 마법 주문서 다섯 장은 살짝 아쉽긴 하지만, 이 정도면 더없이 좋은 결말이었다.

만족스러운 미소와 함께, 나는 회중시계를 요리조리 돌리며 겉면을 훑어보았다. 그리고 이내 뚜껑을 열자, 내부에서 째깍거리던 시계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런데 그때,

띠링.

눈앞에 전혀 예상치도 못한 시스템 창이 나타났다.

〈히든 이벤트〉

[영웅의 아티팩트]

* 달성 조건: 모든 영웅의 아티팩트를 수집한다.

* 제한 시간: 무제한

* 실패 조건: 퇴학 혹은 사망

* 보상: (???)

* 진행 상황: (???, ???, 골드버그의 회중시계, ???, ???, ???, ???)

“…영웅의 아티팩트?!”

전혀 생각조차 못 했었다.

단순히 이 물건은 상점에 팔기 위한 조금 비싼 잡템 정도로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아티팩트라니?

“아티팩트라는 것은… 전설 등급보다 높은 거잖아?”

‘아카마’에서 아이템 등급은 유저들과 이 세계의 사람들이 편의상 나눠 놓은 것이었다. 아이템을 감정하거나 정보를 확인해 봤자 알 수 있는 정보는 F부터 S까지 되는 아이템의 품질 등급뿐.

보통 아이템이 에픽급이고 전설급이고는 유저들의 입에서 입을 타고 전해지는 것이다.

그럼에도 ‘아카마’에서조차 ‘아티팩트’, 즉 ‘유물급’이라고 불릴 만한 물건은 없었다. 가장 좋은 아이템이라고 해봐야 ‘전설급’이라고 불리는 정도.

“게다가 아직 여섯 개나 더 남았다고……?”

이제야 슬슬 침공 이벤트에 대한 힌트가 보이기 시작했다.

물론 지금까지는 매직 미사일의 강화로 인한 성장만으로도 좋았었다.

그러나 그건 어디까지나 기본기.

캐서린의 마인화에 언노운조차 통하지 않았던 것을 생각하면, 더더욱 강한 무기와 능력이 필요한 시점이었다.

그런데 마침 이런 히든 이벤트가 발생한 것이다.

“가만 이거… 내가 캐서린을 구해서 발생한 스노우볼인 건가.”

이번 이벤트는 명백히 히든 이벤트.

내가 서브 이벤트인 비무제를 포기하고 캐서린을 구했기에 숨겨져 있던 이벤트의 조건을 만족한 것 같았다.

“그럼 이제부터 이 영웅의 아티팩트란 걸 모으면 된다 이거지…….”

내가 한창 히든 이벤트의 발생으로 흥분하고 있을 그때,

꼬르르르륵.

갑자기 배에서 우렁찬 소리가 울렸다.

“그러고 보니 나, 이틀 동안 아무것도 못 먹었네.”

미칠 듯한 허기가 몰려온 나는, 히든 이벤트는 천천히 생각하기로 한 뒤 일단 뭘 좀 먹기로 했다.

* * *

200년 전, 마족으로부터 이 세계를 구한 마법사 일곱 명.

사람들은 그들을 ‘영웅’이라 불렀고, 이후 그들의 후손과 가문을 ‘영웅의 가문’이라고 불렀다.

물질계, 버밀리온.

정신계, 만다린.

소환계, 골드버그.

변신계, 그린월드.

강화계, 세이피어.

방출계, 엘가시아.

원소계, 아메드.

이 일곱 가문이 바로 그 영웅의 가문이다.

이제부터 내가 해야 할 일은 그 일곱 개 가문의 아티팩트를 수집하는 것.

물론 당연히 쉽지만은 않을 것이다.

게다가 그 일곱 가문 중에는 대가 끊겨 현존하지 않는 가문도 있었다.

그것은 바로 방출계의 ‘엘가시아’.

그러나 나는 이미 그 후손을 알고 있었기에 문제는 없었다.

“만다린도 찾아보면 동급생 중에 있겠지?”

현재 만다린을 제외하고는 나머지 여섯 가문이 전부 ‘아카마’의 등장인물이었다. 어떻게 보면 별 고민할 것도 없이 그들 하나하나를 공략해 가면 이 히든 이벤트를 쉽게 완수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그런데 내가 너무 쉽게 생각하는 거 아닌가 모르겠네…….”

어찌 됐든 내가 얻어야 하는 것은 바로 영웅의 아티팩트.

그런 가문의 유물급 가보를 외부자인 나에게 그리 쉽게 넘겨줄 리가 없었다.

어찌 보면 가장 난이도가 어렵다고 생각이 드는 골드버그 가문의 가보를 제일 먼저 얻게 된 것은 천운이었다.

“흐으음… 그렇다면 먼저 루비와 달시를 공략해야 되나……?”

당장은 다른 사람들보다는 접점이 있는 루비와 달시 쪽이 확실히 쉬워 보였다.

그리고 마침, 식당에 들어서자 나를 반갑게 맞이하는 달시 세이피어가 보였다.

“여기야!”

달시는 사복을 입은 채 식당에 앉아 있었다.

나는 배식을 받고 온 뒤 달시의 앞좌석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그나저나 루비는?”

“루비는 아빠랑 데이트.”

“아아, 그랬었지.”

루비 버밀리온은 오늘 결승 무대가 끝나고 아버지인 협회장 아이작 버밀리온과 함께 본가로 내려간 모양이었다.

그러고 보니 이 녀석, 잘도 혼자 밥을 먹고 있었다.

요즘 젊은 친구들은 혼자 밥 먹을 바엔 안 먹는 걸 택한다던데.

나는 남 신경 안 쓰는 달시의 그런 모습이 나쁘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몸은 괜찮아?”

“아, 응. 요즘 이래저래 계속 병실에 누워만 있네.”

달시는 나와 캐서린 사이에 있었던 일을 자세히는 모르는 모양이었다. 동생이 직접적으로 엮인 일이었기에 제페토에게만 따로 알려 줬던 거겠지.

달시와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며 밥을 먹는 와중, 문득 그녀의 목에 걸린 목걸이가 눈에 띄었다.

평상시에 달시 세이피어가 계속 착용하고 있는 초승달 모양의 목걸이.

설마 하는 심정으로 나는 넌지시 그녀에게 목걸이에 관해서 물어보았다.

“혹시… 그 목걸이 있잖아…….”

“응? 이거?”

“그거 엄청 중요한 목걸이야? 평상시에 계속 차고 다니는 거 같아서.”

“응. 이거 대대로 물려 오는 목걸이야.”

“뭐?!”

아니, 이렇게 쉬울 수가 있나.

게다가 상대는 달시 세이피어.

안 그래도 나머지 여섯 명 중에서 제일 쉬워 보이던 타깃이 바로 달시 세이피어였다.

나는 그녀에게 바로 본론을 꺼냈다.

“혹시 그거 나 줄 수 있어……?”

“이걸 달라고?”

“아, 아니 아니 그냥 달라는 건 아니고 잠시 줄 수 있나 해서……. 바, 바로 돌려줄게!”

나는 당황한 나머지 너무 도둑놈 심보로 말을 꺼내 버렸다.

그런데 달시 세이피어의 대답은 정말로 의외의 답변이었다.

“그래. 자, 받아.”

“진짜?!”

혹시나 했지만 역시나여서 오히려 더 당황스러웠다.

달시는 이내 목걸이를 벗어서 나에게 건넸다.

나는 침을 꼴깍 삼키며 조심스레 목걸이를 받아 손에 쥐었다. 그러나 딱히 무언가 변화가 일어나지는 않았다.

그것은 목에 착용해도 마찬가지고, 마나를 주입해 봐도 마찬가지였다.

‘그럼 그렇지……. 히든 이벤트가 이렇게 쉬울 리가 있나…….’

아무래도 영웅의 아티팩트를 얻는 데는 캐서린 골드버그의 마인화처럼 무언가 조건이 있는 게 분명했다.

나는 다시 목걸이를 돌려주면서 이내 내가 가지고 있는 골드버그의 회중시계에 집중했다.

‘이거 분명 아무런 효과가 없진 않겠지? 영웅의 아티팩트잖아. 당연히 엄청난 효과가 있을 게 분명한데…….’

그러나 이 비무제 동안 피곤한 일을 많이 겪은 나는, 일단 오늘은 쉬기로 했다.

* * *

다음 날.

일찍부터 잠에서 깬 나는, 아카데미의 숲으로 들어갔다.

고단한 한 주를 보낸 뒤의 주말이었지만, 숲으로 향하는 내 발걸음은 설렘으로 가득했다.

“드디어 이 아티팩트의 진가를 확인하는 순간인가.”

내 오른손에는 바로 ‘골드버그의 회중시계’가 쥐어져 있었다.

사실 어젯밤에 미리 능력을 확인해 볼까 싶었지만, 이왕이면 주말에 기분 좋게 확인하는 게 좋을 거 같아서 참았었다.

“그러고 보니 영웅들의 제대로 된 이름도 모르고 있었네.”

내가 알고 있는 영웅이라고는, 유일하게 현존하는 영웅이자 이 학교의 교장인 히로빈 그린월드밖에 없었다.

애초에 원작 ‘아카마’는 설정 놀음보다는 연애에 집중한 연애 시뮬레이션 게임이었기에 더더욱 그랬던 것 같았다.

뭐, 설정충들이야 열심히 인터넷을 뒤적여 정보를 찾아봤겠지만, 오직 이 게임을 클리어하는 데만 급급했던 나로서는 별 관심이 없었을 수밖에.

“뭐, 어차피 궁금하면 도서관에서 찾아보면 되는 문제고.”

나는 다시금 손에 쥔 회중시계를 쓰다듬으며 씨익 미소를 지었다.

“그럼 어디 사용해 볼까?”

나는 엄지로 회중시계의 뚜껑을 튕겼다.

그러자 탁 하는 경쾌한 소리와 함께 뚜껑이 힘껏 열렸다.

그러나 아무 변화는 없었다.

“흐으음… 마력을 주입하면 작동하겠지?”

단순하게 생각한 나는 서서히 회중시계에 마력을 주입했다.

그러자 점점 회중시계에서 백색 빛이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달달달.

달그락.

미세하게 달그락거리는 소리와 함께 진동하던 회중시계는 이내 소리를 멈추었다. 그리고 눈앞에 나타난 것은…….

- 끼룩!

다름 아닌 이상한 소리를 내는 솜사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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