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화
“솜…사탕?”
- 끼룩?
하늘에 둥둥 떠 있는 사람 머리만 한 솜사탕.
아무리 봐도 이건 이 아티팩트의 결과물이 틀림없었다.
“…설마 이게 끝인 건 아니지? 에이 설마… 이거 영웅의 아티팩트잖아?”
이 아티팩트의 주인은 소환계의 영웅 골드버그.
그렇다면 적어도 푸른 눈의 청룡을 소환한다든가, 거탑의 거신병을 소환한다든가 정도는 나오는 게 당연했다.
솔직히 말해서 나는 정령왕쯤은 나오겠거니 하고 기대하고 있었다.
그런데 솜사탕이라니?
“뭔가 잘못된 게 틀림없어…….”
나는 눈앞의 현실을 부정한 채, 골드버그의 회중시계에 재차 마력을 주입해 보았다. 그러나 달라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이, 이게 결국 이 아티팩트의 능력이라는 거지?”
- 끼룩?
솜사탕처럼 생긴 외형.
그리고 그 중앙에 모여 있는 인형 같은 눈과 입.
게다가 그 앙증맞은 입에서 나오는 소리라고는 끼룩끼룩하는 요상한 갈매기 소리뿐.
아무리 봐도 이런 귀엽기만 한 게 골드버그의 아티팩트, 골드버그의 사역마일 리 없었다.
“이게 어딜 봐서 영웅의 아티팩트야…….”
- 끼룩!
“응? 영웅의 아티팩트가 맞는다고?”
- 끼룩 끼룩!
“…설마 대답하는 건가?”
녀석, 솜사탕은 계속해서 내 말에 대답이라도 하는 듯 내 말끝마다 끼룩 소리를 내었다.
그리하여 나는 솜사탕과의 대화를 시도해 보기로 했다.
“…혹시 너 이름이 있어?”
- 끼루욱?
솜사탕은 잠시 고개를 갸우뚱하더니 어딘가로 폴폴폴 날아가기 시작했다.
잠시 후, 입에 나뭇가지 하나를 물고 온 솜사탕.
그러고는 씰룩씰룩 앙증맞은 몸을 움직여 가며 바닥에 무언가를 적어 내기 시작했다.
그것은 바로.
[WILL―O―THE―WISP]
“윌… 오… 더… 위습?”
솜사탕이 바닥에 적은 이름을 읽자마자, 나는 녀석의 정체가 무엇인지 알 수 있었다.
윌 오 더 위습.
줄여서 위습.
그것은 게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도깨비불의 일종이었다.
저 솜사탕같이 푹신푹신한 게 어딜 봐서 도깨비‘불’인지 딴지를 걸고 싶었지만, 그 이전에 이 녀석이 그 ‘위습’이라는 거부터가 문제 있었다.
“위습은… 공격을 못 하잖아?”
여타 게임의 장르에서 위습이라 함은 그저 휴대용 랜턴, 손전등이나 다름없었다.
보통 이 녀석에게 주어지는 역할은 정찰병.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하등 쓸모없는 생명체였다.
- 끼룩?
저 도깨비불은 이런 내 심란한 마음을 아는지 고개를 까딱까딱하며 의문을 표출하고 있었다.
다만 그 모습만큼은 묘하게 귀여워서 조금 쓰다듬고 싶어질 정도였다.
‘아, 아니. 귀여운 게 지금 문제가 아니잖아!’
골드버그의 가보로 소환한 녀석이 고작 위습이라니.
조금 심각한 문제였다.
‘그래도 혹시 모르지? 이 조그마한 녀석에게 상당한 능력이 있을지도?’
말도 통하는 거 같으니, 나는 단도직입적으로 녀석에게 본심을 꺼냈다.
“혹시… 공격할 수 있어? 뭐 마법이라든가, 스킬이라든가 사용할 수 있는 거야?”
그러자 위습은 바닥에 떨어트린 나뭇가지를 다시 입으로 줍더니 바닥에 무언가를 적기 시작했다.
[ㅇㅇ]
바닥에 적힌 이응 두 개.
그 강렬한 대답에 조금 당황했으나, 이내 녀석의 능력이 궁금해졌다.
“그, 그럼 한번 보여 줄래?”
- 끼룩!
슈슈슈슈슈!!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갑자기 위습의 솜사탕 같은 몸에서 무언가가 엄청난 속도로 튀어나오기 시작했다.
처음에 튀어나온 것은 솜사탕으로 이루어진 튼실한 다리.
두 다리를 땅에 착 착 뻗자, 그다음으로 튀어나오는 것은 마치 스테로이드를 복용한 듯한 우람한 솜사탕 팔뚝이었다.
3m 가까이 되어 보이는 위습은, 이내 변신이 끝나자 근육질의 몸으로 보디빌더의 포즈를 취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러한 근육질의 몸에 달려 있는 머리는 원래 위습의 귀여운 모습 그대로였다.
“이, 이건…….”
아무리 솜사탕으로 이루어졌다 하더라도 그 외형으로만 봤을 때는 상당히 강력해 보이는 녀석이었다. 특히나 우람한 팔뚝을 자랑하며 포즈를 취하는 모습에 감탄이 안 나올 수 없었다.
그리고 그것은 겉모습뿐만이 아니었다.
퍼억!
위습이 그 거대한 팔을 휘두르자, 거기에 맞은 옆에 나무가 우지끈 소리를 내더니…….
쿠웅!
그대로 지면에 쓰러졌다.
“우와아아…….”
나는 나도 모르게 그 모습에 박수를 치게 되었다.
- 끼루욱!
부끄러운지 몸을 배배 꼬는 위습.
그 근육 덩어리의 모습이 조금은 징그러웠지만, 나는 이내 녀석을 인정하고야 말았다.
“괜히 의심했잖아? 역시 영웅의 아티팩트네. 뭐, 아직은 조금 부족할진 몰라도… 더 새로운 능력이 있겠지?”
그나저나 녀석에게 어울릴 만한 적당한 이름을 지어 주고 싶었다.
원래 이름인 ‘윌 오 더 위습’이라고 부르기도 뭐하니까.
곰곰이 생각해 본 나는 결국 녀석의 이름을 결정지었다.
“이제부터 니 이름은 춘… 아, 아니 ‘매기’다.”
녀석이 아까부터 내는 갈매기 소리에 기인한 이름.
그리하여 녀석의 이름은 ‘매기’가 되었다.
* * *
“슬슬 올 때가 됐는데.”
나는 숲속에서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이내 그 누군가가 우렁찬 목소리를 내며 나를 불렀다.
“나 왔어!”
목소리의 주인공은 다름 아닌 달시 세이피어.
언노운에게 누블랑 초콜릿케이크를 사 주기로 약속했었고, 그 약속을 지키기 위해선 돈이 필요했었다. 따라서 오늘은 그 돈을 마련하기 위해 달시 세이피어와 던전 토벌을 하러 가기로 약속을 잡은 것이다.
아쉽게도 루비 버밀리온은 본가로 내려갔기에 함께하지 않았지만, 사실 달시만 있어도 충분했다. 물론 지지난 주에는 조금 위험한 일이 발생할 뻔하기도 했었으나, 지금의 나는 그때보다 많이 강해져서 문제없었다.
전설급 검 언노운에, 전설급으로 추정되는 오팔 목걸이. 그리고 마법 주문서로 강화된 매직 미사일까지.
사실 이 모든 걸 다 사용한다는 가정하에, 이제는 내가 달시 세이피어보다도 강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오늘이야말로 아무것도 안 하고 편하게 버스를 탈 예정이었다.
버스 기사는 달시 세이피어만 있는 게 아니었으니까.
- 끼룩?
“뭐야, 이거? 귀엽다!”
달시를 보자 고개를 갸우뚱하는 매기.
그리고 그런 매기를 달시는 가슴팍으로 힘껏 끌어안았다.
순식간에 달시의 팔뚝 힘에 짓눌려 납작해진 매기는 살짝 싫어하는 듯한 뉘앙스를 내뱉으며 아등바등 발버둥을 쳤다.
그러거나 말거나, 아무리 안간힘을 쓴다고 하더라도 고작 솜사탕 따위가 달시의 팔 힘에서 벗어날 방법은 없었다.
- 끼루우욱!!
“이거 소환한 사역마야?”
“뭐, 그런 셈이지.”
“우와아아! 나도 이런 귀여운 걸 소환할 수 있으면 좋겠다.”
“…정말 귀여운지는 이따 보면 알 텐데.”
달시는 그 폭신한 감촉이 좋은지 연신 매기를 안았다 놓기를 반복했다. 실컷 반항하던 매기는 어느 순간 소용없음을 느꼈는지, 포기하고는 그녀를 받아들였다.
그렇게 한참 동안 둘의 포옹을 바라만 보고 있던 나는, 슬슬 달시 세이피어에게 눈치를 주었다.
“그럼… 이제 매기는 그만 껴안고 들어갈까?”
“응!”
- 끼루욱…….
왠지 기운 빠진 목소리를 내는 매기였다.
* * *
“우와아아! 이거 뭐야?!”
- 끼루우우욱!
던전에 진입하자마자, 이내 매기는 우람한 근육질의 몸으로 탈바꿈했다. 그러고는 달시에게 보란 듯이 알통을 자랑하며 도발하고 있었다.
아무래도 아까의 서러움을 복수하는 듯싶었다.
“…저래도 귀여워?”
“응! 귀여운데?”
여전히 사랑스러운 눈빛으로 근육질의 매기를 쳐다보는 달시 세이피어.
참 의외였다.
아무래도 저 근육 뇌의 소녀는 취향조차 근육질인 것 같았다.
“그럼, 가 볼까?”
이번 인스턴트 던전의 테마는 오크 굴.
던전 안으로 조금씩 들어가자, 이내 몽둥이를 휘휘 휘두르고 있는 초록 피부의 오크들이 우리를 맞이했다.
“우와앗! 신난다!”
달시 세이피어는 오크들을 보자마자 정신없이 달려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건 매기도 마찬가지였다.
- 끼루욱!
매기는 거대한 근육을 자랑하는 듯, 두 손을 주먹 쥔 채 고릴라처럼 사족보행으로 달려 나갔다. 달시와 매기의 모습은 마치 동물원의 유인원 같은 모습이었다.
당연하게도 고작 오크인 상대방들은 두 괴물의 주먹 한 방에 나가떨어지고 있었다.
“…이럴 거면 정말 어려운 던전에 가 볼 걸 그랬나.”
지지난 주의 일도 있었고 또 아직 매기의 능력을 완전히 파악한 것도 아니었기에, 조금은 낮은 난이도의 던전을 고른 감이 없지 않아 있었다.
한바탕 학살을 시작한 둘의 모습을 보니 이런 선택을 했던 것이 조금 후회스러워졌다.
* * *
그렇게 둘의 활약으로 오크 굴 던전은 채 한 시간도 안 돼서 클리어되었다.
이윽고 던전의 보스, 오크 킹이 쓰러지자 던전의 구석에서는 보상을 알리는 빛이 번쩍이고 있었다.
기대감에 부푼 나는 황급히 보상을 확인했다.
“뭐야, 이건…….”
던전의 보상은 저번에 얻었던 크기의 반만 한 마정석.
이렇게 돈을 모아서야 언제 언노운에게 그 누블랑 케이크인가 뭐시긴가를 먹일 수 있을지 모르겠다. 아무래도 다음번에는 조금 어려운 난이도의 던전에 도전해 보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따가 그냥 일반 초콜릿이라도 사 가야겠네.”
그렇게 다짐한 나는 어깨를 스트레칭하고 있는 달시 세이피어 쪽을 흘끔 쳐다보았다. 그렇게 방방 뛰어다녔는데도 그녀의 몸에선 땀 한 방울 보이지 않았다.
문득 그녀를 보니 궁금한 점이 생겼다.
“그런데 갑자기 궁금해서 말인데.”
“응? 뭔데?”
“뭐, 다른 마법은 사용 안 하는 거야?”
생각해 보니 저 녀석, 상당히 강한 이미지인데도 지금까지 실속을 별로 챙기지는 못한 것 같았다. 어떻게 보면 허당이라고도 볼 수 있었다.
던전 토벌 수업에서도 결국 아무것도 하지 못했었고, 대마법전 수업 때야 뭐 팀전이었으니 큰 활약도 아니었고, 비무제마저도 루비에게 패배해 8강에서 탈락했으니 말이다.
“다른 마법은 물론 있지.”
“그런데 왜 사용 안 해?”
“음… 일종의 페널티? 마법에 의존하는 건 멋 없잖아?”
“…….”
순간 나는 그녀가 마법사가 아닌 줄 알았다.
마법사가 그럼 마법에 의존하지, 어디에 의존해?
참 이상한 녀석이다.
그렇게 말한 그녀는, 대답 이후에 목에 걸려 있는 초승달 모양의 목걸이를 쓰다듬고 있었다.
‘아무리 봐도 저게 아티팩트인 거 같은데…….’
그럼에도 딱히 방법은 없었다.
아무래도 아티팩트를 얻는 방법은 단순히 소유만 해서 되는 것이 아닌 듯싶었다.
‘사용자에게 인정받아야 하나?’
아무튼 골드버그 남매의 일을 생각한다면, 굉장히 귀찮고 어려운 일임은 틀림없었다.
“슬슬 나가자.”
더 던전에 머물 이유도 없는 우리는 그렇게 던전 밖으로 나갔다.
* * *
“지금 어딜 갔다 오시는 거죠?”
높고 째지는 듯한 목소리.
달시 세이피어와 함께 숲속을 나오자마자 마주친 것은 다름 아닌 아카데미의 교감 실라이 샌드윅스였다.
‘…이런.’
이렇게 입구에서 대놓고 기다리고 있을 줄은 꿈에도 상상 못 한 나는, 실실 비열한 웃음을 흘리고 있는 실라이를 보자마자 헛웃음이 나왔다.
아무래도 교감은 내가 던전에 출입한다는 사실을 눈치채고, 예전 수업의 복수를 하기 위해 이곳에 온 듯싶었다.
“일단 세이피어 양은 먼저 가 있으세요.”
“왜 저만 보내시는 거예요?”
“그야 당연히 제로 학생이 숲속에 들어가자고 꼬드긴 거 아닌가요?”
“그건 맞지만…….”
역시 실라이 샌드윅스는 모든 상황과 정황을 파악하고 있는 듯싶었다. 나는 달시의 옆구리를 콕콕 찔러 그녀를 먼저 보냈다.
달시의 성격상 절대 나를 내버려 두고 혼자 갈 리는 없었지만, 계속되는 내 눈치에 이내 달시는 먼저 기숙사로 들어갔다.
“그럼, 조금 이야기를 나눠 보실까요?”
그녀의 입꼬리는 아주 좋아 죽을 것 같다는 것을 티 내는 듯 양옆으로 째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