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화
비열한 웃음소리를 흘리며 간사한 미소를 짓고 있는 실라이 샌드윅스.
그녀의 표정을 읽은 나는 불안한 마음을 감출 수 없었다.
‘또 뭔 소리를 지껄이려나.’
실라이 교감은 이 상황 자체를 즐기는지, 한참 동안 말없이 여유를 부렸다. 나름 할 말이 있었던 나는, 슬슬 교감의 눈치를 보다가 먼저 말을 꺼냈다.
“저기… 그런데 숲속에 들어가는 걸 금지하는 교칙은 없지 않나요……?”
그러나 고작 이런 말로 넘어가 줄 상대가 아니었다.
실라이는 이런 내 항변을 기다렸다는 듯 입을 열었다.
“교칙에 없다고 해서 들어가지 말라고 당부한 숲을 들어가는 것은 엄연히 잘못된 행동이지 않을까요? 굳이 따지자면 교사의 명령 수행을 거부한 죄로 벌점을 부여할 수 있겠네요.”
“…….”
칼루스 아카데미에서 그것만큼은 절대 피해야 했다.
그야 벌점이 누적되면 퇴학으로 직결될 수 있었고, 이곳에서의 퇴학은 곧 게임 오버나 다름없었으니까.
“숲에는 왜 들어간 거죠?”
“그게…….”
“설마 던전에 들어간 건 아니고요?”
“…….”
“하긴 뻔하죠. 가난한 평민이 돈을 벌 구석이라곤 이런 방법밖에 없을 테니까. 그런데 이 칼루스 아카데미 내부에 있는 시설들은 엄연히 아카데미의 사유 재산입니다. 따라서 던전도, 던전에서 습득한 것도, 전부 아카데미 것이라고요. 자, 일단 손에 쥔 것부터 이리 내놓으시겠어요?”
히죽히죽 주름진 입꼬리를 올리며 좋아 죽는 표정을 감추지 못하는 실라이 샌드윅스. 나는 교감의 얼굴을 넋 놓고 바라보다가 마지못해 마정석을 넘겼다.
어쩔 도리가 없었다.
가진 걸 다 내주는 한이 있더라도 지금 이 상황에선 벗어나야 했다.
“…그럼 가 봐도 되겠죠?”
나는 조심스레 교감의 눈치를 살폈다.
그러나 실라이 샌드윅스는 이대로 끝낼 생각이 없는 듯 보였다.
“가긴 어딜 가요? 저는 꼭 제로 학생에게 벌점을 부여할 거랍니다.”
“네?!”
실라이 샌드윅스는 절대 순순히 넘어갈 생각이 없어 보였다.
나는 교감의 말에 어이가 없었다.
애초에 숲속에 들어가는 것을 딱히 금지한 것도 아니었고, 여타 다른 교수였으면 이렇게까지 강경하게 나오지도 않을 것이다.
더더욱 벌점이라니.
실라이 샌드윅스는 자신의 소소한 복수를 위해 권력을 남용하는 최악의 교권자였다.
“어떻게 한 번만 넘어가면 안 되는 걸까요?”
“흥! 오냐오냐했더니 고작 평민 따위가 기어오르던 걸 가만있을 줄 알았나요?”
단호한 태도의 실라이 샌드윅스.
그녀에게선 기어코 끝을 보겠다는 의지가 느껴졌다.
‘그래, 그렇게 나오시겠다 이거지?’
벌점이라는 내 역린을 건드린 이상, 나도 가만히 있을 수는 없었다. 그리하여 나도 그녀의 역린을 공격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런데 있잖아요, 실라이 교감님?”
“애원해도 소용없어요. 자, 그럼 이제 교무실로 따라오세요.”
“아뇨. 따라는 갈 건데, 듣다 보니 조금 이상해서요. 평민 따위라니요? 그렇다는 말은 실라이 샌드윅스 교감님은 평민 출신이 아니라는 소리인가요?”
순간 실라이의 표정이 급격하게 변했다.
그러더니 당황한 목소리로 언성을 높이기 시작했다.
“그, 그게 무슨 소리예요! 저는 자랑스럽고 위대한 샌드윅스 가문 출신의…….”
“샌드윅스는 아마 모친의 성을 따오신 거겠죠……? 부친은 성이 없으셨을 테니까요.”
“네에에?! 그, 그걸 어떻게…….”
실라이의 두 눈동자가 마치 튀어나올 듯이 팽창했다.
이미 그녀가 평정심을 잃은 이상, 주도권은 나한테로 넘어오고 있었다.
“글쎄요. 제가 어떻게 알고 있는지가 중요할까요? 아무튼 교감님은 혼혈이시더라도 모친 쪽이 샌드윅스 가문이니까 어쨌든 귀족 출신이라고 볼 수 있는 건가요? 아! 그렇다면 평민 따위라는 말은 실라이 샌드윅스 교감님과는 저언혀 상관없는 말이군요?”
“조, 조용히 하세요!!”
버럭 소리를 지르는 실라이 샌드윅스 교감.
사실 이 모든 것은 ‘아카마’에서 주인공 제이드가 한 차례 써먹었던 정보였다.
실라이 샌드윅스는 애초에 평민 출신 아버지와 명문 출신의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혼혈아였다.
그리고 그녀의 어머니는 평민 출신을 만났다는 이유만으로 가문에서 쫓겨나게 되었고, 가문은 어린 실라이만을 거둬서 키워 냈다.
그리하여 실라이 샌드윅스는 그녀의 과거로 인해 생긴 열등감을 평민 출신의 학생들에게 표출하고 있던 것이다.
‘결국 저질러 버렸네.’
나는 이 카드를 섣불리 사용하고 싶지는 않았다.
지금까지 나에 대한 실라이의 태도가 그저 본인의 열등감 때문이었다면, 이번 일로 인해 나에 대한 감정이 증오로 바뀔 수도 있을 거라는 우려 때문이었다.
그래도 상황이 상황인지라 어쩔 수 없었다.
“보아하니 이 사실을 숨기고 싶으신 거 같은데. 맞으시죠?”
“다, 당장 그 입 닥쳐요.”
“예예. 닥쳐 드리겠습니다. 그럼 저도 이 사실을 눈감아 드릴 테니, 교감님도 이번 일을 너그러이 봐주시는 게 어떠신지요?”
내 말에 실라이는 속에서 차오르는 분노를 어쩔 줄 몰라 하는 듯 보였다. 그러더니 이내 포기하고는 내 제안을 받아들였다.
“알겠으니 부디 그 주둥아리를 함부로 놀리지 마세요. 제 귀에 들어오는 순간 가만있지 않을 거예요.”
“아무렴요. 아, 맞다. 손에 든 마정석은 다시 넘겨주시겠어요?”
“으으으……!!”
내 말에 실라이 교감은 부들부들 떨리는 손으로 마정석을 넘겨주었다.
나는 그것을 넙죽 받아들고는 히죽 미소를 지었다.
“그럼, 월요일에 뵐게요.”
나는 곧 폭발할 거 같은 얼굴을 하고 있는 실라이 교감에게 꾸벅 허리를 굽혀 인사하고는 황급히 자리를 떠났다.
* * *
월요일 아침.
오늘도 끔찍한 ‘마법의 역사’ 강의가 있는 날이었다.
다만 이전만큼의 최악까지는 아니었다.
그야 주말에 있던 일로 당분간은 실라이 샌드윅스가 나를 함부로 대하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었다.
‘흐흐… 그 늙은 구렁이가 오늘 무슨 표정으로 나올지 기대되네.’
물론 어제 일로 인해서 조금 걱정이 들기도 했다.
그러나 그에 대한 걱정은 일단은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내가 이런저런 생각을 하는 와중, 내 옆의 의자를 빼고 앉는 사람이 있었다.
“안녕?”
바로 제이드였다.
그는 언제나처럼 사람 좋은 미소로 나에게 인사를 건네고 있었다.
“어, 그러고 보니… 고향은 잘 갔다 왔어?”
제이드는 지난주, 마물로 인해 피해를 입은 고향에 내려갔었다.
“응.”
“거기 상황은 괜찮고?”
“그게… 내려가니까 산이든 들이든 전부 쑥대밭이 되어 있더라고. 다행히 협회가 일찍 출동해서 인명 피해는 없었다는데 …그래도 마을 어르신들은 이번 해 농사가 완전히 망했다고 울상들이시지. 참, 걱정이야.”
“그래? 그거참 안타까운 일이네.”
물론 ‘아카마’에서 제이드를 플레이하면서 고향에 내려가는 루트도 당연히 겪어 봤었기에 전부 알고 있는 내용이었다.
그럼에도 내가 굳이 이 재수 없는 녀석에게 친근하게 말을 건 이유는 다른 목적이 있어서였다.
“그나저나 너 언제부터 거기에 살았던 거야?”
“태어났을 때부터. 사실 나 부모님이 없어서 할아버지 할머니 밑에서 자라왔거든.”
“그래?”
사실 이 녀석은 고작 시골 마을의 평민 출신이 아니었다.
이 녀석의 정체는 바로 대가 끊겼다는 영웅의 가문 ‘엘가시아’의 후손.
그렇기에 영웅의 아티팩트에 대한 정보를 얻기 위해선 이 녀석의 도움이 필요했다.
물론 애초부터 게임에서 제이드를 플레이했기 때문에 이 녀석에 대한 정보는 어느 정도 간략하게 알고 있었다.
그러나 게임은 제이드의 시점으로 플레이되기 때문에, 정작 제이드가 이미 알고 있을 법한 내용을 플레이어는 알아낼 방법이 없었다.
게임과 현재의 차이점은, 제이드 본인에게 질문을 할 수 있다는 점이었다.
“저 혹시… 부모님은 어디 가셨어?”
그래도 최소한의 예의는 갖춰야 하니까, 나는 일단 조심스럽게 이야기를 꺼내기 시작했다. 그리고 역시 제이드는 본인 출생의 비밀을 그다지 숨기는 낌새 없이 알려 주었다.
“음… 사실 나 고아야. 할아버지, 할머니도 사실 친족도 아니고. 바구니에 담겨 강물에 떠내려오는 아기였던 나를 지금의 할아버지, 할머니가 건져서 키우셨대. 웃기는 이야기지?”
어떻게 보면 조금 슬픈 과거사라 볼 수 있었지만, 제이드는 담담함을 넘어서 아무렇지 않게 나에게 말하고 있었다.
애초에 나랑 별로 친하지도 않은데 이런 이야기를 할 정도면 정말 이 녀석은 어지간히 사람이 좋은 게 분명했다.
“그럼 혹시 강가에 떠내려왔을 때 이야기 자세히 들은 거 있어? 뭐 그런 거 있잖아. 바구니에 편지가 놓여 있었다든가, 꽃이 놓여 있었다든가.”
“응? 그런 건 들은 적 없는데? 그냥 바구니에 아기만 덜렁 놓여 있었데.”
“그래?”
예상은 했지만 제이드와의 대화에서 별 수확은 없었다.
게다가 아직 이 녀석은 자신의 출신에 대해서도 모르고 있을 테니까.
제이드가 본인이 엘가시아의 핏줄이라는 걸 알게 되는 건 좀 더 이후의 일이다.
‘역시 쉽지 않네…….’
그나마 나머지 여섯 가문 중 우호적이라고 볼 수 있는 엘가시아의 제이드와 세이피어의 달시에 대한 시도가 실패로 끝난 것은 조금 아쉬웠다.
‘그럼 다음은 루비한테 물어볼까?’
영웅의 아티팩트에 대한 이런저런 생각을 하고 있는 와중, 뒤에서 말을 거는 여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저기요…….”
뒤를 돌아보자 그곳에는 캐서린 골드버그가 있었다.
캐서린은 왠지 눈을 마주치지 못하고 아래로 시선을 돌리고 있었다.
“어? 몸은 좀 괜찮아?”
“응? 무슨 일 있었어?”
“무슨 일이 많이 있었긴 하지.”
그러고 보니 제이드 녀석이 없는 동안 많은 일이 일어났었다.
비무제도 진행됐었고, 캐서린의 광폭화도 있었고.
원래였으면 제이드가 겪었어야 할 일들을 전부 내가 대신 겪은 듯한 느낌이었다.
“저…….”
“응?”
캐서린은 뭔가 할 말이 있지만 망설이는 것 같았다.
그러더니 이내 그녀는 눈을 질끈 감고는 목구멍으로 삼키던 말을 다시금 꺼냈다.
“여, 옆자리에 앉아도 될까요?”
“응? 당연히 되…….”
말을 이으려던 나는 순간 주위를 둘러보고는 깨달았다.
현재 강의실의 일자형 책상에서 내가 앉은 자리의 오른쪽은 제이드가 앉아 있었고, 그 옆은 벽이었기에 더 이상 앉을 자리가 없었다.
캐서린의 안절부절못하는 태도에 나는 그 이유를 눈치챌 수 있었다.
‘뭐, 덕분에 영웅의 아티팩트도 얻었으니까.’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서 그녀에게 자리를 양보했다.
“자, 앉아.”
“네, 네?!”
“좋은 말로 할 때 빨리 앉아 둬.”
새빨개진 얼굴로 내가 비켜 준 자리에 앉는 캐서린.
나는 그녀에게 미소를 보이며 그 옆자리에 앉았다.
‘그러고 보니 정말 다행이다.’
‘아카마’에서 마인화된 캐서린은 마경에 의해 사살됐었다.
그리고 현재 그녀는 멀쩡히 살아 있다.
‘결국 해냈네.’
어떻게 보면 조금 무모했었다.
자칫 잘못하다간 샬롯 아메드까지 죽음으로 내몰 뻔한 것이다.
그러나 또 한편으로는 이 모든 일이 어쩌면 운명이지 않을까 싶기도 했다.
나는 애초부터 이 세계의 캐서린을 구할 운명이었고, 그리하여 그 본능적인 이끌림에 따랐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야, 그런 부연 설명이 아니라면 나도 내가 왜 위험을 무릅쓰고 그런 무모한 행동을 했었는지 이해가 가지 않으니까.
‘뭐, 결과만 좋으면 좋은 거지.’
옆을 흘끔 쳐다보자 캐서린은 새빨개진 얼굴로 무릎에 손을 올린 채,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다.
나는 어찌 됐든 캐서린 덕에 영웅의 아티팩트를 얻어 냈기에, 그녀의 행복을 응원해 주기로 결심했다.
“안녕하세요, 여러분. 흠흠…….”
이윽고 실라이 샌드윅스 교감이 들어오고 수업이 시작되었다.
실라이 교감은 수업 내내 나랑 눈이 마주칠 때마다 헛기침을 하며 시선을 회피하고 있었다. 아무래도 아직까진 복수할 생각은커녕, 본인이 평민 출신이라는 것을 들켰다는 부끄러움이 큰 모양이었다.
“그럼, 오늘은 이만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드디어 마법의 역사 수업이 끝났다.
그러나 이전만큼 실라이의 수업이 지루하진 않았다.
수업 내내 나와 시선을 애써 피하는 실라이 교감을 뚫어져라 쳐다보는 재미가 나름 쏠쏠했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제, 제로 학생! 잠깐만요.”
강의실을 나서려는 나를 실라이 교감이 붙잡았다.
‘또 무슨 일인 거야.’
제대로 눈도 못 맞추는 실라이가 이번엔 또 무슨 꿍꿍이지, 라는 생각과 함께 나는 실라이에게 되물었다.
“왜요?”
“아, 제가 아니라…….”
그리고 실라이가 나를 부른 이유는 교감 개인의 용무가 아니었다.
“그린월드 교장님이 찾으시더라고요. 바로 교장실로 올라가 주세요.”
“네?!”
그것은 입학한 이후 교장 히로빈 그린월드의 첫 호출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