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아카데미의 무속성 마법사-41화 (41/175)

41화

똑똑.

나는 두어 번 노크를 한 뒤, 교장실의 문고리를 돌렸다.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눈에 들어온 것은, 네모난 무언가를 양손에 쥐고 소파에 앉아 있는 히로빈 그린월드였다.

그리고 그 교장의 손에 들려 있던 것은,

‘…게임기?’

다름 아닌 마나로 작동하는 게임용 기계였다.

“아, 왔어? 잠시만. 곧 끝나니까 앉아 있어.”

히로빈 그린월드는 교장실로 들어온 내 얼굴은 쳐다도 보지 않은 채, 게임기에 몰두하고 있었다.

나는 일단 교장의 말에 따라 맞은편 소파에 적당히 자리를 잡고 앉았다. 그러곤 화면을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는 히로빈 교장의 얼굴을 유심히 관찰했다.

‘어딜 봐도 꼬맹이 같단 말이지…….’

상대는 200년을 넘게 살아 있는 영감탱이.

그러나 히로빈 교장의 겉모습은 마계 대전의 영웅이나, 칼루스 아카데미 교장의 직책과는 거리가 멀었다.

입고 있는 복장은 반바지 멜빵에, 무릎 아래로 내려오는 하얀 니 삭스.

게다가 아까부터 입 안에 있는 사탕을 혀로 굴리며 달그락거리는 소리를 낸다.

모르는 사람이 본다면, 이 사람은 영락없이 갓 유치원을 졸업한 초등학생이었다.

‘에메릴 그린월드 같은 후손이 있으니까… 이 사람도 결혼은 했던 거겠지?’

누군진 몰라도 취향이 참 독특한 듯싶었다.

“끄응…….”

히로빈은 왠지 잘 안 풀린다는 듯 고개를 갸우뚱하며 게임에 집중하고 있었다. 기다리기 심심했던 나는 교장이 손에 쥐고 있는 게임기의 모니터를 힐끔 쳐다보았다.

게임의 장르는 눈앞의 장애물을 피해 점프하거나 숙이며 달려 나가는 게임. 어떻게 보면 원래 세계의 마리오 같은 느낌이었다.

히로빈 교장은 아마도 이번 스테이지의 저장 부분까지 진행하고 싶어 하는 눈치였는데, 상당히 게임에 재능이 없어 보였다.

계속 눈으로 흘겨보던 나는 도저히 교장의 형편없는 실력에 참을 수가 없었다.

“…그거 그렇게 하는 거 아닌… 앗…….”

나도 모르게 튀어나온 훈수.

그 말을 놓치지 않은 히로빈은 눈을 반짝이며 나를 쳐다보았다.

“오오, 자네 이 ‘고양이 게임’을 할 줄 아는 거야?”

“…예. 뭐, 할 수 있을 거 같습니다.”

“그럼 한번 해 봐!”

나는 히로빈의 게임기를 건네받고는 이내 조심스레 손가락을 올렸다.

‘그러고 보니 이곳에 온 지 벌써 한 달이 넘었던가? 그리운 감각이네.’

이곳에선 딱히 게임기를 잡을 일이 없었기에 상당히 오랜만이었다.

히로빈은 이내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쪼르르 내 옆에 딱 붙어 앉아 초롱초롱한 눈동자로 모니터 화면을 쳐다보았다.

“자, 그럼 갑니다.”

뿅― 뿅―

뾰뾰뵤뿅―

“우와아아아!”

현란한 움직임으로 움직이는 화면 속 고양이.

아까 전 교장이 조종하던 캐릭터와는 차원이 다른 몸놀림으로 눈앞의 장애물들을 헤쳐 나갔다.

‘고작 한 달 정도 쉬었다고 녹슬진 않지.’

원래 세계에서의 나는 게임에 상당히 재능이 있었다.

섬세한 조작과 집중력을 요구하는 FPS 장르.

전략과 판단력을 요구하는 5:5 대전 장르.

콘솔 게임, 오락실 게임, 그 밖에도 숨겨진 루트나 히든 엔딩을 찾아야 하는 종류의 게임들까지.

그야말로 장르에 굴하지 않고 모든 게임에 능한, 피지컬과 뇌지컬을 모두 갖춘 게이머라 평가할 수 있었다.

물론 그렇기에 이 ‘아카마’의 히든 엔딩도 클리어할 수 있었던 거지만.

‘고작 마리오쯤이야.’

얼마 지나지 않아 내가 조종하는 고양이는 순식간에 장애물을 돌파하여 저장 지점에 도착했다.

띠리리띠띠딩!

저장을 알리는 경쾌한 알람음.

히로빈 그린월드는 눈을 동그랗게 뜨며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우와아아!! 어떻게 한 거야?! 이거 해 본 적 있어?!”

“조금이요.”

연신 박수를 치며 감탄하는 히로빈 그린월드에 나는 피식 웃음이 흘러나왔다.

‘이러고 있으니까 조카랑 놀아 주는 거 같네. 뭐, 속은 200년 묵은 영감탱이겠지만.’

히로빈 그린월드는 계속해서 감탄사를 연발하다가, 이내 정신을 차렸는지 헛기침을 하며 앞자리에 착석했다.

“아… 그럼 본론을 이야기해야겠지? 내가 자네를 부른 이유는 알다시피 지난주에 있었던 일 때문이야.”

“저번 주… 일이라면 캐서린이요?”

“응, 맞아.”

역시.

예상대로 교장이 나를 부른 이유는 저번 주에 있었던 캐서린의 광폭화 사건 때문이었다.

“일이 이렇게 되면 학교 측에선 자네와 그 캐서린 양의 사건 경위를 조사해야 하는데 말이야.”

“그렇…죠?”

“그냥 묻어 두기로 했어. 케이든 교수가 부탁한 것도 있었고.”

“아아, 네.”

사실 아카데미 측에서 이번 일을 어떻게 처리할지 걱정이 되긴 했었다.

만약 이번 일이 정식 체계에 의하여 협회까지 보고가 들어갈 경우, 마기를 흡수하여 광폭화한 캐서린은 징계를 피할 수 없었다.

그러나 다행히도 케이든 교수가 잘 처리했는지, 아카데미는 이번 일을 함구하기로 한 모양이었다.

“사실 아카데미의 입장에서는 자네에게 표창이나 상장을 주고도 모자라. 자네는 광폭화로 인한 피해를 막았을 뿐만 아니라 캐서린 학생의 마인화를 저지한 거잖아? 다만, 이번 일은 비밀에 부칠 거기에 딱히 아카데미 측에선 자네에게 아무런 보상도 해 줄 수 없을 거야.”

“아아… 네, 괜찮습니다.”

애초부터 보상을 위해 움직인 게 아니었다.

만약 그랬었다면 비무제를 우승하기 위해 기를 썼겠지.

나는 이번 일의 결과로 아카데미 측에도 피해가 없고, 캐서린도 무사하면 그걸로 만족했다.

게다가 결과적으로 영웅의 아티팩트도 얻었으니까.

그런데 갑자기 히로빈 그린월드가 자리에서 일어나기 시작했다.

“그렇지만 우리 아카데미를, 학생을 구해 줘서 정말 고맙다!”

그러고는 여전히 소파에 앉아 있는 내게 90도로 허리를 굽혔다.

“에에…….”

나는 한참 동안 허리를 굽히고 있는 히로빈 그린월드를 멀뚱히 바라보았다.

‘역시, 이게 어른이란 건가……?’

아무리 겉모습과 언행, 행동이 초등학생 같아 보여도, 아카데미를 대표하여 내게 감사를 표하는 히로빈 그린월드의 모습엔 분명 책임감이 느껴지고 있었다.

“이, 일어나세요.”

“그래.”

허리를 빳빳이 세우고는 다시 소파에 풀썩 앉는 히로빈.

조금 전 어른의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다시금 사탕을 빨고 있는 초등학생으로 돌아와 있었다.

“그런데 말이죠…….”

“응?”

어차피 교장실에 불려 온 용무는 끝난 거 같고, 마침 히로빈에게 궁금한 게 있었던 나는 살며시 그것을 물어보았다.

“제가 요즘 들어 영웅과 마계 대전의 역사를 공부하고 있어서요.”

“오오, 그래? 그중에서 누가 제일 좋아?”

“하하… 당연히 제일 존경하는 영웅은 히로빈 그린월드 교장님이죠……. 그게 중요한 게 아니라 엘가시아는 어떻게 됐나요?”

“엘가시아?”

애초에 제이드가 이 학교에 오게 된 이유는 다름 아닌 히로빈 그린월드 때문이었다.

히로빈 교장은 제이드가 엘가시아 가문의 후손인 걸 알고 있었고, 그리하여 변방의 시골 마을에 있던 제이드를 이 칼루스 아카데미로 초빙했던 것이었다.

‘아카마’에서 제이드에게 출신의 비밀을 알려 주는 것도 당연히 이 히로빈 교장이었다.

“엘가시아가의 대가 끊긴 건 안타까운 일이지. 나도 뭐, 딱히 아는 건 없는데?”

“역시 그런가요?”

히로빈 그린월드는 능청스럽게 연기를 하고 있었다.

이미 ‘아카마’로 인해 모든 사실을 알고 있던 나로서는 교장이 이렇게까지 회피하는 이유가 궁금할 따름이었다.

‘곤란하네……. 여기서 모른 척 캐물어 볼까? 아니면 이쯤하고 넘어갈까.’

고민 끝에 결국, 오늘은 이만하고 물러나기로 결심했다.

“그럼, 이만 가 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래 그래. 아 맞다…….”

생각났다는 듯이 넌지시 말하는 히로빈 그린월드.

“게임을 좀 배우고 싶은데 가르쳐 주면 안 될까?”

“네? 뭐, 그래요.”

“아싸! 종종 교장실 놀러 와!”

역시 저 교장은 영락없는 초딩이었다.

* * *

교장실을 나온 이후, 나는 바로 다음 수업인 검술 수업을 받으러 도장으로 향했다.

교장과의 면담 이후라, 어쩔 수 없는 지각이었다.

“…왜 이제 와?”

아텔라 교수는 조금 날이 선 목소리로 나를 맞이했다.

아무래도 지금까지 오매불망 하나뿐인 제자를 기다렸던 모양이었다.

그녀의 싸늘한 분위기에 왠지 나는 데이트에 지각한 남자친구가 된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저, 그게…….”

나는 그녀에게 방금까지 교장실에서 면담이 있었다고 에둘러 설명했다. 그리고 말하는 김에 지난주에 있었던 캐서린의 광폭화 사건까지 전부 털어놓았다.

아텔라 교수는 내가 계열 마법을 사용할 수 없다는 사실마저 알고 있는 사이기에, 딱히 숨길 이유는 없었다.

어떻게 보면 이제는 이 아카데미에서 제일 많은 비밀을 공유한 사람이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그런 일이 있었고만?”

“예에… 참, 아텔라 교수님.”

“응?”

나는 이번 주에 꼭 그녀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었다.

“저, 검을 배우고 싶습니닷!!”

처음 검술을 배우고자 한 목적은 단순 흥미였었다.

하지만, 지금은 달랐다.

이제는 언노운의 오러 블레이드를 사용할 수 있게 되었고, 그렇기에 지금의 나에게 있어 검술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였다.

“좋아! 각오는 됐지?”

“네!”

* * *

잠시 후.

“헤엑… 헥… 그, 그만 해요!”

“오늘은 여기까지야? 그래.”

아직 검술 수업을 시작한 지 30분밖에 되지 않았지만, 도저히 버틸 수 없었던 나는 그대로 털썩 바닥에 누워 버렸다.

‘그래도 이젠 좀 괜찮아졌는데?’

처음 검술 수업을 시작할 때만 해도 아텔라와 검격을 겨루기는커녕, 날아오는 검을 받아칠 수조차 없던 나였다.

그러나 그동안의 특훈으로 인해 적어도 열 번 중에 한 번쯤은 아텔라의 목도를 막아 낼 수 있을 정도로 성장하긴 했다.

물론 그 빈도 자체는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뭐, 그건 아텔라가 워낙 검술에 능한 까닭이기도 하니까.

아텔라는 바닥에 대자로 뻗은 나를 보곤 피식 웃더니 음료수를 가져왔다.

“자, 먹어.”

“감사합니다.”

그리고 아텔라도 누운 내 옆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그런데 그녀는 뭔가 할 말이 있는 모양이었다.

“그런데, 너 아우레인 기숙사였지?”

“네, 맞아요. 왜요?”

“아니… 그냥…….”

왠지 말끝을 흐리는 아텔라 교수.

그 의미를 알게 된 건 나중 일이었다.

* * *

그렇게 어영부영 한 주가 지나고 금요일이 찾아왔다.

이곳에 온 이후로 아무 일도 없이 가장 평화로운 한 주가 아니었나 싶었다.

그리고 금요일, 기숙 사감의 재량 교육 시간이 끝나자, 케이든이 무언가 공지를 위해 학생들을 집중시켰다.

“다들, 주목. 공지할 사항이 있다.”

학생들은 무슨 일인가 싶어 선글라스를 쓰고 있는 케이든의 얼굴을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었다.

“다음 주, 아우레인 기숙사의 수학여행 일정이 잡혔다.”

수학여행이라고?

‘아카마’에서 수학여행은 2학기에 벌어지는 이벤트였다.

이젠 워낙 앞당겨지는 이벤트에 익숙해진 것 같았지만, 그럼에도 늘 새로웠다.

“수학여행의 시기는 크게 두 가지 이유로 고를 수 있다. 2학기 후반에 모두가 친해지고 나서의 친목 여행, 그리고 어색하고 서먹서먹한 분위기의 1학기 초반 수학여행. 우리 기숙사는 후자를 택하기로 했다. 아무래도 친해지고 나서의 여행은 고작 놀자판밖에 되지 않을 테니까.”

그럼 여행이 놀러 가는 거지, 또 그 밖에 이유가 있는 거였나……?

게다가 분명 ‘아카마’의 케이든은 2학기 수학여행을 선택했었는데, 같은 사람의 말이 다르니 묘하게 기분이 이상했다.

“이번 비무제에서 우승한 제페토에게는 버스 탑승 시 자유 좌석 선택권을 주겠다. 참고로 나머지는 지정석이다.”

“네? 지정석이라고요?!”

“말도 안 돼!”

“수학여행이잖아요! 당연히 앉고 싶은 자리에 앉는 거 아닌가요?!”

케이든의 말에 학생들은 불만을 표출했다.

그러나 순순히 받아들일 케이든이 아니었다.

“억울하면 다음 비무제에서 우승하도록. 그럼, 다음 주에 보자, 애송이들아.”

말을 마치고 케이든은 불평하는 학생들을 놔둔 채 홀연히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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