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화
* * *
월요일 아침.
아우레인의 기숙사 앞에는 스쿨버스 한 대가 서 있었다.
그리고 곧 그 앞으로는 학생들이 옹기종기 모이기 시작했다.
늦잠을 자서 허겁지겁 1층으로 내려온 나는 기대와는 다른 스쿨버스를 보고 눈살을 찌푸렸다.
“명색이 마법 세계인데, 고작 버스라니…….”
적어도 마법 세계면 텔레포트로 한 번에 간다든가, 유니콘이 끄는 마차를 타고 간다든가 해야 정상 아닌가?
“하긴… 게임에서의 수학여행보다야 낫지.”
‘아카마’의 수학여행은 스쿨버스조차 없었다.
그야 수학여행의 장소가 이곳 아카데미의 숲속이었기에 굳이 탈 것이 필요 없었던 것이다.
당연히 아카데미 내부에서 하는 캠프파이어보다야 적어도 버스를 타고 가는 이번 수학여행이 훨씬 나았다.
“다들 모였나.”
어느덧 학생들이 버스 앞에서 웅성대고 있자, 멀리서 케이든 교수가 걸어오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는 혼자가 아니었다.
그의 옆에 있는 사람들은 내게는 너무나도 익숙한 인물들이었다.
“이쪽은 보조 인솔 교수로 함께할 아텔라 가스트로디아 교수. 그리고 이쪽은 수학여행 기간 의료 담당을 맡을 너희들의 한 학년 선배 이올렛 테오니르다.”
“안녕! 검술 담당 교수 아텔라 가스트로디아야, 잘 부탁해!”
“이올렛 테오니르다. 다치면 찾아오렴, 꼬맹이들아. 너무 귀찮게 자주 오진 말고.”
아텔라는 늘 입고 다니던 트레이닝복과는 다르게, 원피스에 챙이 넓은 모자를 쓰고 있었다. 아무래도 수학여행이다 보니까 한껏 기분을 낸 듯싶었다. 반면, 이올렛 테오니르는 여전히 흰 가운을 입고 있었다.
‘그런데 왜 저 둘이 같이 가는 거야?!’
그러고 보니 문득 저번 주 검술 수업 시간에 아텔라 교수가 했던 의미심장한 말이 떠올랐다.
‘그래서 기숙사를 물어봤던 건가.’
어쨌든 영문은 모르겠지만, 나름 친한 두 사람이 수학여행을 같이 간다니까 기분은 좋았다. 만약 저 자리에 실라이 샌드윅스 교감이 있다는 최악의 상황을 상상한다면, 지금 이보다 더 좋을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럼, 다들 버스에 탑승하도록.”
와아아아!
아우레인의 학생들은 수학여행이라는 말의 느낌이 주는 설렘 때문인지, 평소보다 우렁찬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리고 곧 학생들은 버스 입구에 붙어 있는 배정표를 확인하고 순서대로 버스에 탑승하기 시작했다.
버스 문 앞에 일렬로 세워진 기다란 줄.
드디어 내 차례가 다가오자, 나는 설레는 맘을 한껏 안고 버스 배정표를 살펴보았다.
‘뭐야. 앞에서 두 번째 자리인 건가.’
맨 앞 좌석의 왼쪽은 케이든 교수의 자리.
그 맞은편의 오른쪽은 아텔라 교수와 이올렛 선배의 자리.
그리고 나는 그 둘의 뒷좌석이었다.
‘이런 자리는 원래 모범생들이나 앉는 자리인 건데…….’
원래 세계의 수학여행에서는 보통 맨 뒷자리는 노는 애들의 차지고, 앞으로 갈수록 모범생이 앉는다는 암묵적인 룰이 있긴 했었다.
‘뭐, 아카데미의 수석이니 나름 모범생이라고도 볼 수 있으려나…….’
아텔라 교수와 이올렛 선배와는 친한 사이였기에, 딱히 앞좌석의 배치에 불만이 있진 않았다.
문제는 바로 옆좌석이었다.
옆자리에 앉게 될 동급생을 확인하자, 나는 내 두 눈을 의심하게 되었다.
“…제페토 골드버그?!”
내 옆자리에 떡하니 이름이 적혀 있는 제페토 골드버그.
전혀 예상치 못한 이름에 나도 모르게 큰 소리를 내어 버렸다.
‘아니 왜 이 녀석이 내 옆자리인 거야.’
분명 제페토는 이번 수학여행의 버스 좌석을 지정해서 앉을 수 있는 특혜를 받았었다.
그리고 지금 내 옆자리에 제페토 골드버그가 있다는 이야기는… 이 녀석이 일부러 내 옆자리를 골랐다는 이야기였다.
살짝 의아한 채, 나는 일단 버스에 올라 자리에 앉았다.
곧, 뒤에 줄을 서고 있던 제페토 골드버그도 버스에 올라탔다. 그러곤 나를 보자마자 얼굴을 살짝 붉히며 변명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차, 착각하지 마라! 따, 딱히 별생각 없었으니까… 그냥 창가 자리에 앉고 싶었을 뿐이다.”
창가 자리에 앉고 싶었다고?
그런데 굳이 앞좌석에?
그것도 구욷이 내 옆자리에?!
나는 제페토가 안으로 들어가게끔 자리를 마련해 주고는 이내 씨익 웃었다.
‘이 녀석, 속이 너무 뻔하게 보이잖아?’
아무래도 이 녀석은 내가 캐서린을 구해 준 게 어지간히 고마운 모양이었다. 그래서 나와 친해지고 싶었던 거고.
표현에 서투른 녀석이라 그렇지, 그리 나쁜 녀석은 아니었다.
게다가 첫 영웅의 아티팩트도 이 녀석을 통해 얻은 거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에 그다지 악감정도 없었다. 오히려 이 녀석과 친구가 되어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고 있었다.
부르응 부릉!
모든 학생이 탑승하자, 스쿨버스에 시동이 걸리더니 곧 차량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운전수도 없는 버스가 알아서 움직이는 건 나름 마법 세계다웠다.
그런데 그 ‘마법 세계다움’은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잠시 후.
부웅!
순식간에 버스가 하늘로 부유하기 시작했다.
“우와아아…….”
하늘을 나는 스쿨버스라니.
역시 마법의 세계는 버스조차도 다른 것이다.
비행기를 타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공중으로 날아오르는 감각이, 생생하게 피부를 통해 느껴졌다. 나는 이 새로운 감각에 어렸을 적 자주 보던 스쿨버스 만화를 떠올렸다.
‘진짜 날아다니는 스쿨버스가 있었잖아?’
한 가지 아쉬운 점은 창가 자리가 아니라는 점이었다.
그런데 이런 내 마음을 제페토가 눈치챈 듯싶었다.
“…비켜 줄까?”
“어? 그래도 돼?”
이 녀석, 분명 창가 자리에 앉고 싶다고 하지 않았나?
제페토는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내 쪽으로 자리를 비켜 주었다.
그리고 나는 창문 아래를 볼 수 있었다.
이미 하늘 높이 떠오른 스쿨버스의 아래로는 점처럼 보이는 칼루스 아카데미와 그 주위를 빼곡히 감싸고 있는 아카데미의 숲이 보이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너는 이런 거 많이 경험해 봤겠구나?”
“다, 당연하다! 부유 버스는 물론이고 와이번도 타 봤거든? 뭐어, 너 같은 평민은 평생 겪어 보지도 못할 경험이겠지만.”
“그래애?”
이 녀석, 도대체 스탠스가 뭔지 잘 모르겠다.
아무래도 나와 친해지고는 싶으나, 본인도 모르게 마음속 한구석에서 평민에 대한 멸시가 툭툭 튀어나오는 듯싶었다.
그리하여 나는 녀석에게 조금 교육이 필요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너, 나랑 친해지고 싶지?”
“어, 어?! 아, 아니? 응…….”
“뭐라는 거야? 아무튼 맞다는 거지? 그럼 이제부터 그 평민 소리는 집어치우는 게 어때?”
문득 머릿속에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곧 나는 제페토에게 귀 좀 대 보라는 시늉을 했다.
그러곤 제페토의 귀에 속삭이기 시작했다.
“…너 루비 버밀리온 좋아하지?”
“그, 그걸 어떻게!”
제페토 골드버그의 새하얀 뺨이 순식간에 달아올랐다.
나는 그 모습을 보며 씨익 웃었다.
“그럼 앞으로 나한테 잘하는 게 좋을 거야. 너도 알다시피 난 루비랑 매우 친하거든.”
꿀꺽.
녀석은 대답 대신 침을 삼켰다.
뭐, 저것도 일종의 긍정 표시라고 볼 수 있겠지.
뭔가 잘만 이용하면 이 녀석을 노예처럼 부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게다가 어떻게 보면 비무제에서 우승한 학년 최강자라고도 볼 수 있었기에 나름 쓸 만한 녀석이었다.
“아, 맞다! 너희 가문에 대해서 궁금한 게 있었는데…….”
“뭔데! 다 알려 줄게!”
제페토의 태도는 아까보다도 확실히 적극적이었다.
내가 녀석에게 궁금했던 점은 다름 아닌 골드버그 가문의 영웅 관련이었다.
“골드버그의 영웅님 있잖아, 그분에 대해서 잘 알아?”
“피너클러스 님? 당연하다!”
“그럼, 혹시… 그분의 사역마가 솜사탕이었어?”
골드버그의 아티팩트를 얻고 나서 생긴 의문.
어째서 이 아티팩트의 사역마는 솜사탕인지가 궁금했었다.
“솜사탕이라니? 그게 무슨 소리냐? 피너클러스 님의 사역마는 정령왕 ‘더 그레이티스트 씨걸’ 님이다!”
“정령왕이라고……?”
“그러엄! 엄연히 피너클러스 님과 그 사역마인 정령왕님의 금으로 된 동상이 가문의 영지에 존재한다고.”
흐으음…….
뭔가 후손인 제페토라면 힌트를 얻을 수 있나 싶었는데, 역시 내 아티팩트의 사역마 ‘매기’와 영웅 피너클러스 골드버그의 상관관계는 밝혀낼 수 없었다.
‘그 동상이란 건 나중에 보고 싶긴 하네…….’
영웅과 아티팩트에 관련한 생각을 하며 창밖의 풍경을 바라보던 나는, 이내 잠이 오기 시작했다.
사실 수학여행의 설렘 때문에 어제 잠을 설쳤었다.
구경할 것도 다 했겠다, 피로감이 몰려온 나는 이내 눈을 감고 숙면을 취했다.
* * *
들뜬 분위기에 시끄럽고 소란스러운 부유 버스의 안.
그리고 들뜬 것은 학생들뿐만이 아니었다.
아텔라 교수는 이내 케이든 교수에게 말을 걸기 시작했다.
“저기요, 교수님?”
“네?”
“그런데 저희 목적지가 어디인가요?”
아텔라는 사실 인솔 교수로서 도와달라는 말만 들었을 뿐이지, 정작 행선지를 모르고 있었다.
“아, 그러고 보니 아텔라 교수님은 초임이셔서 잘 모르시는군요. 그래서 복장이…….”
케이든은 아텔라 교수가 입은 원피스를 선글라스 너머로 훑어보았다.
누가 봐도 지금부터 갈 곳이랑은 거리감이 있어 보였다.
“뭐, 가 보시면 알 겁니다.”
“제가 학생 시절에는 크로노아 해변으로 수학여행을 갔었는데 말이죠. 이번엔 어디일지 조금 기대가 되긴 하네요. 아, 이왕 말 안 하실 거면 힌트도 주지 마세요? 아셨죠?”
“…네, 알겠습니다.”
몇 년 전부터 수학여행의 형식이 조금 바뀌었다는 사실을 아텔라 교수는 꿈에도 모를 것이다.
“그런데요, 케이든 교수님?”
“…네?”
케이든은 팔짱을 끼고 숙면을 취하려던 찰나, 아텔라 교수가 또다시 말을 걸어오자 살짝 눈썹을 치켜올렸다.
“혹시 나이가 어떻게 되세요?”
“…올해 서른둘입니다만.”
“서른둘이요……? 가만…….”
아텔라는 무언가 걸리는 듯 머리를 갸우뚱했다.
그러더니 이내 그 무언가를 떠올린 모양이었다.
“설마 노아 교수님 아세요?!”
“…….”
순간 오랜만에 들어 보는 그 이름에, 케이든은 쉽사리 입술이 떨어지지가 않았다. 그만큼 그 이름의 의미가 케이든에게 있어서는 매우 무거운 것이다.
한참을 생각하던 그는 이내 작게 한숨을 쉬고는 아텔라의 궁금증을 해소시켰다.
“네, 아카데미 시절 동급생이었습니다.”
“와아아아! 진짜요? 진짜 노아 교수님이랑 친구셨어요? 노아 교수님 학창 시절에는 어땠어요? 학창 시절에도 인기가 많았나요?”
“그 질문은…….”
케이든은 자신 쪽으로 초롱초롱한 눈빛을 보내고 있는 아텔라 교수를 보고는 고개를 돌려 창밖을 내다봤다.
“…다음에 하시죠, 조금 피곤합니다만.”
“앗, 넵! 죄송합니다…….”
그리고 케이든은 팔짱을 낀 채 고개를 숙였다.
그러나 선글라스에 가려진 그의 눈은 감겨 있지 않았다.
오히려 오랜만에 들어 보는 그 이름을 회상하고 있었다.
‘도대체 어디로 사라진 거냐, 노아.’
자신이 교편을 잡게 된 이유.
녀석은 지금 어디 있을까 생각하며 케이든은 한동안 침묵했다.
* * *
한편 버스의 뒷좌석.
에이체스 저니맨과 벅스 버니로드는 심기가 매우 불편했다.
그들은 조용히 목소리를 낮추며 속닥이고 있었다.
“제페토 저 자식, 왜 저러는 거야? 왜 평민 따위랑 갑자기 어울리는 거지?”
“그러게, 비무제 우승하고 나서 뭘 좀 잘못 먹은 거 아니야?”
제로와 속닥거리며 귓속말을 하지를 않나.
창가 자리를 양보해서 비켜 주지를 않나.
애초에 지정석인 제페토가 굳이 제로와 앉는 것부터가 이상한 일이었다.
“어이, 벅스.”
“응.”
“평민 따위랑 어울리는 녀석은 그와 같은 수준이라고 봐도 되겠지?”
“물론이지.”
뚱뚱한 몸집으로 연신 고개를 끄덕이는 벅스 버니로드.
“그럼, 저 수준 떨어지는 녀석들에게 이번 수학여행에 잊지 못할 추억을 만들어 주자고.”
“그러자.”
이내 얼굴에 사악한 미소를 짓는 에이체스 저니맨.
이미 그는 머릿속으로 이번 수학여행 때 저 두 녀석을 제대로 혼쭐내 줄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