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아카데미의 무속성 마법사-45화 (45/175)

45화

나와 캐서린은 손을 깍지 낀 채 천천히 아래로 활공하고 있었다.

역시 예상대로 나침반의 공기 저항 마법은 두 명이 사용해도 문제없는 듯싶었다.

“이게 무슨…….”

“나침반 잃어버렸다면서. 그럼 이 방법밖에 없잖아?”

매기의 등에는 둘이 동시에 업힐 수가 없었다. 결국 두 번을 왕복해야 하는데, 그건 너무 번거로웠다. 캐서린이 나침반을 잃어버렸기에, 함께 돌기둥을 빠져나가기엔 이 방법이 최선이었다.

캐서린 골드버그는 뭐가 불만인지 자꾸 깍지 낀 손가락을 꼼지락거렸다.

“왜? 손을 잡은 게 그렇게 불만이야?”

“…짓궂어요.”

“응……?”

말이 끝나자마자 캐서린은 고개를 휙 반대쪽으로 돌렸다.

그리하여 그녀의 표정을 읽을 수는 없었다.

- 끼룩!

어느새 원래의 솜사탕 모습으로 돌아와 있는 매기가 돌기둥으로부터 날아와 내 어깨 위에 앉았다.

그런 매기의 모습에, 캐서린이 조금 관심을 보였다.

“그러고 보니, 그건 뭐죠? 아까 그 근육 덩어리랑 같은 건가요?”

“아, 이거? 응, 맞아. 내 사역마야.”

“에……? 소환계셨나요?”

“소환계는 아닌데… 좀 그쪽에 소질이 있긴 하지.”

말이 나온 김에 나는 아까 버스 안에서 제페토에게 했던 질문을 캐서린에게도 해 보았다.

“혹시 피너클러스 골드버그 님에 대해서 좀 알고 있는 거 있어?”

“피너클러스 님이요? 글쎄요……? 저는 딱히 그쪽에는 관심이 없어서.”

“그래? 의외네. 골드버그 가의 사람은 원래 가문에 대한 자부심이 넘치는 거 아니었나?”

“피너클러스 님에 대해서 아는 거라곤 정령왕님을 다루셨다는 거 정도밖엔 모르겠네요.”

역시 캐서린에게 물은 질문도 별 소득은 없는 듯싶었다.

한참을 활공했을까, 곧 우리는 라이오넬이 있는 얕은 골짜기 근처까지 다다르고 있었다.

공기 저항 마법과 함께 활공하는 것은 마치 패러글라이딩을 타는 것만 같아 나름 상쾌한 기분이 느껴졌다.

그런데 그때, 멀리서 우리를 부르는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제로―!! 뭐― 해?!”

목소리의 방향으로 고개를 돌리니 그곳에는 하늘을 둥둥 떠다니고 있는 루비 버밀리온이 있었다. 아마도 그녀의 몸이 하늘 위에 떠 있는 것은 그녀의 중력 마법 덕분인 듯싶었다.

그리고 곧, 루비 버밀리온은 나와 캐서린을 향해 접근했다.

“왜 둘이 손잡고 있어?”

“아, 이거? 캐서린이 나침반을 잃어버렸다고 해 가지고.”

“그래?”

“아, 안녕하세요…….”

“응, 안녕. 가만있어 봐. 중력 마법 걸어 줄게.”

그러더니 루비는 곧바로 주문을 외웠다.

「그라비타스 디미누티오(grávĭtas dīmĭnútĭo)」

우우우웅!

그러자 붉은빛이 캐서린 골드버그의 주위를 감쌌다.

나는 마법이 적용된 걸 확인한 뒤 깍지 낀 손을 놓았다.

“됐지?”

“아, 네. 고맙네요.”

“그런데 지금 어디 가는 거야? 그쪽에는 교수님들 안 계시는데?”

“아, 우리……?”

생각해 보니 파티원은 많을수록 좋았다.

더더욱 그게 루비 버밀리온이라면 매우 환영이었다.

거기까지 생각이 미친 나는 이내 물밑 작업에 착수했다.

“혹시… 보스 잡으러 가지 않을래?”

“보스……?”

“응, 저기 보이지?”

나는 어느덧 시야에 들어오고 있는 얕은 골짜기의 검은 사자를 가리켰다. 그것을 확인한 루비의 눈동자가 곧 동그랗게 팽창했다.

“…저거 케이든 교수님이 조심하라시던 그 협곡의 군주 아니야?”

“응, 맞아.”

“미, 미쳤어?!”

루비가 반대하는 이유는 저 라이오넬이 두려워서일까, 아니면 교수님의 경고에 반하는 행동을 하려고 해서일까.

나는 아마도 모범생 루비 버밀리온이라면 후자일 거라 생각했다. 애초에 루비 버밀리온은 고작 마물 따위에 겁먹고 내뺄 사람이 아니었다.

그리하여 나는 곧 머리를 굴려 루비를 설득할 방안을 생각해 냈다.

“…그런데 잘 생각해 봐. 저 마물이 그렇게 위험하고 도망쳐야 하는 존재면 과연 아카데미 측에서 그 위험한 녀석이 사는 곳으로의 수학여행을 승인했을까? 게다가 애초에 여긴 아카데미의 사유지인데?”

내 말에 말이 없어진 루비 버밀리온.

아무래도 이미 반쯤 설득당한 듯싶었다.

“그리고 또 잘 생각해 봐. 케이든 교수님의 말은 ‘피하는 게 좋을 거다.’잖아? 무조건 ‘피해라. 도망쳐라. 피하지 않으면 벌점을 주겠다.’가 아니잖아? 그렇지?”

“그, 그렇긴 한데…….”

“내 생각엔 이래. 사실 케이든 교수님도 우리가 저 마물을 처리하길 바라시는 게 아닐까? 내심 우리 자랑스러운 1학년들의 실력을 보고 싶으셨던 거지.”

“그건… 너무 비약 아닐까……?”

“아니, 난 그렇게 생각해. 분명 케이든 교수님은 기대하고 계실 거야.”

“…이 사람, 은근히 무서운 사람이네요.”

옆에서 캐서린 골드버그의 딴지가 들려왔지만 나는 아랑곳하지 않고 무시했다. 그러곤 슬쩍 루비의 표정을 살폈다.

그리고 역시, 그녀는 99% 설득당해 있었다.

“그럼 우리는 이제부터 케이든 교수님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저 마물을 잡으러 갈 건데, 너는 어떻게 할래?”

“그, 그래. 나도 합류할게.”

나이스!

예상대로 루비 버밀리온을 설득하는 것은 매우 쉬운 일이었다.

그렇게 루비까지 합류한 우리는 어느덧 라이오넬의 머리 위에 도달할 수 있었다.

거의 4m가 넘어 보이는 듯한 엄청난 크기의 흑사자.

녀석은 협곡의 틈새에서 휴식을 취하며 혀로 발톱을 핥고 있었다.

‘아직 우리의 존재를 눈치 못 챘다 이거지?’

나는 곧바로 캐서린과 루비에게 오더를 내리기 시작했다.

“캐서린은 레토리의 쥐 떼로 혹시 모를 상황에 엄호해 주고, 루비는 내 주문이 끝나면 바로 중력 마법으로 저 녀석을 묶어 줘.”

“응.”

“알겠어요.”

캐서린은 아까 소환 해제해 두었던 그녀의 사역마, 레토리를 협곡의 절벽 위에 소환하고는 쥐 떼를 불러 모으기 시작했다. 그리고 곧 쥐 떼는 언제든 협곡 아래로 뛰어들 준비를 끝마쳤다.

그 모습을 본 나도 매직 미사일을 장전하기 시작했다.

「마지아 미실레(magía míssĭle)」

「마지아 미실레(magía míssĭle)」

……

상대가 눈치채지 못한 기습의 형태다 보니까, 그만큼 매직 미사일을 소환할 수 있을 여유가 충분했다.

그리고 곧 내 머리 위로는 수십 개의 매직 미사일, 그리고 간간이 보이는 대성공의 매직 미사일들이 쌓이고 있었다.

“그런데 이건 도대체 몇 개까지 소환할 수 있는 거야?”

“글쎄? 한번 해 볼까?”

루비의 말에 자극받은 나는, 수십 개에 그치지 않고 좀 더 매직 미사일을 끌어모았다. 그리고 곧 우리가 떠 있는 상공은 거의 수백 개에 다다르는 어마어마한 수의 매직 미사일이 뒤덮고 있었다.

“우와아…….”

“이게 가능한 건가요?!”

옆에서 감탄하는 루비와 캐서린.

곧 상공 위, 수백 개의 매직 미사일은 태양을 가렸다.

그리고 자신의 몸 위로 그늘이 진 것을 라이오넬이 눈치 못 챌 리가 없었다.

“잠깐만요! 녀석이 올라와요!”

그 움직임을 포착한 캐서린 골드버그의 경고.

그리고 아래를 내다보자, 협곡의 벽을 타고 오르는 라이오넬을 볼 수 있었다.

- 크르러엉!

감히 협곡의 군주를 건드려?

라고 묻는 듯한 성난 포효.

그러나 나는 그 모습을 보고 씨익 웃고 있었다.

“이거나, 먹으시지!!”

나는 하늘 위로 치켜든 두 손바닥을 그대로 라이오넬의 방향을 향해 내리찍었다.

그러자 동시에 내 머리 위에 커다란 흰 구름을 형성하던 매직 미사일 수백 개가 일제히 라이오넬에게 내리꽂혔다.

콰아아아아아앙!

위저드의 협곡을 울릴 듯한 엄청난 폭음이 사방으로 울려 퍼졌다.

그와 동시에 벽을 타고 올라오고 있던 라이오넬이 힘없이 아래로 추락했다.

쿠우웅!

몸집이 몸집인 녀석답게, 지면에 부딪히는 소리마저 웅장했다.

“…휴우, 이 정도면 언노운의 파워를 뛰어넘는 거 아니야?”

그러나 여유도 잠시.

- 크르러어어엉!

“뭐야? 저 자식 멀쩡하잖아?!”

조금 전 공격으로 잔뜩 열받은 라이오넬이 미친 듯이 협곡의 벽을 타고 뛰어오르고 있었다.

“내가 막아 볼게!”

「그라비타스 폰데라티(grávĭtas ponderátĭ)」

쿠우웅!

루비 버밀리온이 황급히 쓴 중력 가중 마법에 라이오넬은 다시금 바닥으로 추락했다. 그런데, 이상했다.

“어, 어째서 내 중력 마법을 거스를 수 있는 거지?”

녀석은 천천히 어깨를 들고 몸을 일으켜 세운 뒤 다시금 벽을 타고 오르려고 시도했다.

중력 가중 마법이 걸렸기에 아까보단 현저히 느려진 몸이었지만 그럼에도 루비 버밀리온의 마법을 뚫고 올라온다는 것은 매우 놀라운 일이었다.

‘루비 버밀리온의 중력 마법은 그린 드래곤으로 변신한 에메릴 그린월드한테까지도 통했던 마법이잖아? 그런데 저게 안 통한다고?!’

보고만 있을 수 없던 나와 캐서린은 각자의 사역마에게 명령을 내렸다.

이내 캐서린의 쥐 떼와 근육질로 변한 매기가 협곡을 기어코 기어오르려는 라이오넬에게 달려들었다.

- 찌찌찍!

- 끼루욱!

그러나,

퍼억!

쥐 떼가 라이오넬의 몸에 달라붙는 건 의미가 없었고, 매기는 녀석의 손짓에 맥없이 떨어져 나갔다.

“매기까지… 한 방에 나가떨어질 정도라고? 도대체 얼마나 강한 녀석인 거야…….”

조금 과소평가했었다.

수학여행 장소라면, 적어도 1학년들이 힘을 합치면 클리어할 수 있을 정도의 쉬운 난이도일 줄만 알았다.

그러나 녀석은 본인이 괜히 군주급의 마물이 아니라는 듯, 보스급과는 차원이 다른 무력을 증명하고 있었다.

“이런…….”

“이건 너무 위험해요!”

“빨리 도망쳐야겠는데?!”

어느새 협곡의 벽을 타고 절벽 위로 올라온 라이오넬.

녀석은 잔뜩 열받았는지 땅에 몸을 붙이고는, 곧 뛰어오를 자세를 취했다.

“최대한 높이 도망쳐야 될 거 같아!”

“알겠어!”

녀석이 도약 자세를 취한 것을 본 루비 버밀리온은 황급히 마나를 분출해 고도를 높이고 있었다.

그런데, 녀석의 도약력은 이미 우리가 상상했던 것 그 이상이었다.

파앗!

지면을 힘차게 박차고 오르는 라이오넬.

- 크르러어엉!!

그리고 그 5m가 넘는 거대한 흑사자는 상공으로 도망치고 있는 우리에게 매섭게 날아오고 있었다.

“이, 이게 말이 되는…….”

“꺄아아아!”

나는 눈을 질끈 감았다.

우리는 영락없이 저 라이오넬의 입속으로 빨려들어 갈 운명이 되어 버린 것이다.

그런데 그때,

채애앵!

무언가 라이오넬의 날카로운 이빨에 부딪히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러고는,

쿠우우우웅!

눈을 뜨자 보이는 것은 지면으로 추락한 라이오넬의 모습이었다.

나는 안도의 한숨보다는, 도대체 이게 어떻게 된 일인가 싶어 빠르게 주위를 훑었다.

그리고 그를 추락시킨 장본인은…….

“휘유. 위험했잖아?”

챙이 넓은 밀짚모자를 한 손으로 치켜올리는 아텔라 가스트로디아 교수였다.

곧 공중에 떠 있었던 그녀의 몸은 낙법으로 사뿐히 땅에 도달했다.

“어디서 튀어나온 거예요?!”

분명 아텔라 교수가 튀어나온 곳은 하늘 위였다.

게다가, 근처에 아텔라가 접근하고 있다는 기척조차 느껴지지 않았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 허공에서 튀어나온 아텔라 교수가 라이오넬의 공격으로부터 우리를 지켜 준 것이다.

“…질문은 이따 받을게.”

아텔라 교수는 두 손에 쥔 검을 고쳐 잡았다.

그녀의 두 눈은 오직 서서히 정신을 차리고 있는 라이오넬에게 집중하고 있었다.

곧 라이오넬은 고개를 거칠게 흔들며 갈기에 묻은 모래를 털어 내더니, 이내 아텔라 교수에게 맹렬히 돌진하기 시작했다.

우리는 여전히 공중에 떠 있는 채로 그 모습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아텔라가 쥔 검신에는 붉은 마나가 깃들고 있었다.

“차원류 검술 제1형…….”

그녀가 입은 원피스 치마가 펄럭였다.

“…공간 베기!!”

파아아앗!

눈앞의 허공을 살며시 베는 아텔라.

쿠웅!

그 닿을 리 없는 검격은 한순간에 라이오넬을 두 동강 내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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