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6화
띠링.
[서브 이벤트 ‘협곡의 군주’를 완료하였습니다.]
[보상 ‘마법 주문서(???)’를 획득했습니다.]
눈앞에 서브 이벤트의 완료를 알리는 시스템 창이 나타났다.
그러나 나는 시스템 창의 결과보다는, 당장 눈앞에 무슨 일이 펼쳐진 것인지에 대해 집중하고 있었다.
‘어떻게 된 거지……?’
조금 전의 충격이 쉽게 떨쳐지지 않았다.
분명 라이오넬은 언노운급의 대미지를 맞고도 멀쩡했었고, 루비 버밀리온의 중력 마법조차 견뎌 낼 정도로 무지막지하게 강력한 마물이었다.
그런데 그런 녀석을 단 한 번의 검격으로 베어 버리다니.
게다가 검날은 녀석에게 닿은 거 같지도 않았고, 딱히 검 끝에서 검기가 날아간 것도 아니었다.
심지어 그녀는 주문조차 외우지 않았었다.
‘저게 현역 마법사인 건가…….’
주문을 외우지 않고 마법을 시전하려면, 그 마법이 엄청나게 단순한 마법이거나 혹은 그 마법의 극의에 도달해야 했다.
방금 그녀가 보여 준 경지는 후자임이 틀림없었다.
털썩.
아텔라 교수는 힘을 전부 소진했는지, 무릎을 꿇고 자리에 주저앉았다.
“교수님!”
“아텔라 교수님!!”
나는 황급히 루비 버밀리온에게 중력 마법의 해제를 요청했다.
거칠게 숨을 내쉬고 있는 아텔라 교수는 살며시 고개를 들어 우리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그녀는 자신보다도 학생들의 상태를 우선시하는 듯했다.
“…다들 괜찮은 거지?”
곧 몸이 지면에 도달하자, 그녀와 친분이 있던 내가 제일 먼저 달려가서 상태를 살폈다.
“교수님, 괜찮아요? 어떻게 된 거예요?!”
“너희들이 협곡의 군주와 교전 중이길래 급하게 달려왔지. 조금이라도 늦었으면 큰일 날 뻔했잖아?”
“어떻게 아셨어요?”
아텔라 교수는 내 손에 쥐어져 있는 나침반을 콕콕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나는 이내 이 나침반이 교수님들의 위치를 알려 주는 동시에, 우리들의 위치를 교수님들에게 알려 주는 좌표라는 것을 깨달았다.
“최소한의 안전장치. 뭐, 그런 거지. 설마 너희들을 저런 군주급 마물이 있는 곳으로 아무 생각 없이 데려왔겠니? 물론 케이든 교수님이 나를 인솔 교수로 데려온 게 이런 이유라는 걸 알게 되었을 땐 나도 좀 당황스러웠지만.”
“그렇구나……. 그런데 어디서 나타나신 거예요?”
“아아, 그건 내 고유 마법.”
“고유 마법이요?!”
“응, 내 고유 마법은 ‘공간 조작’이거든.”
아텔라 교수의 말에, 옆에서 조용히 듣고 있던 루비 버밀리온이 갑자기 끼어들어 큰 소리로 반문했다.
“네?! 공간 조작 마법사라고요?!”
루비 버밀리온의 눈은 매우 놀랐다는 듯이 휘둥그레져 있었다.
정확히 공간 조작이 어느 정도 급인지는 모르겠지만, 물질계 영웅의 가문 루비 버밀리온이 저 정도로 놀랄 정도면 물질계 중에서도 대단한 고유 마법인 게 틀림없었다.
“응. 나는 공간을 조작할 수 있어. 물론, 그만큼 리스크가 크긴 하지만. 방금도 베어 낸 녀석의 질량이 만만치 않아서 마나를 다 써 버렸네. 나 좀 일으켜 줄래?”
나는 얼떨떨한 표정을 하며 그녀에게 손을 건넸다.
그러자 아텔라 교수는 씨익 웃으며 내 손을 잡고 서서히 일어났다.
땅바닥에 주저앉았던 그녀의 원피스 치맛자락은 이미 지면의 모래에 범벅이 되어 있었다.
“…애써 입고 왔는데, 더럽혀졌잖아.”
아무렇지 않게 옷을 털어 내는 아텔라 교수.
나는 평소 알던 아텔라 교수와 조금 전 무력을 보여 준 아텔라 교수 사이에서 갭을 느끼게 되었다.
‘저 정도의 실력이기에, 어린 나이에도 아카데미의 교수가 될 수 있었던 건가…….’
게다가 공간을 베는 검술이라니.
그래서 그 강력하고 단단했던 라이오넬이 한순간에 베어졌던 것이리라.
방어력을 무시하는 검사라.
물론 그만큼 리스크가 있어 보이긴 했지만, 느낌상으론 그야말로 즉사기급의 치트나 다름없어 보였다.
나는 새삼 그녀를 존경스러운 눈빛으로 쳐다보았다.
“그런데, 저희는 추적 훈련을 통과한 것인가요?”
옆에서 팔짱을 끼고 있던 캐서린 골드버그가 아텔라 교수에게 질문했다.
“아, 응. 어쩔 수 없지. 마나를 다 써 버려서 움직일 힘조차 없는걸? 너희들은 통과한 셈 칠게.”
결과적으로 서브 이벤트도 아텔라 교수 덕분에 어부지리로 클리어하게 되었고, 그 여파로 아텔라 교수가 움직이지 못하게 되어 추적 훈련도 편하게 통과할 수 있었다.
‘이거… 너무 날로 먹는 거 아닌가?’
머릿속에 살짝 의문이 들었지만, 어쨌든 개이득이었다.
* * *
나와 캐서린, 루비, 아텔라 교수는 아까의 등대 같은 돌기둥에 올라와 자리를 잡고 앉았다. 아무래도 이번 추적 훈련은 케이든 교수가 잡힐 때까지 끝나지 않는 모양이었다.
그리하여 우리는 멀리서 도주하는 케이든 교수와 그 교수님을 잡기 위해 악착같이 쫓아다니는 학생들의 모습을 여기 고지대에 앉아 구경하고 있었다.
“그나저나 케이든 교수님도 대단하네요.”
눈 앞에 펼쳐지는 풍경에 캐서린 골드버그가 넌지시 운을 띄웠다.
“그러게, 정말 의외네. 처음 뵀을 때는 되게 카리스마 넘치고 냉철한 교수님인 줄로만 알았는데…….”
루비 버밀리온도 고개를 끄덕이며 그 말에 동의했다.
“내가 봤을 때는 케이든 교수님, 상당히 즐기시는 거 같은데?”
우리가 이렇게 말하는 이유가 있었다.
그 이유는 바로 케이든이 학생들을 상대로 전력을 다해 도망 다니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그 모습이 좀 의외라는 생각이 들었다.
‘원래 저렇게 열정적인 교육열을 가지고 계셨었나……?’
그동안 내가 생각했던 케이든 교수의 이미지는 상당히 귀찮음이 심하고, 대충대충 넘어가는 사람으로 생각했었다.
그런데 저렇게 진심으로 학생들을 훈련시키고 계시다니, 참 돈 주고도 못 볼 광경이었다.
케이든 교수의 뒤꽁무니를 따라다니는 학생들은 꽤나 먼 거리였기에 자세히 파악은 안 되었지만, 대충 제이드, 달시 세이피어, 제페토 골드버그, 에메릴 그린월드는 케이든 교수의 뒤꽁무니를 쫓고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특히나 제이드 같은 경우에는 계속해서 방출 마법을 쏘아 대고 있었고, 그린 드래곤으로 변신한 에메릴은 브레스를 뿜어 대고 있었다.
누가 보면 심각한 하극상의 현장이었지만, 그 제이드와 에메릴 그린월드라도 역부족일 정도로 케이든 교수의 능력이 워낙 뛰어났기에, 오히려 공격하는 학생들이 불쌍해 보일 정도였다.
“그러고 보니 케이든 교수의 고유 마법은 자기력이었지?”
“자기력?”
“응.”
케이든 교수는 자신의 주위를 둘러싼 자기장으로 제이드와 에메릴의 공격을 막아 내고 있었다.
내가 케이든 교수의 고유 마법을 아는 이유는 물론 ‘아카마’에서 수없이 봐 왔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저 케이든 교수는 ‘아카마’에서도 상당히 강력한 편에 속했었기에, 능력을 잊으려야 잊을 수가 없었다.
“그러고 보니 은근히 물질계 마법사가 많네.”
현재 내 주변만 해도 루비, 아텔라 교수, 케이든 교수. 무려 셋이나 있었다.
그런데 사실, 이 정도로 물질계 마법사가 흔한 것은 아니었다. 비율로 따지자면 주변에 AB형 혈액형이 셋이나 있는 것과 같을 정도로 특이한 경우였다.
계열 마법의 선택 비율을 따져 보자면 가장 많은 것은 역시 원소계와 강화계였다.
둘은 각각 육체파와 비육체파에 있어서 가장 선호도가 높은 계열이었다. 그리고 그다음으로는 변신계, 소환계가 인기 있었고, 물질계와 방출계는 선호도가 매우 낮았다.
마법사들이 제일 기피하는 계열 마법은 정신계.
정신계 마법은 같은 마법사끼리는 거의 통하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니까, 선호도가 제일 낮았다.
‘물론 나는 어느 하나 제대로 사용하지 못하지만.’
그러고 보니 벌써 이곳에 온 지도 한 달이 넘었는데도 제대로 된 계열 마법은커녕, 아직 매직 미사일 원툴 신세였다.
사실 계열 마법을 언젠가는 사용할 수 있을 거라는 기대가 조금은 있었는데, 지금에 와서는 전부 포기하고 있었다.
어차피 안 될 사람은 안 되는 것 같았다.
‘게다가 뭐, 계열 마법이 없으면 어때? 어차피 그 계열 마법 영웅의 아티팩트를 사용할 수 있는데.’
지금 당장은 소환계 영웅의 아티팩트밖에 사용하지 못하지만, 언젠가는 모든 계열의 아티팩트를 사용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하니 그리 불만은 없었다.
‘아, 그러고 보니 보상을 확인 안 했지?’
불현듯 아까 전 스킵했던 시스템 창이 떠올랐다.
나는 예전의 기억을 더듬어, 사라진 시스템 창을 다시 불러오게끔 소리쳤다.
“보상 확인!”
그러자 옆에 있는 루비 버밀리온이 나를 이상한 눈빛으로 쳐다보았다.
“갑자기 뜬금없이 무슨 소리야?”
“그, 그런 게 있어. 지금부터 좀 생각할 게 있으니까 말 걸지 말아 줄래?”
그리고 나는 곧 눈앞에 나타나는 시스템 창을 확인했다.
[보상 ‘마법 주문서(???)’를 감정하였습니다.]
* 감정 결과: 마법의 주문서(캐스팅 차지)
[‘마법 주문서(캐스팅 차지)’를 사용하시겠습니까?]
[▶ 사용한다.]
[▶ 버린다.]
‘캐스팅 차지?’
분명 ‘아카마’에서 사용해 본 적 있는 효과였다.
캐스팅 차지는 기를 모으듯 마법을 충전하여 한 번에 방출하는 옵션.
만약 매직 미사일에 적용하게 된다면, 차징 후에 강력한 매직 미사일을 방출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어차피 여러 방 날리는 데 굳이 충전시킬 이유가 있을까 싶었던 나는 곧 그 차이를 깨닫게 되었다.
장탄 수가 늘어나는 더블 캐스팅의 강화 효과는, 평상시의 전투에서 필요로 하는 능력치였다. 반면, 시전하면 시전할수록 내 몸 주변에 매직 미사일이 쌓이기 때문에 기습으로는 적합하지 않다고 볼 수 있었다.
이 차지 캐스팅은 반대로 기습용으로 쓰기 적합한 효과인 것이다.
일단은 좀 더 정보가 필요했던 나는, 상세 정보창을 불러냈다.
“상세 정보!”
또다시 뜬금없는 내 혼잣말에, 옆에서 루비 버밀리온이 힐끔 쳐다보았지만 나는 아랑곳하지 않고 무시했다.
〈상세 정보〉
[캐스팅 차지]
* 설명: 주문서의 효과 중 하나로, 마법을 충전할 수 있게 되고, 충전한 시간만큼 강화된 마법을 시전할 수 있다.
* 특이사항: [캐스팅 차지]에는 [성공의 주사위]가 적용될 수 있습니다.
‘성공의 주사위’가 적용될 수 있다고?!’
안 그래도 ‘성공의 주사위’가 적용된 대성공의 매직 미사일은 기존의 매직 미사일과는 차원이 다른 강력한 파괴력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그러한 ‘성공의 주사위’가 차지로 인해 강해진 매직 미사일마저 증폭시킬 수 있을 거라니.
물론 지금도 ‘성공의 주사위’가 적용된 매직 미사일을 사용하기 위해선 적어도 100개 이상의 매직 미사일을 시전해야 했다. 그렇다면 단발로 쏘는 차징 매직 미사일은 더더욱 대성공 확률이 극악일 것으로 예상되었다.
다만, 아무리 로또 맞을 확률이라 해도 ‘성공의 주사위’가 적용된 ‘캐스팅 차지’가 기대되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나는 냉큼 마법 주문서의 사용을 선택했다.
그리고 곧바로 ‘캐스팅 차지’를 시험해 봤다.
「마지아 미실레(magía míssĭle)」
주문을 외우고 기를 모으는 이미지를 머릿속으로 떠올리자, 매직 미사일은 발산하지 않은 채 계속해서 오른손에 충전되고 있었다.
위잉위잉위잉.
귓가에 들려오는 매직 미사일의 충전 소리.
그러나 루비 버밀리온의 반응을 봐서는 거의 시전자한테만 들릴 정도로 작은 소리인 듯 보였고, 충전 중이라는 사실도 얼핏 봐서는 모를 정도로 티가 나지 않는 듯싶었다.
그리고 어느 정도 충전이 되자, 나는 그것을 지면을 향해 발사했다.
퍼어어어어엉!
오른손으로부터 뻗어 나가는 트럭 크기만 한 거대한 백색 구체.
그리고 그것은 지면에 도달하더니,
콰아아아아아앙!
엄청난 후폭풍을 내며 지면에 거대한 분화구를 만들어 버렸다.
‘우와아아… 상상 이상으로 강력한데?’
‘성공의 주사위’가 적용된 대성공의 매직 미사일에는 살짝 못 미치는 위력이었지만, 그다지 오래 충전한 것도 아닌 것을 감안해 보면 매우 강력한 것은 틀림없었다.
여기서 더 오래 충전하면 과연 어느 정도의 위력일지 상상이 가지 않았다.
‘그나저나 가장 큰 단점은 충전할 땐 가만히 있어야 된다는 점이네.’
결국 이 ‘캐스팅 차지’ 매직 미사일은 기습용으로밖에 활용 못 하거나, ‘무빙 캐스팅’ 주문서를 또 한 번 얻어서 사용하는 수밖에 없을 것 같았다.
“뭐, 그럭저럭 쓸 만하잖…….”
방금 얻은 주문서에 나름 만족스러움을 느끼고 주위를 둘러본 순간, 나를 노려보는 세 명의 여자의 따가운 시선을 느낄 수 있었다.
아무래도 뜬금없이 지면을 파괴한 나를 미친놈이라 생각하고 있을 게 분명했다.
“미안…….”
나는 조심스레 눈을 깔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