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아카데미의 무속성 마법사-47화 (47/175)

47화

* * *

시간은 벌써 해가 지기 시작한 이른 저녁.

학생들이 다 모인 것을 확인한 케이든이 입을 열었다.

“오늘 추적 훈련은 여기까지. 다들 수고했다.”

역시나 평상시의 무미건조한 어투였다.

다만 그런 케이든 교수의 말에 반발하며 수군대는 학생들의 목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려오고 있었다.

“저 교수님 끝까지 안 잡히셨다지?”

“그럴 거면 왜 특혜를 걸었던 거지. 애초부터 안 줄 생각이었던 거 아냐?”

“말도 마. 나는 그냥 하루 종일 뺑이만 치고 왔다니까.”

보아하니 특혜를 받기는커녕, 케이든 교수를 잡은 사람은 단 한 명도 없는 모양이었다.

일반적인 학생들은 물론이고, 항상 웃음이 끊이지 않던 제이드조차도 조금 힘든 내색을 비추는 것으로 보아, 케이든 교수의 도주가 어지간히 악질적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뭐, 나는 오늘 꿀이란 꿀은 다 빨았지만.’

만약 나도 케이든 교수의 특혜에 눈이 멀었더라면, 하마터면 다른 학생들처럼 하루 종일 똥개 훈련을 당할 뻔했다. 결국 아텔라 교수를 선택한 덕분에 비교적 편한 하루가 된 듯싶었다.

그때 누군가 손을 들더니 케이든 교수에게 질문을 던졌다.

“그런데 교수님, 저희 숙소는 어디 있나요?”

그런 질문이 나올 거라고 예상이라도 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는 케이든 교수.

“이곳이 우리의 베이스캠프라 했었지. 숙소는 바로 이곳이다.”

그리고 케이든 교수는 허리춤에 매어 두었던 작은 주머니를 손에 쥐었다.

‘저건… 인벤토리?’

물건을 아공간에 담아 둘 수 있는 매우 비싼 축에 속하는 마도구, 인벤토리.

케이든이 그곳에 붉은 마나를 주입하자, 순식간에 인벤토리에서는 무언가가 튀어나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무언가들은 내게 너무나도 익숙한 것들이었다.

‘그럼, 그렇지.’

인벤토리에서 튀어나온 것은 다름 아닌 군대에서나 볼 법한 텐트 재료들. 그 규모로 보아 적어도 각각 12인용은 되어 보이는 천막과 지지대와 말뚝들이었다.

텐트 재료들을 보고 슬슬 불안해진 학생들은 속닥거리기 시작했다.

“서, 설마 여기서 텐트 치고 자자는 거야?!”

“에이, 설마 진짜 그러겠어? 아무리 그래도 수학여행이잖아? 어딘가 숙소가 있지 않을까……?”

“지금 이거 몰래카메라는 아닌 거지?”

현실을 부정하는 학생들.

그러나 현실은 꽤나 냉정한 법이었다.

“지금부터 너희들은 남녀 네 개조로 나뉘어 이 텐트를 설치하면 된다. 설치 방법은 천천히 알려 줄 거니까 너무 걱정하진 말도록.”

선글라스를 쓰고 있어서 표정을 자세히 읽을 수는 없었지만, 분명 케이든은 이 상황을 즐기고 있었다. 아무래도 애초에 저 귀차니즘 교수의 취향은 이런 아웃도어였던 게 분명했다.

‘역시. 수학여행 장소는 결국 의미 없었네.’

내가 이러한 상황에 크게 당황하지 않은 이유는, 바로 ‘아카마’의 수학여행에서도 텐트를 쳤었기 때문이었다.

물론 게임에서는 아카데미의 숲이었고 그나마 이곳은 아카데미 외부라는 차이가 있었지만, 결국 텐트를 치고 잔다는 사실은 달라지지 않았다.

‘그러고 보니 제페토한테 주어진 특혜 때부터 알아봤어야 했는데…….’

케이든 교수가 제페토 골드버그에게 허락한 것은 ‘버스 자리 배정’이었지, ‘숙박 자리 배정’이 아니었다.

분명 수학여행에 있어서 버스 자리 배정도 물론 중요하지만, 어느 방에서 잠을 잘지가 더 중요한 부분인데 그러한 특혜가 없었다는 것은 애초에 우리가 텐트에서 잘 운명이기 때문이었던 것이다.

“자, 그럼 다들 시작해라. 오늘 밤에 별을 보면서 자고 싶은 게 아니라면 말이지.”

학생들이 품고 있는 마지막 희망마저도 부숴 버리는 케이든 교수였다.

* * *

현실에서의 내 원래 나이는 22살.

대학교 1학년 여름방학 때 군대를 다녀왔었기에, 나는 이미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의 예비군 중 하나였다.

텐트야 군대에서 훈련 때마다 치던 것이었기에 나에겐 이 작업이 그다지 어렵지 않게 느껴졌고, 그리하여 내가 지휘를 맡은 텐트 A조는 시작한 지 10분 만에 텐트 설치를 거의 완료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럼, 마지막으로 저기 줄에 말뚝을 박아 줘.”

내 말을 신호로 제이드가 방출 마법을 사용해, 지면에 팽팽히 펼쳐진 노끈에 말뚝을 박으며 텐트 설치를 끝마쳤다.

애초에 이곳은 마법의 세계였기에, 사실 설치하는 데 드는 고단함 같은 것은 애초부터 존재하지 않았다.

다만 설치하는 방법 자체를 몰라서 헤매는 것과 제대로 된 숙박 시설이 아닌, 이 대자연의 한복판에서 텐트를 치고 자야 한다는 사실이 학생들에겐 무엇보다도 큰 고통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놀랍군.”

우리 A조가 만든 텐트를 보고 고개를 끄덕이는 케이든.

아무래도 완벽하고 신속하게 텐트를 설치한 것이 매우 맘에 든 모양이었다.

그렇게 마지막 조의 텐트까지 모두 설치되었을 때, 이미 해는 저물어 있었다.

케이든 교수는 주변의 나뭇가지들을 모아 와 텐트의 중앙에 놓더니, 학생들 중 원소계를 불러서 불을 지폈다.

곧 타닥타닥 타오르는 캠프파이어.

물론, 도시의 안락한 수학여행도 좋지만, 막상 텐트를 설치하고 이렇게 캠프파이어를 보고 있자니, 나름 좋은 느낌이었다.

“애들아, 밥 먹자!”

그리고 학생들을 불러 모으는 아텔라 교수.

오늘 저녁 메뉴는 고기 바비큐였다.

학생들은 캠프파이어를 중심으로 빙 둘러 저마다 고기를 굽기 시작했다. 그리고 향긋한 고기 냄새가 캠프장을 가득 메우자, 학생들의 여론이 슬슬 달라지고 있었다.

“이거… 썩 나쁘지만은 않은데?”

“따, 딱히 그렇게 최악은 아닌 거 같기도 하고.”

“빨리 먹고 싶다.”

나는 옆 테이블에서 들려오는 그들의 대화에 동감하며 미소를 지었다.

‘뭐, 그래도 이건 이거대로 나쁘지 않네. 물론, 이러한 야외 캠핑의 가장 큰 단점은 바로 취침일 테지만.’

그러나 잠자리는 나중의 문제였고, 지금은 이 분위기와 맛있는 바비큐를 즐기면 그만이었다.

치이이익.

불판 위에 살짝 탄 듯이 노릇노릇 구워지고 있는 바비큐.

어느새 다 익어 가자, 같은 A조인 제이드가 내게 한 점을 건넸다.

“자, 먹어.”

“그래, 고맙다.”

생글생글 웃으며 집게로 고기를 집어 주는 제이드의 모습에 나는 좀 당황스러웠지만, 이내 그것을 받아먹었다.

그리고 고기는 진리였고, 역시 틀리지 않았다.

“역시 이런 곳에서 먹는 게 운치 있고 기분도 좋네.”

“그렇지? 난 워낙 이런 환경에서 자라와서, 오히려 그리운 기분이야.”

고향 마을이 생각난다는 듯 제이드는 아련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이 녀석은 자신의 출생의 비밀을 궁금해할까?’

사실 그동안은 제이드와 딱히 친하게 지내지는 않았었다. 이유는 무엇보다도 거부감 때문이었다.

‘아카마’에서는 내가 제이드를 플레이했으니까 딱히 느끼지 못했는데, 현실의 제이드 녀석은 정말 재수가 없을 정도로 잘생겼고, 게다가 착해 빠지기까지 했다.

더더군다나 그 잘생긴 외모와 이미지 때문에 이 녀석과 같이 수업을 듣는 날이면, 옆에서 들려오는 여자들의 꺄악거리는 소리가 굉장히 거슬렸었다.

그리하여 아무리 제이드가 본성이 선하고 나에게 거리낌 없이 다가온다고 하더라도, 녀석에겐 생물학적으로 거부감이 드는 부분이 없지 않아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여긴 장소도 장소고 분위기도 분위기니까, 자연스레 나는 제이드와도 친해지고 싶다는 마음이 들고 있었다.

그리하여 나는 제이드에게 궁금했던 이야기를 넌지시 물어보았다.

“그런데 있잖아.”

“응.”

“저… 그… 고아라 했었잖아. 친부모님을 찾아보고 싶지 않아?”

“친부모님?”

나는 순간 괜히 말했나 싶었다.

아무리 친한 사이라 할지라도 그러한 문제는 조금 민감한 이야기일 테니까.

그러나 역시 제이드는 내 말을 오해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 주었다.

“글쎄. 나는 길러주신 할아버지 할머니만으로도 충분한걸?”

“그래?”

역시나 이 녀석은 원래 이런 녀석이다.

녀석의 반응에, 솔직하게 그의 출신 가문을 말해 줄까 했던 생각은 도로 입속으로 쏙 들어가 버렸다.

‘뭐, 어차피 언젠가는 알게 될 거니까.’

나는 잡생각을 떨쳐 내고 고기를 먹는 데 집중하기로 했다.

이내 내 머릿속에는 그저 지금의 이 평화로움이 좋다는 생각뿐이었다.

* * *

한창 고기 파티가 진행되고 있을 무렵, 제로를 보며 의미심장한 웃음을 짓고 있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것은 역시나 에이체스 저니맨과 벅스 버니로드였다.

그리고 그중에서도 에이체스는 무언가 좋은 계획을 가지고 있는 모양이었다. 그는 열심히 고기를 뜯고 있는 벅스 버니로드에게 말을 꺼냈다.

“어이, 벅스.”

“왜?”

“내가 여기 위저드 협곡에 대해서 뭘 좀 들었는데 말이야. 여기서 멀지 않은 곳에 위저드 협곡의 결계를 제어하는 던전이 있데. 그리고 그곳에선 마나를 사용할 수 없다나 봐?”

“그럼, 딱인데?”

“그렇지, 딱이지.”

이내 음흉한 미소를 짓고 있는 에이체스와 벅스.

그들은 이미 마나를 사용할 수 없는 던전에 갇힌 제로가 울부짖는 모습을 상상하고 있었다.

* * *

그리고 또 한편, 위저드 협곡의 입구에는 정체를 알 수 없는 두 남자가 서 있었다.

한 남자는 키가 매우 작고 얼굴엔 주근깨가 가득하며, 머리는 주황색 곱슬머리를 하고 있었다.

반면 다른 쪽 남자는 그와 비교될 정도로 매우 큰 키에, 귀까지 올라오는 특이한 터틀넥을 입고 있었다. 그 남자는 터틀넥 덕분에 입은 물론이고 코까지 옷에 가려져 있었다.

그리고 이내 그 터틀넥을 입은 남자가 입을 열었다.

“어이, 하트. 확실한 거겠지? 이곳에 ‘그 아이’가 있다는 게.”

하트라 불린 남자는 터틀넥의 남자의 말에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스페이드가 준 정보니까 확실할 거야.”

하트의 확신에 찬 목소리에 터틀넥을 입은 남자, 클로버는 이내 입을 가린 터틀넥을 내렸다. 이윽고 드러난 그의 입꼬리는 거의 귀에 닿을 정도로 째져 있었다.

“그럼, 결계를 돌파한다.”

“잠시만, 클로버. 가능하겠어?”

“물론이다.”

클로버는 원소계 마법사로, 그의 고유 마법은 빙결의 원소였다.

“결계는 살아 있는 마나를 차단하는 역할을 하지. 반면 마나가 없는 무기물의 출입은 딱히 제한하지 않아. 그리하여 나는 지금부터 내 몸을 얼려 냉동 상태로 만들 것이다.”

사람은 일시적으로 호흡을 멈춰 마나의 흐름을 정지할 수 있다.

다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흐름을 정지하는 것일 뿐.

몸속에 잔류해 있는 마나까지 제거하려면 ‘죽음’밖에는 방법이 없었다.

그리고 클로버의 빙결 마법은 신체를 거의 죽음에 가까운 냉동 인간으로 만들 수 있었기에, 마나를 제로로 만드는 것이 가능했다.

사실상 그의 빙결 마법은 일시적인 죽음과 다름없었다.

“그럼, 나도 같이 들어가면 되는 거 아니야?”

“글쎄. 냉동 이후 신체 능력을 회복할 수 있는 건 빙결의 원소를 다룰 수 있는 나밖에 없을 거다. 뭐, 운이 좋으면 가능할 수도 있겠지만. 도박을 해 볼 건가?”

“사양할게. 꽁꽁 얼어붙은 채로 평생을 잠들어야 한다니. 그건 조금 끔찍하네.”

결계를 통과할 수준이라면 그만큼 강력한 빙결계 마법으로 온몸을 냉동시켜야만 가능한 일이었다.

그리고 그 정도 수준의 빙결계 마법은 빙결의 원소를 다루는 클로버 본인일지라도 냉동 상태를 벗어나는 데 있어 크나큰 제약이 뒤따랐다.

“아마도 해동은 내일쯤 끝날 거다. 그때 결계를 해제하도록 하지. 그전부터 대기하고 있어라.”

“알았어. 그럼 냉동 상태 이후에 살며시 결계 안으로 넣으면 되는 거지?”

클로버는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곧 주문을 외웠다.

「스트릭타 듀라투스(stricta dūrātus)」

쩌저적.

클로버를 감싸는 보라색 마나.

그리고 잠시 후, 그는 마치 얼음 조각처럼 그대로 꽁꽁 얼어붙었다.

하트는 클로버가 완전히 얼어붙자, 그대로 결계 안으로 뻥 차서 넣어 버렸다.

“후후… 재밌겠는데? 게다가 그리운 사람도 만날 수 있을 거고 말이야.”

하트는 데굴데굴 굴러가는 냉동된 클로버를 보며 히죽 웃었다.

“모든 것은 ‘블랙 잭’을 위해.”

말을 마친 하트는 이내 온데간데없이 모습을 감추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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