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8화
* * *
- 잘 잤나, 애송이들아.
해가 뜨자마자 케이든 교수는 마법으로 목소리를 증폭시켜 학생들을 깨우기 시작했다. 그리하여 학생들은 하나둘씩 불평을 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다만 그들의 불평의 이유는 본인들을 이른 아침부터 깨워서가 아닌 것으로 보였다.
“아이고 허리야…….”
“으으… 입이 돌아가는 줄 알았어.”
“진짜 간밤에 죽는 줄 알았다니까?”
학생들은 대부분 귀족 출신인지라, 평소의 푹신한 침대와 포근한 이불에 익숙해져 있었다.
그런 그들에게 이번 수학여행은 난생처음 겪은 야외 취침 경험이었고, 춥고 등이 딱딱하고 게다가 비좁은 공간의 잠자리는 쉽게 익숙해지지 않는 고통이었던 것이다.
게다가 더욱 끔찍한 것은 수학여행은 오늘로써 끝나는 것이 아니라, 2박 3일이라는 사실이었다.
“하아암…….”
나도 어느새 자리에서 일어나서 기지개를 켰다.
평소의 기숙사 침대보다는 조금 불편한 잠자리였지만, 워낙 잠자리를 가리지 않는 탓에 나름 편안한 밤을 보내지 않았나 싶었다.
특히 A조 텐트에서 누군가 코골이를 시작하며 우렁찬 소리를 냈을 때, 어느 학생이 그 코 고는 학생의 코를 마법으로 막아 버린 덕분에 숙면을 방해하는 요소가 순식간에 사라져 버린 게 컸다.
역시 마법의 세계는 이런 점이 매우 훌륭한 듯싶다.
“아침부터 먹자, 애들아.”
곧 교수들의 준비하에 조촐한 아침 식사가 진행되었다.
아침 식사는 간단한 야채수프.
그러나 다들 어제 과식하기도 했고, 아침의 차가운 공기를 맞으면서 입맛이 달아났기 때문에, 학생들은 메뉴에 대해서 딱히 불평하지 않았다.
그리고 식사 후에는 자유 시간이 주어졌다.
학생들은 저마다 절벽 아래의 계곡으로 내려가 물놀이를 한창 즐겼다.
그리고 모두가 베이스캠프로 복귀하고 다시금 점심 식사를 끝마쳤을 때, 이미 시간은 오후가 훌쩍 넘어 있었다.
식사 이후의 정리가 모두 끝나자, 케이든 교수는 학생들을 집합시켜 오늘의 훈련 내용을 공지했다.
“오늘은 도주 훈련을 할 예정이다. 어제와는 다르게 너희들이 도주하는 것이지.”
또다시 훈련이라니.
물론 방금까지는 놀고 있었긴 했지만, 정말로 이건 수학여행이 아니라 체험 학습 내지는 병영 캠프 같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우리 셋은 고유 마법은 사용하지 않을 예정이다. 오로지 기초 마법만 사용해서 너희들을 추적할 예정이지. 나침반은 공지 전달 목적 이외에는 추적용으로는 사용하지 않을 거니까, 절대 버리지 말도록. 물론 너희들은 나침반을 사용하여 우리의 위치를 파악해도 좋다.”
‘고유 마법을 사용하지 않는다고?’
방출계 의료 마법의 이올렛 테오니르는 그렇다 치더라도, 케이든 교수님의 자기력 마법과 특히 아텔라 교수님의 공간 조작 마법의 봉인은 정말 큰 페널티였다.
이번 도주 훈련은 충분히 해 볼 만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게다가 본인들은 나침반을 사용하지 않겠다니.
그만큼 자신이 있는 건지, 아니면 학생들에게 기회를 주려는 건지 살짝 헷갈렸다. 이번 훈련은 누가 봐도 학생들 쪽이 매우 유리할 것이 분명했다.
“우리가 고유 마법을 사용하지 않는 만큼 이번 도주 훈련은 너희들에게 충분한 가능성이 있다. 아, 참고로 오늘 해가 저물 때까지 잡히지 않는 학생이 나온다면, 그 학생에게는 내 ‘대마법사전’ 강의에서 무조건 A 학점을 부여하겠다. 다들 슬슬 중간고사가 걱정될 테지. 열심히 도망쳐라, 애송이들아.”
“에에? A 학점이라고?! 전공 수업 A면 엄청 큰데?!”
“뭐, 뭐야. 이거 이렇게 쉽게 학점을 퍼 줘도 되는 거야……?”
“게다가 고유 마법을 사용 안 한다잖아? 진짜 해 볼 만한데?!”
“아무리 케이든 교수라도 고유 마법을 사용 안 하면 가능성이 있지 않을까?!”
케이든 교수가 보상으로 내건 학점에 눈이 먼 학생들은, 저마다 불끈불끈 의욕이 솟아오르고 있었다.
나 또한 이번 훈련은 자신 있었다.
그야 지금까지 아텔라 교수 밑에서 기초 체력을 확실히 길러 놨었고, 게다가 감지 마법이 있었기에 절대 잡히지 않을 자신이 있는 것이다.
“그럼, 지금부터 10분의 시간을 주겠다. 열심히 도망치도록.”
그 말을 신호로 학생들은 위저드의 협곡에 뿔뿔이 흩어져 도망치기 시작했다.
* * *
순식간에 사라지는 학생들.
“다들 의욕이 장난이 아닌데요?”
아텔라 교수가 깍지를 낀 양손을 하늘 위로 뻗으며 스트레칭을 하며 말했다. 아무래도 오랜만에 제대로 뛰어다닐 생각에 신이 난 모양이었다.
케이든 교수도 목을 까딱까딱 꺾으며 몸을 풀고 있었다.
“적어도 봐주지는 않을 겁니다.”
“그럼요, 당연하죠! 원래 1학년일수록 인생의 쓴맛을 빨리 깨우쳐야 하는 법이잖아요? 학점과 보상이라는 게 그리 쉽게 얻을 수 있다는 게 아니라는 걸 깨닫게 해 줄게요.”
“좋습니다.”
그런 둘의 의욕 넘치는 모습에 이올렛 테오니르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사실 이올렛도 다른 학생들과 마찬가지로, 이번 수학여행을 힐링 여행으로만 생각하고 있었다.
‘역시 랑켄 그 인간이 쉽게 보내 줄 때부터 알아봤어야 했는데…….’
그동안 랑켄 교수의 조교로 활동하면서 주말에도 빠짐없이 의무실에서 근무하던 이올렛 테오니르였다. 그리하여 조금은 휴식이 필요한 나머지 이번 수학여행에 동참하기로 한 것이다.
그런데 이 두 교수가 정말 의욕이 넘치는 열혈 교수였던 게 좀 큰 변수로 작용했다.
이올렛 테오니르는 크게 한숨을 쉬며 입을 열었다.
“두 분 정말 잘 어울리시네요.”
“자, 잘 어울리다니!”
이올렛의 말에 아텔라 교수가 당황해서 소리쳤다.
그 예상외의 반응에 이올렛은 재밌다는 듯 눈썹 한쪽을 치켜올렸다.
“어머, 버스에서부터 정말 죽이 잘 맞던데요?”
“…적당히 해라, 이올렛.”
“예예.”
그러나 곧 이올렛은 싸늘한 케이든 교수의 말에 쉽게 진압당했다.
“자, 그럼 가시죠.”
10분이 지났음을 알리는 알람이 울리자, 케이든 교수는 그들을 이끌고 추적을 시작했다.
* * *
어느덧 시간이 꽤 흘렀다.
벌써 해가 지기 시작하는 것을 보니, 30분만 더 버틴다면 훈련은 곧 종료될 것 같았다.
이미 학생들 대부분은 교수들에게 붙잡혀 베이스캠프로 귀환한 것으로 보였다. 그러나, 나는 여유가 있었다.
“너무 쉬운 거 아니야?”
자만할 수 있는 근거가 있었다.
그야 현재의 나는 감지 마법으로 케이든, 아텔라 교수 그리고 이올렛 선배까지. 모든 사람의 위치를 파악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다만, 현재 케이든 교수도 나의 그 교묘한 움직임을 눈치채고는 타깃을 나로 설정한 것으로 보였다. 아까부터 케이든 교수의 붉은 마나가 계속해서 내 뒤를 쫓고 있었다.
“수석을 제대로 밟고 싶다 이건가?”
나는 그런 케이든 교수님의 제자 사랑이 그리 싫지만은 않았다.
오히려 최선을 다해 절대 안 잡혀 줄 생각이었다.
그런데 그때, 위쪽에서 붉은 마나가 보이고 있었다.
그것은 다름 아닌 허공에 날아다니는 루비 버밀리온.
그런데 그녀도 벌써 몇 시간째 공중에 부유하고 있어서 마나를 많이 소모했는지 지쳐 보였다.
나는 그런 루비를 손짓으로 불렀다.
그러자 이내 루비 버밀리온은 중력 마법을 해제하고 지면에 착지했다.
“아직 살아 있었네?”
“너야말로. 그나저나 그 중력 마법 너무 사기 아니야? 교수님들은 고유 마법도 안 쓰시는데?”
다른 학생들의 고유 마법은 그렇다 치더라도, 아예 공중으로 날아다니는 루비 버밀리온을 고유 마법 없이 잡을 방법은 아예 존재하지 않았다.
나는 그런 루비 버밀리온이 조금 반칙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냐, 나도 이제 마나를 다 써서 조금 위험한걸?”
그런데 그때 멀리서부터 달려오는 짐승의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그것은 들개로 변신한 에이체스와 그 위에 탑승한 벅스였다.
“어이!”
친근하게 우리에게 말을 거는 벅스 버니로드.
‘저 녀석들, 아직도 살아 있었네.’
나는 녀석을 보자마자 또 무슨 꿍꿍이지? 라는 생각부터 들기 시작했다.
“뭐야, 왜 친한 척이야?”
“친한 척은 무슨. 섭섭한 소리를. 어차피 지금의 우린 도망쳐야 하는 동지잖아? 그런데 말이야. 우리가 조금 좋은 장소를 찾아냈거든. 바로 이 위저드 협곡의 던전을 발견했다 이 말이지.”
“던전?”
이곳에 던전이 있었나?
나는 좀 의문이 들었다.
“너희도 알다시피, 던전 안에 들어가면 추적이 불가능하잖아? 어때. 같이 갈래?”
지금 교수들이 우리를 추적할 수 있는 이유는 바로 기초 마법 중 하나인 감지 마법.
그런데 던전 안에 들어가 버리면 그 감지 마법 자체가 통하지 않기 때문에 훈련이 종료될 때까지 그 안에 가만히 있기만 하면 걸릴 일은 없었다.
“조금 쉬었다 가는 것도 나쁘진 않은데?”
“그런가?”
안 그래도 마나를 거의 다 소모한 루비 버밀리온은 녀석들의 말에 별 의심하지 않았다. 나는 솔직히 좀 미심쩍었지만, 속는 셈 치고 믿어 보기로 했다.
“좋아, 그럼 안내해 줘.”
* * *
눈앞에 보이는 동굴 같은 던전의 입구.
던전은 아까 있었던 위치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나는 진짜로 던전이 있을 거라고는 상상하지 않았기에 의외라는 생각이 들었다.
“거봐, 진짜로 있지?”
“그러네…….”
이 녀석들이 웬일로 좋은 일을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횡재인 건 맞았다. 나는 혹시나 해서 루비 버밀리온을 먼저 던전 안으로 들여보냈다.
역시나 루비가 던전 안으로 들어가자 더 이상 내 감지 마법은 그녀를 감지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리하여 나도 별 의심하지 않고 던전 안으로 들어가려 했다.
그런데,
퍼억.
갑자기 벅스 버니로드가 던전 안으로 발걸음을 내밀던 내 등을 확 밀어 버렸다. 그리고 나는 그 밀침에 동굴 안으로 굴러 넘어지게 되었다.
“이, 이게 무슨…….”
콰아앙!
그리고 갑자기 던전의 입구가 닫혀 버렸다.
나는 황급히 땅을 짚고 일어나 던전의 문을 두들겼다. 그러나 던전의 문은 꼭 닫힌 채로 열리지가 않았다.
“뭐 하는 거야? 당장 문 열어!!”
뜬금없는 감금에 루비 버밀리온은 눈이 휘둥그레져 있었다.
평상시에 존재감도 없는 에이체스와 벅스가 이런 짓을 하리라고는 상상도 못 한 모양이었다.
“뭐, 뭐야. 진짜 입구를 막아 버린 거야?”
“그런 거 같은데…….”
“왜?!”
“나야 모르지…….”
아무래도 더 이상 반응이 없는 걸로 보아, 이미 녀석들은 던전의 입구를 막고 도망친 모양이었다.
그렇게 우린 이 던전 안에 꼼짝없이 갇혀 버리고 말았다.
* * *
에이체스 저니맨과 벅스 버니로드는 제로와 루비 버밀리온을 가둬 놓고는 누가 볼세라 황급히 도망쳤다. 그리고 어느 정도 거리를 벌리자, 그들은 기분 나쁜 웃음을 지으며 방금의 성공을 자축했다.
“하하하하, 제로 녀석 표정 봤어?”
“아카데미에 들어온 이후로 최고로 통쾌한걸?”
그런데 벅스는 기분이 마냥 좋은 것만 같지는 않아 보였다.
“그나저나 에이체스, 괜찮은 걸까……?”
“왜? 뭐가 문제야.”
“아니, 루비 버밀리온까지 같이 가둬 버렸잖아. 그… 루비 버밀리온은 제페토가 좋아하고 있고…….”
에이체스는 그런 벅스의 말에 그를 이상하다는 듯 쳐다보았다.
“그게 어때서? 아니, 오히려 좋잖아? 생각 안 나? 이제 제페토 골드버그 녀석은 배신자야. 평민이랑 어울리는 수준 떨어지는 녀석이라고. 그런 녀석이 좋아하는 루비 버밀리온까지 한 방 먹였으니까, 최고잖아?”
“그, 그렇겠지?”
“그럼. 이제 그딴 녀석은 신경도 쓰지 말자고.”
그리고 이내 그들은 조금 전 자신들의 행위를 잊고서, 다시금 교수들의 추적을 피해 도망에 집중했다.
그리고 한참을 도망쳤을까.
“잠깐.”
그들을 멈춰 세우는 남자가 있었다.
그 남자는 귀까지 올라와 얼굴의 반을 덮는 이상한 터틀넥을 입고 있었고, 키는 180이 넘는 장신이었다.
남자에게서 느껴지는 포스가 강렬했고, 분위기가 너무나도 무거웠기에, 에이체스와 벅스는 어쩔 수 없이 멈춰 설 수밖에 없었다.
남자의 외형에 살짝 겁먹은 벅스가 조심스레 먼저 입을 열었다.
“무, 무슨 일이시죠?!”
“너희들, 칼루스 아카데미의 학생인가?”
“그, 그런데요……?”
얼굴이 반이나 덮여 있는 남자의 목소리는 너무나도 차가웠고, 또 강압적이었다.
“이 협곡 안에 결계의 던전이 어디 있지?”
남자가 묻는 것은 다름 아닌 위저드 협곡의 결계의 던전.
그 질문에 심상치 않음을 느낀 벅스 버니로드는 말을 더듬으며 변명하기 시작했다.
“그, 그게… 저희도 이곳에 처음 와서 잘… 모르는데요……?”
“저쪽으로 가시면 돼요.”
그런데 에이체스는 냉큼 손가락으로 결계의 던전 방향을 가리키며, 남자에게 위치를 알려 주었다. 벅스는 왜 사실대로 말했냐는 듯 에이체스에게 눈치를 주었다.
“…그래? 착한 학생들이로군. 칼루스 아카데미의 미래가 밝아.”
남자는 순순히 그 말을 믿고는 곧 에이체스가 가리킨 방향 쪽으로 사라졌다. 남자가 사라진 것을 확인한 벅스는 침을 꿀꺽 삼키더니 에이체스에게 항의했다.
“그, 그걸 솔직히 말하면 어떡해! 저 남자가 누군지 알고?!”
그러나 에이체스는 그런 벅스의 항의에도 아무렇지 않게 히죽 웃을 뿐이었다.
“뭐, 어때? 어차피 거기에 가 봤자 평민 녀석이랑 루비 버밀리온밖에 더 있어? 위험해 봤자, 게네가 위험하겠지. 게다가…….”
에이체스는 잠시 말을 멈추더니 이내 입술을 핥았다.
“저 남자, 조금 전 우리와 대화할 때 뒷짐 진 손에 마나를 모으고 있었어.”
만약 그들에게서 쓸 만한 정보를 얻지 못했더라면, 남자는 그들을 순식간에 해치웠을 것이다.
그런 에이체스의 말에 벅스는 그저 침만 꿀꺽 삼킬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