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아카데미의 무속성 마법사-52화 (52/175)

52화

* * *

위자드 협곡의 안티 매지션 출몰에 대한 연락을 받은 것은 공교롭게도 그 시각 마경 본부 사무실에 있었던 실베르 라인하르트였다.

아카데미 측으로부터 신고를 접수하자마자, 실베르 라인하르트는 긴급하게 마경 정예 몇몇을 동원하여 위자드 협곡으로 출동했었다.

그러나 위자드 협곡은 칼루스 아카데미의 사유지라 텔레포트 좌표가 마련되어 있지 않았기에, 최대한 신속하게 움직였음에도 그들이 위자드 협곡에 도착한 것은 이미 20분 가까운 시간이 흐르고 난 뒤였다.

마경이 들이닥치는 것을 멀리서 확인한 안티 매지션들은 곧바로 변신계 마법사를 이용, 상공으로 도주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곧 마경 측에서도 상공의 적을 추적할 수 있는 인원들이 안티 매지션들의 뒤를 따라붙었다.

부하들을 보낸 실베르는 다급하게 케이든이 있는 베이스캠프로 뛰어갔다.

그리고 그곳에는 수많은 시체의 산 가운데, 말없이 서 있는 케이든이 있었다.

“선배!!”

케이든의 온몸은 누구의 것인지도 모를 피로 시뻘게져 있었다.

보통의 사람이었으면 그 정도 출혈이면 그대로 즉사, 혹은 쇼크사여야 했다. 그럼에도 그는 꼿꼿이 그 자리에 서 있을 뿐이었다.

“서, 선배…….”

실베르는 다급히 케이든의 몸 상태를 살피고 강화 마법으로 응급조치를 취하려 했다. 그런데 그가 케이든의 몸에 손을 얹자, 여태까지 멀쩡하게 서 있던 케이든의 몸이 맥없이 무너져 내렸다.

실베르는 당황하며 쓰러지는 케이든을 두 손으로 받아 안았다.

케이든은 여전히 눈을 뜨고 있었다.

그러나, 이미 그의 몸은 허수아비처럼 모든 근육이 풀려 있었다.

단지, 그가 계속해서 눈을 뜨고 있었던 이유.

그가 이곳에 쓰러지지 않고 서 있었던 이유.

그것은 순전히 케이든의 의지력 때문이었던 것이다.

“선배, 설마 생명의 마나를 사용한 거야?!”

보통의 사람들은 생명의 근간이자 근원인 ‘생명의 마나’를 사용할 수 없었다.

그것을 인간이 사용하기 위해선 애초에 정신계 마법사의 도움을 받아 뇌를 조작하여 체내 한계를 뛰어넘어야 했다.

그러나 케이든은 오로지 스스로의 의지력으로 뇌내 한계를 뛰어넘은 것이다.

게다가 이미 케이든의 상태를 보아 그마저도 거의 한계까지 전부 사용한 모양이었다. 이미 그의 상태는 살아 있는 시체나 다름없었다.

“선배…….”

실베르는 조심스레 주먹을 쥐었다.

그리고 실핏줄이 터질 정도로 입술을 꽉 깨물었다.

“…누군진 모르겠지만 선배를 이렇게 만든 녀석들, 다 죽여 버릴게.”

그러나 그런 실베르의 말은 이미 의식을 잃은 케이든에게 전달될 리 없었다.

* * *

다음 날.

마경에서 파견된 조사단들이 아카데미를 방문했다.

그리고 그들에게는 일단 좋은 소식이 있었다.

그것이 과연 좋은 소식인지 아닌지는 잘 모르겠지만…….

조사단들 중 가장 계급이 높아 보이는 콧수염 달린 사람이 대표해서 어제 일의 이후 상황을 학생들에게 설명해 주었다.

“어제 마경이 현장에 도착했을 당시, 저희는 아직 숨이 붙어 있는 케이든 교수를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케이든 교수는 현재 저희 마경의 내부 의료 기관에 이송되었고 다행히 목숨을 건질 수 있었습니다. 다만 전투 과정에서 과도한 양의 생명의 마나를 사용했기에 언제 의식을 회복할 수 있을지는 지켜봐야 할 것 같습니다.”

나는 조사관의 말을 듣고는 숨이 멎는 듯했다.

‘정말 다행이다…….’

케이든이 살아 있다는 것은 천만다행이었다.

아직도 위자드 협곡에 홀로 남겨졌던 그의 뒷모습이 아른아른했다.

학생들을 지키기 위해 존재했던 그의 듬직하고 넓은 등.

혼자 베이스캠프를 지키며 수백 마리의 마인과 싸웠을 케이든 교수님을 생각하면 가슴이 먹먹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그가 아직 의식을 회복하지 못했다는 사실이 걱정스러웠다.

‘부디 제발 일어나 주세요…….’

나는 조용히 중얼거릴 뿐이었다.

조사관은 이어서 위자드 협곡을 습격한 범인들이 어떻게 됐는지도 설명하기 시작했다.

“사건 현장에 도착했을 때, 안티 매지션들은 곧바로 도주하였고 저희 인력들은 최선을 다해서 녀석들을 추적했습니다만, 결국 체포에 실패했습니다. 정말, 여러분께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조사관은 머리에 쓴 제복 모자를 벗고는 꾸벅 허리를 굽혔다.

살짝 벗겨진 조사관의 머리로 보아 그의 나이는 최소 40, 50대로 보였지만, 학생들을 대하는 태도가 매우 정중했다.

“저희는 녀석들에 대한 정보, 능력, 하다못해 이름까지. 아무것도 파악하지 못했습니다. 저희 마경의 무능함을 정말 진심으로 여러분들께 사과드리겠습니다. 다만, 그렇기에 여러분들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지금부터 여러분들에게 간단한 조사를 진행할 예정입니다. 다들 모쪼록 협조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학생들 중 아무도 이 조사 시간에 대해 이의를 갖는 사람은 없었다. 모두들 어젯밤 일어난 충격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었고, 자신들을 지키기 위해 위자드 협곡에 홀로 남은 케이든 교수의 뒷모습을 머릿속에서 떨쳐 내지 못하고 있었다.

그렇게 마경은 순차로 조사를 진행했다.

아우레인의 학생들은 복도에 대기하다가 조사관을 위해 마련된 강의실로 한 명씩 호출돼서 간단한 인터뷰를 받게 되었다.

나도 조용히 고개를 숙인 채, 그저 복도의 벽에 기대앉아 내 차례를 기다리고 있을 뿐이었다.

그런데 그때, 옆에 앉아 있던 루비 버밀리온이 말을 걸어왔다.

“저기…….”

“으응……?”

“어제 어떻게 된 거야……?”

지난밤의 충격에 잠겨 있던 나는, 루비 버밀리온이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단번에 이해하지 못했다. 그리고 이내 루비가 어젯밤 기절해 있었다는 사실을 떠올리게 되었다.

“음……. 우리가 있던 던전이 사실은 위자드 협곡의 결계를 관리하는 던전이었어. 그리고 그것을 노리고 안티 매지션의 간부가 들어왔던 거고. 그것도 원소계 빙결 마법사가.”

“그럼, 그 원소계 마법사는… 해치웠던 거야?”

“응, 운 좋게 처리할 수 있었어. 그 뒤로 의식을 잃은 너를 데리고 베이스캠프로 복귀했던 거야.”

그러고 보니 우리가 그 던전 안에 갇혀 있던 이유가 갑자기 생각났다.

나는 슬며시 에이체스와 벅스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조금 전까지 내 쪽을 보며 속닥거리고 있던 그들은 황급히 내 시선을 회피했다.

“일단 우리가 던전에 갇혀 있던 이유는 말하지 말자. 그냥 그 이후의 이야기만 설명하자.”

“저 녀석들을 감싸 줄 거야?”

“어쨌든 저 녀석들이 안티 매지션이 올 거라고 생각해서 우릴 거기다 가둬 놓은 건 아니라고 봐. 우연의 일치겠지, 뭐. 이번 안티 매지션 습격 사건과 우리가 동굴에 갇혀 있게 된 것은 별개의 일이니까, 괜히 수사에 혼란을 주고 싶지는 않아.”

“응…….”

그건 그거고.

나는 또다시 에이체스와 벅스를 노려보았다.

저 자식들이 우릴 그곳에 가둬 놨기 때문에, 하마터면 큰일 날 뻔했었다.

나는 저 자식들을 용서하지 않을 심산이었다.

“…구해 줘서 고마워.”

루비 버밀리온이 나지막이 내게 감사의 말을 전했다.

나는 그녀의 말에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케이든 교수님이 괜찮으셔야 할 텐데…….”

그리고 나는 이번 일이 단순히 이 정도로 끝이 아닐 것을 매우 잘 알았다. 앞으로의 일에 대한 근심을 떨쳐 낼 수 없었다.

“제로 학생, 들어와 주세요.”

이내 내 이름이 호명되고, 나는 임시 조사실인 강의실 안으로 들어섰다.

안에는 마경 제복을 입은 아까의 그 조사관이 책상 앞에 앉아 있었다.

그리고 그의 뒤로는 평상복을 입고 있는 은색 장발의 남자가 벽에 기대어 팔짱을 끼고 있었다.

그는 내 시선을 느끼자 고개를 휙 돌렸다.

“그럼, 제로 학생. 사건 당시 어디에 있었나요?”

내가 책상 앞에 놓인 의자에 앉자, 콧수염의 조사관은 천천히 사건 당시 경위부터 묻기 시작했다.

“저는 결계 관리실에 있었어요.”

“결계 관리실에요? 거긴 왜 있었죠?”

“그때 당시 도주 훈련을 받고 있었거든요. 그래서 교수님들을 피해 루비 버밀리온과 같이 결계 관리실에 숨어 있었어요. 그런데, 그 안으로 안티 매지션의 간부가 들어 온 거예요.”

“간부가요?!”

“네.”

계속 대답하던 나는 지금의 조사가 의미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이내 그들에게 내가 알고 있는 정보를 전부 공유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녀석들은 ‘블랙잭’이라는 단체입니다.”

“블랙잭?!”

그때, 벽에 팔짱을 끼고 기대 있던 남자가 갑자기 감시관의 자리를 뺐더니 내 앞에 앉았다.

평범한 티셔츠에 찢어진 바지.

아무리 봐도 마경 소속으로는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조사관은 그에게 밀쳐진 이후, 조용히 뒤로 물러났다.

눈앞의 남자는 20대 후반 정도로 보이고 뒤쪽의 조사관은 못해도 40세는 넘어 보였는데, 그러한 무례한 행동으로 보아, 딱 봐도 눈앞의 남자가 더 계급이 높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위자드 협곡을 습격한 녀석들의 조직이 블랙잭이라는 거야?!”

“네. 그리고 결계 관리실에 들어온 녀석은 블랙잭의 간부 중 클로버라는 녀석이에요. 원소계 마법사로 고유 마법은 빙결 마법이죠.”

내 거침없는 대답에 은발의 남자는 잠시 말문이 막힌 듯했다.

그러다 이내 책상 위로 두 손을 내리찍고는 나를 향해 머리를 들이밀었다.

“너, 그걸 어떻게 그렇게 자세히 아는 거지? 설마 녀석들과 접점이 있는 건가?”

남자의 다그침에, 이대로면 내가 오해받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하여 나는 다급히 변명 거리를 만들었다.

“아, 아뇨. 저도 결계 관리실에 들어온 클로버로부터 들은 거예요. 녀석들, 블랙잭은 우리 중에 누군가를 노리고 있었어요.”

“누군가를 노리고 범행을 저질렀다? 그게 케이든 선배인 거야?”

케이든 선배?

분명 상대방은 케이든 교수님을 선배라고 부르고 있었다.

나는 잠시 고개를 갸우뚱했지만 이내 남자의 말에 대답했다.

“그건 잘 모르겠어요. 녀석들의 목적이 케이든 교수님인지 아니면 그 밖에 다른 사람들인지는…….”

“그래, 그렇다는 얘기지? 일단 선배가 있는 의료기관의 경비를 강화해야겠네.”

눈앞의 남자는 뒤에서 수첩을 끄적이고 있는 조사관에게 슬쩍 턱짓을 보냈다.

그러자 그것을 본 조사관이 고개를 끄덕였다.

“더 아는 건 없어?”

“제가 알고 있는 건, 이게 전부예요.”

나는 이제 더 이상 말해 줄 게 없었다.

사실상 이 남자에게 말한 정보가 내가 블랙잭에 알고 있는 정보의 전부이기도 했다. 그만큼 ‘아카마’에서 블랙잭에 관한 정보는 제한적이었으니까.

눈앞의 남자는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어이, 너 이름이 뭐냐?”

“저는 제로라고 합니다.”

“이건 내 명함이다.”

그는 책상 위에 명함을 툭 던졌다.

그리고 나는 그 명함을 집어 든 채 내용을 확인했다.

[마경 본부]

* 실베르 라인하르트 차장

‘차장……? 차장이라면 마경청장 바로 다음이라고 이 사람이?!’

눈앞의 건들거리던 남자의 정체는 바로 마경청장 올리비아 페리윙클 다음으로 마경에서 높은 보직이었던 것이다.

아무리 마경이 실력주의의 조직이라고는 하지만, 고작 해 봤자 서른 살도 안 돼 보이는 눈앞의 남자가 차장의 직급을 가지고 있다니 조금 놀라웠다.

그러나 놀라움은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강화계 권좌.”

최근에 추가되었는지 명함의 가장 아랫부분에 적혀 있는 내용.

나는 그것을 아무 생각 없이 소리 내어 읽고 말았다.

“강화계 권좌셨어요?!”

눈앞의 남자가 강화계의 권좌였다니.

‘아카마’에서 이런 인물의 등장은 없었기에 당연히 권좌일 거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하고 있었다.

새삼 스스로가 이 세계에 대한 디테일한 정보를 별로 알고 있지 못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실베르는 그렇게 놀라진 말라는 듯 손을 훠이훠이 저었다.

“그래 그래, 맞아. 아무튼 또 알게 된 사실이 생기거나 말하고 싶은 게 생기면 거기 명함에 적힌 곳으로 연락해 줘. 나도 꼭 이 사건을, 그리고 그 블랙잭이라는 녀석들을 감방에 잡아넣고 싶거든.”

그리고 실베르 라인하르트는 뒤에 가만히 서 있던 조사관을 슬쩍 쳐다보았다.

“그럼 이만 복귀하자. 얻을 정보는 이 정도로 충분한 것 같다. 이 꼬맹이가 알려 준 정보를 바탕으로 먼저 수사를 시작해 보자고.”

“예! 차장님!”

그리고 실베르는 슬며시 일어나더니 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었다.

“그럼, 다음에 보자, 꼬맹이.”

그리고 이내 실베르는 강의실 문밖을 나섰고, 그 뒤로 감시관과 마경의 인원들이 따라 나갔다.

뭔진 몰라도 케이든 교수님을 선배라고 부르는 남자.

게다가 마경의 2인자이자 강화계의 권좌라니…….

조금 든든한 아군을 얻은 느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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