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3화
* * *
원래대로였으면, 이번 주는 수학여행에서 복귀한 후 정상 수업이 진행될 예정이었다.
그러나 수학여행에서 일어난 불미스러운 일로 인해, 아우레인의 학생들은 정상적으로 수업을 진행할 수 없게 되었다.
따라서 아카데미 측은 아우레인 기숙사 학생들에게 다음 주까지 휴식을 권고했다.
다만, 이번 사건이 아우레인 기숙사 학생들 중 한 명을 노린 일일 수도 있으리라는 내 제보에 의해, 학생들은 이 휴식 기간 동안 아카데미 외부로 멀리 나갈 수 없게 되었고, 잠깐 마을에 외출하는 것도 3인 이상 같이 행동하게끔 조치되었다.
그리하여 나는 이번 휴식 기간 동안 따로 특훈의 시간을 갖기로 했다.
당장 눈앞에 모습을 드러낸 안티 매지션들에게 위기의식을 느끼기도 했고, 스스로도 좀 더 강해지고 싶다는 욕심이 생겼기 때문이었다.
당연히 특훈의 장소가 될 곳은, 던전들이 마련되어 있는 아카데미의 숲이었다.
물론 저번에 아카데미의 숲에 들어갔다는 이유로 실라이 샌드윅스와 트러블이 있었기도 했지만, 어쨌든 그 부분은 이미 해결된 일이기에 더 이상 꺼릴 이유가 없었다.
무엇보다도 지금은 진짜로 수련과 성장이 필요한 시점이었다.
그리하여 거의 일주일 가까이 되는 이 휴식 기간 동안, ‘군주급’의 던전에 도전하기로 마음먹은 것이다.
일반적으로 숲의 인스턴트 던전들, 그리고 지금까지 수행해 왔던 던전의 난이도는 높아 봤자 ‘보스급’.
그리고 이번에 도전할 군주급은 위자드 협곡에서 봤던 라이오넬급의 보스가 있는 던전이었다.
‘가능하겠지……?’
마음속으로 든 의문.
그러나 나는 이내 고개를 저었다.
적어도 이 정도가 되지 않으면 특훈의 의미는 없을 것이다.
게다가 ‘아카마’에서도 제이드로 군주급 던전을 클리어한 경험이 한 번 있었다.
다만, 여러 번 도전하지 않았던 이유는 그만큼 던전의 난이도가 어려웠기도 했고, 클리어에 소요되는 시간이 거의 2, 3일이 넘게 걸렸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마침 지금의 나에게는 시간적 여유가 있었다.
더더욱 군주급 난이도의 던전조차 클리어하지 못한다면 앞으로 다가올 블랙잭의 침공에 맞서 싸우지 못할 것이라는 판단이었다.
‘게다가 군주급 난이도의 던전은 클리어하고 나서의 보상도 엄청나고 말이야.’
무엇보다도 재화와 아이템 파밍은 매우 중요했다.
지금은 우연히 영웅의 아티팩트를 얻는 기연에 의지하기보다는, 성실한 파밍을 기반으로 한 성장이 필요한 시점이었다.
그러나.
그렇다 하더라도 이번에 도전할 던전은 ‘군주급’ 던전.
위자드 협곡에서의 경험을 생각해 보면 절대 만만한 난이도가 아니었다.
나는 아무리 그래도 혼자보다는 같이 가는 게 더 좋으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만, 인원수가 너무 많으면 또 숲에 들어가는 모양새가 좀 그러니까 딱 한 명 정도.
‘이번엔 그 녀석을 데리고 갈까…….’
순간 내 머릿속에 떠오르는 녀석이 한 명 있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제페토 골드버그’.
이번 수학여행부터 뭔가 나와 친해지고 싶어 하는 눈치였었고, 게다가 그 녀석 이미지가 그래서 그렇지, 상당히 강한 실력자이기도 했다.
애초에 ‘아카마’에서도 제이드 다음으로 강한 2인자였고, 이번에 비무제에서도 우승한 녀석이니까 군주급 던전에 도전하기에는 더할 나위 없는 파트너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하여 나는 마경에 의해 조사를 받은 날 밤, 제페토 골드버그를 찾아갔다.
녀석의 방앞에 도착한 나는 두어 번 방문을 두드렸다.
똑똑.
“누구냐!”
방 안에서는 신경질적인 목소리가 들려왔다.
시간이 시간인지라, 제페토는 벌써 자려고 누워 있던 참인 것으로 보였다.
나는 그 목소리에 살짝 웃음이 나와 키득거렸다.
“나다.”
그러자 안에서는 또다시 궁시렁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어떤 자식이, 감히 내 방문을 두드려?!”
이윽고 들려오는 슬리퍼를 질질 끌며 방문 쪽으로 다가오는 소리.
그리고,
쾅!
거칠게 열리는 문과 함께 제페토가 얼굴을 내비쳤다.
“어떤 놈이… 어?! 제, 제로……?!”
녀석은 나를 보자마자 얼굴에 잔뜩 쓴 인상을 풀고는 당황한 얼굴로 나를 쳐다보았다.
그리고 당황한 것은 나도 마찬가지였다.
그 이유는 바로 그가 입고 있는 차림새.
제페토 골드버그는 곰돌이 무늬가 가득한 하늘색 잠옷을 입고 있었다. 항상 가르마를 타던 금발은 머리띠로 넘기고 있었고, 게다가 발에는 매우 푹신푹신해 보이는 털 실내화까지 신고 있었다.
제페토 골드버그의 잠옷 차림은 평소 녀석의 사나워 보이고 신경질적인 이미지와 다르게 꽤나 유치해 보였다.
그 어울리지 않은 모습에 순간 당황했던 나는 이내 실소를 내뱉었다.
“풉…….”
“왜, 왜 웃는 거냐!!”
갑자기 웃기 시작한 나에게 제페토는 말을 더듬으면서도 항의하는 듯 얼굴에 핏줄을 세웠다. 나는 그 모습에 또다시 한참을 웃다가 이내 용건을 꺼냈다.
“너, 이번 주에 뭐 해?”
“뭐 할 거냐니?”
“할 거 없으면 나랑 내일 던전 소탕이나 할래?”
“던전?”
내 말에 제페토는 솔깃하다는 듯 되묻고 있었다.
애초에 예상한 바이기도 했다.
제페토 골드버그는 승부욕 하나는 끝내주는 녀석이었으니까.
“다음 주까지 좀 여유가 있잖아? 이번에 군주급 던전에 가려 하는데 같이 가지 않을래?”
“군주급?! 갈게! 당연히 가야지.”
역시나.
제페토는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그런 제페토를 보고는 씨익 미소를 지었다.
“그럼, 내일 보자.”
용건을 모두 말한 나는, 살짝 하품하며 졸린 눈을 비비는 제페토 골드버그를 뒤로한 채 내 방으로 복귀했다.
* * *
다음 날.
아우레인 기숙사의 뒤편.
“제페토 녀석, 은근히 늦잖아?”
벌써 약속한 지 10분가량의 시간이 지났다.
그럼에도 제페토 녀석은 아직 올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었다.
“설마 까먹었나? 아니면 늦잠?”
물론 시간적 여유는 있었기에 나는 인내심을 가지고 제페토를 기다려 주기로 했다.
그리하여 제페토 골드버그가 약속 장소에 도착한 것은 그로부터 또 10분이 지난 뒤였다.
“느, 늦었나?!”
시뻘게진 얼굴로 헥헥대면서 뛰어오는 제페토 골드버그.
그런데 그 뒤로 사람 한 명이 더 있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캐서린 골드버그였다.
“뭐야? 왜 늦었어?”
“아니, 그게……. 이년… 아, 아니 캐서린이 계속 따라온다고 달라붙어서.”
“제, 제가 언제 달라붙었나요?!”
제페토의 말에 캐서린은 당황한 듯 고개를 돌렸다.
그러고는 이내 조심스레 내 얼굴을 흘깃거리며 입을 열었다.
“저도… 따라가도 될까요……?”
나는 그 모습에 씨익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런데 괜찮겠어? 지금부터 갈 곳은 군주급 던전인데?”
“걱정 말아요. 적어도 발목을 잡지는 않을 거니까.”
“알았어.”
애초에 그다지 거절할 생각도 아니었지만, 캐서린의 눈빛은 꼭 데려가 달라는 비장함이 느껴지고 있었다. 그리하여 나는 웃으며 캐서린을 반겼다.
그렇게 군주급 던전 토벌 파티는 캐서린 골드버그를 포함해서 3인 파티가 되었다.
‘그러고 보니 소환사 파티잖아?’
이 골드버그의 쌍둥이 남매야 소환계 영웅의 가문 출신이니까 당연히 사역마를 소환하고, 나도 골드버그의 아티팩트로 매기를 소환할 수 있었다.
사역마를 다루는 소환사끼리 파티를 형성할 때의 이점은 바로 앞의 탱커 라인이 든든하다는 것인데, 거기에 내 매직 미사일의 원거리 지원까지 있으니 나름 밸런스가 좋은 파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 가 볼까?”
그리하여 우리는 군주급 던전을 향해 숲속으로 들어가기 시작했다.
군주급 던전은 일반적인 인스턴트 던전과는 다르게 숲의 매우 깊은 곳에 있었다.
숲속으로 깊숙이 들어갈수록 숲에 서식하는 위험한 마물들을 만날 가능성이 있었기에, 나는 일단 매기를 소환하여 정찰을 보냈다.
역시 매기는 원래 정찰에 특화된 도깨비불이어서인지, 우리를 마물이 없는 안전한 루트로 잘 안내해 주었다.
앞장서서 길을 걷고 있던 나는, 문득 제페토와 캐서린에게 궁금증이 생겼다.
“그런데, 둘이 굉장히 친해 보이네?”
굳이 제페토가 가는 곳을 캐서린이 따라오다니, 어지간한 남매 사이에서는 흔히 볼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러나 둘의 반응은 내 예상과는 상당히 달랐다.
“이년이랑 내가?!”
“제가요?! 설마요!”
“…사이가 나쁜 건가……?”
이상하다.
분명 동생을 구해 준 게 고맙다며 자존심마저 버렸던 제페토 아니었나?
나는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그 이유를 물어보았다.
“그럼 왜 사이가 나쁜 건데?”
“그, 그건…….”
“뭐, 그거야 이유는 한가득이죠.”
“뭔데?”
내 질문에 캐서린 골드버그는 술술 과거사를 읊기 시작했다. 마치 그 모습은 지금껏 말하고 싶던 걸 참느라 힘들었다는 듯이 느껴졌다.
“어렸을 때 일이에요. 저는 오라버니와 다르게 마법에 소질이 그다지 없었어요. 그런데 하루는 오라버니가 저에게 고유 마법을 가르쳐 준다고 따라오라는 거예요. 그러더니 갑자기 강물에 저를 빠뜨리더라고요. 그때 저는 고작 열세 살이었고, 날씨는 추운 한겨울이었는데 말이죠.”
“그, 그거야… 충격을 받으면 고유 마법에 더 일찍 각성할 수 있으니까……. 그, 그 뒤로 내가 건져 줬잖냐!”
“거기서 끝이 아니에요. 오라버니는 그 뒤로도 그 ‘충격 요법’을 위해서 갖은 짓을 반복했어요. 하루는 잠자는 제 눈앞에 촛불을 들이밀었어요. 잠에서 깬 저는 깜짝 놀라서 자리에서 일어났고, 촛불은 제 머리카락을 홀랑 다 태워 먹었었죠. 또 하루는 쥐 떼들이 가득한 하수도에 저를 가둬 놓았던 적도 있었고요.”
“…….”
제페토는 더 이상 할 말이 없다는 듯 입을 꾹 다물어 버렸다.
캐서린 골드버그의 이야기를 듣고 있던 나는 그녀의 얘기에 조금 충격받았다.
‘오히려 지금 이렇게 같이 있다는 것만 해도 기적 아닌가……?’
아무리 어린 시절 얘기라지만, 제페토가 조금 선을 넘었다는 생각이 들고 있었다.
“게다가 또…….”
“자, 잠깐만! 네년이 포트래빗 가문의 꼬맹이들에게 잡혀 괴롭힘 받고 있던 걸 내가 구해 줬던 적도 있을 텐데? 왜 그런 것만 기억하는 것이냐?!”
“…그것도 오라버니가 저를 창고에 가둔 뒤에 포트래빗 가문 애들을 직접 불러오셨다는 것을 잘 알고 있으니까요.”
“…….”
들으면 들을수록 가관이었다.
원래 남매 사이는 그리 좋지 못한 게 당연했다.
현실에서도 우애 깊은 남매는 찾기 드문 이야기니까.
그러나 둘의 관계는 단순히 사이 나쁜 남매 수준 그 이상이었다.
“그런데 잘도 제페토를 오라버니라고 불러 주네?”
“그거야 오라버니라고 부르지 않으면 죽여 버린다고 협박했었으니까요. 너무 어렸을 때부터 세뇌당한지라 이젠 익숙해진 거예요.”
“저런…….”
그 말을 들은 나는 캐서린이 많이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아무 말 못 한 채 고개를 푹 숙이고 있는 제페토 쪽을 넌지시 바라보았다.
‘그런데 아무리 봐도 동생을 싫어하는 거 같지는 않은데…….’
애초에 그랬으면 자존심을 꺾고 나에게 머리 숙이는 일조차 없었겠지.
그냥 제페토 골드버그의 동생에 대한 애정이 그동안 많이 삐뚤어져 있던 것 같았다.
물론, 표현이 서툴다고 캐서린에게 했던 행동들이 용서되는 것은 아니겠지만.
나는 캐서린이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한편으로는 그녀에게 제페토도 나름 동생을 생각한다는 것을 알려 주고 싶었다.
그리하여 나는 캐서린의 마인화 이후 나에게 찾아와 머리를 숙인 제페토의 얘기를 입 밖으로 꺼내기 시작했다.
“그런데 캐서린. 너무 오빠를 미워하지는 마.”
“왜요?”
“네가 마인화된 이후에 너네 오빠가… 읍… 읍……!”
순간 제페토 골드버그가 내 입을 틀어막았고, 그리하여 나는 말을 다 잇지 못했다.
제페토는 내 눈을 바라보면서 제발 말하지 말아 달라는 굉장히 간절한 눈빛을 짓고 있었다. 아무래도 오해를 푸는 것보다는 자신의 부끄러운 과거를 숨기고 싶은 마음이 더 큰 것 같았다.
나는 그런 제페토를 존중해 주기로 했다.
아무래도 남매 사이는 본인 스스로가 해결해야 될 문제이니까.
- 끼룩!
그때, 앞장서서 정찰하고 있던 매기가 우리를 불렀다.
한창 담소를 나누고 있던 우리는 마침내 군주급 던전의 입구에 도착하게 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