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아카데미의 무속성 마법사-54화 (54/175)

54화

* * *

한편 마경 본부 차장실.

실베르 라인하르트는 잠시 턱을 괴고 생각에 잠겨 있었다.

그런데 그때, 그토록 기다리던 희소식이 찾아온 것이다.

“차장님! 현장 마나 복원 결과가 나왔습니다!”

차장실을 박차며 들어온 부하 직원의 다급한 목소리.

실베르는 눈을 번뜩이며 자리에서 번쩍 일어났다.

“그래?! 빨리 내 모니터로 연결해 줘.”

“네! 알겠습니다!”

부하 직원이 다시 차장실을 나간 뒤, 잠시 후 차장실의 모니터에서는 위자드 협곡의 당시 마나 분석 자료가 서서히 나타나고 있었다.

마법사 간의 전투가 일어난 곳 현장에는 보통 그 여파로 인한 마나의 흔적이 남기 마련이었다. 그리고 마경에서는 그 마나의 흔적을 복원하여 이미지화할 수 있었다.

다만 이번 사건의 블랙잭 녀석들은, 철두철미하게 흔적들을 대부분 지우고 도주했다는 것이 문제였다.

그리하여 마나 복원 작업에도 긴 시간이 소요됐었고, 게다가 작업 이후에 나타난 이미지도 흐릿해서 대부분의 신원을 파악할 수 없었다.

실베르 라인하르트는 그 흐릿한 이미지들을 조심스레 넘기며 꼼꼼하게 확인해 나갔다.

그중에는 케이든 선배의 모습으로 추정되는 이미지도 간간이 보이고 있었다.

“선배…….”

실베르는 화면 속 케이든으로 추정되는 이미지를 보며 주먹을 터질 듯이 세게 쥐었다.

케이든은 아직도 눈을 뜨지 못한 채 마경의 의료 기관에 누워 있었다.

사실 마경의 최첨단 의료 시설과 의료진들의 실력이라면, 외상 정도는 순식간에 치료되는 부분이었다. 그러나, 케이든의 경우에는 외상도 심각했지만 무엇보다도 ‘생명의 마나’를 고갈한 상태라는 게 문제였다.

생명의 마나는 애초에 생명의 근간이라 의료계 마법사들이 쉽게 치료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고, 그렇다고 딱히 방법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사실상 ‘생명의 마나’를 고갈하고도 살아 있다는 것만 해도 기적이라 여겨지는 상황인 것이다.

“…응?”

그런데 그때.

희미해서 식별조차 잘되지 않는 이미지를 넘겨 보던 실베르는 무언가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그것은 이미지 속 케이든의 선글라스에 비치는 흐릿한 잔영.

복원된 이미지 자체는 손상이 심해 식별할 수 없었지만, 케이든의 선글라스에 비친 잔영은 형태를 알아볼 수 있을 만큼 윤곽선이 선명했다.

실베르는 바로 그 흐릿한 이미지를 확대하고 복구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곧 실베르가 그곳에서 확인할 수 있었던 것은.

“…하이젤? 하이젤 트레이슨?!”

7년도 넘게 본 적 없었지만, 잊을 수 없는 그 얼굴.

그곳에서 확인할 수 있는 것은 분명 얼굴에 주근깨가 가득한 하이젤 트레이슨이었다.

선글라스에 비친 상대의 위치로 보아, 녀석은 케이든과 정면으로 마주하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희미한 이미지들을 나열해 봤을 때, 케이든과 대치하고 있는 상대는 곧바로 전투에 돌입하지 않고, 꽤 오랫동안 대화를 나누고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진짜 하이젤 트레이슨이라고?! 그럼 현장의 마인 시체들은 전부 녀석의 짓인가……!”

실베르는 탄식과 함께 이마에 손등을 올리며 허리를 의자 등받이에 기대 뒤로 젖혔다. 이내 눈을 감은 실베르의 머릿속에는 10년 전의 기억이 새록새록 떠오르고 있었다.

* * *

기억의 궁전이라는 말이 있다.

그것은 자신의 지난 과거에서 절대 잊지 못할 특정한 장소를 뜻하는 말이다.

그리고 10년 전 케이든 선배를 만난 강력 3팀 사무실.

그것이 실베르 라인하르트가 가지고 있는 기억의 궁전이었다.

실베르 라인하르트는 아카데미 시절 나름 수석의 자리를 놓치지 않고 있었기에, 아카데미를 졸업하자마자 마경에 들어갈 수 있게 되었다.

그런 그에게 함께 마경에 입사하게 된 동기가 한 명 있었다.

그 동기도 마찬가지로 칼루스 아카데미의 출신이었는데, 아카데미 내에서 몇 번 마주쳐 얼굴이 낯설지는 않았지만 다른 기숙사이기에 별 교류는 없던 녀석이었다.

첫 출근날.

마경의 사무직원은 실베르와 그 동기를 어느 사무실 앞으로 데려오더니 복도에 있는 의자에 앉아 잠시 대기하라고 했었다.

그리고 곧 둘 사이에는 어색한 침묵이 흘렀다.

옆을 흘끔 보니 녀석은 주황색 곱슬머리에 얼굴에는 주근깨가 가득한 어찌 보면 평범한 인상의 남자였다.

둘 사이의 무거운 공기를 참을 수 없던 실베르는 먼저 동기에게 인사를 건넸다.

“안녕! 난 실베르 라인하르트야. 앞으로 잘 부탁해, 동기.”

“그래.”

그러나 돌아온 대답은 너무나도 무뚝뚝한 대답.

실베르는 거기서 살짝 얼떨떨했지만 그래도 어쨌든 입사 동기고 같은 아카데미 출신이었기에 조금 인내심을 가지기로 했다.

“만나서 반가워, 그런데 이름이 뭐야?”

어떻게 보면 평범하다고 볼 수 있는 무난한 대화 수순.

그러나 돌아온 것은 녀석의 급발진이었다.

“눈 없어? 굳이 묻는 이유가 뭐야?”

녀석은 대답 이후에 자신의 제복 상의에 달린 명찰을 콕콕 가리켰다.

그곳에 적혀 있는 이름은 ‘하이젤 트레이슨’.

실베르는 하이젤의 신경질적인 대답에 조금 어이가 없었다.

그러나 입사 첫날부터 동기와 싸울 정도로 실베르가 멍청하진 않았기에 그냥 신경을 끄기로 하고 고개를 돌렸다.

이후 둘 사이에는 또다시 어색한 침묵이 흘렀다.

아무리 평상시에 스스럼없고 넉살 좋은 실베르였어도, 하이젤의 태도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종류의 것이었다.

이윽고 사무실 쪽에서는 둘을 부르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들어와라.”

안으로 들어가자 눈에 들어오는 것은 넓은 사무실 공간이었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그 넓은 사무실에는 책상 하나와 의자 하나밖에 없었다.

곧 사무실 안쪽 책상에 다리를 올린 채 앉아 있던 남자는 사무실 안으로 들어온 실베르와 하이젤을 확인하더니 책상에서 일어났다.

그는 마경의 제복을 입고 있었고, 까만 선글라스를 쓰고 있었다.

그리고 그의 오른쪽 가슴 부근에 달린 명찰에는 ‘케이든’이라는 이름 석 자가 쓰여 있었다.

“너희가 이번에 발령된 신입인가.”

케이든의 낮고 차가운 목소리.

처음 그를 봤을 때, 실베르는 케이든이 엄청 무뚝뚝하고 냉혈한처럼 느껴졌다.

“네! 실베르 라인하르트라고 합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하이젤 트레이슨입니다.”

“그래. 이번에 강력 3팀의 팀장을 맡게 된 케이든이다.”

실베르는 하이젤의 짧은 대답에 무심코 녀석을 곁눈질로 흘겼다.

그러나 케이든은 하이젤의 버릇없는 어투를 그다지 신경 쓰지 않는 것으로 보였다.

“보다시피 강력 3팀은 이번에 신설된 부서라 인원은 너희가 전부다.”

“예에?! 저희 둘이 전부라고요……?”

“강력 3팀은 나를 필두로 소수 정예로 이뤄질 예정이다. 게다가 현장 일은 대부분 도맡을 예정이지. 뭐, 어른들의 사정이라고 보면 된다. 모종의 이유로 내가 윗대가리들에게 좀 밉보여서 말이야.”

이제 막 사회로 나온 실베르 라인하르트의 입장으로서는 케이든의 말이 이해되지 않았다.

다만, 어쨌든 소수정예라는 케이든의 말은 사회 초년생 실베르의 심장을 두근거리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아카데미에서 나름 유망한 녀석들이라고 들었다. 앞으로 너희들은 빡세게 굴려질 예정이니까, 그만큼 빠른 성장을 기대한다.”

“예! 팀장님!”

“아, 나는 해 봤자 너희들이랑 연차가 2년밖에 나지 않는다. 그냥 편하게 선배라고 부르도록.”

“예! 선배님!”

“님 자도 빼도 좋다.”

“예! 선배!”

실베르는 우렁찬 목소리로 연신 대답했다.

반면 옆에 서 있는 하이젤은 여전히 삐딱한 태도를 보일 뿐이었다.

그러나 실베르는 이제 동기의 태도 따위는 아무런 상관이 없었다.

그저 지금부터 정식으로 마경의 일원이라는 생각에 가슴이 벅차오를 뿐이었다.

케이든은 실베르의 제복 바지 허리춤에 달린 권총집을 슬쩍 흘겼다.

“그건 장식인가?”

“아뇨. 제 무기입니다!”

“마경이 권총이라……. 재밌군.”

케이든은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더니 이내 사무실 한가운데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너희들의 자리는 저곳이다. 적당한 곳에 앉도록.”

그런데 케이든이 가리킨 곳은 아무것도 없는 텅 빈 공간.

케이든의 말에 실베르는 살짝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반문했다.

“저… 책상은 어디서 구해 오면 됩니까?”

“저기 있는 책상이 안 보이나? 아, 아직 신입이라서 그런가 보군. 마경의 책상은 마나로 이루어져서 마나를 감지해야 확인할 수 있다.”

“지, 진짭니까?”

“가서, 앉아 보든가.”

실베르는 어리둥절하며 케이든의 표정을 살폈다.

그러나 케이든의 냉정한 말투나 무뚝뚝한 표정으로 봤을 때는 그의 말이 거짓말일 리가 없었다.

그리하여 실베르는 케이든이 가리킨 빈 공간으로 가서 책상을 찾기 시작했다. 그러나 아무리 허공을 허우적대도 손에 잡히는 건 없었다.

그 모습을 팔짱을 끼고 지켜보고 있는 케이든.

그리고 마찬가지로 하이젤 또한 한심한 듯 쳐다볼 뿐이었다.

“저, 선배……? 책상이… 없는데요……?”

“풉. 푸하하하하!”

난데없이 배꼽을 잡고 웃기 시작한 하이젤.

하이젤의 그러한 비웃음을 듣고, 그제야 실베르는 자신이 속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서, 선배!!”

“마나로 이루어진 책상 같은 건 당연히 있을 리가 없지. 2층의 비품실에 내려가서 책상과 의자를 가져오도록.”

이내 뒤돌아서 본 케이든 선배는 한쪽 입꼬리를 올린 채 미소 짓고 있었다.

처음 봤을 때의 딱딱함과 차가움은 온데간데없고 그곳에는 조금 짓궂은 장난기가 있는 유쾌한 선배만이 있을 뿐이었다.

그리고 그것이 실베르가 케이든을 만난 첫 기억이었다.

그 이후 강력 3팀은 케이든의 말마따나 쉴 새 없이 현장에 파견됐었다.

그것도 주로 살인 이상의 강력 범죄가 연루된, 신입에게는 다소 버거운 사건들.

그러나 케이든의 지휘 아래 강력 3팀은 하루하루 강력 사건들을 해결해 나갔었다.

그런데 문제는 하이젤 트레이슨이었다.

녀석은 ‘모든 죄는 동일한 죗값을 받아야 한다.’라는 도를 넘은 사상을 가진 과격파였다.

실수를 가장해서 체포 도중 안티 매지션을 사살한다든지.

케이든의 명령에 불복종하고 단독 행동을 한다든지.

녀석은 항상 트러블을 일으켰었고,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이었다.

그리고 그 시한폭탄은 7년 전 리베로 마을에서 벌어진 사건에서 터지게 되었다.

리베로 사건.

마을 사람들이 한 소녀를 잔인하게 유린하고 죽인 잔악무도한 사건.

리베로 마을 주민들은 정신계 마법사에 의해 지배되어 제정신이 아닌 상태에 일어난 일이라고 주장했었고, 감식 결과도 일치했기에 마을 주민들의 무죄가 거의 확정시되던 사건이었다.

그러나 하이젤은 그들이 정신계 마법사에 의해 지배된 것이 아니라, 단지 정신계 마법의 마약 효과만 받았을 뿐이라며 그들의 유죄를 주장했었다.

하이젤의 주장은 별다른 근거가 없는 심증이었기에, 마경 측은 당연히 하이젤의 말을 기각했었다.

그러한 마경 측의 처우에 하이젤은 분노를 참지 못하고 결국 자신의 손으로 리베로 마을 주민들을 전부 몰살시켰었다.

이후 하이젤은 마경에 송치되었고, 그렇게 사건은 일단락되는 듯싶었다.

그러나 그 당시 케이든이 실시한 독자적인 조사가 하이젤의 말이 사실임을 증명할 수 있게 되었고, 마경에 재판을 받았던 하이젤은 정상 참작되어 형이 줄어들었다.

그것이 하이젤에 대한 마지막 기억.

이후 녀석은 마경을 떠났다.

정확히 말하자면 형의 집행 이후에 퇴출되었다.

그 이후로는 어떻게 되었는지, 실베르는 모르고 있었고, 관심도 가지지 않았었다.

그런 녀석이 다시금 모습을 드러냈다.

그리고 케이든 선배를 노려 공격해 온 것이다.

실베르는 어느덧 생각에 잠겨 있던 눈을 번쩍 떴다.

“하이젤…….”

그의 지난 정의가 어찌 되었든 간에 그는 엄연히 마경 소속이었고 실베르의 동기였으며 강력 3팀의 일원이었다.

그런 그가 이젠 안티 매지션으로서 모습을 드러내다니…….

아직도 병상에 누워 있는 케이든을 생각하면 피가 들끓을 뿐이었다.

“반드시, 잡아 처넣어 줄게… 하이젤.”

실베르는 조용히 주먹을 쥐며 다짐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