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아카데미의 무속성 마법사-55화 (55/175)

55화

* * *

매기가 안내한 곳으로 따라가자 그곳에는 붉은빛이 새어 나오는 포탈이 있었다.

“이게 군주급 던전의 입구인가?”

“응, 아마 맞을 거야.”

제페토는 겉으로 티를 내지 않고 있었지만, 내심 신기해하는 눈치였다.

물론 그들 입장에서는 신기할 만했다.

항상 가던 인스턴트 던전의 입구나 훈련용 던전의 입구는 대개 거대한 동굴 모양으로 형성돼 있었다. 그렇기에 이런 포탈 식의 입구는 이들에게 당연히 낯선 것이다.

그러나 ‘아카마’에서 한번 도전해 본 적이 있는 나로서는 상당히 익숙했다.

“그럼, 먼저 들어간다?”

그 말과 동시에 나는 그 붉은빛 포탈을 향해 자신 있게 발걸음을 내디뎠다.

포탈을 통과하는 순간, 온몸을 관통하는 짜릿한 느낌.

그리고 포탈 안에 내디딘 발은 이내 아카데미의 풀숲 바닥이 아닌 딱딱한 돌을 밟게 되었다.

“여긴…….”

“용암 지대잖아?!”

뒤늦게 포탈 안으로 들어온 제페토가 말을 가로챘다.

제페토의 말마따나 주변에 보이는 것은 보글보글 끓어 넘치는 용암 구덩이들.

게다가 공간 자체도 앞으로 이동이 제한되는 일직선의 공간이 아닌, 마치 활화산 한가운데에 들어온 듯한 넓은 공간이었다.

“좀, 덥네.”

장소가 장소인지라, 들어온 지 몇 초 지나지 않아서 내 이마에선 땀이 한 방울 흐르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게 아직 바깥 날씨는 쌀쌀한 초봄이라서 항상 로브를 걸치고 온몸을 꽁꽁 싸매고 다닌 참이었다.

더위를 도저히 참을 수 없는 나는, 입고 있는 로브를 벗고 교복 셔츠도 팔목까지 걷어 냈다.

그런 내 모습을 보며 제페토가 입을 열었다.

“이리 줘.”

“응?”

제페토는 로브를 내놓으라는 듯 손짓을 했고 나는 얼떨결에 제페토에게 로브를 건넸다. 그러자 제페토는 허리춤에 차고 있던 인벤토리 가방을 꺼내더니 그 안에 로브를 집어넣었다.

그와 동시에 거의 품 안에 한가득 들어올 정도의 크기인 내 로브는, 순식간에 손바닥만 한 작은 가방으로 빨려 들어갔다.

“인벤토리가 있었어?”

“당연하지. 뭐, 너 같은 평민은… 이 아니라 보통은 없겠지만.”

또다시 무의식적으로 튀어나온 제페토의 말실수.

나는 그 평민이라는 말이 살짝 거슬렸지만, 그냥 넘어가 주기로 한 채 이어서 궁금한 것을 질문했다.

“그거 얼마나 하는데?”

“1,000다트 정도.”

“1,000다트라고? 그 조그마한 게?”

나는 제페토의 말에 혀를 내둘렀다.

사실 위자드 협곡에서 라이오넬의 처리 후에 생긴 마정석을 몰래 챙겼었기에, 수중에 300다트 정도의 돈은 있었다.

그런데 저 손바닥만 한 인벤토리 가방 하나가 1,000다트나 하다니.

1,000다트면 원래 세계의 돈으로 1,000만 원 정도.

저 조그마한 가방이 거의 중고차 한 대 가격인 것이다.

어지간하면 꿈도 못 꿀 금액이었다.

다만, 생각해 보니 지금 상황에서도 그렇고 인벤토리의 활용도는 무궁무진하다고 느껴졌다.

앞으로 영웅의 아티팩트를 수집할 때도 일일이 들고 다닐 수도 없는 마당이었고, 당장에 파밍으로 얻을 아이템들도 인벤토리가 있으면 편리하게 보관할 수 있었다.

그리하여 나는 이번 군주급 던전의 소탕에 성공하고 나서 얻은 돈을 인벤토리에 투자하고자 하는 마음이 생기고 있었다.

내가 제페토의 인벤토리를 보며 군침을 흘리고 있을 그때, 옆을 흘끔 보니 캐서린 골드버그가 머리를 묶어 올리고 있었다.

그녀도 아마 이 용암 지대에 의해 더위를 느낀 모양이었다.

캐서린이 허리까지 내려오는 긴 머리를 잡고 뒤로 넘기자, 그녀의 새하얀 목선과 조그마한 귀가 이내 모습을 드러냈다.

나는 평소 캐서린의 머리 스타일보다 지금의 뒤로 넘긴 머리가 더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나는 머릿속에 든 생각을 무심코 입 밖으로 내뱉었다.

“머리 뒤로 넘긴 것도 괜찮은데?”

“네엣……?!”

내 말에 머리를 묶는 데 집중하던 캐서린은 화들짝 놀란 듯싶었다.

그러더니 갑작스레 등을 휙 돌리고 조용히 중얼거렸다.

“…참고할게요…….”

“어, 어? 굳이 참고할 거까진 없는데…….”

캐서린의 반응에 나는 살짝 당혹스러움을 느꼈다.

그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던 제페토는 조금 언짢은지 팔짱을 끼고 투덜댔다.

“지금 중요한 건 그런 게 아닌 거 같은데? 이제 슬슬 출발하지?”

제페토의 말이 맞았다.

정비를 모두 끝마친 이상, 빨리 출발하는 게 옳은 판단이었다.

대개 던전에 들어가게 되면, 입장과 동시에 마물들에게 던전을 침입했다는 신호가 전달되기 마련이었다. 따라서 이곳에서 계속 머물다가는 곧 마물들에 포위될 가능성이 컸다.

다만, 이곳의 던전 구조에 대한 파악이 그보다 더 중요했다.

그리하여 나도 팔짱을 끼고는 머리를 굴리기 시작했다.

“일단 필드가 용암 지대라는 것은 불속성 던전일 가능성이 매우 큰데…….”

한눈에 뭐가 등장할지 예상이 가는 일반적인 던전들과는 달리, 이곳 용암 지대는 무슨 마물이 점령하고 있을지 짐작이 가지 않았다.

군주급 던전과 일반급 던전의 가장 큰 차이는 바로 마물의 종류.

일반 던전에서는 보통 한 종류의 마물이 보스전까지 쭈욱 이어지는 게 정석이지만, 군주급 던전은 필드 특성에 맞는 복합적인 마물들이 대거 등장하기 마련이었다.

‘아카마’에서 제이드로 클리어한 군주급 던전은 사막 필드였었다.

그때는 사막 속성의 마물들, 사막 여우나 전갈 같은 동물형 마물들이 주로 등장했었고 보스는 스핑크스였었다.

이번에도 아마 이 용암 속성에 관련된 몬스터일 것임은 분명했다.

“어, 저건 뭐지?”

그때 제페토가 무언가를 가리켰다.

그곳으로 고개를 돌리자 보이는 것은 커다란 바위 옆에서 일렁이고 있는 불꽃이었다.

그 불꽃은 마치 보는 사람을 유혹하는 듯 살랑살랑 위아래로 움직여 댔다.

그것을 본 제페토는 갑자기 무언가에 홀린 듯이 그 불꽃을 향해 한 걸음, 한 걸음 다가서고 있었다.

“너 뭐 하냐?”

그러나 내 부름에도 제페토는 정신없이 불꽃으로 다가갈 뿐이었다.

그러한 제페토의 눈에는 초점이 없어 보였다.

“설마… 정신 착란계 마물인가?! 조심해!!”

나는 의식을 잃고 불꽃으로 향해 다가서는 제페토의 셔츠 뒷부분을 세게 잡아당겼다. 그러자 제페토의 몸은 그대로 땅바닥에 엉덩방아를 찧었다.

여기는 대미지 보정을 받는 훈련용 던전이 아니었다.

자칫하다가 큰 피해를 입게 되면 바로 죽을 수도 있었다.

다행히도 정신 착란의 효과는 그리 크지 않은 듯 보였다.

엉덩방아로 인해 의식을 되찾은 제페토는 이내 머리를 매만지며 고개를 저었다.

“뭐, 뭐지……?”

“아무래도 약한 종류의 유혹 마법인가 봐, 딱 봐도 저 불꽃에 가까이 가면 뭐가 튀어나올 거처럼 생겼…….”

나는 말을 잇지 못했다.

조금 전, 내가 제페토를 잡아당기면서 질렀던 큰 목소리가 저 불꽃의 주인을 자극한 모양이었다.

이내 살랑살랑 흔들던 불꽃이 움직임을 멈추더니, 그 불꽃의 주인이 직접 바위 위로 올라와 모습을 드러냈다.

혀를 날름날름 내밀며, 꼬리에 달린 불꽃을 살랑살랑 흔드는 사람 몸집만 한 도마뱀.

그것의 정체는 바로 용암에 서식하는 도마뱀, 샐러맨더였다.

이내 샐러맨더는 바위를 넘어 우리를 향해 무서운 속도로 기어 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모습에 당황한 나와 제페토보다 먼저 반응한 것은 캐서린 골드버그였다.

“…칠칠치 못한 오라버니 대신 사과할게요.”

곧바로 주문을 외우는 캐서린.

「보빌루스 레냐토르(bovíllus regnátor)」

우우웅.

순간 캐서린의 머리 위에서 노란빛이 소용돌이쳤다.

그러더니,

쿵!

그 노란색 마나의 소용돌이에서 튀어나온 것은 거대한 황소였다.

캐서린이 소환한 황소의 몸은 반투명한 백색에 가까운 노란빛이 일렁이고 있었고, 이내 발을 구르기 시작했다.

제페토는 캐서린이 소환해 낸 사역마를 보고는 믿기지 않는다는 듯 중얼거렸다.

“…영체화 상태로 소환할 수 있다고……?”

- 음머어어어!

황소는 이내 크게 울부짖더니 달려오는 샐러맨더를 향해 몸을 날렸다.

그리고 거대한 황소의 머리에 달린 뿔은 샐러맨더의 머리통을 그대로 들이받았다.

퍼어억!

- 키에에엑!

쇠뿔에 몸이 찔린 샐러맨더는 크게 비명을 지르다가 이내 불꽃이 되어 사라졌다. 나는 한 번에 샐러맨더를 무찌른 캐서린을 향해 박수를 쳐 주었다.

짝짝짝.

“뭐야, 좀 하잖아 캐서린?”

그런데 제페토는 조금 당황한 듯 눈동자가 휘둥그레져 있었다.

“어, 어떻게 영체화 소환을 할 수 있는 거지?!”

“영체화라니? 그게 뭔데?”

“영체화는 사역마를 소환하는 데 있어 최고의 마나 효율을 자랑하는 소환 기법. 이론만 전해지고 실제로 사용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고 전해지는 소환계 궁극의 비기다!”

영체화(靈體化).

단순하게 말하면 육신을 가진 실체가 아닌, 몸이 영혼으로 이루어진 존재를 의미한다고 제페토는 설명했다.

사실 소환계 마법은 매우 비효율적인 마나 시스템을 가지고 있었다. 그 이유는 소환을 구축하는 데 있어, 온전한 육신을 가진 사역마를 소환하기 위해 어마어마한 양의 마나가 필요하기 때문이었다.

보통 소환계 마법 하면 마나 소모가 극심한 마법이라고 여겨지곤 하는 것도 그런 이유였다.

그러나 영체화는 사역마를 다루는 데 있어서 필요 없는 육신은 제외하고 물리적 간섭과 공격이 가능한 최소치만 소환해 내는 기술.

예를 들어 소화 기관이나 호흡 기관, 내지는 피부 같은 전혀 쓸모없는 부위에 마나를 소비하지 않는 기술이었다.

그리하여 소환에 필요한 마나가 당연히 원래보다도 현저히 적은 것이고, 게다가 그 여분의 마나로 사역마의 공격을 더욱 강화시키기 때문에, 소환계 마법에 있어서 궁극의 비기라고 불리는 것이었다.

제페토는 여전히 입이 떡 벌어진 채로 캐서린 골드버그에게 다짜고짜 캐묻기 시작했다.

“그래서 캐서린. 어떻게 영체화를 사용할 수 있는 거냐?!”

캐서린은 제페토 골드버그의 다그치는 듯한 질문에 살짝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그건… 저도 잘 모르겠네요. 광폭화 이후부터 어느 순간 갑자기 되던데요?”

아무렇지 않게 대답하는 캐서린.

그런 그녀를 보며 나는 무언가 알 것만 같았다.

‘그런 건가.’

생각해 보니 캐서린이 광폭화 상태가 됐을 당시에 사용했던 기술도 이 영체화와 비슷한 종류였다.

다만 그때는 마기로 이루어진 그림자의 사역마였다면, 지금은 순수한 소환계의 마나로 이루어진 사역마라 볼 수 있었다.

어쨌든, 캐서린 골드버그의 마법 체계는 그날 이후로 조금 달라진 것으로 보였다.

아마도 원래부터 소환할 수 있었던 쥐의 군주를 제외한 나머지는 마인화의 영향을 받아 영체화가 가능한 듯싶었다.

“결국, 좋다는 거 아니야? 그 이후로 파워 업 했다는 거잖아?”

“영체화는 전설 속에만 존재하는 줄 알았는데…….”

계속해서 영체화를 언급하는 제페토.

이렇게까지 집착하는 걸 보니 어지간히 캐서린이 부러운 모양이었다.

나는 그런 제페토를 보고 피식 웃음이 나왔다.

“설마 동생을 질투하는 거야?”

“지, 질투라니!!”

내 말에 제페토 골드버그는 얼굴이 시뻘게진 채로 발끈했다.

역시 정곡을 찔린 모양이었다.

나는 이내 제페토를 내버려 둔 채 주변을 살폈다.

조금 전 발화된 샐러맨더를 제외하고는 딱히 위협은 없는 것 같았다.

“그나저나 생각 외로 별거 없네?”

군주급 던전이라고 살짝 긴장했었는데, 아무리 군주급 던전이라도 결국 잡몹은 잡몹이었다. 나는 조금 싱거운 난이도에 살짝 실망하고 있었다.

그런데,

“어라? 그러고 보니…….”

불현듯 떠오르는 ‘아카마’에서의 기억.

내 머릿속에는 군주급 던전의 가장 큰 특징이 떠오르고 있었다.

그것은 바로…….

- 키에에엑!

- 키에에에엑!!

순식간에 스믈스믈 용암 속에서 기어 나오는 엄청난 수의 샐러맨더들.

곧 샐러맨더들은 순식간에 우리를 포위하기 시작했다.

군주급 던전의 가장 큰 특징.

그것은 바로 잡몹이 엄청나게 많다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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