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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데미의 무속성 마법사-57화 (57/175)

57화

용암 지대 안에서는 해가 지거나 뜨지 않았기에, 현재 시간을 알 방법은 딱히 없었다.

물론 영웅의 아티팩트인 골드버그의 회중시계가 있었으나, 그마저도 던전 내부에서는 시계 본연의 기능이 작동하지 않았다.

다만, 다들 하루 종일 샐러맨더들을 사냥하느라 지쳐 있었기에, 몸속에 내장된 생체시계가 어렴풋이 슬슬 취침 시간이라는 것을 알려 주고 있었다.

그리하여 우리는 용암 지대의 작은 동굴을 발견하여 그곳에서 휴식을 취하기로 했다.

제페토는 처음에 잠자리가 불편하다며 동굴에서 취침하는 것을 불평해 대더니 누구보다도 빨리 잠이 들었다. 아무래도 그만큼 오늘 하루가 고단했던 모양이었다.

나는 어느새 코를 골기 시작한 제페토와 등을 돌리고 누워 있는 캐서린을 내버려 둔 채, 동굴 밖을 나왔다.

물론 나도 살짝 졸음이 몰려오고 있었지만, 그보다 중요한 것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오늘 하루의 결산.

하루 종일 모은 마정석의 개수를 직접 세어서 실감하고 싶었다.

그리하여 나는 동굴 입구의 적당한 돌무더기에 걸터앉은 뒤, 오늘 하루 모은 마정석들을 일일이 세기 시작했다.

“하나, 둘… 삼백팔십육, 삼백팔십칠……. 삼백팔십칠 개.”

비록 각각의 마정석은 개당 1다트에도 안 팔릴 정도의 작은 크기였지만, 전부 더하면 두 손 가득 넘치는 어마어마한 양이었다.

분명 못해도 200다트, 즉 200만 원 정도의 가치는 훌쩍 넘을 듯싶었다.

“인스턴트 던전 한 번에 아이템까지 포함하면 대략 50다트 정도의 가치가 있었으니까……. 군주급 던전이 훨씬 이득이네.”

물론 몇 시간 안에 끝나는 인스턴트 던전과는 달리 군주급 던전은 며칠이 걸린다는 단점이 있었다. 또한 난이도도 그만큼 천차만별이라는 차이가 있었다.

다만, 그러한 점을 감안하더라도 군주급 던전은 매우 매력적인 파밍처였다.

“게다가 아직 겨우 1일 차잖아? 보스를 잡으면 또 얼마나 큰 보상을 줄지…….”

나는 입가에 흐르는 군침을 다셨다.

하루 종일 일해서 200만 원.

세 명이서 일했으니 삼등분한다 해도 대략 60만 원이 넘는 돈이었다.

현실로 따지자면 대기업 저리 가라 하는 어마어마한 노가다가 아닐 수 없었다.

- 끼룩?

내가 입 밖으로 흐흐흐 하며 웃음을 주체 못 하고 실실 웃고 있자, 매기가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나는 그 모습에 매기를 품 안으로 와락 껴안았다.

“그래 그래, 내 새끼. 오늘 하루 고생했다.”

사실 사람도 사람이었지만, 사역마들은 그 배로 고생이었다.

우리야 중간중간 휴식하면서 쉬었지만 얘네들은 그 무더운 열기 속에서 샐러맨더들을 상대하느라 쉴 틈 없이 굴려졌으니까.

매기는 내 품 안에서 기분이 좋은지 연신 끼룩끼룩 소리를 내었다.

나는 그런 매기를 몇 번 더 쓰다듬어 준 뒤, 허리춤에 있는 언노운을 슬쩍 바라보았다.

캐서린의 광폭화 이후 딱히 등장하지 않았던 언노운이었다.

그동안 계약하지 않고 부려 먹은 게 미안했던 탓에 쉽게 불러내지 못했었지만, 어쨌든 이번 파밍으로 그간의 빚을 제대로 정산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언노운 님, 딱 기다려요. 초콜릿케이크뿐만 아니라 이번 주말에 아예 그 르블랑인가 누블랑인가 하는 전문점에 데려가 드릴 테니까.”

그러나 이런 좋은 소식에도 언노운은 별 대답이 없었다.

아무래도 깊은 동면에 빠진 것 같았다.

그런데 그때, 동굴 안쪽에서 누군가 걸어오는 소리가 들려왔다.

“…안 자요?”

목소리의 주인은 캐서린이었다.

그녀는 잠들었다가 깼는지 눈을 비비며 오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조금 전까지 누워 있었는데도 그녀는 오후에 묶어 두었던 머리를 풀지 않은 상태 그대로였다.

“응. 뭐 좀 할 게 있어서.”

캐서린은 어느새 내 옆으로 다가오더니 옆에 있는 돌무더기에 털썩 자리를 잡고 앉았다. 살짝 잠들었다가 깼는지 그녀의 볼은 조금 부어 있었고, 입술을 삐죽 내밀고 있었다.

“왜, 할 말 있어?”

“할 말이요……? 할 말은 많지요.”

비몽사몽 한 와중에도 캐서린은 또박또박 대답하고 있었다.

그러더니 갑자기 흐리멍덩한 눈으로 나를 올려다보았다.

순간 그녀와 눈이 마주친 나는 조금 당황스러웠다.

“왜 그런 눈으로 봐……?”

“물어보고 싶은 게 있었는데요. 아니, 물어보기보다는 확인하고 싶은 거요.”

“응? 뭐, 뭔데?”

“그리핀 던전에서도 저를 구해 줬었죠?”

“내가……?”

내가 얘를 구한 적이 또 있었나?

곰곰이 기억을 되짚어 보던 나는 ‘대마물전’ 수업 당시 그리핀에게 쫓기던 캐서린을 마주쳤던 게 생각이 났다. 그때 당시에는 별 의식을 안 하고 있었다 보니 기억이 가물가물했던 것이었다.

“그랬던 거 같기도 하고.”

“그럼, 두 번째네요.”

“그런데 어차피 거기선 구하고 뭐고가 없지 않았었나? 어차피 그리핀한테 대미지를 입으면 강제 귀환하는 거였잖아.”

“저한텐 별로 중요하지 않아요.”

“그, 그래?”

새벽이라 그런가, 아니면 캐서린이 자다 일어나서 그런가, 캐서린에게서는 평소의 까칠한 모습과는 다른 묘한 분위기가 느껴지고 있었다.

“…저, 그… 사실 광폭화했을 때 저한테 했던 말도 기억하고 있어요.”

“응? 무슨 말?”

“글쎄요. 그건 스스로 생각하세요.”

어느새 강압적으로 나오는 걸 보니 평소의 캐서린으로 돌아온 것 같았다. 나는 그녀의 알 수 없는 말에 피식 웃음이 터져 나왔다.

“왜 웃어요?”

“어? 그, 그냥? 웃음이 나와서?”

“당신, 그러고 보니 여자에 별로 관심이 없죠?”

“그래 보여?”

“네. 틀림없이요.”

“그렇구나……. 맞아. 그렇긴 해.”

갑작스러운 캐서린의 말에, 나는 순간 대학 시절의 ‘그 사건’이 떠올라 버렸다.

내가 1학기를 마치고 군대로 도망간 이유.

전역 후에도 학교에 복귀하지 못하고 방구석에서 틀어박혀 게임만 하고 있었던 이유.

그리고 이성에 더 이상 관심과 미련을 버리게 된 이유.

깊게 잊고 있었던 ‘그 사건’이 다시금 떠올라 가슴을 후벼팠다.

“뭐예요. 갑자기?”

캐서린은 이내 내 표정을 읽었는지 나에게 얼굴을 들이밀었다.

그녀의 눈동자는 맑고 초롱초롱했다.

“…아무것도.”

“그래요?”

캐서린은 내가 뒷말을 흐리자, 무언가 낌새를 눈치챈 모양이었다.

다만, 더 이상 캐물어 오지는 않았다.

나는 그런 캐서린의 태도에서 묘한 배려심이 느껴져 오히려 위로받는 느낌이 들었다.

캐서린은 한참 동안 앞에 놓인 돌무더기 바닥을 발로 쓸고 있었다.

던전 안에는 용암이 들끓는 보글보글 소리와 캐서린이 발을 움직이는 스윽스윽 소리만이 가득했다.

한참을 침묵하던 캐서린은 이내 다물고 있던 입술을 들었다.

그러고는 화제를 돌려 본인의 이야기를 꺼내기 시작했다.

“저는 광폭화 이후에 스스로 좀 변한 거 같아요.”

“그래? 어떤 식으로?”

“이젠 제 인생을 살려고요. 더 이상 가문이나 남들의 시선에 집착하지 않고.”

“그거참 다행이네.”

사실 대놓고 말은 못 하겠지만 골드버그 가문의 이념은 뭔가 뒤틀린 것이 분명했다. 그런 가문의 뜻에 더 이상 얽매이지 않겠다니, 나는 진심으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비단 캐서린뿐만 아니라 제페토 골드버그도 서서히 가문의 이념에서 벗어나는 게 느껴져서 두 남매의 좋은 변화라고 생각했다.

캐서린의 말은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저는 당신이 구해 준 그 날 이후로 뚜렷한 목표가 생겼어요.”

“응? 뭔데?”

“그건 말할 수 없어요. 다만, 당신에게 조언을 구하고 싶네요.”

“조언?”

그 말과 동시에 캐서린은 내 얼굴을 빤히 쳐다보았다.

그녀의 뚫어져라 보는 시선에 당황한 나는 살짝 고개를 숙이고 바닥을 내려다봤다.

“천천히…가 좋을까요. 아니면 빠르게 목표에 다가서는 게 좋을까요.”

천천히? 빠르게?

갑자기 무슨 말을 하려는 거지?

무엇에 관련된 내용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순간 머릿속에 떠오르는 말은 있었다.

그리하여 나는 그것을 조심스럽게 입 밖으로 내뱉었다.

“…옛말에 ‘Haste makes waste.’라는 말이 있어.”

“네? 그게 무슨 말이죠?”

“음……. ‘서두르면 일을 그르친다.’라는 의미. 아주 유명한 숙어 같은 거거든. 내가 좋아하는 말이기도 하고. 그러니까 뭐든 천천히 시작해 보면 좋지 않을까?”

“…그래요?”

내 말을 들은 캐서린은 이내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더니 갑자기 번쩍 자리에서 일어났다.

“좋아요. 그럼 정했어요. 조언해 줘서 고마워요.”

“그래. 도움이 됐다니 다행이네.”

“다만, 한 가지 저랑 약속해 주세요.”

“응? 약속……?”

자리에서 일어나 내 앞에 선 캐서린은 갑자기 새끼손가락을 불쑥 내밀었다.

“저는 천천히 시작할 거니까, 그때까지 기다려 주세요. 자, 약속.”

“응? 기다려 달라고? 뭘?”

캐서린의 말이 무슨 의미인지는 모르겠다.

제페토처럼 강해져서 돌아온다. 뭐, 그런 의미인가?

아무튼 무슨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새 삶을 살기로 한 그녀를 응원해 주기로 했다.

그리고 나에게 뻗은 그녀의 손에 새끼손가락을 내밀어 감쌌다.

곧 그녀의 손가락과 내 손가락이 하나로 포개졌다.

“그래, 약속.”

그렇게 우리는 한밤중의 던전 안에서, 알 수 없는 내용의 밀약을 나누었다.

* * *

다음 날도 어김없이 화염 정수 파밍은 계속되었다.

이미 이 던전 속의 샐러맨더들은 전부 멸종시켰기에, 우리는 또 다른 마물들을 탐색해야 했다.

용암 지대 던전 안으로 좀 더 깊숙이 이동하자, 우리는 곧 새로운 용암 속성의 마물들을 발견할 수 있었고 또다시 마물 사냥을 시작했다.

그렇게 한바탕 파밍을 한 이튿날도 목표치에는 살짝 못 미치는 수준에서 일정을 마무리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다음 날.

몇 시간 정도의 지속되는 파밍 끝에, 드디어 목표치를 달성할 수 있게 되었다.

[용암 거북을 처치하였습니다.]

[화염 정수 일곱 개를 획득하였습니다.]

[용암 거북을 처치하였습니다.]

[화염 정수 아홉 개를 획득하였습니다.]

[현재 수집한 화염 정수: 99,999개]

“드디어, 끝났다.”

그리고 화염 정수를 전부 수집하자, 띠링 하는 소리와 함께 눈앞에는 이벤트의 완료를 알리는 시스템 창이 나타났다.

[던전 이벤트 ‘용암 지대 돌파!’를 완료하였습니다.]

[보상 ‘화염 속성 내성 90% 증가 버프’를 획득했습니다.]

[보상 ‘화염 속성 내성 90% 증가 버프’는 던전에 입장한 모든 동료에게 적용됩니다.]

슈우우웅!

곧 시스템 창에서부터 흘러나오는 붉은 기운이 나와 제페토, 캐서린을 감쌌다.

“이건 또 뭐냐?”

“안 그래도 더웠는데 갑자기 몸이 더 달아오르는 것 같은 건 기분 탓이죠?”

제페토와 캐서린은 몸을 감싸는 붉은 기운에 어리둥절한 모양이었다.

“그건 화염 속성 저항 버프야.”

“버프요?”

“버프?!”

“응.”

나는 그들에게 대략적으로 화염 속성 저항 90% 버프가 걸렸다는 것을 설명해 주었다. 시스템에 관련된 내용은 물론 말하지 않았다.

“이젠 하다 하다 버프까지 주는 것이냐?!”

“그…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됐네. 뭐, 좋은 거 아니야?”

제페토는 내가 버프를, 그것도 90%에 해당하는 말도 안 되는 수치의 버프를 주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는다는 듯 반문했다.

제대로 된 설명을 할 수 없었던 나는 어깨를 으쓱하며 모른 채 넘어갔다. 그러고는 황급히 화제를 돌렸다.

“그럼, 버프도 얻었겠다, 슬슬 그 ‘군주급’이라는 마물을 알현하러 가 볼까…….”

녀석이 있는 위치는 대략 어디인지 파악하고 있었다.

이 자연적으로 형성된 용암 지대에서 유일하게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것 같은 부자연스러운 조형물.

그것은 바로 던전 구석에 위치한 거대한 타워였다.

성인지 탑인지 잘 구분이 안 됐지만, 어쨌든 피사의 사탑 같은 원통형의 타워가 저 멀리에 우뚝 솟아 있었다.

그리고 그 앞에는 거대한 다리가 있었고 그 밑으로는 용암 구덩이로 떨어지는 낭떠러지가 있었다.

그 타워의 웅장한 모습을 감상하던 나는, 곧 그 다리 위에 있는 무언가 이상한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저건…….”

멀리 있어서 잘은 안 보였지만 눈을 찌푸리니 대략 형태를 알아볼 수 있었다.

게다가 그 대상이 너무나도 친숙했기에 더더욱 흐릿해도 윤곽을 파악할 수 있었다.

세 개의 꼬리.

그리고 목 위에 달린 세 개의 개 머리.

“…케르베로스?”

흔히 지옥의 수문장이라 불리던 케르베로스.

그 케르베로스가 군주급의 마물이 있는 타워를 지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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