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8화
* * *
실베르 라인하르트는 마경 의료 본부 안으로 들어섰다.
그러자 카운터에 있는 직원이 그를 확인하고는 고개를 숙였다.
“오셨습니까, 차장님.”
“그래. 케이든 선배는 별일 없지?”
“예. 다만 손님이 한 분 와 계십니다.”
“손님? 선배가 병문안 올 정도의 손님이 있다고?”
실베르는 의외라는 표정을 지었다.
그러나 아무래도 직원의 말은 사실인 것 같았다.
“예. 하루도 빠짐없이 방문하고 있는 손님이 계십니다.”
“그래? 그렇다는 얘기지.”
어떤 사람이길래 매일같이 방문한다는 걸까.
실베르는 살짝 의문을 품으면서 케이든이 있는 VIP 병실로 올라갔다.
넓은 VIP 병실에는 산소마스크를 쓰고 있는 케이든이 홀로 누워 있었다.
그리고 그 누워 있는 케이든의 침대 옆 의자에는 매우 젊어 보이는 여자가 반듯이 앉아 있었다.
빨간 머리를 한 갈래로 묶은 포니테일의 여자.
실베르 라인하르트는 여자를 발견하고는 흥미롭다는 듯 한쪽 눈썹을 치켜올리며 헛기침을 했다.
“흠흠…….”
그러자 여자는 그제야 누군가 들어온 것을 눈치채고 뒤를 돌아봤다.
그러고는 실베르를 확인하고 인사를 건넸다.
“아,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케이든 선배에게 손님이 있을 줄 몰랐는데.”
“아… 저 칼루스 아카데미의 교수 아텔라 가스트로디아라고 합니다. 그러고 보니 저번에 아카데미에 오셨을 때 한번 뵀어요. 마경 직원 맞으시죠?”
“아, 예. 마경 본부 차장 실베르 라인하르트라고 합니다.”
실베르도 그제야 아텔라의 얼굴을 어디서 봤다는 것이 생각났다.
아마도 며칠 전 조사 차원에서 아카데미를 방문했을 때 마주친 것 같았다.
살짝 실망한 실베르는 벽걸이에 코트를 걸쳐 두고는 아텔라의 옆에 섰다. 그러고는 침대 위에 곤히 누워 있는 케이든을 내려다보았다.
케이든은 금방이라도 일어날 것 같은 평온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빨리 일어나야 할 텐데 말이죠.”
“그러게요…….”
실베르가 힐끔 아텔라를 쳐다보자, 아텔라는 진심으로 걱정된다는 표정을 하고 있었다.
문득, 실베르는 마침 그녀에게 물어보고 싶은 게 생겼다.
“…케이든 선배는 아카데미에서 어땠습니까?”
“예? 케이든 교수님이요?”
실베르의 말에, 아텔라는 위자드 협곡 당시의 상황이 떠올랐다.
공간 전이를 시전하기 전 마지막으로 보였던 케이든의 뒷모습.
그 모습은 아직도 뇌리에서 잊히지 않았다.
“…사실 저 이번에 들어온 초임이라서요. 케이든 교수님이랑은 이번 수학여행 때 처음으로 알게 되었어요.”
“그런가요?”
“다만, 그럼에도 이번 일로 많이 배웠습니다. 교직원으로서 짊어져야 할 게 무엇인지, 그리고 그 의무와 책임을 다한 사람이 얼마나 멋있는지. 정말 존경하게 되었습니다.”
‘멋있다.’라.
실베르는 아텔라의 말에 묵묵히 고개를 끄덕여 동의했다.
그야 케이든은 10년 전에도, 그리고 7년 전에도 언제나 멋있는 사람이었으니까.
그리고 실베르 또한 그런 케이든의 뒤를 쫓는 사람 중 하나였었다.
“선배는 10년 전에도 그래 왔어요. 저도 그 밑에서 배워 왔고요. 항상 앞장서고, 리스크는 본인이 전부 감수했죠. 그런 사람이었어요, 선배는. 그리고 또…….”
그런데,
케이든 선배의 옛 일화를 떠올리던 실베르는 말을 잇지 못했다.
누군가 다급한 목소리로 병실 안으로 들어서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차장님! 차장님!!”
정신없이 소리치며 병신 안으로 들어온 것은 바로 실베르의 수행 비서.
수행 비서는 이내 침대 위에 곤히 누워 있는 케이든의 모습을 보고는 자신의 실수를 깨달았다.
알 만한 사람들은 케이든이 마경에서 어떤 인물이었는지, 왜 이 마경 의료 본부의 VIP실에 단독으로 배치되어 있는지를 알고 있었다.
그리하여 수행 비서는 그 마경의 전설적인 인물의 병실에서 정숙하지 못한 자신의 실수를 깨닫고 즉시 입을 다물며 머리를 숙였다.
“죄, 죄송합니다.”
그 모습에 실베르는 손을 휘휘 저으며 머리를 들라는 시늉을 했다.
“뭐, 어때. 그렇게 시끄러우면 본인이 일어나서 따지겠지. 아무튼 무슨 일인데?”
“저, 그게……. ‘블랙잭’의 일원으로 추정되는 인물을 체포하는 데 성공했다고 합니다.”
조심스럽게 용건을 내뱉는 수행 비서.
그리고 실베르는 즉각 큰 소리를 내며 반응했다.
“뭐? 진짜?! 당장 그리로 갈 준비해 줘!”
“예!!”
실베르는 황급히 벽에 걸려 있는 마경 제복 코트를 걸쳐 입었다.
그러고는 멀뚱멀뚱 쳐다보고 있는 아텔라 교수를 향해 대화를 마무리했다.
“저, 급한 일이 생겨서 가 봐야 할 것 같습니다.”
“아, 예.”
“대화는 다음에 이어서 하죠.”
“네. 부디 케이든 교수님을 이렇게 만든 녀석들이 잡혔으면 좋겠어요.”
아텔라의 말에 실베르는 비장한 눈빛으로 그녀를 쳐다보고는 경건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실베르는 병실 문 밖을 나섰다.
‘드디어, 실마리를 잡았다.’
케이든을 저렇게 만들어 놓은 안티 매지션 집단, ‘블랙잭’.
실베르는 차장급의 직위임에도 불구하고, 지금껏 녀석들을 잡기 위해 직접 발 벗고 뛰어다녔다.
그러나 정작 제로에게서 얻은 정보 말고는 며칠 동안 소득이라 부를 만한 게 없는 실정이었다.
그런데 이제 그 첫 번째 단추를 꿰맬 시간이 찾아온 것이다.
그리하여 실베르와 수행 비서는 신속하게 본부의 조사실로 발걸음을 향했다.
곧 본부에 도착하고 조사실 안으로 들어서자, 앉아 있던 조사 담당관이 일어나서 고개를 숙였다.
“오셨습니까, 차장님!”
“그래, 어떻게 됐어?”
“이제 막 이송해서 심문하려던 참입니다.”
조사실의 유리창 안에는 손발이 묶여 있고 안대를 쓰고 있는 건장한 남자가 의자에 앉아 있었다. 그리고 그의 앞에는 질문을 건네고 있는 조사관과 정신계 마법 담당관이 붙어 있었다.
“내가 들어가도 돼?”
“아, 예. 그러시죠.”
그리고 실베르는 유리창 안으로 들어가서 조사관에게 양해를 구하고는 그 자리에 털썩 앉았다.
실베르가 안으로 들어오자, 눈앞의 남자는 안대를 쓰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조사관이 달라졌음을 느꼈는지 히죽 미소를 지었다.
“어이, 똑바로 대답해. 뒤지고 싶지 않으면.”
“훗. 그러지.”
눈앞의 남자는 온몸이 구속된 상태에서도 매우 여유 있어 보였다.
실베르는 그러한 남자의 태도에 한쪽 눈썹을 치켜올렸다.
“너는 ‘블랙잭’이라는 조직의 소속인가.”
“그렇다.”
“며칠 전 위자드 협곡을 습격한 것도 맞겠고.”
“그래.”
남자는 의외로 부정하는 낌새 없이 물어보는 대답에 즉각 즉각 대답했다. 그리하여 실베르는 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
“너희들의 목적이 뭐지?”
“목적……?”
막힘없이 술술 대답하던 남자는 이내 목적을 물어보자 잠시 말을 멈추었다. 그러더니 고개를 숙이고 웃기 시작했다.
“훗… 후후훗… 흐하하하!!”
남자의 웃음소리는 어딘가 기괴해서 듣는 사람으로 하여금 불쾌감을 조성했다.
그리고 실베르는 한발 빠르게 남자의 웃음을 저지했다.
쾅!!
조사실의 책상을 내려찍는 실베르.
그 엄청난 분위기에 남자도 웃음을 뚝 그쳤다.
“…닥쳐라. 분명 말했다. 뒤지고 싶지 않으면, 똑바로 토해 내라고.”
“그래 그래. 잠시 실례를 저질렀군.”
남자는 이내 히죽 미소를 지었다.
그러고는 실베르 쪽으로 고개를 치켜들었다.
분명 눈에 안대가 쓰여 있음에도 불구하고, 남자는 실베르가 보이는 듯 시선을 마주했다.
“우리의 목적은 세상을 바꾸고, 통치하는 것이다.”
“결국 그런 거였냐. 뻔하디뻔한 삼류 악당 같은 소리군.”
“과연 그럴까.”
실베르는 남자의 반문 따위 무시하고 계속해서 조사를 이어 나갔다.
“그래서 너희들이 위자드 협곡을 습격한 이유가 무엇이냐.”
“그곳에 ‘열쇠’가 있거든.”
“열쇠? 그게 무슨 소리지?”
“그것은 새로운 세계를 여는 열쇠다. 평민, 귀족, 마법사, 비마법사. 지금의 이 하찮은 세계는 더럽게 재미없고 또 잔인할 정도로 불공정하다. 우리는 새로운 세계를 열어 ‘철인의 사회’를 만들 것이다.”
“철인의… 사회?”
남자는 계속해서 말도 안 되는 소리를 지껄이고 있었다.
그가 말하는 것은 단순 범죄자의 진술을 넘어 사이비 종교, 사상범 수준의 말도 안 되는 수준의 내용이었다.
그저 사이비의 교리라고 생각한 실베르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어이, 개소리는 거기까지 하고. 너, 하이젤을 아나?”
“하이젤? 그게 누구지?”
“하이젤 트레이슨 말이야.”
그러나 남자는 영 모르는 눈치였다.
실베르가 옆에 있던 정신계 마법 담당관에게 힐끔 눈치를 주자, 담당관은 남자의 말이 사실이라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실베르는 어쩔 수 없다는 듯 코트의 품 안에 있던 하이젤의 사진을 꺼내 들었다. 그리고 남자의 안대를 벗긴 후 그의 얼굴 앞에 사진을 들이밀었다.
“정말, 이 남자를 모른다고?!”
남자는 눈앞의 하이젤의 사진을 한참 동안 멍하니 바라보았다.
그리고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 이내 남자에게서 이상한 기미가 느껴지기 시작했다.
갑자기 남자의 표정이 싹 변했다.
게다가 목소리마저 이전 남자의 목소리가 아니었다.
무엇보다도 남자의 눈동자에선 주황색의 안광이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 오랜만이네. 실베르.
“뭣?!”
남자의 몸에서 정신계 마법의 낌새가 느껴지자 실베르는 황급히 옆에 있는 담당관에게 곁눈질을 했다.
그런데,
“제, 제어할 수 없습니다!!”
“제어할 수가 없다고?!”
정신계 마법 담당관은 본인도 어떻게 된 영문인지 모르겠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눈앞의 주황색 안광이 뿜어져 나오는 남자는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 벌써 7년 전 일이던가. 많이 컸어, 실베르.
“너 이 자식… 하이젤이냐?”
실베르는 조사실 밖에 대기하고 있는 인원들에게 침착하게 손짓으로 명령을 내리며 눈앞에 있는 상대의 말에 응답했다.
남자의 눈에서 나오는 주황색 안광, 그리고 실베르 본인에게 향하는 말들로 보아 지금 눈앞의 남자는 하이젤 트레이슨의 정신계 마법에 의한 지배를 받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 소용없어. 이미 내 마법이 발동된 순간 이 녀석은 죽은 목숨이거든. 아무튼, 내가 해 주고 싶은 말은 하나야. ‘혁명’은 시작되었고, 이제 세계는 곧 변하게 될 거야.
“혁명? 변화? 아까 그 남자가 말했던 ‘철인의 사회’라는 걸 만들려는 거냐.”
- 맞아, 철인의 사회. ‘철인’들이 지배하는 사회가 곧 이 세계에 ‘유토피아’를 가져올 거야.
그 말에 실베르는 흥분해서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남자의 멱살을 잡았다. 남자는 마치 실없는 마리오네트처럼 온몸에 힘이 없었다.
“헛소리 집어치워, 하이젤! 잘 들어. 넌 내가 반드시 이 손으로 잡는다. 케이든 선배를 이 지경으로 만든 거 후회하게 해 주마.”
- 후훗. 그래. 기대하고 있을게. 다만, 너도 이 변화를 과소평가하지 않는 게 좋을 거야. 세계는 이미 움직이고 있거든.
말을 마친 남자는 갑자기 몸을 덜덜덜 떨기 시작했다.
그 기이한 움직임에 실베르는 멱살을 잡고 있던 두 손의 힘을 풀게 되었다.
- 모든… 것은… ‘블랙잭’을 위해…….
그러더니,
털썩!
남자가 고개를 떨궜다.
실베르는 황급히 남자의 목에 손을 가져다 댄 뒤 맥박을 체크했다.
그러고는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이 남자, 죽었다.”
“예에?!”
열심히 정신계 마법을 사용하여 지배당한 남자를 되돌리려 했던 정신계 담당관이 힘없이 손을 떨구었다.
밖에 있던 조사관들도 실베르의 말에 아연실색한 표정을 지었다.
“이 녀석들… 단순 범죄자는 아닌 거 같네.”
애초에 정신계 마법으로 사람을 죽이는 것은 불가능하다.
아무리 강력한 정신계 마법사라 할지라도 사람의 목숨을 뛰어넘는 지배를 할 수는 없는 것이다.
그럼에도 눈앞의 남자가 죽었다는 것은 자신의 죽음에 스스로가 동의했다는 얘기.
녀석들은 일개 범죄자 조직의 수준을 넘어 사이비 광신도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광기가 느껴지고 있었다.
“혁명이라…….”
실베르는 조용히 그 단어를 입에 머금었다.
200년 전 마계 대전 이후, 인류와 마법 사회는 나름 평화로웠다고 볼 수 있었다.
그런데 지금.
그 오랜 평화를 해치고자 선포한 녀석들이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