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9화
* * *
보스가 있을 것으로 짐작되는 거대한 원통형의 타워.
그리고 그 앞에 놓인 다리에는 케르베로스가 입구를 지키고 있었다.
“아무래도 중간 보스인 거 같네.”
딱 봐도 일개 잡몹으로는 보이지 않았다.
게다가 보통의 케르베로스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는 ‘지옥의 수문장’.
녀석은 그 지옥의 수문장이라는 말에 걸맞게 타워로 들어가는 입구를 지키고 있었다.
그리하여 우리는 녀석의 동태를 살피면서 다리 건너편에서 작전을 세웠다. 그런데 제페토 녀석은 이런 식으로 상황을 주시하는 게 못마땅한 모양이었다.
“뭐가 문제냐? 그냥 처치하고 돌파하면 되는 것을.”
제페토의 말에 나는 한숨을 쉬며 고개를 저었다.
내가 고민하고 있었던 이유는 다름 아닌 지형의 문제였다.
“너 바보야?”
“뭐, 뭐라고?! 바보?!”
“저길 봐 봐.”
내가 손가락으로 가리킨 곳은 다리의 밑.
그곳은 엄청나게 가파른 절벽이었고 그 아래는 용암이 들끓고 있었다.
“우리가 저 다리를 가만히 건너게끔 저 녀석이 가만히 있을 거 같아? 분명 다리를 반쯤 건넜을 때 저 케르베로스 녀석이 달려들 테고, 그러면 자칫하다간 다리 아래로 떨어질 리스크가 있잖아.”
지금껏 내가 괜히 머리를 굴리고 있었던 게 아니었다.
나는 계속해서 상황을 계산하고 있었다.
우리가 사역마를 탑승하여 아무리 빠르게 다리를 건넌다 해도, 녀석이 반응하는 속도가 훨씬 더 빠를 것이다.
그렇다면 결국 필연적으로 녀석과 다리 위에서 마주치게 될 것인데, 좁은 지역에서, 게다가 별로 튼튼해 보이지도 않는 다리 위에서의 전투는 리스크가 너무 컸다.
사실 케르베로스가 눈치채기 전에 최대한 매직 미사일을 충전해 놓은 뒤, 녀석을 불러내서 크게 한 방 먹이는 방법도 생각해 봤다.
그러나, 그것은 또 다른 문제가 있었다.
바로 매직 미사일에 다리가 파괴될 수 있다는 것이다.
지금 당장은 용암 절벽 건너편의 타워에 도달하기 위해서 다리를 건너는 수밖에 없었다. 결국 다리가 파괴될 리스크가 있는 한, 다리 위에서의 전투는 절대 불가능했다.
그래서 섣부르게 녀석과 싸움을 시도할 수는 없었다.
결국 남은 방법은 하나였다.
“결론적으로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아예 녀석이 다리를 건너서 이쪽으로 넘어오게끔 유인하는 거밖에 없겠네.”
이것이 내가 내린 결론이었다.
조금 전에 생각해 낸 매직 미사일 충전 공격을 조금 더 확장한 계획이었다.
그리고 사실 우리 파티는 유인 작전에 있어서 굉장히 유리한 입장이었다.
그 이유는 다름 아닌 세 명 다 사역마를 다룰 수 있다는 점.
그리하여 우리는 직접 저 케르베로스를 이끌고 와야 하는 리스크를 감수할 이유가 없었다.
물론 어디까지나 사역마의 인권을 고려하지 않은 작전이지만.
뭐, 그것은 어쩔 수 없는 사역마들의 운명이라고 생각한다.
“그럼, 제페토. 도철이 빨라, 도올이 빨라?”
나는 우리 파티 중에서 제페토의 사역마가 가장 이 역할에 적합하다고 생각했다. 그리하여 아무 생각 없이 질문을 던졌는데, 돌아오는 것은 제페토의 급발진이었다.
“누가 더 빠르냐니! 도철과 도올 둘 다 저 케르베로스 따위와는 비교 못 할 정도로 빠르다!”
녀석은 둘을 비교하지 말라는 듯 발끈했다.
그 모습에 문득 누렁소와 검은 소의 비교를 묻는 황희 정승의 일화가 생각나서 웃음이 나왔다.
“그래 그래, 알았어. 그럼 유인은 맡겨도 되겠지?”
“물론이다!”
자신 있게 대답하는 제페토.
그런데 막상 사역마를 소환해야 하자, 망설이는 듯했다.
아까의 호언장담하던 태도는 온데간데없고, 정작 본인 스스로가 도철과 도올 둘 중 어느 녀석을 소환해야 할지 고민에 빠진 것으로 보였다.
말은 비교하지 말랬지만, 결국 저 좁은 다리는 한 놈으로만 건널 수 있었기에 그런 것이리라.
나는 그 진지하게 고민하는 모습에 또 웃음이 나왔다.
“뭐 해? 빨리 유인하지 않고.”
옆에 있던 캐서린도 팔짱을 끼고 제페토를 한심하게 쳐다보았다.
“오라버니, 도대체 뭘 고민하시는 거죠?”
그러자 제페토는 마지못해 대답했다.
“아, 알았다니까!”
참, 저 녀석 은근히 안 그럴 거 같은데 정이 많은 녀석이다.
결국 제페토는 고민 끝에 주문을 외워 사역마를 불러냈다.
「아바리티아 페쿠스(avarítĭa pecus)」
우우웅!
모습을 드러낸 것은 검은 기운이 일렁이는 거대한 양.
결국 제페토의 선택은 도철이었다.
“어차피 도철을 소환할 거 같더라니.”
“시, 시끄러워!”
제페토는 이내 도철의 등 뒤에 올라타고는 다리를 건널 채비를 했다. 그 모습을 보는 나도 슬슬 준비를 시작했다.
「마지아 미실레(magía míssĭle)」
위잉위잉위잉.
곧 내 오른손에는 방대한 양의 마나의 기운이 느껴지고 있었다.
생각해 보면 이 충전형 매직 미사일은 은근히 쓸모가 많은 것 같다.
나는 매직 미사일이 어느 정도 충전되자, 제페토에게 출발하라는 신호를 보냈다.
“그럼, 다녀와.”
“알겠다.”
그리고 도철 위에 탑승한 제페토는 다리를 달리기 시작했다.
다리는 나무판자가 쭉 연결된 조악한 형태의 흔들다리였으나, 도철의 달리는 무게에도 끄떡없어 보였다. 그리고 아무래도 그것은 케르베로스가 올라타도 마찬가지일 것으로 보였다.
이내 도철이 다리에 반쯤 도착하자, 입구에 누워 있던 케르베로스가 몸을 일으키더니 매섭게 다리 쪽으로 뛰어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도철 위에 올라탄 제페토는 능숙하게 방향을 돌려 케르베로스를 우리 쪽으로 끌고 오고 있었다.
“슬슬 준비해라!”
“알았어.”
위잉위잉위잉.
점점 더 거세게 들려오는 매직 미사일의 충전 소리.
그리고 케르베로스가 완전히 다리를 건너 지면 위로 도착하자, 나는 그 방아쇠를 당겼다.
콰아아아아앙!!
고출력의 매직 미사일은 어마어마한 굉음을 내며 케르베로스에게 정면으로 날아갔다. 그리고 케르베로스는 그 거대한 마나의 에너지를 온몸으로 받아냈다.
그런데,
“…멀쩡하네?”
“어, 어떻게 저딴 걸 맞고도 괜찮을 수 있는 것이냐?!”
케르베로스의 몸에는 흠집 하나 없었다.
이내 조금 전 공격으로 화가 잔뜩 난 케르베로스는 각각 세 개의 입에서 불을 뿜어 대기 시작했다.
화르르르륵!
“다들, 조심해!!”
“꺄아아아!”
도철 위에 올라타 있는 제페토는 케르베로스와 황급히 거리를 벌렸기에, 화염의 타깃은 나와 캐서린이었다.
우리는 열심히 도망을 쳐 보았지만, 불길이 스치는 것까지는 막지 못했다.
다행인 것은, 던전 이벤트로 얻은 화염 저항 90% 버프 덕분에 그다지 큰 대미지가 들어오진 않고 있다는 점이었다.
“일단, 소환할 수 있는 건 전부 소환해!!”
거의 완충한 고출력 매직 미사일을 맞고도 멀쩡한 녀석에게 무슨 공격이 통하겠냐마는, 우리는 일단 소환사 파티인 만큼 소환 가능한 모든 사역마에게 명령을 내려 케르베로스에게 총공격을 퍼부었다.
그런데,
“…저거 괴물이잖아?”
녀석은 사역마들이 달려드는 족족 날려 버리고 있었다.
심지어는 근육 폼의 매기조차도 녀석의 힘을 감당하지 못했다.
“아무리 봐도 저 녀석도 뭔가 해치우기 위해선 조건이 필요한 거 같은데…….”
던전 내부의 마물들 중 무적 상태의 기믹을 가진 녀석들을 종종 볼 수 있었다.
그리고 저 케르베로스도 또한 어떠한 기믹을 가진 녀석으로 파악되었다.
그게 아니라면 흠집도 없이 단단한 저 내구력을 설명할 방법이 없었다.
‘딱히 케르베로스의 약점 같은 건 떠오르지 않는데……. 그렇다면 굳이 싸워 줄 이유가 있나?’
도저히 저 케르베로스를 무찌르기 어렵다는 판단을 내린 나는, 이윽고 새로운 오더를 내렸다.
“다들 사역마만 붙여 놓고 이쪽으로 와! 건너편으로 뛰어!!”
그러자 제페토와 캐서린은 이내 내 말을 눈치채고는 다리 쪽으로 뛰어와 황급히 다리를 건너기 시작했다.
먼저 앞장서는 제페토, 그리고 내가 그 뒤를 따라 뛰었고, 마지막으로 캐서린이 조금 뒤처지는 속도로 따라오고 있었다.
도망가는 우리를 발견한 케르베로스가 뒤늦게 우리 쪽으로 달려들려고 했지만, 사역마들이 녀석을 막아 세웠다.
아무리 무적의 케르베로스라고는 하지만, 떼로 달려드는 사역마를 뚫고 오는 것은 버거워 보였다.
그렇게 우리는 순조롭게 다리를 건널 수 있었다.
그런데 그 순조로움은 계속되지 않았다.
우리가 흔들다리를 반쯤 건넜을 그때.
어느새 사역마들을 모조리 뿌리친 케르베로스가 헐레벌떡 다리를 뛰어오기 시작했다.
“저, 저 자식 너무 빠른데?!”
“일단 뒤돌아보지 말고 최대한 전속력으로 뛰어!”
그리고 나는 빠르게 머리를 굴렸다.
아무리 봐도 이 흔들다리는 매직 미사일의 공격으로 쉽게 끊어 낼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도착하면 내가 다리를 끊어 낼게!”
나는 흔들다리의 내구도를 계산하기 시작했다.
충전형 매직 미사일을 사용하면 확실히 다리를 파괴할 수 있겠지만, 어디까지나 ‘캐스팅 차지’는 가만히 있을 때만 사용할 수 있었기에, 지금으로서는 단발의 매직 미사일밖에 사용하지 못했다.
‘여섯 방이면 충분하겠지?’
어차피 노릴 곳은 다리를 지탱하는 이음새.
가장 취약한 곳이니까 여섯 방이면 충분하겠다는 계산이 섰다.
어느새 케르베로스는 코앞까지 따라잡고 있었고, 나는 빠르게 매직 미사일 여러 개를 반대편 이음새에 날렸다.
퍼어어엉!
‘성공했나?!’
이윽고 우지끈 소리와 함께 다리가 서서히 기울기 시작했다.
그리고 우리가 건너편의 지면에 도착한 찰나, 다리를 지탱하던 밧줄이 완전히 풀리더니 다리가 반대쪽에서부터 낭떠러지 아래로 떨어져 내리기 시작했다.
그와 동시에 거의 근접하던 케르베로스도 무게 중심을 잃고 다리와 함께 용암 구덩이로 추락하려 했다.
그런데 그때,
쉬리리릭!
케르베로스의 머리 중 하나에서 나온 혀가 뱀처럼 솟아오르더니 캐서린의 다리를 낚아챘다.
그리고 동시에 캐서린의 몸도 케르베로스와 함께 용암 구덩이로 추락하기 시작했다.
“캐서린!!”
나는 더 고민하지 않았다.
아니, 생각할 시간이 없었다.
이미 내 몸은 캐서린이 케르베로스의 혀에 붙잡혀 끌려감과 동시에 움직여, 용암의 절벽으로 뛰어내렸다.
“꺄아아아!!”
비명을 지르며 추락하는 캐서린.
나는 이를 악물며 공기 마찰을 견딘 채, 주머니에 손을 집어넣었다.
“이거 받아!!”
주머니에서 나온 것은 다름 아닌 공기 저항 마법이 내장되어 있는 케이든의 나침반.
이런 상황에 대비하여 버리지 않고 가지고 있었다.
다만, 그녀의 몸이 내 몸보다 아래에 있었기에 둘 다 공기 저항 마법을 받을 순 없었다.
결국 나는 그녀가 있는 곳으로 있는 힘껏 나침반을 던졌다.
다행히도 나침반은 캐서린의 품 안에 안착했다.
나침반을 받아 낸 캐서린은 곧바로 공기 저항 마법을 발동시켰다.
부웅.
추락하던 그녀의 몸이 순간 하늘로 솟구쳤다.
그러면서 동시에 캐서린은 내 쪽으로 손을 뻗었다.
그러나 나는 그녀의 손을 잡지 못했다.
부유하면서 스치는 그녀의 눈동자는 휘둥그레져 있었다.
그러나 나는 캐서린의 표정 같은 거 신경 쓸 여유가 없었다.
이내 나는 눈을 부릅뜨고 지면을 살폈다.
용암의 계곡 가장자리에 착지할 수 있을 만한 지면이 보이고 있었다.
빠르게 계산을 끝마친 나는, 황급히 허리춤으로 손을 향했다.
“으아아아아!!”
끝없이 추락하고 있던 내 몸은 공기 마찰과 용암의 열기로 인해 찢어지는 듯했다.
나는 안간힘을 써가며 허리춤에 있던 골드버그의 회중시계에 손을 가져다 댔다.
우우웅!
마나를 불어넣자, 이내 추락하는 내 눈앞에 매기가 모습을 드러냈다.
고개를 갸우뚱하는 매기.
매기와 눈이 맞은 나는 급한 대로 아무 말이나 입 밖으로 내뱉었다.
“거대화!! 커, 커져라!!”
다행히도 매기는 내 말을 찰떡같이 알아들은 모양이었다.
- 끼룩!!
순간 팽창하는 매기의 솜사탕 몸.
슈슈슈슈!
그리고 지면에 착지하려던 찰나.
나는 거대해진 매기의 몸에 쿠션처럼 안착할 수 있었다.
콰아앙!!
그러나 케르베로스는 안타깝게도 용암 계곡의 정중앙에 떨어졌다.
그리고 이내.
치이이이익.
- 끼에에에엑!
용암에 몸이 녹아내렸다.
“하하…….”
나는 비명을 지르며 용암에서 발버둥 치는 케르베로스를 보는 동시에, 또다시 살아났다는 안도감에 한숨을 내쉬었다.
슈슈슈슈.
내 몸을 받아 낸 매기는 다시금 작아지고 있었다.
그리고 이내 내 몸은 용암 계곡의 가장자리의 땅에 안착하게 되었다.
“휴우…….”
그런데 그때,
“괜찮아요?!”
어느새 공기 저항 마법과 함께 지면에 착지한 캐서린이 내 쪽으로 달려왔다. 그러고는 누워 있는 내 몸을 와락 끌어안았다.
캐서린의 가녀린 몸에서 어떻게 그런 힘이 나오는지, 내 몸을 끌어안는 압박감이 상당했다.
“주, 죽는 줄 알았잖아요!!”
“하하… 그렇게 세게 안으면… 오히려 숨 막혀서 죽을지도…….”
그런데 내 어깨 부근에서 무언가 축축함이 느껴지고 있었다.
아무래도 캐서린이 조금 전 충격으로 인해 눈물을 흘리는 것 같았다.
“뭐야……. 울어……?”
나는 그녀의 반응에 조금 당황스러웠다.
그러자 캐서린이 조심스럽게 중얼거렸다.
“…세 번째네요.”
“응……?”
그녀의 중얼거리는 소리는 너무 작아서 그 내용을 파악할 수 없었다.
다만, 어쨌든 둘 다 살았다는 생각에 나는 안도의 미소를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