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화
“캐서린!!”
뒤늦게 제페토가 도철 위에 올라타 낭떠러지 아래로 내려왔다.
그리고 지면에 도착하자마자 캐서린이 괜찮은지부터 살피기 시작했다.
어지간히 동생 사랑이 진득한 녀석이다.
캐서린은 제페토가 다가오자 황급히 나를 밀쳐 내고는 자리에서 일어나 눈물을 훔쳤다.
나는 그런 캐서린과 제페토의 모습을 보며 안도의 한숨을 쉰 채, 그대로 지면 위에 대자로 뻗어 누웠다.
“휴우… 수학여행 때 나침반을 챙겨 놓길 정말 잘했네. 그나저나 드롭 템은 다 녹아 버린 건가……? 아쉬워라…….”
이미 케르베로스는 용암에 전부 녹아내려 모습이 보이지 않고 있었다.
당연히, 케르베로스를 처치하고 나온 아이템이나 마정석도 용암 속으로 빨려 들어갔는지 흔적조차 보이지 않았다.
나는 짐짓 아쉬운 마음에 용암 계곡을 계속 쳐다보고 있었다.
그런데 그때,
- 크르르르…….
무언가가 다가오는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고개를 돌려 소리의 방향을 확인하자, 그 미확인 물체는 마치 용암 위를 부유하듯 둥실둥실 날아오고 있었다.
나는 눈살을 찌푸려 그것의 형태를 파악하는 데 집중했다.
그것의 머리 부분에는 핼러윈에서나 볼 법한 눈, 코, 입이 뚫린 붉은 호박이 활활 불타오르고 있었다.
그 아래의 몸통 부분에는 낡은 헝겊으로 덕지덕지 꿰맨 듯한 천 쪼가리가 뒤덮여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손에 기다란 낫을 들고 있었다.
둥실둥실 날아오고 있는 그것의 모습은 마치 죽음의 사신 같은 모습이었다.
“뭐야……. 중간 보스가 또 있어……?”
갑자기 나타난 녀석의 모습에 당황한 나는, 일어날 생각도 못 한 채 누워 있는 상태 그대로 멍하니 바라볼 뿐이었다.
“저, 저건 또 뭐냐?!”
뒤늦게 그 호박 사신의 모습을 파악한 제페토는 이내 도철에게 명령을 내렸다.
- 크르렁!!
제페토의 명령을 받아 녀석의 몸통 위로 힘껏 도약하는 도철.
그런데,
촤아아악!
호박 괴물이 휘두른 낫이 도철을 그대로 베어 버렸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도철은 검은 연기가 되어 한순간에 사라져 버렸다.
“도, 도철이 한 방에 소환 해제되었다고?!”
그 압도적인 무력에 당황한 제페토는 털썩 뒤로 자빠졌다.
그러나 호박 사신은 아랑곳하지 않고 우리를 향해 계속해서 날아올 뿐이었다.
우리는 모두 그 죽음의 사신의 모습에 압도당해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었다.
그런데 그때,
- 끼룩!
뜬금없이 매기가 그 호박 머리의 사신에게로 날아갔다.
그러더니,
- 끼룩! 끼끼룩!
호박 사신에게 서슴없이 말을 걸기 시작했다.
그런 매기의 얼굴은 당황한 기색 없이 오히려 매우 반갑다는 표정이었다.
그런데 더더욱 놀라운 것은 매기를 대하는 호박 사신의 당황한 듯한 모습이었다.
- 파, 파르? 파르르!!
뭔가 못 볼 것을 본 것 같다는 표정.
호박의 얼굴은 잔뜩 일그러져 있었다.
그 뒤로 둘의 알 수 없는 대화가 계속되었다.
우리는 멍하니 그들의 대화를 지켜보고 있을 뿐이었다.
- 끼룩, 끼룩!
- 파르, 파르으…….
- 끼루욱!
그러더니 잠시 후.
슈슈슈슈.
갑자기 호박 사신의 몸이 사라지기 시작했다.
몸통을 뒤덮은 헝겊 쪼가리가 점차 증발하더니, 나뭇가지 같은 앙상한 팔과, 시퍼런 낫도 사라지고 있었다.
그리고 남은 것은.
“…호박?”
그야말로 호박 대가리였다.
단지 특이점은 그 호박이 처음과 같이 계속해서 불타고 있다는 것이었다.
“이, 이게 도대체 어떻게 된…….”
여전히 바닥에 엉덩방아를 찧은 자세로 앉아 있던 제페토는 혼란스러움을 감추지 못했다.
그러나, 나는 그제야 슬슬 어떤 상황인지 파악할 수 있었다.
그야 저 핼러윈 호박 같은 얼굴은 너무나도 익숙한 얼굴이었고, 그만큼 유명한 녀석이었으니까.
“…저건 잭 오 랜턴이잖아?!”
잭—오—랜턴.
흔히 핼러윈의 호박 장식으로 알려진 녀석이자, 인간 세상을 떠도는 영혼의 길잡이라 알려진 녀석.
핼러윈의 요정과도 같은 존재였다.
‘그러고 보니, 잭 오 랜턴도 일종의 도깨비불이지. 그래서 매기랑 저리 친해 보이는 건가?’
물론 친해 보인다고는 하지만, 매기와 잭 오 랜턴의 태도를 보면 일방적으로 매기 쪽이 주도권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보였다.
이상한 외계어로 대화하고 있었기에 그 자세한 내용은 모르겠지만, 어쨌든 매기가 잭 오 랜턴을 꾸짖는 것으로도 보였다.
한참을 대화하던 매기는 이내 잭 오 랜턴을 내 쪽으로 데려왔다.
- 파르으…….
내 앞의 허공에 두둥실 떠 있는 호박의 얼굴은 별로 내키지 않는다는 듯 잔뜩 일그러져 있었다.
그런데,
- 끼룩!
갑자기 매기가 내 허리춤에 있는 골드버그의 회중시계에 머리를 비벼 대었다.
처음에 무슨 뜻인지 어리둥절했던 나는 이내 매기의 뜻을 이해하게 되었다.
“…설마, 이걸 사용하라고?”
- 끼루욱!
맞는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는 매기.
나는 그러한 매기의 태도에 침을 꿀꺽 삼켰다.
‘설마…….’
나는 반쯤 속는 셈 치고 회중시계에 마나를 불어 넣었다.
우우웅.
그러자 곧 매기가 소환 해제되어 모습이 사라지게 되었다.
그런데, 그와 동시에 매기의 옆에서 두둥실 떠다니던 잭 오 랜턴도 같이 자취를 감췄다.
그것을 본 나는 설마 하던 생각을 확신으로 바꾸고 있었다.
그리고 다시 회중시계에 재차 마나를 주입했을 때.
우우웅!
다시금 눈앞에 모습을 드러낸 매기.
그 옆에는 잭 오 랜턴이 함께 달라붙어 있었다.
“이젠, 이 녀석도 소환할 수 있게 된 거야……?”
- 끼룩!
- 파르으…….
어떻게 된 일인지는 모르겠다.
다만, 아까 제페토의 도철을 한 번에 썰어 버리던 녀석이 내 사역마가 되었다니…….
이유는 몰라도 어쨌든 뜻밖의 횡재였다.
‘포x몬 같은 개념인가……?’
마치 야생의 잭 오 랜턴을 골드버그의 회중시계로 잡은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리하여 어릴 적에 자주 보던 만화가 생각나지 않을 수 없었다.
군주급 던전인 이 용암 지대에서 떠돌아다니는 이상한 녀석, 그것도 매우 강한 녀석을 뜻밖에 동료로 맞이할 수 있다니.
정말 엄청난 이득이 아닐 수 없었다.
“이 녀석도 도깨비불인 건가? 확실히 불타고 있는 걸 보면 불은 맞는 거 같은데…….”
내가 혼잣말로 중얼거리자, 매기가 맞는다는 듯 맞장구를 쳤다.
- 끼룩!
“뭐? 맞는다고?! 잠깐만, 생각해 보니 우리 대화가 통했었잖아……? 그럼 이 녀석은 네 친구인 거야?”
- 끼룩!
어김없이 밝은 목소리로 대답하는 매기.
그리하여 나는 좀 더 자세하게 잭 오 랜턴의 정체를 캐묻기 시작했다.
“그, 그럼 우연히 싸돌아다니던 걸 우리가 발견한 거고?”
- 끼룩!
“그런데, 어째서 갑자기 나한테 사역마로 귀속된 거야? 설마 골드버그의 회중시계가 도깨비불 종류를 전부 귀속해서 사역할 수 있는 그런 아티팩트인 거야?”
- 끼루욱!
“…….”
분명 매기는 갈매기 소리만 내고 있을 뿐인데도 뭔가 대화가 통하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녀석의 대답을 보아하니 내가 말했던 대부분이 정답인 것 같았다.
“흐,흠. 그럼 저기 잭 오 랜턴… 씨?”
- 파르.
녀석은 살짝 못마땅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마치 그동안 자유를 찾아 도망쳤던 노비가 사장님에게 추노당한 것 같은, 그런 느낌이 들었다.
“어, 음……. 어쨌든 내 사역마가 되었으니까 이름을 지어 줘야겠지?”
- 파르으?
호박은 이름 얘기에 관심이 생긴다는 듯 한쪽 눈썹을 치켜들었다.
“그래 네 이름은 이제 ‘파르’다.”
- 파르.
솜사탕 모양의 ‘매기’에 이어서, 하늘을 둥둥 떠다니는 불타는 호박 ‘파르’가 새로운 동료가 되었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인지 아직도 얼떨떨하지만, 한편으로는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녀석의 무력은 이미 아까 전 도철을 한방에 도륙했을 때 증명되었다.
이렇게 강력한 녀석이 내 사역마가 되었다니.
기분이 묘했다.
어느 정도 상황이 종료되자, 멍하니 나와 도깨비불들의 대화를 멀리서 지켜보고 있던 제페토가 달려왔다.
“뭐, 뭐냐? 어떻게 된 거냐?! 서, 설마 저 호박 대가리가 네 녀석의 사역마라도 된 것은 아니겠지……?”
“응. 그런 거 같은데?”
“마, 말도 안 돼! 어떻게 이런 일이…….”
제페토는 또다시 나와의 격차가 벌어졌다는 사실에 아연실색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러더니 슬슬 현실 부정의 단계를 넘어서 방금 얻은 사역마 ‘파르’를 깎아내리기 시작했다.
“뭐어… 그래 봤자다. 아무리 그래도 네 녀석의 사역마 따위가 내 도철과 도올보다 강할 리는 없다.”
- 파르?!
제페토의 말에 파르는 살짝 열을 받는다는 듯 반문했다.
그런데, 파르와 눈빛을 교환하며 기 싸움을 하던 제페토는 갑자기 무언가를 발견한 모양이었다.
“어, 잠시만… 이 호박 대가리 어디서 많이 본 거 같은데?”
“당연히 많이 봤겠지, 잭 오 랜턴은 핼러윈이면 흔히 볼 수 있잖아?”
“아니, 그런 소리가 아니라 진짜 어디서 많이 본 거 같은데…….”
그러나 아무리 머리를 굴려도 어디서 봤는지는 기억 안 나는 모양이었다.
나는 그런 제페토의 모습이 어이가 없어서 그를 무시한 채, 이내 절벽 위의 타워를 올려다봤다.
“어쨌든 새로운 사역마가 생겼으니까 군주급 마물을 잡기에 더 수월하겠네. 그럼 다 쉬었으면 슬슬 타워 안으로 들어갈까?”
내가 슬슬 갈 채비를 하자, 멀리서 상황을 지켜보고 있던 캐서린이 다가왔다.
“몸은 괜찮아요?”
“아, 응. 다행히도 멀쩡해.”
“…무모해요.”
그러고 보니 아까 울었었지.
아무리 캐서린 골드버그라 할지라도 용암 구덩이로 추락하는 경험은 극복하기 쉽지 않은 충격인 것 같았다.
나는 아직도 눈가가 촉촉한 캐서린을 향해 어깨를 으쓱했다.
“뭐, 살았으면 됐잖아?”
“…….”
내 어쩔 수 없었다는 제스처에 캐서린은 대답이 없었다.
나는 그런 캐서린을 내버려 두고 다시금 절벽 위의 타워를 올려다보았다.
“자, 그럼 타워에 들어가 보실까?”
그렇게 우리는 매기에게 업혀서 차례로 절벽 위로 올라가게 되었다.
조심스레 타워의 입구 앞에 선 우리.
그런데 타워 앞의 커다란 대문은 아무리 밀고 당겨 봐도 열리지 않았다.
“여기 열쇠 구멍이 있는데요?”
“어? 진짜네?!”
캐서린이 가리킨 곳에는 거의 축구공만 한 크기의 거대한 열쇠 구멍이 있었다.
“…설마 아까 그 케르베로스를 잡고 나서 얻은 열쇠로 이 문을 열어야 하는 건가?”
거기까지 생각이 미쳤으나, 돌이킬 수 없었다.
이미 케르베로스의 배 속에 있었을지도 모를 타워 입구 열쇠는 용암 계곡 아래로 사라져 버렸으니까.
그런데 그때 제페토가 무언가를 발견한 모양이었다.
“다들 여길 봐라! 여기로 올라가면 될 거 같은데?!”
제페토가 크게 소리쳐 알린 것은 바로 입구의 외곽에 있는 계단.
계단은 나선형으로 타워의 꼭대기까지 올라갈 수 있게끔 설계되어 있었다.
중간에 타워로 들어갈 수 있는 창문이나 구멍이 없는 것으로 보아 아무래도 저 계단 꼭대기까지 올라가야 내부로 들어갈 수 있는 구조로 보였다.
“…아무래도 케르베로스를 잘못된 방식으로 잡은 덕분에 몸이 고생하겠네.”
물론, 덕분에 용암 계곡 아래에 떠돌아다니던 새로운 사역마를 얻었기에 불만은 없었다.
그렇게 우리는 나선의 계단을 오르기 시작했다.
멀리서 봤을 때는 별로 크지 않았던 타워가 직접 오르기 시작하자 매우 버겁게 느껴졌다.
게다가 계단의 통로는 사람 한 명이 겨우 통과할 수 있을 만큼 매우 비좁아서 사역마를 타고 갈 수도 없었다.
그리하여 우리는 악착같이 타워의 꼭대기를 향해 올라갔다.
그런데 반쯤 올라갔을까,
“어라? 승강기다!”
앞장서서 올라가고 있던 제페토가 무언가를 발견했다.
그것은 마력으로 움직이는 엘리베이터.
다행히도 마력을 주입하자 바로 작동하였기에 우리는 그 승강기를 타고 꼭대기에 올라갈 수 있게 되었다.
꼭대기에 도착하고 내린 우리는 이윽고 타워의 내부로 진입할 수 있게 되었다.
끼이익.
나는 제일 먼저 옥상에 있는 문을 열고 들어갔다.
그런데, 안은 창문 하나 없는 밀폐된 공간임에도 불구하고 매우 밝아서 안이 훤히 보이고 있었다.
그리고 곧 나는 그 광원의 정체를 알 수 있게 되었다.
“저건…….”
타워 내부에 몸을 웅크리고 누워 있는 거대한 새.
그 새의 거대한 몸은 계속해서 불타올라 주변을 훤히 밝히고 있었다.
“…피닉스잖아?”
녀석은 바로 이 용암 지대 던전의 군주급 마물.
피닉스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