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화
“우와아아앗!!”
내 몸은 하염없이 지상으로 추락했다.
그와 동시에 거센 바람이 내 안면을 강타했다.
뛰어내릴 때는 몰랐는데 막상 떨어지는 상황에 처하자 살짝 후회되긴 했다.
제페토와 캐서린의 뭐라 뭐라 하는 목소리가 들려오고 있었지만, 귓가를 때리는 바람 때문에 내용은 파악할 수 없었다.
‘내가 봐도 이건 좀 미친 사람 같은데…….’
생각해 보니 스스로도 어이가 없었다.
불과 한두 달 전만 해도 방구석에서 게임만 하던 겜돌이가 이제는 먼저 나서서 이러한 차력 쇼를 하고 자빠졌다.
다만, 피닉스를 죽일 내 계획을 실행하기 위해선 타워의 지면에 도달해야 하는데, 일일이 계단을 내려가기에는 너무 멀었다.
이 방법이 훨씬 빨랐다.
“풉…….”
나도 모르게 실소가 터져 나왔다.
내려가는 시간이 아깝다고 아예 옥상에서 뛰어내리는 사람이라니.
정말 미친 게 분명하다.
그리고 내가 이런 생각을 하는 와중에도 내 몸은 하염없이 바닥으로 추락하고 있었다.
이내 내 몸은 타워의 중간 높이에서 전투 중인 피닉스와 파르를 지나쳤다.
곧 조금 있으면 지면에 부딪히기 일보 직전이었다.
정신이 번쩍 든 나는 잡생각을 떨쳐 내고 침착하게 허리춤에 손을 가져다 댔다.
그러고는 골드버그의 회중시계에 마나를 주입했다.
- 끼룩!
눈앞에는 아까 전 피닉스의 공격으로 소환 해제된 매기가 다시금 등장했다.
“그거! 그거 해 줘!”
엄청난 속도로 추락 중이기에 입에선 제대로 된 말이 튀어나오지 않았다.
그러나 다행히도 매기는 바로 눈치챈 모양이었다.
- 끼루욱!
빠르게 날아가 지면에 먼저 도달한 매기는 이내 몸을 크게 부풀려 바닥에 쿠션을 만들었다.
그리고 내 몸은 그대로 매기의 쿠션 위로 낙하했다.
포―옹.
푹신한 쿠션 안으로 빨려 들어갔다가 튕겨 나가는 느낌.
단순히 충격 흡수용 에어 매트리스에 떨어지는 느낌이라기보다는, 아예 물속으로 다이빙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사실 이 정도의 충격 흡수에 대한 안정성이 없었으면 애초에 하지 않았을 행위였다.
아까 전 케르베로스를 상대하면서 매기의 쿠션 능력을 확실히 파악했기에 택할 수 있었던 방법인 것이다.
슈슈슈슈!
어느 정도 내 몸이 안정화되자 이내 매기가 거대화한 몸의 크기를 줄였다.
이윽고 지면에 발이 닿은 나는 목을 까딱까딱 돌리며 몸을 풀었다.
“그럼, 이제 저 불사의 괴물을 죽여 보실까.”
곧바로 나는 손에 매직 미사일을 충전하기 시작했다.
내가 지면으로 낙하한 이유.
그것은 바로 피닉스를 묶은 사슬 때문이었다.
사실 처음 이 장소를 봤을 때부터 위화감은 있었다.
피닉스의 크기에 비하면 이곳은 매우 비좁은 장소라고 볼 수 있었다.
게다가 출구라고는 열쇠로 굳게 잠겨 있는 대문과 상층부에 있는 사람이 드나들 수 있는 좁은 문 하나.
어딜 봐도 저 피닉스를 위한 장소가 아님은 확실했다.
더더욱 이러한 내 생각을 뒷받침해 주는 것은 바로 피닉스의 발에 묶여 있는 족쇄.
피닉스를 묶어 놓은 이 장소는 녀석의 둥지나 안식처 같은 것이 아니었다.
이곳은 녀석의 감옥.
애초부터 녀석은 이 장소에 갇혀 있었던 것이다.
“누가 저 군주급 마물을 이곳에 가둬 놓은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분명 이 장소는 용암 지대에서 가장 인위적인 장소.
누군가 의도를 갖고 이곳에 피닉스를 가둬 둔 것이 틀림없었다.
이곳은 애초에 아카데미 내부에 있는 던전이기에, 녀석을 이곳에 가둔 것은 아마도 아카데미의 관계자일 것이리라.
“뭐, 어쨌든 녀석을 죽일 만한 힌트는 이것뿐이네.”
내 시선을 끈 것은 바로 녀석의 발목을 잡아 두고 있는 족쇄였다.
저 족쇄는 녀석이 부활을 위해 불씨로 변한 상태에서도 여전히 녀석을 속박하고 있었다.
아무리 쇠사슬로 피닉스를 속박한다 한들, 녀석은 군주급 마물.
고작 그 정도를 뿌리치지 못할 정도로 유약한 녀석이 아니었다.
그래서 내가 내린 결론은 저 족쇄에 뭔가 있다는 것이었다.
녀석에게 약점이 있다면, 지금 녀석을 속박하고 있는 저 족쇄 자체가 녀석의 약점일 터.
그리하여 나는 그 족쇄의 연결 부분이 이어지는 지면으로 이동한 것이다.
위잉위잉위잉.
이내 내 손에는 거대한 마나가 모여 있었고, 나는 족쇄의 연결 부분에 고출력의 매직 미사일을 날렸다.
콰과과과광!!
고출력의 매직 미사일은 커다란 굉음을 내며 벽면에 있는 족쇄의 연결 부위에 직격했다. 그러나, 그 거대한 힘에도 불구하고 족쇄는 멀쩡해 있었다.
“…하긴 이 정도로 뽑아낼 수 있었으면 저 괴물 녀석이 여기 묶여 있을 리도 없었겠지.”
이것을 잘라내려면 좀 더 강력한 힘이 필요했다.
그리고 지금으로서 내게 가장 강력한 힘은 역시.
“언노운 님!”
언노운의 오러 블레이드밖에 없었다.
비록 아직 언노운과의 빚을 정산하지 못했지만, 어찌 됐든 이번 건으로 충분히 빚은 갚을 수 있을 테니까.
나는 이번 한 번만 염치를 무릅쓰기로 했다.
그러나 언노운은 그 뒤로 몇 번을 재차 불러도 대답이 없었다.
“어쩔 수 없네……. 죄송합니다, 언노운 님!!”
나는 이내 허리춤의 언노운을 뽑아 들고는 손잡이를 두 손으로 쥐었다.
그리고,
캉!!
캉!!
그것으로 쇠사슬의 연결 부위를 내려치기 시작했다.
다 낡아빠져서 검날의 이빨이 빠져 있는, 간신히 검의 형태 정도만 유지하고 있는 언노운을 이런 식으로 함부로 대하다니.
내가 생각해도 조금 과격했지만, 상황이 어쩔 수 없었다.
그리고 내가 예상했던 대로, 지금껏 대답 없던 언노운은 즉각 반응을 보였다.
- 무, 무슨 짓이더냐!!
“아, 오셨어요? 헤헤…….”
나는 머릿속에서 언노운의 목소리가 울려 퍼지자, 언노운으로 쇠사슬을 내리치던 손을 스르륵 내리며 모른 척했다.
- 미친 게냐?!
“그건 아니고요……. 저… 이번 한 번만 마지막으로 외상으로 도와주시면 안 될까요?”
- 이런 식으로 나온 네놈을 내가 도울 거라 생각했느냐? 큰 착각이다!
언노운은 살짝 강경한 태도를 보였다.
그러나 나도 다 생각이 있어서 한 행동이었다.
“알아보니까 아카데미 근처 마을에 누블랑 전문점이 있더라고요?”
- 그, 그래서?
바로 반응이 오는 언노운.
나는 씨익 미소를 지었다.
“제가 아무래도 이번 던전을 마무리하게 되면 적어도 1,000다트 정도 이상은 여유가 생길 거 같은데……. 이 정도면 거기 있는 메뉴 전부 하나씩은 살 수 있을 거 같지 않으세요?”
- …….
침묵하는 언노운.
그리고 나는 이내 검날에서 흘러나오는 백색의 기운을 보고는 그녀의 대답을 알 수 있었다.
“감사합니다. 정산은 확실히 할게요.”
나는 싱긋 웃으며 이내 쇠사슬을 벨 자세를 잡았다.
그런데 언노운이 넌지시 말을 건넸다.
- …착각하지 마라.
“네? 착각하지 말라니요?”
- 고작 1,000다트로는 모든 메뉴를 사는 것이 불가능하다.
“…….”
1,000만 원으로도 전 메뉴를 다 살 수 없다니…….
‘도대체 그 누블랑이라는 브랜드, 얼마나 고급인 거야……?’
나는 속으로 경악하면서도 일단은 저 피닉스를 처치하는 데 집중하고자 했다.
쇠사슬을 베기에 앞서, 나는 매기와 파르를 불러 오더를 내렸다.
“어이, 파르!!”
- 파르.
내가 큰 소리로 파르를 부르자 공중에서 아직 피닉스와 전투를 벌이고 있는 파르 또한 내 쪽을 확인하며 대답했다.
눈앞에 피닉스를 두고서도 한눈을 파는 저 태도.
어지간히 여유 있어 보였다.
“일단 죽이지는 말고 적당히 상대해 주고 있어. 내가 신호 주면 그때 베어 내면 돼. 알았지?”
- 파르.
파르는 시크하게 대답을 하고는 이내 공격을 멈추고 한 손으로 낫을 든 뒤 적당히 피닉스를 가지고 놀기 시작했다.
나는 그런 파르의 모습에 씨익 미소를 지으며 옆에 있는 매기한테도 명령을 내렸다.
“너는 일단 근육 폼으로 변신해 줘. 내가 이 쇠사슬을 자르면 그때 이걸 저 피닉스를 향해 힘껏 던져 주면 돼.”
- 끼룩!
매기는 대답과 동시에 점차 근육 폼으로 변하고 있었다.
이제 모든 준비는 끝났다.
“그럼, 진짜 불사인지 확인해 보자고.”
나는 언노운의 손잡이를 힘껏 양손으로 쥐었다.
그러자 언노운의 검신에 하얀색의 마나가 밀집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사아아아.
어느덧 검신이 모든 마나를 머금어 오러 블레이드의 준비가 끝나자, 나는 파르를 향해 소리쳤다.
“파르! 이제 녀석을 베어 줘!!”
- 파르!
그리고 동시에 나는 오러 블레이드를 있는 힘껏 쇠사슬의 연결 부분을 향해 내리쳤다.
촤아아악!!
고출력 매직 미사일에도 끄떡없던 쇠사슬은, 역시나 오러 블레이드 상태의 언노운에 단번에 베어졌다.
위쪽을 확인하니 파르 쪽도 마무리를 하여, 이미 피닉스는 불씨의 상태로 허공에 떠 있을 뿐이었다.
나는 곧바로 매기에게 다음 명령을 내렸다.
“매기! 이걸 저 불씨를 향해 던져 줘!!”
- 끼룩!
근육 폼을 한 매기는 이내 쇠사슬을 양손으로 집어 들더니, 몇 번의 회전 뒤에 불씨를 향해 쇠사슬의 끝부분을 힘껏 던졌다.
그리고,
퍼어어억!!
날아간 쇠사슬은 그대로 불씨의 불꽃에 가려진 심장 부분을 관통했다.
“해치웠나…….”
쇠사슬이 심장을 관통하자 불씨는 점점 작아지더니 이내 펑 하는 소리와 함께 폭발을 일으키며 사라졌다.
예상했던 대로 이 쇠사슬은 저 불사의 피닉스를 죽일 유일한 방법이었던 것이다.
“휴우…….”
한시름 놓은 나는 머리에 맺힌 땀을 닦았다.
어느덧 백색의 빛을 뿜어 대던 언노운도 그 빛이 바래 있었다.
그리고 또한 타워 안을 가득 비추던 피닉스가 처치되자, 사방이 어두워져 있었다.
그런데 그때,
우우우우웅!!
1층의 정중앙에서 빛이 뿜어져 나오더니 타워 안을 밝히기 시작했다.
그와 함께 보이는 것은 커다란 상자였다.
그 의미를 깨달은 나는 재빠르게 그곳을 향해 뛰어갔다.
“드디어 보상이구나!”
며칠 간의 길었던 장정 끝에 드디어 군주급 던전을 클리어하게 된 것이다.
그리고 그 보상은 그에 걸맞게 엄청날 것으로 예상이 되었다.
나는 들뜬 마음으로 보상 상자 안을 확인하기 시작했다.
제일 먼저 손에 집히는 것은 거의 사람 얼굴만 한 마정석이었다.
“마정석이 이렇게나 크다고?!”
역시 군주급 던전의 보상은 마정석조차도 엄청났다.
이 정도의 마정석 크기면 못해도 1,000다트는 훌쩍 넘을 것으로 예상되었다.
나는 침을 꿀꺽 삼키며 마정석을 옆에 내려놓고는 상자 안을 마저 뒤적였다.
첫 번째로 손에 잡힌 아이템은 깃털이었다.
“깃털……?”
나는 곧바로 아이템 정보를 확인했다.
〈아이템 정보〉
* 아이템: 피닉스의 깃털
* 설명: 불사의 능력을 가졌다는 피닉스의 깃털이다. 죽은 자도 부활시킬 수 있다는 민간 전설이 전해진다.
* 효과: 소모성 아이템. 사용자가 신체에 입은 대미지를 전부 회복시켜 준다.
“피닉스의 깃털?!”
처음 아이템부터 무지막지한 녀석이 등장했다.
비록 소모성 아이템이라는 것은 아쉽지만, 중요한 것은 효과였다.
“신체에 입은 대미지를 전부 회복시켜 준다니…….”
그 말인즉슨 팔이나 다리가 절단되어도, 치명적인 독에 중독되거나 불치병에 걸려도 전부 회복시켜 준다는 소리였다.
게다가 지금껏 봐온 시스템의 특성상 별다른 조건이 달려 있지 않다는 것은, 그 어떠한 상황에도 적용할 수 있다는 말이었다.
“역시… 군주급 던전은 괜히 군주급이 아니잖아?”
나는 설레는 마음으로 다음 아이템도 빠르게 확인했다.
다음 아이템은 가운데에 지그재그로 선이 그어져 있는 금색의 반지였다.
〈아이템 정보〉
* 아이템: 이프리트의 반지
* 설명: 화염의 정령 이프리트의 반지이다. 착용자를 화염으로부터 보호해 준다고 알려져 있다.
* 효과: 화염 속성 저항 30% 증가
아이템의 설명을 모두 읽은 나는 아까보다 리액션이 덜했다.
“음… 이건 그럭저럭 평범한 거 같네.”
사실 이것도 분명 에픽급 이상인 것은 분명했다.
던전 내부의 버프가 아닌, 현실에 적용되는 대미지 감소 수치는 보통 20%를 가장 높은 수치로 보고 있었다.
그런데 이 반지는 20%도 아니고 무려 속성 저항 30% 증가.
사실상 이 반지 하나면 화염계 마법사나 화속성 마물들은 상대조차 되지 않는 것이다.
다만, 죽어 가는 사람도 부활시켜 준다는 피닉스의 깃털을 앞서 얻은 나로서는 조금 만족스럽지 못한 효과였다.
나는 얼른 다음 아이템을 확인하고자 했다.
마지막으로 상자 안에 놓인 것은 거의 축구공만 한 커다란 알이었다.
〈아이템 정보〉
* 아이템: 피닉스의 알
* 설명: 불사의 생물 피닉스의 알이다. 피닉스라는 존재는 단 하나의 개체밖에 존재하지 않음으로, 이 알을 발견했다는 것은 이전에 존재하던 피닉스가 죽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 효과: 소모성 아이템. 불사의 생물 피닉스를 소환한다.
“피닉스의 알이라고?!”
마지막 아이템을 확인한 나는 눈이 휘둥그레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