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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데미의 무속성 마법사-69화 (69/175)

69화

사실 안티 매지션의 수업이야 추호도 듣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

다만 그런 말이 있지 않은가?

‘피할 수 없으면 즐겨라.’라는 말.

어차피 당분간은 녀석의 수업을 들어야만 했다. 그리고 또 너무 반항적인 태도를 보이는 것은 오히려 내가 루퍼스의 의심을 살 가능성도 있었다.

그리하여 나는 이번 수업을 즐기기로 했다.

게다가 이번 훈련의 내용은 저 에이체스와 벅스 두 놈을 제대로 혼내 줄 기회이기도 했다.

‘오늘 훈련의 테마가 죽을 위기에서의 전투라 이 말이지?’

그야말로 녀석들을 죽도록 패줄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인 것이다.

“앞서 설명한 대로 이번 훈련은 다소 고강도의 훈련이 될 거야. 강제 귀환 시스템은 마련되어 있어서 죽지는 않겠지만, 고통은 보정 없이 고스란히 적용될 테니까 아무래도 난이도가 좀 있는 편이지? 그래서 오늘 훈련은 강제가 아닌, 따로 지원자를 받으려고 해. 혹시 먼저 대련하고 싶은 사람이 있을까?”

루퍼스의 경고에도 의외로 많은 사람이 손을 들었다.

제이드, 제페토, 루비, 달시, 등등.

웬만한 자신감 있는 녀석들은 하나도 빠짐없이 거수를 했다.

순서를 뺏길 것만 같아, 안 되겠다 싶은 나는 아예 자리를 박차고 벌떡 일어났다.

“제가 하겠습니다!”

내 우렁찬 목소리에 순간 주변이 고요해졌다.

그리고 이내 다들 나를 보며 술렁이기 시작했다.

“수석이 나온다고……? 나, 나는 좀…….”

“다른 사람이면 몰라도 제로가 나온다고?”

“우와아……. 나도 포기할래.”

슬그머니 손을 내리기 시작하는 동급생들.

뒤쪽에서 숙덕거리는 그들의 목소리를 들으며 나는 조금 우쭐해졌다.

‘그래, 나는 군주급 마물도 잡았다 이거야.’

이제는 이 아우레인에서 내 상대가 될 만한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루퍼스 그레이엄은 자리에서 일어나 이목을 끌고 있는 나를 보고는 눈웃음을 지었다.

“네가 제로 맞지? 1학년 수석이라는.”

“네.”

“좋아. 학년 수석의 실력도 볼 겸, 좋은 본보기가 될 것 같은데? 그런데 학년 수석에 걸맞은 상대가 있겠어?”

“저 혹시… 상대를 지목해도 될까요?”

“지목한다고?”

내 말에 루퍼스는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그러나 나는 이내 씨익 미소를 짓고는 나를 쳐다보고 있는 학생들을 한번 쓱 훑었다.

그러고는 ‘그 녀석’과 눈이 마주치자, 그곳을 향해 힘껏 손가락을 뻗어 가리켰다.

“너! 나와!”

마치 학창 시절 즐겨 봤던 프로그램의 출연자처럼, 나는 호기롭게 녀석, 에이체스 저니맨을 가리켰다.

그러자 에이체스는 휘둥그레진 눈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나, 나……?!”

“그래, 너.”

나는 잔뜩 쫄아 있는 녀석에게 미소를 보였다.

그러자 가뜩이나 움츠러든 녀석이 더더욱 거북목을 집어넣었다.

“설마 ‘평민’ 따위한테 쫄아서 거절하는 건 아니겠지?”

나는 녀석을 대놓고 도발했다.

그런데 녀석의 반응은 의외였다.

“그, 그치만 넌 학년 수석이잖아!”

뭐야, 저 녀석.

알긴 아네?

그동안의 행동거지를 보아 모르고 있는 줄 알았는데, 적어도 주제 파악은 하고 있던 모양이었다.

다만 녀석이 그렇게 나온다 해서 쉽게 빠져나가게 내버려 둘 내가 아니었다.

“그래. 하긴, 평민 출신 수석과 일개 ‘귀족 나으리’와 맞붙으려면 밸런스가 안 맞긴 하지. 그래서 제안할 게 있어. 거기 너!”

나는 곧바로 뻗어 있던 손가락을 움직여 벅스를 지목했다.

그러자 벅스는 토실토실한 볼살을 흔들며 당황하고 있었다.

“너희 둘이 동시에 덤벼보는 건 어때? 아무리 그래도 2:1인데 설마 도망치진 않겠지……?”

녀석들은 이제 진퇴양난에 빠졌다.

그동안 나를 개무시해 왔던 녀석들이다.

그런데 2:1을 하겠다는데 거기서 내뺀다고?

그렇다고 덥석 물자니 애초에 2:1로 싸우는 거 자체가 굉장히 자존심 상하는 일일 것이다.

다만, 녀석들은 자존심이고 뭐고 내가 내민 함정을 덥석 물어 버렸다.

“조, 좋아! 방금 한 말 무르기 없다? 나와 벅스를 무시한 대가를 톡톡히 치르게 해 주마!”

“풉. 그래, 그렇게 나오셔야지.”

미끼를 내밀자 헐레벌떡 물어 버리는 모습이 가여웠다.

그리고 이번 기회로 녀석들과 나의 차이를 뼈저리게 가르쳐 줄 참이었다.

다만, 그 이전에 당연하게도 교수의 동의를 구해야만 했다.

“루퍼스 교수님?”

입에 담기도 역겨운 그 이름.

다만, 지금 당장의 적은 녀석이 아니었으니 나는 너그러운 마음으로 그를 쳐다보았다.

“아무래도 제가 학년 수석이다 보니까 2:1은 해야 밸런스가 맞을 거 같은데 이대로 진행해도 되겠습니까? 저 녀석들도 보다시피 동의했는데요.”

“그래. 너 참 웃기는 녀석이구나? 그럼 첫 경기는 너와 저 친구들의 2:1 대련으로 진행하도록 할게. 기대하고 있으마, 학년 수석.”

“물론이죠.”

나는 기꺼이 루퍼스의 말에 대답을 해 주었다.

사실 지금 당장의 내 머릿속에는, 루퍼스 그레이엄이 블랙잭의 간부라는 사실조차 잠깐 사라져 있었다.

그만큼 에이체스 저니맨과 벅스 버니로드를 가지고 놀 생각에 흥분되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럼, 입구 앞에 서렴.”

약간 비실비실하고 살짝 키가 작은 에이체스 저니맨.

반면 덩치가 좀 있고 뚱뚱한 벅스 버니로드.

이내 둘은 던전 입구 앞에 서 있던 내 옆으로 나란히 서게 되었다.

그러자 에이체스 저니맨 쪽이 나를 흘끔 보더니 말을 걸어왔다.

“혹시 마도구라도 사용할 생각은 아니지? 비겁하게?”

“풉.”

“뭐, 뭐냐? 왜 웃는 것이냐 이 평민 따위가!”

녀석의 말에 나는 웃음을 참을 수가 없었다.

그러자 에이체스는 살짝 열을 받았는지 얼굴이 시뻘게져 있었다.

“아니 애초에 2:1인데 비겁하고 자시고가 있나?”

“뭐, 뭐라고?!”

“아무튼, 좋아. 그럼 이 검을 사용 안 하면 되는 거지?”

나는 허리춤의 언노운을 풀어헤쳤다.

그러고는 잠시 캐서린에게 다가가 언노운을 맡아 달라고 건네주고 왔다.

“자, 됐지?”

“흥. 어디까지 그렇게 오만한 태도를 유지할 수 있는지 보자. 지금껏 그 검빨이었던 걸 모를 줄 알았냐?”

“맞아! 이미 네 그 얕은수는 다 파악했거든!”

그럴 줄 알았다.

언노운을 포기하자마자 자신만만한 태도를 보이는 녀석들에게 나는 코웃음을 쳤다.

그야 지금껏 녀석들은 매기나 파르를 만나 본 적이 없었다.

그저 수업 중에 언노운을 휘두르는 것만 몇 번 봤었겠지.

그리하여 녀석들은 나를 언노운 원툴이라고 생각했던 모양이었다.

나는 뻔히 보이는 녀석들의 생각이 너무나도 가소로웠다.

물론 나는 골드버그의 회중시계 도움 없이도 녀석들쯤이야 쉽게 이길 수 있다는 자신이 있었다.

다만, 앞서 계획했던 대로 녀석들을 반죽음 상태에서 가지고 놀려면 골드버그의 회중시계 정도는 있어야 한다는 판단에 녀석들의 시선을 언노운으로 끈 것이었다.

나는 녀석들의 얼굴을 훑으며 혀로 입술을 살짝 적셨다.

그러고는 루퍼스에게 넌지시 질문을 던졌다.

“아, 혹시 대련 내용은 송출되나요?”

“당연하지. 너희들의 대련 내용은 실시간으로 송출하면서 다 같이 지켜볼 거야. 다만, 음성 같은 경우는 오디오 송출을 따로 설정 안 해 놨어.”

“아, 그래요……? 오디오가 들리지 않는다는 건 그나마 다행이네요…….”

나는 씨익 웃으며 던전 입구에 한 발짝 발을 들이밀었다.

“…이제부터 조금 잔인할 예정이니까요.”

그리고 이내 내 몸은 던전 안으로 빨려 들어가고 있었다.

우우웅.

눈이 부셔서 살짝 눈을 감았다 뜨자, 곧 눈앞에는 넓은 초원이 펼쳐지고 있었다.

그리고 저 멀리에서는 에이체스와 벅스로 추정되는 인영이 보이고 있었다.

“던전의 필드는 이런 식이다 이거지.”

맵은 탁 트인 공터였다.

크기도 그다지 넓지 않았다.

대략 축구 경기장 크기 정도.

사실 애초에 이런 지형일 경우는 숨을 곳이 마땅치 않았기에, 상대방에게 접근할 수만 있다면 강화계나 변신계 쪽이 상당히 유리했다.

다만, 내 쪽도 육탄전에는 자신이 있었다.

나는 곧바로 골드버그의 회중시계에 마나를 불어 넣었다.

우우웅.

그리고 그와 함께 나타나는 솜사탕과 불타는 호박.

- 끼룩!

- 파르.

밝게 인사하는 매기와 살짝 무뚝뚝한 파르가 나타났다.

“지금껏 어마어마한 녀석들이랑 싸우다가 고작 쟤네들이랑 싸우게 해서 미안하네. 조금 수준 떨어지지?”

- 파르.

- 끼룩?

“그래 그래, 알았어. 파르는 조금 귀찮은 모양이네. 그럼 일단 매기 네가 보여 줄래?”

- 끼루욱!

슈슈슈슈!

매기는 대답과 동시에 이내 근육 폼으로 변했다.

이제는 녀석이 근육 폼으로 변하고 나서 포즈를 취하는 상황에 너무나도 익숙해져 있었다.

“그럼, 녀석들은 어떤지 봐 볼까?”

에이체스의 마법은 익히 알고 있었다.

에이체스 녀석은 변신계. 고작 개로 변신하는 허접한 수준의 고유 마법이었다.

다만, 벅스 쪽의 마법은 그동안 본 적이 없어서 뭔지 잘 예상이 가지 않았다.

“뭐, 어차피 뭐든 간에 그다지 경계되진 않지만.”

이내 개로 변신한 에이체스의 등에 벅스가 탑승하더니 뛰어오기 시작했다.

거리를 상당히 좁히며 나를 구석으로 모는 에이체스와 벅스.

그러고는,

슈우우우웅!

퍼어어어엉!!

개 위에 올라탄 벅스가 내 쪽을 향해 파이어 볼을 날리기 시작했다.

“어쭈? 원소계 화염 마법사인 건가?”

같은 화염의 마법이더라도 그 방식은 여러 가지였다.

이를테면 상대를 발화시킨다든지, 발밑에서 불구덩이를 폭발시킨다든지.

다만, 벅스의 화염 마법은 그저 평범한 파이어 볼에 그치는 허접한 수준으로 보이고 있었다.

녀석들은 계속해서 거리를 벌리며 원거리에서 쉬지 않고 파이어 볼을 날려 대었다.

“도대체 뭔 자신감으로 승부에 응한 거야……?”

나는 녀석들의 수준에 어이가 없어서 헛웃음이 나왔다.

지금껏 내가 상대해 온 그리핀, 광폭화한 캐서린, 피닉스에 비하면 녀석들은 거의 초등학생, 아니 유치원생 이하의 수준이었다.

나는 파이어 볼을 피하기도 귀찮아서 매기에게 손짓으로 명령을 내렸다.

그러자 럭비 선수처럼 녀석들을 향해 달려가는 매기.

쿵! 쿵! 쿵!

매기가 한 발짝 한 발짝 뛰어나갈 때마다 지면에 작은 진동이 느껴지고 있었다.

“뭐, 뭐야, 이 괴물은? 저놈 소환계였어?!”

에이체스와 벅스는 당황하며 매기를 피해 도망 다니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파이어 볼을 몇 방 날려 보지만, 매기는 고작 파이어 볼 따위에 전혀 대미지를 입지 않고 있었다.

게다가,

“에, 에이체스 여긴 막다른 길인데?!”

“뭐, 뭐라고?!”

열심히 뛰어다니던 에이체스와 벅스는 얼마 지나지 않아 구석에 몰리게 되었다.

물론, 이곳이 넓은 지형이었으면 개로 변신한 에이체스와 그 위에 탑승해 있는 벅스가 좀 더 빨랐겠지만, 이곳은 축구장 크기의 120m도 채 안 되는 좁은 지형이었기에 도망칠 공간이 부족했던 것이다.

그리고 이내 매기는 개로 변신한 에이체스와 벅스를 양손으로 잡아 올렸다.

에이체스가 열심히 매기의 팔뚝을 물어뜯고, 벅스가 열심히 파이어 볼을 날려 봤지만 별 소용은 없었다.

“그럼…….”

매기가 녀석들을 손아귀에 쥔 걸 확인한 나는, 이내 곰곰이 머리를 굴리기 시작했다.

아무리 그래도 너무 그로테스크한 고통을 주는 것은 조금 보는 입장에서 잔인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하여 나는 녀석들에게 선사할 잔인함은 양보하고, 수치심만으로 만족하기로 했다.

“매기야! 걔네들 엉덩이를 잔뜩 후려갈겨 줘!!”

- 끼룩!

멀리서도 알았다는 듯 손을 흔드는 매기.

다만 그 손을 흔드는 곳에 개로 변한 에이체스가 잡혀 있었기에, 덩달아 흔들리는 모습이 가관이었다.

그리고 이내 매기는 한 손으로 둘을 벽면에 세운 뒤에,

짝!!

볼기짝을 때리기 시작했다.

“아아악!! 미, 미친놈아, 뭐 하는 짓이야!!”

“미, 미안해. 잘못했어!!”

그리고 그것은 한 번으로 끝나지 않았다.

짝!!

“끄아아아악!!”

“사, 살려 줘!!”

처절하게 울부짖는 둘의 모습은 실로 가관이었고, 그 모습을 지켜볼 아우레인 학생들을 생각하니 통쾌하기 그지없었다.

‘오히려 이게 더 잔인한 게 아닐까……?’

나는 그들의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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