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1화
* * *
루퍼스 그레이엄이 아우레인에 임시 교수로 온 지 일주일.
처음엔 녀석의 등장 이후, 당장이라도 침공 이벤트가 발생할 것 같아 잔뜩 긴장하고 있었다.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무슨 사건이 벌어지는 일은 없었다.
그저 똑같은 수업, 똑같은 강의가 이어질 뿐, 루퍼스에게서 별다른 수상한 움직임은 보이지 않았다.
딱히 아텔라에게서도 별다른 말이 없던 걸로 보아, 루퍼스는 정말 평범하게 교직 생활을 수행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게다가 녀석은 말주변도 좋고, 상당히 매력적인 외모와 목소리를 가졌기에, 학생들은 물론이고 다른 교수들 사이에서도 굉장히 인기 있었다.
나는 요 일주일 내내 녀석을 보면서 점차 헷갈리기 시작했다.
‘정말 저 녀석이 블랙잭의 간부 스페이드가 맞나?’
‘아카마’에서의 침공 이벤트는 갑작스레 벌어진 일이었기에, 그전에 블랙잭과의 접점 같은 건 없었다.
따라서 블랙잭 녀석들의 외모만 대충 파악하고 있을 뿐, 녀석들의 성격이나 사람 됨됨이 같은 건 알 리 없었다.
그런데 루퍼스 그레이엄을 보면 볼수록 저 녀석이 정말 케이든 교수를 해친 녀석이 맞는지 의문이 들었다.
어떻게 보면 안티 매지션이 아닌 평범한 사람 같다는 의미이기도 했지만, 결국 내용을 따지고 보면 그만큼 연기를 감쪽같이 하는 교활한 녀석이라는 소리이기도 했다.
그렇게 평이한 일주일이 흐르고 찾아온 주말.
드디어 마경의 실베르 라인하르트로부터 연락이 도착했다.
기숙사에 마련되어 있는 전화기로 연락이 온 걸 동급생이 알려 주어 나는 황급히 수화기를 넘겨받았다.
“실베르 차장님?”
- 어, 그래.
실베르의 목소리는 어딘가 조금 시큰둥하게 느껴지고 있었다.
그러나 나는 아랑곳하지 않고 말을 이었다.
“뭐 좀 알아내셨나요? 아니 그 이전에 이거 이렇게 통화해도 되는 건가요? 도청이나 해킹 같은 거 당하는 거 아니에요?”
- 아아, 그 점은 걱정 안 해도 돼. 애초에 마경을 뭘로 보는 거냐? 도청에 대한 대비는 언제나 확실하지. 아무튼, 네가 말한 그 루퍼스 그레이엄이라는 사람 말이야.
“네.”
- 블랙잭과의 연관성은 찾아볼 수 없더라. 애초에 그 사람이 블랙잭의 간부라는 거. 확실한 정보냐?
“에…….”
역시나 일은 쉽게 풀리지 않았다.
결국 마경 측에서도 루퍼스와 블랙잭과의 연관성을 찾지 못한 이상, 루퍼스가 블랙잭의 간부 스페이드라는 내 주장은 신빙성이 없었다.
애초에 결과가 이러하니 실베르조차도 더 이상 나를 믿지 못할 것이다.
- 위자드 협곡에서 케이든 선배가 당했던 그 날의 알리바이도 충분히 있었고. 아카데미 부임 이전의 활동 내역도 남겨져 있더라고. 예전에 루퍼스가 직접 마경에 찾아온 기록이 있어서 말이야.
“네? 찾아온 기록이라니요?”
녀석이 스스로 마경을 찾을 용건이 있었나?
나는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그 이유를 물었다.
- 너 ‘저주받은 세대’ 사건이라고 들어봤어?
“예? 저주받은 세대요?”
- 뭐야, 모르는 거야? 하긴, 그때 당시에 너는 어려서 잘 몰랐으려나. 아무튼 루퍼스가 아카데미에 재학했을 당시 몇몇 학생들이 사고를 치고 도주한 사건이 있었거든. 루퍼스가 마경을 찾은 이유가 그거였어. 그 학생들이 어디로 사라졌는지 수사 기록을 볼 수 있냐고 마경에 문의했더라고. 아마도 친구들의 행방을 찾던 거였겠지?
저주받은 세대.
아카데미의 재학생들이 사고를 치고 도주한 불미스러운 사건.
내가 전혀 모르는 일이었고 ‘아카마’에서조차 언급되지 않은 일들이었다.
그런데 문득 저주받은 세대를 어디서 들어 본 거 같은 기억이 들었다.
‘어디서 들었지……?’
그러나 이내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애초에 ‘아카마’에서 언급되지 않을 정도면 그다지 비중 있는 일은 아닐 테니까.
지금 당장의 문제는 루퍼스 그레이엄이었다.
- 루퍼스 그레이엄은 졸업 후부터 지금까지 그 녀석들을 찾아다녔더라고. 이건 이미 주변 인물들의 증언과 목격을 토대로 알아낸 거야. 따라서 녀석이 블랙잭과 연관되었다는 증거는 찾을 수 없었어. 애초에 녀석이 블랙잭이라는 단체와 연루될 시간대조차 맞지 않는걸? 네가 오해한 건 아니야?
“그런가요…….”
나는 더 할 말이 없었다.
이미 실베르의 입장에서는 최대한 나를 배려해 준 것이리라.
실베르 라인하르트는 마경의 2인자.
그런 사람이 고작 아카데미 학생의 말을 철석같이 믿고는 직접 발로 뛰며 조사해 줬던 것이다.
지금까지만 해도 충분히 고마웠다.
여기서 더욱 강한 주장을 내세우게 되면 오히려 실베르의 신임을 잃을 뿐이었다.
“알겠습니다. 그래도 저는 여전히 루퍼스가 블랙잭의 간부라고 생각합니다.”
- 흐음…….
수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실베르의 목소리에는 살짝 망설임이 담겨 있었다.
그러더니 이내 나지막한 목소리로 내게 말했다.
- 물론, 마경의 차장급 직함을 달고서 고작 학생 따위의 말을 믿는 것은 미친 짓이지.
“예……?”
- 그래도 나는 스스로 사람 보는 눈이 있다고 자부해. 너란 녀석은 고작 기분 탓으로 그리 강하게 말할 사람이 아닐 거야. 내가 내 감으로 너를 믿듯이, 너도 너 나름대로의 감으로 나에게 주장하는 거겠지. 난 너를 믿는다.
나를 믿어 준다는 실베르의 말.
나는 그의 말을 듣고는 조금 감정이 울컥하는 것 같았다.
솔직히 상대가 안티 매지션인 것을 알고, 곧 침공 이벤트가 다가올 것을 아는데도, 나는 딱히 그것을 증명할 방법이 없었다.
따라서 녀석이 블랙잭의 간부라고 주장하는 것은 솔직히 벽을 보고 말하는 것과 다름없었다.
그런데 실베르는 아무것도 없이 툭 떨어진 ‘아카마’의 세계에서 나를 믿는다고 말해 주는 몇 안 되는 사람이었다.
게다가 상대는 지금껏 교류도 없이, 그저 조사 차원에서 한번 만났을 뿐인 사람인데도 말이다.
- 그런데, 마경의 차장인 내 입장도 있잖아? 아무런 증거도 없이 무턱대고 그 루퍼스라는 사람을 소환하고 조사할 수는 없는 마당이니까.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거라곤 그저 칼루스 아카데미에 감시원을 붙여 놓는 것밖에 할 수 없을 거다. 이해하지?
“…예. 충분히 감사합니다.”
- 그래. 또 무슨 일 있으면 바로 연락하고.
“네. 고생하세요.”
뚜― 뚜― 하는 신호음과 함께 전화가 곧 끊겼다.
나는 조심스레 수화기를 내려놓았다.
결국 마경의 도움을 받을 수는 없었다.
물론 감시 인원을 아카데미 근처에 계속 상주시켜 놓는다고는 하지만, 곧 닥쳐올 침공 이벤트에는 그마저도 턱없이 부족할 것이다.
그리고 침공 이벤트 발생 시, 상주 인원의 재빠른 연락으로 신속하게 본부 인원들이 도착하겠지만, 도착까지 걸리는 그 시간 동안 아카데미의 피해가 어떻게 될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그리하여 최대한 사전에 침공 이벤트를 방지하고 싶었는데 실패하고 말았다.
“결국 내가 해야 되네.”
이미 내부로 들어온 블랙잭을 어찌할 방법은 더 이상 없었다.
그저 녀석들이 본격적으로 행동을 개시했을 때 내가 얼마만큼 할 수 있을지에 달려 있었다.
한편으로는 걱정이 들긴 했지만, 또 한편으로는 한결 마음이 편해졌다.
이제 나에게는 골드버그의 아티팩트도 있고, 피닉스를 소환할 수 있는 아이템도 있었다.
그리고 ‘아카마’와는 달리 마경의 지원도 약속받아 놓은 상태였다.
분명, 모두가 죽은 ‘아카마’와는 다른 결말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그나저나 슬슬 새 주문서를 얻고 싶은데 말이지…….”
아무래도 다가올 침공 이벤트를 생각하면, 조금이라도 더 성장하고 싶었다.
이번 한 주 동안 성장의 기회가 없어서 조금 조급해진 것도 있었다.
그리고 그 바라던 주문서 획득의 기회는 바로 다음 날, 생각지도 못하게 찾아왔다.
* * *
월요일 아침.
아침부터 히로빈 그린월드의 방송 목소리가 기숙사 전체를 울렸다.
- 아― 아― 학생 여러분들은 지금 강당으로 모여 주시기를 바랍니다! 교육 집합에 따라 1교시 강의는 자동으로 취소됩니다!
그 소리에 깬 나는 기지개를 켜며 하품을 했다.
“또 뭔 일 있나……?”
나는 곰곰이 지금까지의 이벤트들을 되짚어 보며 벽면에 붙어 있는 달력을 확인했다.
달력은 어느덧 4월의 셋째 주를 가리키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다음 주면 벌써 중간고사네.”
‘아카마’에서의 중간고사는 4월 넷째 주였다.
그리하여 이변이 없는 한, 아마 여기서도 다음 주면 중간고사가 시작될 것으로 예상되었다.
“가만, 뭔가를 놓치고 있는 거 같은데…….”
뭔가가 자꾸 머릿속에서 생각이 날 듯 말 듯 했다.
나는 눈을 감고 그 정체 모를 위화감을 곰곰이 되짚어 봤다.
그리고 곧 그 정체를 알게 되었다.
“중간고사 전주, 4월 셋째 주는 축제 이벤트가 있는 주잖아?”
생각해 보니 그랬다.
4월 셋째 주는 칼루스 아카데미의 의례 행사 중 하나인 봄 축제 이벤트가 기다리고 있었다.
보통의 학교가 중간고사 이후에 축제가 일어나는 것과는 달리, 칼루스 아카데미의 축제는 시험 전에 긴장과 스트레스를 덜라는 취지로 기간이 설정되었다.
“설마… 지지난 주에 그런 사건이 있었는데 태평하게 축제를 이어 가는 건 아니겠지……?”
그리고 곧 강당에 도착한 나는, 그 설마가 사실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모든 학생이 강당에 모인 것을 확인한 히로빈 그린월드가 헛기침을 몇 번 하더니 이내 입을 열기 시작했다.
- 안녕하세요, 여러분! 다들 지금 집합한 이유는 짐작하시겠죠? 매년 저희 칼루스 아카데미에는 축제가 두 번 이루어집니다. 1학기에는 파릇파릇한 신입생들이 운영하는 봄의 축제가, 그리고 2학기에는 어느덧 늠름해진 우리 2학년생들의 가을 축제가 열리죠.
1학기에는 막 들어온 1학년생들이 부스를 운영하고, 2학기에는 이제 곧 3학년이 되어 아카데미의 행사에 참여하지 않게 되는 2학년생들이 부스를 운영한다.
신선함과 노련함.
애초에 칼루스 아카데미 축제의 테마는 그런 것이었다.
‘그나저나 진짜 축제를 진행한다니…….’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케이든 교수가 그렇게 됐음에도 행사를 진행하려는 아카데미 측이 너무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부에 블랙잭의 간부가 들어온 걸 아는 나로서는 더더욱 답답할 따름이었다.
그런데 히로빈 교장은 마치 내 마음을 읽었다는 듯이 그에 대한 설명을 하기 시작했다.
- 압니다, 여러분. 지지난 주에 저희 아카데미 측에 불미스러운 일이 있었죠. 그러나 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고작 그런 일에 우리 아카데미의 유구한 전통이 무너져서야 되겠습니까? 이럴 때일수록 저는 더더욱 아카데미가 굳건하다는 모습을 보여 주고 싶습니다. 그렇죠, 여러분?
네에에에!
학생들이 환호했다.
역시 그런 일이 있거나 말거나, 학생들은 곧 축제가 시작된다는 말에 잔뜩 들뜬 모양이었다. 아카데미나 학생들이나 어지간히 경각심이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 다만, 그래도 그런 일이 있었던 만큼, 안전에 주의하여 이번 축제는 외부인의 출입 없이 운영하기로 결정했습니다. 그러나 우리 칼루스 아카데미의 학생들만 해도 충분히 훌륭한 축제가 될 것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렇죠, 여러분?
네에에에에!!
또다시 학생들의 합창이 이루어졌다.
‘결국 축제는 하나 보네.’
참 위기의식 없이 태평한 아카데미다.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면서도 한편으로는 외부인 없이 진행한다는 게 그나마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이번 주는 상당히 주의해야겠네.’
이렇게 들뜬 분위기일수록, 분명 녀석들이 움직이기 쉬운 판이 열릴 것이다.
따라서 나라도 더 철저하게 루퍼스 그레이엄을 감시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나저나 축제라니…….’
솔직히 말해서 나는 축제에는 그다지 관심이 없었다.
애초에 축제라는 것은 즐기는 자들의 무대.
나같이 조용한 분위기를 좋아하는 아웃사이더들에게는 그다지 어울리지 않는 이벤트였다.
그런데, 이런 내 시큰둥한 마음은, 곧 눈앞에 뜬 시스템 창의 내용으로 인해 한순간에 뒤바뀌게 되었다.
〈서브 이벤트〉
[축제의 진정한 승리자]
* 달성 조건: 아카데미의 봄 축제 부스 중에서 매출 1위를 달성한다.
* 제한 시간: 축제 기간 일주일.
* 실패 조건: 기간 내 조건 미달성.
* 보상: 마법 주문서(???)
‘마법 주문서를 준다 이 말이지……?’
내역을 확인한 나는, 나도 모르게 이미 씨익 미소 짓고 있었다.
갑자기 그 인싸들의 이벤트라는 거에 잔뜩 흥미가 생겨 버린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