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3화
“그럼 우리는 밴드 공연으로 하는 거지?”
“으응…….”
달시의 말에 루비는 조심스레 고개를 끄덕였다.
달시는 아까부터 축제로 인해 매우 흥분해 있었다.
벌써 베이스를 연주하고 싶은지, 허공에 손가락을 움직이며 연주하는 시늉을 취하는 모습이 제법 귀여워 보였다.
그러나 들뜬 달시와는 달리, 루비의 머릿속에는 아까부터 다른 생각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리고 루비의 머릿속을 헤집는 주인공은 다름 아닌 제로였다.
‘제로는 이번 축제 때 뭘 하려나?’
아까부터 루비의 머릿속은 온통 제로 생각뿐이었다.
다만, 루비는 스스로 그러한 점을 자각하지 못하고 있었다.
아무래도 계속해서 제로가 생각나는 이유는, 축제라는 청춘 이벤트의 특수성 때문이리라.
루비는 내심 제로가 마땅한 조를 구하지 못했기를 바라고 있었다.
그리고 만약 밴드에 취미까지 있다고 한다면, 루비는 마지못한 척하며 제로에게 밴드 부스 운영을 권유하고 싶었다.
그런데 그때.
한창 머릿속에서 여러 가지 망상을 펼치고 있던 루비는, 마침 멀리서 걸어가고 있는 제로를 발견했다.
말을 걸까 말까 망설이던 루비.
그리고 이내 그녀는 마음을 다잡고 제로를 향해 뛰어갔다.
“제로!!”
혹시라도 제로가 듣지 못할까 봐 루비는 큰 소리로 제로를 불렀다.
그런데 그런 그녀의 목소리는 점차 작아지고 있었다.
그 이유는 다름 아닌 제로의 옆에 있는 캐서린 골드버그를 발견해서였다.
“어? 무슨 일이야.”
제로는 루비의 목소리를 듣고는 이내 발걸음을 멈추고 그녀의 얼굴을 빤히 바라보았다.
루비는 그런 제로에게 쭈뼛쭈뼛하며 다가갔다.
힘차게 불렀을 때와는 다르게 조금 자신감이 없는 모습이었다.
조금 전까지 머릿속에 맴돌던 말.
같이 밴드 할 생각 있냐고 권유하는 그 말이 자꾸만 입속에서 헛돌았다.
그러다 이내 루비는 입술을 살짝 깨물고는 조심스레 말을 꺼냈다.
“혹시……. 우리 조에 들어올래?”
그러나 이미 어렴풋이 느끼고 있었던 안 좋은 예감.
역시 루비의 예상은 틀리지 않았다.
“아아, 미안. 나 이미 조는 구했어. 베이커리를 하기로 했거든.”
“…베이커리? 그렇구나…….”
내가 왜 그랬지.
왜 말을 꺼냈을까.
이미 제로 옆의 캐서린을 본 순간, 조가 정해져 있었다는 것쯤은 알 수 있었다.
그럼에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말을 꺼낸 것을 루비는 뼈저리게 후회했다.
“너는 밴드 하지?”
“응……? 어? 어떻게 알았어?!”
제로의 말에 루비는 매우 당황스러웠다.
그러나 그보다 더 당황한 것은 말을 꺼낸 제로 본인이었다.
“어, 어……? 그냥 느낌……? 뭐랄까……. 평소에 목소리가 워낙 좋다 보니까 자연스레 밴드의 보컬을 할 것만 같은 그런 기분이었달까……?”
심하게 말을 더듬는 제로.
다만, 루비는 그런 제로의 어색한 태도는 전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저 조금 전 들은 그의 말 중 특정 부분이 계속해서 머릿속에 맴돌 뿐이었다.
- 평소에 목소리가 워낙 좋다 보니까.
이내 루비의 두 볼이 입고 있는 로브 색처럼 새빨개졌다.
루비는 살짝 고개를 숙인 뒤 입을 열었다.
“그, 그럼 축제 때, 시간 나면 공연 보러 들러.”
“응. 꼭 보러 갈게.”
“약속이다?”
“응.”
이내 캐서린과 함께 멀어지는 제로.
루비는 그 뒷모습을 멍하니 바라볼 뿐이었다.
‘내일 공연 준비 서둘러야겠네.’
루비는 그걸로 만족했다.
* * *
“그래서. 결국 베이커리를 하겠다는 거냐? 유치한 녀석들 같으니라고.”
“왜? 맛있는 걸 만들면 좋잖아?”
“그래요, 오라버니는 좀 입을 다무는 게 좋을 거 같은데요?”
베이커리 부스를 운영할 거라는 얘기에 투덜대는 제페토.
그리고 그런 그를 제이드와 캐서린이 상대하고 있었고, 샬롯은 어쩔 줄 몰라 하고 있었다.
나는 그들의 대화는 무시한 채, 조심스레 생각에 잠겼다.
‘평범한 베이커리가 과연 괜찮으려나……?’
일단 제이드가 있는 이상 흥행은 보증 수표였다.
다만, 생각해 보니 ‘아카마’에서 제이드와 샬롯의 베이커리 부스는 인기는 있었어도 그다지 매출이 높은 편은 아니었다.
‘뭐, 그건 샬롯 때문이었으려나.’
샬롯 아메드는 온화하고 유순하고 배려 깊은, 성녀 같은 캐릭터였다.
따라서 원작의 축제 이벤트 때도, 직접 만든 제과제빵들을 거의 무료다시피 낮은 가격으로 판매했었다.
자신이 만든 걸 남이 먹어 주는 것만 해도 행복하다나 뭐라나.
다만, 매출 1위를 달성해야 하는 지금은, 적어도 원작의 전철을 밟지 않아야 했다.
‘게다가 누블랑 브랜드를 생각하면 베이커리가 그리 나쁘지 않은 거 같기도 하고……?’
케이크 하나를 몇백만 원에 파는 매장도 있는데, 우리라고 비싸게 팔지 못할 이유가 없었다.
이내 머릿속에 빠르게 계산이 선 나는, 샬롯 아메드를 넌지시 불렀다.
“저기, 샬롯?”
“네?”
“내가 물가를 잘 몰라서 그러는데, 혹시 베이커리를 하게 되면 빵 하나에 얼마에 팔 생각이야?”
“음……. 두 개에 1베롯 정도면 될까요?”
“뭐? 1베롯? 그것도 두 개에 1베롯?!”
1베롯이면 현실 돈으로 천 원.
두 개에 1베롯이라는 말은, 빵 하나를 500원에 넘긴다는 얘기였다.
나는 샬롯이 말하는 터무니없는 금액에 이마를 쓰다듬었다.
그러자 샬롯은 뭔가 본인이 말실수했냐는 듯,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왜요……? 좀 더 가격을 낮출까요? 세 개에 1베롯 정도로?”
“…….”
나는 할 말을 잃었다.
오히려 거기서 가격을 더 낮춘다니.
내가 봤을 때 이건, 착하고 말고의 문제가 아니었다.
샬롯 아메드는 그냥 세상 물정을 모르고 있는 듯했다.
나는 이내 샬롯에게 훠이훠이 손짓을 하며 저리 가라는 시늉을 했다.
아무래도 저 녀석이랑은 더 이상의 대화가 성립되지 않을 거 같았다.
그리고 내가 다음으로 부른 것은 캐서린 골드버그였다.
“캐서린. 잠깐 얘기 좀 할까?”
“네. 그런데, 제가 봐도 1베롯은 조금 심했네요.”
안 그래도 캐서린은 나와 샬롯이 대화하는 것을 엿듣고 있던 모양이었다.
나는 이제야 좀 대화가 통화는 상대가 나타나서 마음이 편안해졌다.
“그렇지? 아무리 서민 물가라 하더라도 3베롯은 받아야 할 거 아니야. 아무튼, 그래도 너는 조금 어느 정도 물가를 아는 것 같네?”
“네. 저는 직접 쇼핑하러 다니기도 하니까요.”
“그럼 평균적으로 커피 하나를 팔면 어느 정도를 받으면 될까? 최대한 많이 받았을 때.”
“고급 브랜드 커피가 아니라 그저 축제에서 기계로 뽑아낸 싸구려 커피라면 5베롯 정도는 받을 수 있겠네요. 그것도 조금 양심 없지만요.”
5베롯, 5,000원이라.
물론 5,000원에 파는 커피숍이야 원래 세계에서도 많이 볼 수 있었지만, 축제에서 팔 금액으로는 그 정도도 충분히 비쌌다.
다만, 나는 거기서 만족할 수 없었다.
“1다트.”
“예?”
“1다트는 어떤 거 같아?”
“…너무 양심 없는 거 아닌가요?”
“아니 왜 동전 거슬러 주기도 귀찮고, 구매자 입장에서도 1다트면 딱 지폐 한 장만 내면 되니까 괜찮은 거 같은데?”
일단, 내 일차적 계획은 제과 제빵과 음료를 판매하는 베이커리 카페를 차리는 거였다.
그리고 거기서 연미복을 차려입은 제이드와 제페토가 입구에서 호객 행위를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1다트의 비싼 커피값에도 사람들이 몰려들겠지.
거기다 최대한 매장 수용 인원을 줄이고, 웬만하면 포장으로 돌릴 생각이었다.
그렇게만 한다면 카페의 단점인 회전율도 높아지고, 코스트 대비 효율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잠깐만… 더 좋은 방법이 있을 거 같은데……?”
갑자기 머릿속에서 새로운 아이디어가 번뜩 떠오르고 있었다.
‘굳이 커피랑 빵만 팔 이유가 있나……?’
자고로 가장 남는 장사는 서비스업이다.
게다가 제이드와 제페토는 그 외모만으로 충분히 서비스의 품질이 좋다고 볼 수 있었다.
“상담 카페.”
“네?”
“상담 힐링 카페. 그게 좋겠다.”
모든 구상은 끝났다.
머릿속에 떠오른 아이디어를 모두 정리한 나는, 조원들을 모두 집중시켰다.
“자자, 다들 주목.”
하나같이 나를 빤히 바라보고 있는 시선들.
그 모습에 나는 씨익 미소를 지었다.
“우리 조는 힐링 카페를 운영할 거야.”
“힐링 카페?”
“응. 오는 손님들의 고민을 들어주고 상담해 주는 카페지. 물론 상담비는 따로 받을 거고.”
제이드와 제페토가 상담해 준다면, 아무리 비싸도 수요는 있을 것이다.
물론 2인 체제로 돌아가는 만큼 가격은 최소 5다트 정도는 예상하고 있었다.
이 정도의 가격이라면, 두 명이라 할지라도 10분당 10만 원.
한 시간에 60만 원씩 매출을 올릴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되었다.
게다가 판매하는 베이커리와 커피값까지 더해진다면, 충분히 매출 1위를 노릴 만한 사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캐서린, 커피 뽑는 건 할 수 있겠지?”
“예, 뭐 그 정도야 할 수 있어요.”
“그리고 샬롯은 빵을 구우면 될 테고.”
“네, 좋아요!”
“마지막으로 제이드와 제페토, 너희 둘은 오는 손님들의 고민을 10분 동안 들어주는 상담 역할을 맡게 될 거야. 그리고 나는 카페의 총괄 매니저 역할을 담당할 거고.”
다만, 제이드는 그렇다 치더라도, 제페토 녀석이 제대로 된 상담을 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역시나 제페토는 내 말을 듣고는 바로 반발했다.
“상담이라니, 지금 나보고 하찮은 녀석들의 대화를 들어주라는 거냐?!”
“아니, 네가 할 건 딱 두 가지야.”
나는 스윽 제페토를 향해 얼굴을 들이대었다.
그러자 제페토는 흠칫 놀란 듯 목을 수그렸다.
“첫째, 상대가 말할 때마다 ‘그런 일이 있었군요.’라고 대답한다. 둘째, 상대의 말끝마다 고개를 끄덕인다. 쉽지?”
“그, 그딴 걸 순순히 할리가…….”
“루비…….”
“하, 할게!!”
역시나 루비를 언급하자 순순히 고개를 끄덕이는 제페토.
나는 그런 녀석의 태도를 보고는 피식 미소를 지었다.
“자, 그럼 다들 괜찮지?”
“네!”
저마다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그런 녀석들을 보며 미소를 지었다.
아무래도 계획은 완벽한 듯싶었다.
“그럼, 이름이 있어야 할 테니까…….”
우리 힐링 카페의 이름.
마침 머릿속에 적당한 이름이 떠오르고 있었다.
“…제3의 카페. 우리 부스의 이름은 제3의 힐링 카페다.”
그렇게 모든 계획의 준비는 끝이 났다.
* * *
다음 날 아침.
나는 일어나자마자 찌뿌둥한 어깨를 쭉 펴고, 스트레칭을 했다.
그러자 삐그덕거리는 뼈 소리가 목 쪽에서 흘러나왔다.
“으으으…….”
어제는 계속해서 물류를 정리하고 소품을 구하러 다니느라 매우 힘든 하루였다.
그동안 마물들과 싸워 왔던 것보다 물류 정리가 더 힘든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래도 준비는 끝났으니까.”
결국, 어제 하루 동안 다섯 명이 열심히 준비한 결과로 축제 부스는 완벽하게 설치되었다.
이제는 몸만 가면 되는 것이다.
나는 슬슬 몸을 일으켜 세운 뒤, 옷장 안의 연미복을 꺼내 입었다.
복장은 웨이터, 웨이트리스 같은 연미복으로 통일하기로 했다.
아무래도 가격이 가격인 만큼, 고급스러운 분위기를 연출하기 위함이었다.
이윽고 셔츠의 단추를 모두 잠근 나는, 방 안의 전신 거울을 바라보았다.
“음… 이 정도면 나쁘진 않은 거 같네.”
제이드, 제페토와는 비교할 수도 없는 얼굴이었지만, 그건 녀석들이 지나치게 잘생긴 거고.
평범한 사람을 기준으로는 이 정도면 나름 나쁘지 않은 외모였다.
그런데 문득, 거울 속을 들여다보던 나는 갑자기 위화감을 느꼈다.
“어라……. 나 원래 어떻게 생겼었지……?”
거울 속에 있는 건 현실 세계의 내가 아닌 이곳 ‘아카마’ 세계의 제로.
그런데 거울 속의 모습을 보던 나는 이내 원래의 내 모습이 떠오르지 않았다.
이곳에 온 지는 겨우 두 달째.
그리 오랜 시간이 흐른 것도 아닌데, 나는 벌써 내 본연의 얼굴을 잊어먹은 것이다.
물론, 평소의 나는 거울을 잘 확인하지 않았다.
스스로의 외모가 싫어 사진 찍는 것도 좋아하지 않았다.
그러나,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자신의 얼굴을 잊어버리다니…….
당혹스러움에 한참을 멍하니 있던 나는 이내 고개를 저었다.
“뭐, 신경 끄자.”
어차피 나는 이곳을 벗어나기 전까지는 ‘제로’로 있어야 한다.
원래의 ‘나’ 같은 건 지금 당장 중요한 문제가 아니었다.
나는 이내 신경을 끄고 축제 부스로 가기 위해 방문 밖을 나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