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4화
* * *
드디어 축제 첫날.
일찍 도착한 나는, 부스 앞에 서서 외관을 훑어보았다.
일반 매장까지는 아니지만, 제법 잘 만들어진 부스.
그 위에 달린 간판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제3의 카페]
어제 모두가 직접 그려서 만든 간판은 번쩍번쩍 빛을 반사하며 반짝이고 있었다.
나는 잘 만들어진 간판의 외형과 그 속에 담긴 이름의 의미에 매우 흡족했다.
‘나름 괜찮은 이름 같단 말이지.’
제이드.
제페토.
그리고 나, 제로까지.
공교롭게도 우리 셋은 앞 글자가 ‘제’로 시작했다.
그리하여 지은 이름, 제3의 카페.
카페 이름의 의미에 캐서린과 샬롯의 이름까지는 포함되지 않았지만, 어쨌든 제이드와 제페토가 카페 손님들을 접객할 것이기 때문에 나름 잘 지은 이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카페 안을 슬쩍 들여다보자, 안에는 아침 일찍부터 출근해서 지금까지 빵과 과자류를 굽고 있는 샬롯 아메드가 보였다.
나머지는 아직 도착하지 않은 듯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나는 살짝 헛기침한 뒤 카페 안으로 들어갔다.
“오셨어요?”
카페 안으로 들어서자 샬롯이 반갑게 웃으며 나를 맞이했다.
그녀는 피곤한 기색 하나 없이 매우 즐거워 보였다.
“아침 일찍부터 고생이네. 빵 냄새 진짜 좋다.”
“마침 거의 다 끝났는데 하나 드셔 보실래요?”
“어, 그래도 돼?”
부스 안에는 빵 굽는 향긋한 냄새가 가득했다.
나는 그 향기에 잔뜩 기대하며 샬롯에게서 빵 하나를 받아들었다.
그러고는 덥석 한 입을 베어 물었다.
“으, 음……?”
“어때요? 괜찮아요?”
“어어……? 으, 응. 맛있네……!”
사실 빵을 입에 넣고 씹는 순간, 곧바로 당혹스러움이 밀려 들어왔다.
샬롯이 만든 빵은 밍밍하다 못해 쓴맛이 느껴질 지경이었으니까.
‘그러고 보니 이 녀석, 애초에 이런 설정이 있었던가……?’
돌이켜 생각해 보니, ‘아카마’에서 제이드가 샬롯이 만든 빵을 억지로 맛있다고 해 주는 선택지가 있었던 것 같다.
그래도 ‘아카마’에서 둘의 베이커리 부스가 흥행했었기 때문에, 어느 정도 기본은 될 줄 알았는데 기대 이하인 것이다.
아무래도 게임 속의 인기는 순전히 제이드의 외모 덕분인 듯했다.
그러고 보니 인기에 비해 정작 매출이 안 나온 것도 이런 이유였던 것 같기도 하고.
차마 대놓고 맛없어서 못 팔 것 같다고 할 수 없던 나는, 일단 다른 메뉴를 살펴보기로 했다.
“그… 너무 맛있어서 그러는데 혹시 다른 것도 먹어 봐도 될까?”
“쿠키도 좀 드릴까요?”
나는 샬롯에게서 냉큼 쿠키를 받아들고는 조심스레 살짝 깨물어 봤다.
다행히도 쿠키는 평범한 쿠키 맛이었다.
아무래도 쿠키에 초콜릿이 들어가다 보니, 원재료 맛이 강해서 나머지가 묻힌 듯싶었다.
그다지 엄청나게 맛있는 건 아니었지만, 그나마 정상적인 맛이 난다는 것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곧, 제3의 카페 부스에는 하나둘씩 멤버가 모이기 시작했다.
모든 멤버가 모인 것을 확인한 나는 다시금 모두에게 공지했다.
“자, 다들 맡은 역할을 알겠지만 다시 한번 말해 줄게. 캐서린은 음료를 담당하고, 샬롯은 베이커리를 담당할 거야. 그리고 제이드와 제페토는 손님의 고민을 상담해 주는 역할을 할 거고.”
말을 하면서 동시에 나는 제페토를 살짝 흘겼다.
그러자 제페토는 알았다는 듯 무심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내가 어젯밤에 설정한 가격들을 알려 줄게. 일단 기본적으로 아메리카노는 1다트야. 그리고 부스 내에서 마시게 되면 거기다 5다트를 추가하게 될 거야.”
“5다트? 너무 비싸지 않아?”
제이드가 살짝 의아하다는 표정으로 이의를 제기했다.
다른 사람이야 모르겠지만, 제이드 녀석은 평범하게 산골 마을에서 자란 평민이었다.
당연히 10분에 5만 원가량의 돈을 받는다는 이야기를 납득하지 못하겠지.
다만, 녀석에게 변명할 거리도 이미 어젯밤에 다 준비해 놨었다.
“그만큼 네가 최선을 다해 서비스하면 되지 않을까? 오히려 그 정도 금액을 받지 않으면 너의 상담에 진정성이 느껴지겠어? 쉽게 너한테 마음을 허락하고 고민을 털어놓을 수 있겠냐고. 어떻게 생각해, 제페토?”
“당연하다. 오히려 그 하찮은 녀석들의 말을 10분이나 들어 주는데 5다트도 헐값이지.”
“그런 거야?”
“응. 그런 거야.”
어느새 내 말에 납득하고 있는 제이드.
역시 녀석도 은근히 다루기 쉬운 스타일인 것 같았다.
“그리고 베이커리 가격도 말해 줄게. 쿠키류나 과자류는 일괄 1다트. 그리고 빵은… 100다트.”
“에? 100다트라고요?”
“그건 모두를 위해서 100다트인 편이 좋아.”
나는 얼렁뚱땅 넘어갔다.
다행히도 샬롯은 그다지 항의하지 않았다.
그리하여 모든 준비는 끝.
“자, 그럼 다들 열심히 해 보자고!”
그렇게 칼루스 아카데미 봄 축제의 막이 올랐다.
* * *
역시나 예상대로, 제3의 카페의 인기는 최고였다.
안 그래도 평상시의 교복 차림만으로도 수많은 여자의 시선을 사로잡는 제이드였다.
그런 제이드가 심지어 연미복까지 차려입으며 한껏 꾸몄으니 더더욱 이목을 끌 수밖에.
이번 칼루스 아카데미 봄 축제는 외부인 없이 오로지 학생들로만 운영되기 때문에, 돌아다니는 사람이라고는 1학년, 2학년생들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제3의 카페 앞에는 긴 줄이 이어지고 있었다.
게다가 제페토도 나름대로 선방하고 있었다.
녀석은 내가 요구한 대로 입을 다문 채 손님의 말에 가만히 고개를 끄덕여 줄 뿐이었다.
그런데 오히려 그 차가운 모습이 매력 있다고 소문나게 된 것이다.
심지어는 제페토의 팬들도 따로 생기고 있을 정도였다.
나는 시끌벅적한 가게 분위기에 절로 미소가 나왔다.
애초에 접대 인원이 두 명밖에 없다 보니까 사실 회전율은 그리 높지 않았다.
그러나 대기열이 길어지자 어느 순간부터 손님들이 두 명씩 짝을 지어 오기 시작했다.
물론, 그만큼 인당 가격을 받고 있으니 매출은 두 배.
게다가 줄이 너무 길어서 기다리는 동안 카페의 음료나 과자 등을 구매하고 있었고, 지나가던 사람들도 긴 대기열에 호기심이 생겨 커피를 구매하게 되는 구조.
그야말로 장사는 완벽했다.
한껏 기분이 좋아진 나는 부스 안을 쭉 둘러보았다.
한창 손님의 이야기를 들어 주고 있는 제이드와 제페토.
그리고 주방에서 열심히 빵과 과자를 반죽하고 있는 샬롯.
쉴 새 없는 커피 주문에 내리 커피를 뽑아내고 있는 캐서린.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갑자기 뜨끔해졌다.
‘그러고 보니 나만 여유로운 거였잖아……?’
제3의 카페에서 제일 한가한 것은 카운터에서 돈 계산을 하는 나뿐이었다.
나는 조금 양심에 찔려 괜스레 줄 서 있는 손님들이 잘 서 있나 부스 밖으로 나가 확인했다.
그런데 그때, 누군가 내게 다가왔다.
“저기…….”
“응?”
내게 말을 건 것은 허리까지 내려오는 고운 갈색 머리를 한 여학생이었다.
그리고 그녀의 초록색 넥타이 색으로 보아 아마도 아네락샤 기숙사 학생인 듯싶었다.
“혹시… 지명해도 되나요……?”
“네? 아, 지금은 자리가 없어서 대기하셔야 해요. 저쪽으로 줄 서서 기다리시면 금방 차례가 올 거예요.”
“아뇨……. 저는 그쪽을 지명하고 싶은데요……?”
“…네?!”
순간 잘못 들었나 싶었다.
나를 지목하다니?
애초에 같은 기숙사도 아니었고 얼굴을 본 적도 없는 사람이었다.
“…안 될까요?”
조심스럽게 시선을 올려 눈을 맞추는 여학생.
그 모습에 나도 모르게 즉각 대답이 나왔다.
“아, 아뇨! 됩니다!”
그리하여 나는 그 여학생과 테이블에 마주 보고 앉게 되었다.
내가 접대를 하게 되자, 자연스레 서빙은 캐서린의 몫이 돼 버렸다.
캐서린은 커피를 들고 테이블에 탁 내려놓더니, 따가운 눈초리로 나를 힐끔 보고는 다시 주방으로 돌아갔다.
아네락샤의 여학생은 정작 앉고 난 뒤 말이 없었다.
그저 캐서린이 가져다준 커피를 홀짝일 뿐이었다.
한참을 눈치 보던 나는 이내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저기… 무슨 일로 저를 지명하셨나요? 혹시 고민 같은 거 있으신가요? 얼마든지 들어 드릴게요!”
제이드와 제페토를 제치고 나를 선택하다니, 나는 조금 감격스러웠다.
한편으로는 종교 권유라든가, 판매할 물건이 있다든가 하는 이유는 아닐지 싶어, 내심 불안한 감정이었다.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눈앞의 여자는 제대로 나를 찾아온 모양이었다.
“저… 고민은 아니고요……. 그 비무제 때 뵀었어요. 또 1학년 수석이시잖아요……?”
“아아, 그런가요? 좋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혹시 이름이 어떻게 되시나요?”
“아, 저는… 유진이라고 해요. 아네락샤 1학년생이에요.”
“유진이요?”
어쩐지 이 ‘아카마’의 세계와는 조금 동떨어진 이름인 듯싶었다.
어떻게 보면 서양풍보다는 한국식 이름에 더 가까웠다.
‘성이 없는 걸 보면 평민 출신인 건가?’
그러고 보면 다른 사람과는 다르게 외모도 살짝 동양풍이란 느낌이 들었다.
이내 유진은 자기소개 이후에 또다시 말이 없어졌다.
아무래도 낯을 많이 가리는 성격인 듯 보였다.
어쨌든 그녀가 나를 지명한 것이고, 또 어떻게 보면 이것도 서비스업이라 볼 수 있으니까, 나는 내가 먼저 그녀에게 이것저것 말을 하기 시작했다.
아네락샤 기숙사 이야기.
그리고 그 기숙사 사감의 이야기.
특히나 실라이 샌드윅스의 이야기가 나오자, 어쩌다 보니 대화의 주제는 실라이 교감을 욕하는 것이 메인이 돼 버렸다.
유진은 그런 내 주절거림과 하소연을 가만히 들으며 살짝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그녀는 거의 한마디도 하지 않았지만, 어쨌든 나는 그녀가 만족하면 그만이라는 생각을 했다.
그런데 그때,
“시간 다 된 거 같은데, 그만하고 일하시죠?”
옆에서 커피를 서빙하던 캐서린의 한마디에 나는 어느새 10분이 훌쩍 넘었다는 것을 자각하게 되었다.
“그, 그럼 시간이 다 됐으니…….”
“아아… 예…….”
유진은 살며시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고는 우물쭈물한 표정으로 나에게 속삭였다.
“내일 또 올게요.”
그러면서 천천히 부스 밖을 나가는 유진.
나는 그런 그녀의 뒤를 멍하니 쳐다보았다.
‘뭐지……?’
내일도 또 찾아온다니…….
‘그만큼 내 말솜씨가 나쁘지 않았나……?’
아무튼 그녀가 만족해서 다행이었다.
* * *
한편 에이체스와 벅스.
축제가 한창일 무렵에 그들은, 부스 운영도 내팽개친 채 어딘가로 향하고 있었다.
에이체스와 벅스는 어제 제로에게 제페토를 뺏긴 이후, 결국 남는 조에 합류하게 되었다.
그리고 남은 이들로 억지로 만들어진 조에는 제대로 의욕을 가진 사람이 있을 리가 없었고, 결국 영화 감상이라는 시답지 않은 주제의 부스를 운영하게 되었다.
다만, 벅스 쪽은 영화 감상이 그다지 나쁘지 않은 것 같았다.
그리하여 벅스는 자신을 어딘가로 끌고 가는 에이체스를 내심 못마땅해했다.
“어이, 어디 가는 거야, 에이체스?”
“그깟 영화가 중요해? 잔말 말고 따라와 봐.”
곧이어 그들이 도착한 것은 아카데미의 구석진 골목.
축제로 인해 사람들이 대부분 부스 쪽에 모여 있어서, 마침 사람이 아예 보이지 않는 장소를 찾을 수 있었다.
주변에 사람이 없는 걸 확인한 에이체스가 이내 조심스럽게 무언가를 꺼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정체를 알 수 없는 검은 구체였다.
벅스는 눈을 끔벅끔벅 뜨면서 에이체스를 쳐다봤다.
“이게 뭔데……?”
“폭탄.”
“폭탄이라고?!”
정확히 폭탄이라기보다는, 발동 시 대상을 일주일 이상 아공간에 속박시키는 장치라고 이것을 준 사람들은 설명했었다.
“사실, 저번에 마을에 외출했을 때, 위저드 협곡에서 마주쳤던 남자를 다시 만났었어.”
“위저드 협곡에서 마주친 남자라면… 설마 그 안티 매지션?!”
“응. 이건 그 녀석들이 내게 준 선물이야.”
“이, 이걸 어디다 쓰게……?”
“어디다 쓰냐니…….”
여전히 살짝 멍청한 표정을 짓고 있는 벅스.
그러나 에이체스는 아랑곳하지 않고 음험한 미소를 지었다.
“…당연, 제로 녀석을 이걸로 죽여야지.”
이미 에이체스는 동급생인 제로를 ‘죽인다는’ 말에 거리낌이 없었다.
그런 에이체스의 무서운 얼굴에 벅스는 살짝 당황스럽다는 듯 헛웃음을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