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아카데미의 무속성 마법사-80화 (80/175)

80화

* * *

아까부터 루비 버밀리온은 멍하니 서 있기만 했다.

그런 그녀의 눈치를 보던 제페토는 결국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그, 그럼 우리도 들어갈까?”

그러나 루비 버밀리온은 대답 없이 귀신의 집 부스 입구를 주시할 뿐이었다.

‘내 말이 전달되지 않은 건가?’

그리하여 제페토는 다시금 헛기침을 두어 번 한 뒤에 루비에게 말을 건넸다.

“드, 들어가지 않겠나?”

그런데 루비 쪽에서 나온 말은 전혀 생각지도 못한 대답이었다.

“응. 안 들어갈래.”

“…으응?!”

대답하는 루비는 여전히 시선을 귀신의 집 입구에 고정하고 있었다.

그러더니 이내 제페토 쪽을 넌지시 쳐다보며 말했다.

“미안, 나는 좀 쉴게.”

그러고는 루비는 어딘가로 사라졌다.

제페토는 멀어지는 루비의 뒷모습을 멍하니 지켜볼 뿐이었다.

한편, 루비는 입고 있는 빨간 로브를 푹 뒤집어쓰고는 잰걸음으로 빠르게 귀신의 집 부스로부터 멀어졌다.

그런 루비의 머릿속은 혼란스러움으로 가득했다.

‘내가 왜 이럴까…….’

그냥 제페토 골드버그와 함께 귀신의 집에 들어가면 끝날 문제였다.

그럼에도 루비는 그 순간 입장하고 싶지 않아졌다.

오히려 반항하고 싶었던 걸까.

제페토가 문제가 아니라 그냥 귀신의 집이 꼴도 보기 싫어졌었다.

가슴이 조금 답답했다.

‘이 감정은 뭐지?’

서운함?

내가 왜 서운해야 해?

도대체 왜? 무엇 때문에?

그러나 루비 버밀리온은 스스로 답을 내리지 못했다.

자신이 혼란스러운 이유를 아직 스스로 규정할 수 없었다.

머릿속이 복잡해지자, 루비 버밀리온은 이내 생각하는 것을 포기했다.

그리고 멍하니 거리를 걸을 뿐이었다.

그렇게 정처 없이 걷고 또 걷다 보니, 어느새 부스의 거리 밖으로 나오게 되었다.

시끌벅적 축제를 즐기는 인파의 소리도 점차 귓가에서 멀어지고 있었다.

하염없이 걷던 루비는, 어느덧 아카데미의 공원 부근에 도착하게 되었다.

한창 축제 중이어서인지 공원에는 사람의 흔적이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그때,

“여기서 뭐 하니?”

누군가 그녀를 부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루비 버밀리온은 살며시 소리가 들리는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그곳에 있는 것은 다름 아닌 루퍼스 그레이엄.

루퍼스는 멈춰 선 루비 버밀리온에게 사뿐사뿐 다가왔다.

멍하니 그 모습을 바라만 보고 있던 루비는, 루퍼스가 완전히 눈앞으로 접근하자 이내 정신을 차렸다.

“한창 축제 중인데 여기서 뭐 해?”

“그게……. 길을 잃었어요.”

“길을 잃었다고?”

알 수 없는 루비의 대답에 어깨를 으쓱하는 루퍼스.

그러나 이내 그는 살며시 미소를 지었다.

“아무튼 마침 잘됐다. 너한테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었거든.”

“하고 싶은 이야기요?”

루비는 루퍼스의 말에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딱히 루퍼스가 본인에게 특별히 할 말은 없어 보이는데, 뭔가 석연치 않았다.

그리고 그런 예감은 언제나 틀리는 법이 없었다.

“지크 버밀리온.”

“……!”

그 이름을 들은 순간, 루비의 동공이 크게 팽창했다.

그 모습에 루퍼스는 씨익 미소를 지었다.

“궁금하지 않아? 오빠 이야기.”

“지, 지크 오빠를 알아요?!”

“그럼. 최근까지도 만났었지.”

“최근까지 만났다고요?!”

루비의 눈동자는 심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지크 버밀리온.

7년 전 실종된 그의 오빠이자 버밀리온 가문의 장남.

사실 그가 실종되었을 당시 루비의 나이는 열 살이라는 매우 어린 나이였다.

그럼에도 루비는 똑똑히 기억했다.

지크는 항상 자신과 놀아 주고, 맛있는 걸 사 주고, 해맑은 미소로 웃어 주었다.

그리고 루비는 그런 지크가 절대 본인의 의지로 그런 일을 벌였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오빠는 분명 협박받은 거라고, 어딘가에 납치된 거라고, 아니면 무슨 다른 선의의 이유가 있었을 거라고 루비는 믿고 싶었다.

그러나 오빠의 행방은 7년이 지난 지금도 찾을 수 없었다.

그런데, 지금 그 오빠의 행방을 아는 사람이 눈앞에 나타난 것이다.

그것도 본인의 담당 교수로서 말이다.

“오빠는……. 지크 오빠는 어디 있는 거죠?!”

루비는 빠르게 루퍼스에게 따지기 시작했다.

그러나 루퍼스는 히죽히죽 웃으며 대답하지 않은 채, 루비의 안달 난 태도를 감상할 뿐이었다.

한참을 말없이 지켜만 보던 루퍼스.

그리고 이내 뒷짐을 지며 입을 열었다.

“오빠에 대한 사랑이 7년이 지났음에도 여전히 각별한 거 같네. 그리고 그건 너희 오빠도 마찬가지야. 지크 버밀리온은 너를 보고 싶어 해.”

“오빠가……. 저를요……?”

“응. 그럼 본격적으로 이야기를 꺼내기에 앞서, 잠깐 여기를 봐 줄래?”

그러고는 루퍼스는 품속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그것은 불투명한 하얀색의 보석이었다.

이내 루퍼스는 보석에 마나를 불어넣기 시작했고, 그러자 보석에서는 주황빛이 뿜어져 나왔다.

루비 버밀리온은 멍하니 그 주황빛이 나오는 보석을 바라볼 뿐이었다.

그렇게 주황빛에 루비 버밀리온이 한참 노출되자, 루퍼스는 입을 열기 시작했다.

“네 오빠는 안티 매지션이야.”

“네에에?!”

전혀 예상치도 못한 소리에 말문이 막혀 버린 루비 버밀리온.

그러나 루퍼스의 말은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그리고 ‘블랙잭’을 만든 장본인이지.”

“그, 그게 무슨…….”

7년 전 실종됐던 오빠가 안티 매지션이라니.

게다가 위저드 협곡을 습격한 그 ‘블랙잭’ 조직을 만들었다니.

루비는 루퍼스의 말이 믿기지가 않았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또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고 있었다.

애초에 7년 전 오빠와 그 ‘저주받은 학생’들은 히로빈 그린월드를 공격했었다. 그렇다면 결국 그 이후 도주한 ‘저주받은 학생’들이 안티 매지션이 됐어도 그다지 놀랄 일은 아니었다.

다만, 루비 버밀리온은 그동안 부정하고 싶었다.

항상 밝은 미소로 자신을 돌봐 주던 오빠가, 이제는 안티 매지션이라니…….

도저히 믿고 싶지 않은 사실이었다.

그런데 눈앞의 루퍼스 교수의 말은 그런 루비의 오빠에 대한 믿음을 송두리째 꺾고 있었다.

“너희 오빠는 곧 블랙잭을 이끌고 이 칼루스 아카데미를 습격할 거야. 그러나 그 습격 속에서 너만큼은 살리고 싶어 하고 있지. 아직 7년 전의 동생을 잊지 못했기 때문일까? 그래서 말인데, 습격이 일어나기 전에 나와 함께 너희 오빠가 있는 곳으로 가지 않을래?”

“…….”

루비는 대답하지 않았다.

이미 머릿속은 충분히 혼란스러웠다.

그러나 한 가지 확실한 부분은 있었다.

그것은 아무리 그의 오빠일지라도 ‘안티 매지션’이 되어 사람들을 위협하게 된다면, 자신은 거기에 맞서 싸우리라는 것을.

그리하여 루비는 나지막이 입을 열었다.

“…아니요. 아무리 지크 오빠라도, 범죄자라면 용서할 수 없어요.”

“그래? 유감이네.”

루퍼스는 어쩔 수 없다는 듯 어깨를 으쓱했다.

그런데 루비는 갑자기 루퍼스의 말에서 위화감을 느꼈다.

“…그런데 어째서 지크 오빠의 행방을, 그리고 지크 오빠가 블랙잭이라는 것을 그리 잘 알고 계신 거죠?”

가만히 듣고 보니 그랬다.

루퍼스 그레이엄 교수가 어떻게 지크 버밀리온이 블랙잭을 만들었다는 것을.

그리고 블랙잭이 이 칼루스 아카데미를 습격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것인가?

루비의 말에 루퍼스는 씨익 미소를 지었다.

“내가 바로 블랙잭이니까.”

“……!!”

그 말에 루비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러고는 이내 전투 자세를 취하며 눈앞의 루퍼스를 노려보았다.

“다, 당신이… 블랙잭이라고……?!”

“그래. 너희 오빠 지크 버밀리온 밑에서 일하고 있지.”

녀석의 오빠에 대한 말이 사실인지 아닌지는 알 수 없었다.

다만, 확실한 건 눈앞의 남자가 블랙잭이라는 것이었다.

빠르게 정신을 차린 루비는 이내 주문을 외웠다.

「그라비타스 폰데라티(grávĭtas ponderátĭ)!!」

쿵!

루비가 중력 가중 마법을 시전하는 동시에, 루퍼스가 바닥에 무릎을 꿇고 털썩 주저앉았다.

“…역시 인간의 몸으로는 중력을 이기기 버겁군.”

중얼거리는 루퍼스.

그리고 이내 루퍼스도 주문을 외우기 시작했다.

「트란세오 라이칸(tránsĕo ponderátĭ)」

찌지직!

무릎 꿇고 등을 굽히고 있던 루퍼스의 옷이 찢겨 나갔다.

그리고 이내 루퍼스의 몸이 점차 거대해지기 시작했다.

“무, 무슨…….”

루비는 그 모습을 보고 더욱 중력 마법을 가중했다.

그럼에도 이내 루퍼스는 점차 중력에 저항하여 몸을 일으켜 세우기 시작했다.

곧 천천히 자세를 잡아 두 발로 서기 시작한 루퍼스.

그런 루퍼스의 온몸은 털로 수북했고, 얼굴은 사람이 아닌 늑대에 가까웠다.

이내 온전히 두 발로 서게 된 루퍼스는 크르르 하는 소리와 함께 입을 열기 시작했다.

- 오늘 달은 유달리 밝군.

어둠의 공원을 환히 비추는 보름달.

그리고 그 아래에서 대치하고 있는 루비 버밀리온과 루퍼스 그레이엄.

그 모습은 마치 동화 속의 늑대와 빨간 망토를 보는 듯했다.

* * *

귀신의 집 부스 방문을 모두 마친 후.

나와 캐서린, 그리고 제이드와 샬롯은 불꽃놀이 부스 앞에 대기하고 있었다.

“그럼, 우리는 마실 것 좀 사 올게.”

“아, 응.”

제이드와 샬롯은 이내 불꽃놀이 전, 먹을 것과 음료를 챙기기 위해 판매 부스로 갔다.

그리하여 불꽃놀이 부스 앞에 남은 사람은 나와 캐서린 골드버그 둘.

그런데 나는 한 가지 이상한 점을 느끼고 있었다.

‘얘네 왜 안 오지?’

이미 귀신의 집이 끝날 시간이 한참을 넘었고, 좀 있으면 불꽃놀이도 시작된다.

그런데도 제페토와 루비 버밀리온은 올 기색을 보이지 않고 있었다.

‘설마 벌써 그렇고 그런 분위기인 건가?’

그러면 오지 않는 것이 충분히 이해됐다.

다만, 나는 제페토의 성격상 이렇게 빠르게 둘의 관계가 진전될 리는 없다고 생각했다.

그리하여 나는 감지 마법을 사용해 둘의 위치를 파악하고자 했다.

「프레시스코(præscísco)」

우우웅!

감지 마법을 사용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제페토의 위치를 발견할 수 있었다.

‘응? 쟤 저기서 뭐 해?’

제페토의 위치는 기숙사인 것으로 보였다.

아무래도 루비 버밀리온과 헤어지고 나서 먼저 방에 들어간 모양이었다.

‘둘이 싸웠나……?’

불꽃놀이를 보지 않고 먼저 기숙사로 복귀할 이유라고는 그거밖에 없었다.

‘루비는 어딨지?’

그리하여 나는 루비 버밀리온의 위치를 찾아 고개를 두리번거리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때,

옆에 있던 캐서린이 넌지시 말을 걸어 왔다.

캐서린 골드버그는 손에 들고 있는 쇼핑백을 나에게 보여 주려는 듯했다.

“저기…….”

그러나 나는 캐서린의 말을 끝까지 들어 줄 수 없었다.

“미안! 나 급하게 가 볼 데가 생겨서 불꽃놀이는 같이 못 볼 거 같아!”

그리고 나는 급하게 공원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무슨 일이 벌어지려는 거지?!’

분명 내 감지 마법으로 포착되고 있는 것은, 루비 버밀리온과 루퍼스 그레이엄의 마나가 폭주하고 있는 상황.

일반적인 상황에서 저런 식으로 마나가 폭주할 리 없었다.

분명 둘은 전투 상황에 돌입한 듯싶었다.

‘젠장!!’

녀석은 블랙잭의 간부 스페이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을지 예측할 수 없었다.

나는 그저 이를 악문 채 달릴 뿐이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