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1화
* * *
“가 버렸네요.”
캐서린은 조용히 고개를 떨구었다.
그러고는 미처 건네지 못한 쇼핑백의 손잡이를 양손으로 지그시 잡았다.
그런데 마침, 음료수를 사러 갔던 제이드와 샬롯이 도착했다.
“응? 제로는 어디 갔어?”
혼자 있는 캐서린을 보며 고개를 갸우뚱하는 제이드.
그러다가 양손에 들고 있던 음료수 중 하나를 그녀에게 건넸다.
캐서린은 제이드가 내민 손을 멀뚱히 바라보다가 이내 한 손으로 그 음료수를 받았다.
그와 동시에 제이드의 시선이 캐서린의 손에 들려 있는 쇼핑백으로 향했다.
“그러고 보니 그건 뭐야? 아까부터 들고 있던데.”
살짝 커 보이는 쇼핑백.
캐서린은 이들이 모여 있던 처음부터 이 쇼핑백을 들고 다녔었다.
“…선물이요.”
“선물?”
“전에 빚진 게 있어서요. 아무튼 아무것도 아니에요.”
그 두루뭉술한 태도에 제이드는 고개를 갸우뚱했지만, 이내 캐서린이 더 이상 말하고 싶지 않아 보였기에 입을 다물었다.
그런데 그때,
퍼엉!!
퍼어엉!!
불꽃놀이의 시작을 알리는 폭음이 울렸다.
하늘 위로 쏘아지는 불꽃들.
계속해서 울려 퍼지는 경쾌한 폭죽음.
밤하늘이라는 검은 도화지에, 마법으로 이루어진 불꽃들이 한편의 수채화를 그려 냈다.
이내 캐서린도 머릿속에 품고 있던 생각들을 비워 내고, 고개를 들어 하늘을 올려 봤다.
“아름다워요!”
옆에서 살짝 입을 벌린 채 뚫어져라 하늘을 쳐다보는 샬롯 아메드.
그 모습에 캐서린도 살짝 미소를 지었다.
“그러게요.”
뭐, 선물은 나중에 주면 되는 거지.
불꽃놀이는 나중에 같이 즐기면 되는 거고.
결국 저 아름다운 불꽃이 비추는 하늘 아래, 함께 존재할 수 있다는 게 중요하니까.
캐서린은 그렇게 생각했다.
* * *
퍼엉!!
퍼어엉!!
뒤쪽에서 폭죽 터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아마 불꽃놀이가 시작된 모양이지.
그러나 나는 지금 그런 걸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이지?’
분명 루비 버밀리온과 루퍼스 그레이엄은 딱히 접점이 없었다.
그저 수업에서 루퍼스가 루비에게 능력을 코칭해 준 것.
그게 전부였었다.
그런데 내 감지 마법에 뚜렷이 보이는 것은 마나를 폭발시키고 있는 루비 버밀리온과 루퍼스 그레이엄.
그밖에 다른 존재가 보이지 않는다는 것은, 결국 둘이 대립하고 있다는 의미였다.
둘이 갑작스레 맞붙을 이유?
적어도 교사와 학생의 관계에서는 일어날 수 없는 일일 것이다.
그 말인즉슨 루퍼스가 이 축제 기간을 틈타 뭔가를 꾸미고 있다는 이야기이기도 했다.
‘본색을 드러낸 건가.’
녀석이 이렇게까지 대놓고 활동할 줄은 전혀 상상하지 못했다.
지금껏 평범한 교사인 양, 사람 좋은 미소의 가면을 쓰고 다니던 녀석이다.
그런 녀석이 갑작스레 이렇게 정체를 드러내다니.
물론 거기에는 아카데미 내부 사정을 파악할 수 있는 내 감지 마법을, 녀석이 전혀 예상하지 못한 탓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어쩌냐. 내 감지 마법은 치트나 다름없거든. 이 망할 블랙잭 녀석들아.’
상대방의 마법 계열 파악은 물론이거니와, 마기조차도 발견할 수 있는 감지 마법.
녀석들에게 나와 내 무속성 마법은 생각지도 못한 변수일 것이다.
내 감지 마법의 한계는 아카데미 내부 크기 정도.
그러나 그 정도의 범위라면 칼루스 아카데미를 지켜 내기에는 충분했다.
마기를 품은 마도구든, 그 밖의 범죄 활동이든.
안티 매지션이든, 블랙잭이든.
‘다 쳐부숴 주겠어.’
나는 그렇게 다짐하며 공원을 향해 힘껏 달렸다.
* * *
한편, 아카데미의 공원.
빨간 로브를 뒤집어쓴 소녀와 늑대 인간은 계속해서 서로의 움직임을 살피며 대치하고 있었다.
여전히 중력 가중 마법이 적용되고 있었지만, 루퍼스 그레이엄은 멀쩡히 두 발로 서 있었다.
다만, 그럼에도 역시 움직임에 제약이 있는 듯, 다리가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어쩌려고 이러는 거지?”
이미 눈앞의 상대가 블랙잭인 것을 안 이상, 루비 버밀리온은 더 이상 존댓말을 사용하지 않았다.
그저 갑작스러운 상황에 대비하기 위해 상대를 향해 교차한 손을 뻗고 있을 뿐이었다.
- 글쎄. 난 전혀 그쪽을 해칠 생각이 없는데. 먼저 공격해 온 것 아닌가?
“닥쳐라, 안티 매지션.”
- 다소 버르장머리 없는 말버릇이군. 네 오빠를 봐서라도 죽이지는 않을 거다. 다만 담당 교수로서 따끔한 교육은 필요하겠지.
아직도 교수 노릇을 하려는 루퍼스의 말에 루비는 어이가 없었다.
한편으로는 살짝 식은땀을 흘리고 있었다.
‘저 녀석을 감당할 수 있을까?’
상대는 이미 어느 정도 중력의 영향을 벗어난 것으로 보였다.
그 말인즉슨, 눈앞의 늑대 인간은 사람을 단번에 찢어 죽일 정도로 엄청난 괴력을 가지고 있을 게 분명했다.
단순 힘으로만 비교하자면 위저드 협곡에서 봤던 군주급 보스 ‘라이오넬’과 비슷하거나 그 이상일 것이다.
“후우…….”
루비 버밀리온은 크게 심호흡했다.
상대의 힘이 약하고 강하고는 중요한 문제가 아니었다.
중요한 것은 상대가 ‘정의’를 위협하느냐는 것.
그리고 상대가 그 ‘정의’에 반하는 존재일 시.
버밀리온은 물러나지 않는다.
그것이 버밀리온 가문의 교육이었다.
물론 그 버밀리온 가문의 장남이 정작, 안티 매지션 조직 ‘블랙잭’을 만들었다는 게 아이러니하지만 말이다.
다만, 루비 버밀리온은 직접 오빠를 만나기 전까지는 그 사실을 부정하고 싶었다.
그런데.
갑자기 어딘가를 확인한 루퍼스가 살며시 자세를 풀었다.
그러고는 그녀를 보며 넌지시 말했다.
- 교육은 나중으로 미뤄야겠군.
“뭐?!”
- 아쉽지만, 불청객이 와서 말이다.
그러더니 이내 그는 늑대 인간 폼을 해제했다.
그러자 다시금 인간의 형태를 한 루퍼스가 모습을 드러냈다.
조금 전 변신의 영향인지, 그는 바지만 입고 있는 채였고, 그리하여 그의 바지 위로는 하얀 나신이 달빛에 비치고 있었다.
“잠시, 이쪽을 봐 줄래?”
늑대 인간 폼을 해제한 루퍼스의 말투는 원래대로 돌아와 있었다.
그리고 그는 바지춤에서 아까의 보석을 다시 꺼냈다.
이전과 같이, 다시금 주황색 마나를 뿜어내기 시작하는 보석.
우우웅.
그러자 루비 버밀리온은 뭔가에 홀린 듯이 멍하니 그 보석을 바라보게 되었다.
“으응……?”
루비는 조금 머릿속이 혼란스러워졌다.
그 모습을 보며 루퍼스는 피식 미소를 지었다.
“그럼, 다음 주 중간고사 때 보자. 그땐 네가 그토록 바라는 오빠를 볼 수 있을지도 모르겠네.”
그러더니 그 말을 끝으로 루퍼스는 홀연히 사라졌다.
공원에 남은 것은 멍하니 서 있는 루비 버밀리온뿐이었다.
그런데 그때,
“루비!! 괜찮아?!”
멀리서 자신을 부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루비는 멍한 표정으로 고개를 돌려 소리의 방향을 쳐다보았다.
그곳에 있는 것은 역시나 제로였다.
제로는 꽤나 멀리서부터 뛰어왔는지 거칠게 호흡을 내쉬고 있었다.
“루비! 괜찮아? 루퍼스는? 루퍼스 그 자식은 어디 갔어?!”
“루퍼스 교수님……?”
루비는 제로의 말이 이해되지 않았다.
‘왜, 갑자기 루퍼스 교수님을 찾는 거지?’
그런 루비의 눈동자는 초점이 조금 풀려 있었다.
“루퍼스 교수님은 갑자기 왜……?”
“젠장.”
루비의 말에 갑자기 욕지거리를 퍼붓는 제로.
갑자기 욕설을 내뱉는 제로를 보며 루비는 어리둥절할 뿐이었다.
“기억 조작 마법인가…….”
“기억 조작 마법……?”
루비 버밀리온은 제로가 무슨 소리를 하는지 도통 알 수 없었다.
다만, 한 가지 확실한 건 방금까지의 기억이 마치 안개로 가려진 듯 흐릿하다는 것이었다.
‘뭔가 중요한 걸 잊은 것 같은데…….’
그러나 루비 버밀리온은 끝내 그것을 기억해 내지 못했다.
* * *
드디어 칼루스 아카데미의 축제가 마무리되었다.
나는 침대 위에 누워 축제의 종료를 만끽했다.
[‘제3의 카페’의 매출은 ‘6,872다트’입니다.]
[축제의 매출 1위 부스는 ‘제3의 카페’입니다.]
[서브 이벤트 ‘축제의 진정한 승리자’를 완료하였습니다.]
[보상 ‘마법 주문서(???)’를 획득했습니다.]
눈앞에 나타난 이벤트 완료를 알리는 시스템 창.
사실 결과는 어느 정도 예상됐었다.
‘일개 학교 축제에서 6,800만 원 매출이 말이 안 되는 거긴 하지.’
우리의 매출이 매우 비정상적인 게 맞았다.
물론 그만큼 비용 지출도 있었다고는 하지만, 전부 제외하고도 수익이 6,000만 원 가까이 됐다.
‘제3의 카페’ 멤버가 카페 영업에 투자한 시간은 고작 2일.
이틀 일했다고 두당 1,200만 원씩 챙기는 거면 참 말이 안 되게 성공한 장사였다.
이래서 자본주의가 좋다는 거다.
“다섯 명으로 나누면 대략 1,200다트 정도 얻겠고. 거기다가 마법 주문서도 얻었으니까.”
여러모로 이번 축제에서는 얻은 것이 많았다.
게다가 축제 기간에 블랙잭이 숨겨 놓은 검은 구체도 발견했으니, 결과적으로 침공 이벤트에 대한 걱정도 어느 정도 덜 수 있었다.
“그나저나 루퍼스 녀석이 걱정이네…….”
녀석은 이번 축제 기간을 바탕으로 본격적으로 움직임을 보였다.
아무래도 교직원실과 내 방문 앞에 숨겨 놓은 검은 구체도 녀석의 짓일 것으로 예상되었고, 게다가 대놓고 루비 버밀리온을 위협하기도 했었다.
다만, 그럼에도 녀석은 철두철미했다.
검은 구체의 정체에 대한 소식은 분석에 시간이 꽤 걸리는지, 알 수 없었고, 게다가 루비 버밀리온은 기억 소거 마법이 걸렸는지 루퍼스와 있었던 일을 전혀 기억 못 하고 있었다.
“그래 봤자야.”
이제 본격적으로 활동했다는 것은, 그만큼 더 허점을 포착할 수 있다는 말이었다.
나는 녀석의 행동 하나하나를 놓치지 않을 심산이었다.
“됐고. 보상이나 확인해 볼까?”
나는 이내 루퍼스에 관한 생각을 거두고, 아까 받은 마법 주문서를 감정했다.
[보상 ‘마법 주문서(???)’를 감정하였습니다.]
* 감정 결과: 마법 주문서(더블 캐스팅)
[‘마법 주문서(더블 캐스팅)’을 사용하시겠습니까?]
[▶ 사용한다.]
[▶ 버린다.]
“더블 캐스팅이라고……?! 드디어 떴구나!”
지금껏 ‘더블 캐스팅’이 나오기만을 기대하고 있던 나였다.
물론, 지금까지 얻은 마법 주문서들도 하나같이 유용한 것들이었지만, 그래도 당장 매직 미사일 수를 두 배로 늘려 주는 ‘더블 캐스팅’은 내 로망과도 다름없었다.
나는 곧바로 ‘더블 캐스팅’ 마법 주문서를 매직 미사일에 적용했다.
“그럼 이제 주문 한 번당 네 방인 건가?”
이전에 두 배로 소환되는 매직 미사일도 나름대로 느낌 있었는데, 이제는 거기서 네 배가 되었다니.
단순 셈으로만 치면 ‘더블 캐스팅’을 얻음으로 인해 두 배 더 강해진 것이다.
“좋아. 나도 가만히 기다리고 있진 않을 거다.”
점차 강해지는 게 몸으로 느껴졌다.
이제는 어느 정도 블랙잭 녀석들의 침공에 자신이 있었다.
“그나저나 이제 다음 주면 중간고사네…….”
‘중간고사’라는 네 글자의 압박감.
여타 수험생들이 느끼는 평범한 불안과 긴장감이 침대에 누워 있는 내 몸을 휩쓸었다.
그러나 나는 그 불안함이 단지 시험 때문만은 아닌 것을 이때까진 알지 못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