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아카데미의 무속성 마법사-82화 (82/175)

82화

* * *

“그게 무슨 소리야? 재해급 마물이 출몰했다고?”

“예! 협회 측에서도 지금 지원을 다급하게 요청하고 있습니다.”

이제 막 출근한 실베르 라인하르트였다.

그런데 부하 직원의 다급한 보고에, 이내 사무실로 올라가지도 못하고 출동하게 생긴 것이다.

“재해급 마물이라니…….”

재해급 마물은 거의 5년에 한 번꼴로 출몰하는 녀석.

일반적으로 권좌들 일곱 명이 달라붙어야 겨우 저지할 수 있을 만큼 어마어마한 괴물이었다.

다만, 현실적으로 모든 권좌가 마물 하나에만 집결할 수 없는 만큼, 재해급 마물이 출몰하게 되면 협회와 마경이 연합하여 처리하는 것으로 암묵적인 합의가 되어 있었다.

“위치는? 민간에 피해는 없대?”

“예. 현재 재해급 마물의 위치는 해상으로 파악됩니다. 다만, 곧 바다를 건너 내륙으로 진입하고 있는 만큼, 최대한 신속히 처리가 필요할 것으로 예측되고 있습니다.”

“그래도 아직은 여유가 있단 말이지…….”

재해급 마물에 아직 피해를 입지 않은 것은 천만다행이었다.

보통 재해급 마물이 설치기 시작하면 민간 피해는 물론이거니와, 그를 조속히 막기 위해서 수많은 희생이 필요할 따름인데, 이렇게 멀찌감치 떨어진 위치에 나타난 재해급 마물은 오히려 땡큐였다.

“그럼, 간만에 날뛰어 볼까. 좌표는 준비되어 있지?”

“예! 다 준비시켜 놓았습니다.”

“그래, 그럼 3분 안에 출동하자고.”

말을 마친 실베르는 손을 깍지 낀 채 위로 기지개를 쭉 뻗었다.

‘재해급 마물은 오랜만이네.’

실베르가 마경에 근무하고 있던 5년 전쯤에도 재해급 마물이 출몰했던 적이 있었다.

그리고 실베르의 고유 마법은 원거리에 특화되어 있었기에, 재해급 마물과의 전투에서 큰 활약을 할 수 있었고, 덕분에 고속 승진을 할 수 있던 밑거름이 됐었다.

‘그나저나 괜찮겠지?’

보통 재해급 마물이 출몰하면 협회고 마경이고 전투 인원들은 대부분 그쪽으로 쏠리게 된다.

그리하여 자연스레 상비 인원들이 적을 수밖에 없고, 보통 이 시기를 노린 범죄가 들끓는 편이었다.

게다가, 지금 당장 ‘블랙잭’이라는 안티 매지션 조직들의 수사가 진행 중인 만큼, 녀석들이 이 시기에 무슨 짓을 벌일지는 알 수 없었다.

‘뭐, 별일 없겠지.’

이내 실베르 라인하르트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한 채, 대기하고 있는 출동 포탈로 향했다.

* * *

월요일.

예고했던 대로 중간고사가 시작되었다.

다만, 중간고사를 시작하기에 앞서 교장 히로빈 그린월드는 모두를 강당으로 집합시켰다.

이내 강당에 모두가 집합한 것을 확인한 히로빈 그린월드가 마이크에 대고 말하기 시작했다.

- 다들 모였습니…스릅…까.

히로빈 그린월드의 말에 그가 항상 입에 물고 있는 사탕이 달그락거리는 소리가 섞였다.

이젠 저 영감탱이가 사탕을 빨고 다니는 게 익숙했지만, 한편으로는 공적인 자리에서 저래도 되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어쨌거나 히로빈은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 자, 아시다시피 이번 주는 중간고사 기간입니다. 그런데 이번 학기부터 여러분들의 중간고사 방식이 조금 바뀌게 되었습니다.

중간고사 방식이 바뀌었다고?

역시나 ‘아카마’에서는 없던 일이었다.

또다시 무언가 이레귤러가 발생하려 하고 있었다.

- 요즘은 각양각색의 수강 과목보다는 개개인의 능력치가 더욱 중요해지는 시대라고 불립니다. 저도 그 말에 어느 정도 동의하는 부분이고요. 그리하여 많은 교수와의 의견 교류 끝에, 칼루스 아카데미는 이번 학기부터 ‘통합 시험’을 시행하기로 했습니다.

“통합 시험?”

“통합 시험이 뭐지?”

“그럼 그냥 시험을 하나로 퉁치겠다는 건가?”

주변의 학생들이 술렁이기 시작했다.

그러나 히로빈은 학생들이 의아해할 줄 알았다는 듯, 빠르게 설명을 덧붙였다.

- 통합 시험의 내용은 단 하나. 여러분들은 다 같이 임의의 필드로 구성된 통합 시험 던전에 들어가게 될 겁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여러분들의 능력을 최대한 활용해, 목적지에 도달하게 되면 그에 따라 성적을 부여받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결국 던전 하나로 시험 보겠다는 소리잖아?’

통합 시험 방식으로는 시험이 하루면 끝날 것이기에, 학생들 대부분에게는 그리 나쁘지 않은 조건이었다.

다만, 그 말인즉슨 필기시험이 없다는 이야기여서, 실기보다는 필기에 강점을 둔 학생들에게는 다소 불공평한 방식이었다.

그러나 히로빈 그린월드는 거기까지 예상한 모양이었다.

- 그렇게 되면 지금까지 공부해 온 이론 공부는 어떻게 되는지 궁금하시죠? 걱정하지 마세요. 여러분들이 목적지에 도달하는 데 도움을 주는 아이템들을 얻기 위해선 여러분들의 이론 지식이 필요할 테니까요. 던전의 아이템들에는 각 과목의 이론 문제를 풀어야만 얻을 수 있게끔 하는 장치들이 달려 있답니다.

그런 거였나.

결국엔 역시, 이론 공부도 같이 평가하는 것으로 보였다.

그러나 방식이 조금 신선했다.

어떻게 보면 의자에 앉아 시험지를 보며 끙끙대는 것보단, 이렇게 던전의 필드 위에서 뛰어다니며 문제를 찾고 푸는 방식이, 좀 더 학생들의 의욕과 흥미를 이끄는 효과가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 여러분들이 목적지에 도달할 능력이 충분하다면, 다소 어려운 이론 문제들은 패스해도 좋습니다. 다만, 거기서 끝이면 형평성에 어긋나겠죠. 따라서 각 과목의 교수님들은 담당 학생들이 시험을 치르는 모습을 계속해서 모니터링할 것입니다. 물론, 그에 따라 각 교수님이 추가 점수를 주시겠죠?

모든 설명을 들은 나는, 대충 시험의 구조가 어떻게 흘러가는지 알 것만 같았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조금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이번 중간고사 전에 수학, 언어 등의 기본적인 교과목들은 전혀 공부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뭣하면 그냥 고등학교 때 배운 기본 지식으로 승부를 보려 했는데, 통합 시험 방식에서는 그냥 수틀리면 패스하면 그만이니까.

어떻게 보면 나에게 조금 유리하다 볼 수 있었다.

- 자, 그럼 다들 중간고사 파이팅입니다!

히로빈 그린월드의 마지막 말을 끝으로, 학생들은 전부 시험장으로 이동하게 되었다.

* * *

시험의 장소는 역시나 숲의 던전.

1학년들과 2학년들이 각각 두 개의 던전으로 나뉘어 시험을 보는 모양이었다.

“그런데, 이 정도의 인원을 한 번에 수용할 수 있다고?”

아무래도 던전의 시스템을 건들면 필드와 마물의 설정을 마음껏 조정할 수 있겠지만, 그럼에도 한 학년의 인원은 무려 200명이나 되는 엄청난 수였다.

그런데 이 200명의 대규모 인원이 고작 던전 하나에 전부 들어갈 수 있다니.

마법 세계의 위대함에 또 한 번 감탄하게 되었다.

그런데, 아직 던전을 가동하려면 조금 대기해야 하는 것으로 보였다.

아무래도 일반 컴퓨터보다 대용량의 슈퍼컴퓨터를 부팅시키기 위해 더 많은 시간이 소요되듯, 던전 시스템도 그와 비슷한 모양이었다.

따라서 다른 기숙사의 학생들을 비롯해, 아우레인의 학생들은 저마다 숲의 어딘가에 털썩 주저앉아, 던전 입장을 기다리게 되었다.

주변 사람들이 하나둘씩 바닥에 앉자, 나도 적당한 돌무더기를 발견하여 앉기로 했다.

그런데 문득, 머릿속에 의문점이 한 가지 떠오르고 있었다.

‘그나저나 왜 계속 전개가 달라지는 거지?’

지금까지는 일종의 나비 효과라고 생각했었다.

내가 이 세계에 들어오면서 생긴 일종의 도미노 현상.

그런데 생각해 보면, 지금껏 내가 이 세계에 영향을 끼칠 만한 일을 했나 싶었다.

제이드를 제치고 수석이 된 점.

그리고 그것이 마법에 적성이라고는 없는 ‘제로’라는 점.

딱 이 정도가 내가 이 세계에 오고 나서 바꾼 내용들이었다.

그 외에 비무제 일정이 앞당겨진다든지, 캐서린이 갑자기 폭주한다든지, 수학여행을 위저드 협곡으로 간다든지, 그로 인해 케이든 교수가 입원하게 된다든지.

아무리 생각해 봐도 내 의지와는 그다지 연관 있어 보이는 일들이 아니었다.

무엇보다도 가장 큰 변화라고 볼 수 있는 것은 다름 아닌 블랙잭의 활동.

계속되는 변화와 앞당겨지는 전개에 대충 예상은 했었지만, 2학기 말에나 모습을 드러내는 블랙잭의 등장 시기가 학기 초로 당겨진 것은 정말 의외였다.

솔직히 말해서 아무리 머리를 굴려도 내 지금까지의 행동과 블랙잭의 이른 등장의 연관성을 찾을 수는 없었다.

‘무슨 스노우볼이 굴러간 거야 대체…….’

나는 그저 원래 세계에서 ‘아카마’를 플레이했었고.

히든 엔딩을 클리어했었고.

그리하여 진엔딩을 보는 이벤트를 수락했을 뿐이었다.

물론, 그다지 억울하진 않았다.

애초에 어느 정도는 각오한 부분이었고, 지금의 생활이 나름 즐겁기도 했다.

다만, 내 즐거움과 이곳 사람들의 안전은 별개의 문제였다.

아무리 전개가 달라지고 그로 인해 내가 힘들어진다 해도, 그건 어디까지나 내 개인적인 문제.

그러나 침공 이벤트는 내 옆의 친구들과 교수님들의 생사가 달린 문제였기에, 가볍게 생각할 수 없었다.

‘결국 침공 이벤트가 벌어지는 것도 나 때문인가?’

플레이어가 히든 엔딩을 보기 위해 노력하지 않는다면, 결국 ‘아카마’는 평범한 미연시 게임일 뿐.

그런 ‘아카마’를 스릴러 장르로 바꾸는 것은 결국 히든 엔딩을 보고 싶어 하는 플레이어의 욕심이었다.

‘그런데, 과연 무엇이 진짜일까?’

미연시 속의 평화로운 세계선.

그리고 블랙잭이 침공하는 또 다른 세계선.

그것은 과연 플레이어의 선택 때문일까?

아니면 진실이 평화로 가려졌던 것일까.

나는 알 수 없었다.

‘뭐, 어차피 그런 쓸데없는 생각은 필요 없으니까.’

뭐가 진실이고 뭐가 거짓인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중요한 것은 내가 이들을, 이 칼루스 아카데미를 지켜 낼 것이라는 거였다.

내가 이런저런 생각을 하는 와중, 어느새 중간고사를 위한 던전 입장 준비가 끝난 모양이었다.

루퍼스 그레이엄은 각자 흩어져서 쉬고 있던 학생들을 집합시켰다.

“자, 다들 모이자!”

그리고 모두가 모인 걸 확인한 루퍼스는, 추가로 중간고사의 규칙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강당의 교육 때 들었다시피, 너희들의 목표는 ‘최종 목적지’에 도달하는 거야. 그리고 그 과정에서 각종 아이템들의 도움을 받으면 되는 거고.”

여기까지는 전부 알고 있는 내용이었다.

다만, 루퍼스는 따로 최종 목적지에 관한 부연 설명을 하지 않았다.

그저 들어가면 알게 될 거라고 이야기할 뿐이었다.

“기본적으로 치명적인 대미지를 입게 되면 리스폰, 즉 거점 부활 형식으로 진행될 거야. 그러니까 그 부분은 전혀 걱정하지 않아도 돼.”

리스폰 부활 방식이라…….

확실히 중간고사용 시험 던전이라 지금까지의 던전 방식과는 사뭇 다른 듯했다.

“그리고 던전 안으로는 각 담당 과목의 교수님들이 함께 입장하게 될 거야. 너희들의 행동과 판단 하나하나를 교수님들이 실시간으로 채점하는 거지.”

같이 입장한다고?

나는 그 말에 조금 싸한 기분을 느꼈다.

그러나 이내 이어지는 루퍼스의 말에 더 생각할 여유는 없었다.

“자, 그럼 입장하자!”

그렇게 칼루스 아카데미의 중간고사가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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