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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데미의 무속성 마법사-84화 (84/175)

84화

나는 일단 루비와 만난 김에 같이 움직이기로 했다.

그리하여 우리는 리스폰 지역을 빠져나와 곧 섬의 내부로 진입하게 되었다.

“어쩌다 보니 또 오랜만에 같은 팀이 됐네?”

나는 옆에서 걷고 있는 루비에게 넌지시 말을 걸었다.

생각해 보니 루비와는 이전에도 팀을 이룬 적이 한 번 있었다.

그것은 사실상 나의 데뷔 무대라고 할 수 있었던 그리핀의 던전.

물론 그때 당시 루비는 그린 드래곤으로 변한 에메릴 그린월드에게 곧바로 퇴장했지만 말이다.

“그, 그랬던가?”

루비는 아무래도 그때 당시의 기억이 떠올랐는지 말을 흐렸다.

그리하여 나는 그때 일을 상기시키기 위해 굳이 꼬집어 주었다.

“그래도 다행이네. 이번엔 던전 밖으로의 귀환이 아니라 리스폰 형식이잖아? 적어도 그때처럼 바로 퇴장할 일은 없을 테니까.”

“뭐어어?!”

루비 버밀리온은 내 말에 곧장 발끈했다.

나는 그런 그녀의 모습을 웃으며 지그시 감상할 뿐이었다.

그런데 그녀의 얼굴을 보고 있자니, 갑자기 잊고 있던 것이 떠올랐다.

‘생각해 보니 영웅의 아티팩트도 모아야 하는데.’

갑자기 튀어나온 블랙잭과 루퍼스 그레이엄 때문에, 지금껏 정신이 없긴 했었다.

그런데 문득 루비 버밀리온과 단둘이 있다 보니, 히든 이벤트에 대한 내용이 떠오른 것이다.

‘슬슬 말을 꺼내 볼까.’

지금 당장 골드버그의 회중시계만 해도 엄청난 능력을 발휘하고 있는데, 여기서 영웅의 아티팩트를 하나 더 추가할 수 있다면 엄청나게 파워 업이 될 것은 분명했다.

그리고 그 영웅의 아티팩트.

버밀리온의 아티팩트는, 루비가 항상 걸치고 다니는 저 빨간 로브일 게 분명했다.

다만, 이전에 한 번 말을 꺼냈던 만큼 루비에게 또다시 말을 꺼내기가 조금 조심스러운 부분이 있었다.

‘오빠가 물려 준 소중한 물건이라 했지? 그런 걸 어떻게 선뜻 달라고 하냐고.’

내가 아무리 염치가 없어도 뜬금없이 오빠와의 추억이 담긴 물건을 달라고 할 만큼 철면피는 아니었다.

따라서 나는 로브 이야기를 꺼내는 것은 조금 나중으로 미루기로 했다.

나는 이내 머릿속을 정리하고, 화제를 돌렸다.

“근데 뭔가 이상하지 않아?”

“응? 뭐가?”

“일단 확인된 것만 해도 군주급 마물로 추정되는 녀석이 둘이잖아.”

아카데미를 졸업한 성인 마법사라도 군주급 마물을 혼자서 처치하는 것은 매우 힘든 일이었다.

그런데 그런 군주급 마물이 널린 필드라니.

학생들의 중간고사치고는 조금 수준이 높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루비 버밀리온은 그다지 의문을 품지 않는 모양이었다.

“그래서 버프가 있는 거 아니야? 군주급 마물을 처리할 수 있을 만큼 버프의 효과가 강력한 거겠지.”

“그런가.”

루비의 말이 맞았다.

결국 현실의 마물, 현실의 던전과는 다르게, 이러한 훈련용 던전은 던전 관리자가 임의로 밸런스를 조정할 수 있었다.

그리하여 루비의 말마따나 그만큼 강력한 버프의 효과가 제공되기에, 던전을 제작한 교수진들 입장에서 적절한 밸런스라고 판단했겠지.

그럼에도 석연치 않은 부분은 있었다.

‘아무리 그래도 군주급 보스 여럿을 상대하는 건 조금 이상한데…….’

그러나 나는 이내 의심을 거두었다.

설마 교수들 입장에서 학생들이 깨지 못할 던전을 설정했을까 싶은 생각이었다.

“그나저나 결국 버프를 많이 얻어야겠네.”

다만, 그리핀 던전 때는 미리 던전 내부의 버프 위치를 알고 있었기에 버프 수집이 어렵지 않았지만, 지금은 처음 와 보는 던전이었기에 결국 몸으로 부딪치는 수밖에 없었다.

“어라? 잠깐만…….”

내가 왜 이 생각을 못 했지?

던전 내부의 버프란 것도 결국 마나로 이루어진 존재.

대상이 마나라면 감지 마법을 사용하여 쉽게 감지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즉시 주문을 외워 그러한 생각을 행동으로 옮겼다.

「프레시스코(præscísco)」

우우웅.

삽시간에 흘러들어오는 주변의 마나 정보.

그런데 평상시보다는 조금 혼선이 있었다.

아무래도 이 던전 자체가 마나로 이루어진 던전이었고, 게다가 주변에는 수많은 학생과 교수님, 그리고 마물이 즐비했기에 내 시야에는 과도한 정보가 들어오고 있었다.

‘쉽지 않네.’

그러나 조금만 더 하면 구분해 낼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리하여 나는 두 눈을 감고 집중하기 시작했다.

‘이건 마물이고, 이건 사람. 그리고 이건…….’

나는 이내 그중에서 이질적인 마나들을 선별해 냈다.

그리고 곧 그 정체가 버프를 제공하는 장치들이라는 것을 눈치챌 수 있었다.

“찾았다!”

“응? 찾았다고? 뭘……?”

갑자기 눈을 감고 중얼거리던 나를 루비 버밀리온은 다소 이상한 시선으로 쳐다보고 있었다.

나는 그런 그녀에게 씨익 미소를 보였다.

“버프들의 위치를 감지해 냈어.”

“어떻게?”

“그야 감지 마법으로.”

“감지 마법으로……?!”

루비 버밀리온은 도저히 믿을 수 없다는 듯 입을 헤 벌렸다.

“어, 어떻게 그런 게 가능해? 고작 감지 마법으로?!”

“글쎄…….”

사실 그 이유는 나도 잘 모른다.

다만, 어쨌든 ‘가능’하다는 것.

그게 중요한 거였다.

“그냥. 그냥 되던데?”

“…….”

할 말을 잃은 듯 입을 다문 루비 버밀리온.

나는 그 모습에 피식 웃으며 머리를 한 번 쓰다듬어 줬다.

“그럼, 가자!”

“머, 머리는 왜 쓰다듬어!”

“그것도 그냥?”

나는 장난스러운 표정을 지어 보였다.

그러자 루비 버밀리온의 표정이 살짝 붉어진다.

그리고 나는 먼저 달리기 시작했다.

“빨리 와!”

“가, 갈게!”

사실상 내 감지 마법이라면, 이번 중간고사도 쉽게 통과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 * *

한편, A 리스폰 지역.

교수들 무리 사이에 앉아 있던 루퍼스 그레이엄은 왼쪽 손목에 찬 시계를 손가락으로 탁탁 가볍게 두드리고 있었다.

‘슬슬 가 볼까.’

이제 곧 있으면 바깥쪽에 ‘그들’이 도착할 시간이었다.

그리하여 루퍼스 그레이엄도 이내 외부로 빠져나갈 준비를 하려고 몸을 일으켰다.

그런데,

“어디 가세요?”

옆에 앉아 있던 아텔라 가스트로디아 교수가 그에게 말을 걸어 왔다.

“아, 별거 아닙니다. 볼일이 좀 있어서요. 아, 맞다. 혹시 아텔라 교수님, 모니터링 바쁘신가요?”

“…저는 제자가 한 명밖에 없어서요. 딱히 모니터링할 건 없긴 한데…….”

“아… 그런가요? 실례했습니다.”

다소 의기소침해진 아텔라의 표정에 루퍼스는 황급히 고개를 숙여 사과했다.

그러더니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그럼 잠시 제 모니터를 맡아 주실 수 있을까요?”

“예? 모니터를 맡아 달라니요.”

“어차피 제자가 한 명뿐이신데 부탁드려도 되는 거 아닌가요?”

“…그, 그건 맞지만 뭐 하시려는 건데요?”

아텔라는 루퍼스 그레이엄의 말이 석연치 않았다.

안 그래도 루퍼스를 감시하기 위해 그의 옆에 꼭 붙어 있던 참이었다.

더군다나 지금은 모두가 던전 내부로 들어와 있는 이례적인 상황.

이럴 때일수록 더더욱 철두철미한 감시가 필요했다.

그리하여 아텔라는 루퍼스를 혼자 가게 내버려 두지 않을 심산이었다.

루퍼스는 그런 아텔라의 비장한 표정을 보고는 싱긋 미소를 보였다.

“말했다시피 볼일이 있어서요.”

“볼일이라니요? 무슨 볼일인데요?”

“그… 말하기 좀 곤란합니다만.”

“왜 말을 못 하는 건데요? 저도 같이 가도 될까요?”

“…꼭 그래야만 하겠습니까?”

루퍼스는 필사적으로 아텔라를 뿌리치려는 것으로 느껴졌다.

그리하여 아텔라는 더더욱 루퍼스를 놓을 수 없었다.

“그 볼일이라는 게 대체 뭐냐고요!”

“…볼일이라는 게 따로 있겠습니까.”

“뭔데요?”

도대체 이 남자가 무엇을 이렇게 숨기려 하는 거지?

아텔라는 반드시 캐내야겠다는 마음을 먹고 있었다.

그러나 생각 외로 루퍼스 그레이엄은 순순히 대답했다.

“화장실…이라고 하면 알아들으실까요.”

“…네에에?!”

순간 아텔라의 얼굴이 빨개졌다.

정작 루퍼스가 블랙잭이라 생각하여 집요하게 감시하고 있었기에, 볼일의 다른 의미는 생각지도 못한 것이다.

아텔라의 당황한 표정을 스윽 훑은 루퍼스는 이내 생긋 미소를 지었다.

“그럼, 같이 가실래요?”

“…….”

차마 대답할 수 없는 아텔라였다.

루퍼스는 그런 아텔라의 표정에 히죽 미소를 지었다.

“그런데 근래에 부쩍 저랑 붙어 계시려고 하시는 거 같네요.”

“그, 그건…….”

“설마…….”

갑자기 표정이 싹 변하는 루퍼스 그레이엄.

그 모습에 들켰나 싶은 아텔라는 침을 꼴깍 넘겼다.

그러나 루퍼스의 입에서 나온 말은 전혀 예상도 못 한 말이었다.

“…저 좋아하십니까?”

“예?!”

“저 너무 좋아하지 마세요. 전 따로 좋아하는 사람이 있어서요.”

“저, 저도 있거든요!!”

“아, 그러신가요?”

아텔라는 루퍼스의 말에 흥분했고, 루퍼스는 그런 그녀의 반응을 즐겼다.

그러고는 앉아 있는 그녀의 무릎 위에, 들고 있던 모니터를 올렸다.

“농담입니다. 그럼, 잠시 갔다 오겠습니다. 부탁할게요.”

“네에…….”

어느새 풀숲으로 들어가는 루퍼스 그레이엄.

아텔라는 그런 그를 멍하니 바라볼 뿐이었다.

* * *

한편, 실베르 라인하르트는 해상에 출몰한 재해급 마물 ‘크라켄’을 상대하고 있었다.

“저 문어 대가리 자식. 되게 끈질기네.”

현재 크라켄을 막기 위해 투입된 인원은 협회와 마경을 포함해 자그마치 수백 명에 다다르는 인원들.

벌써 몇 시간째 지속적인 화력을 퍼붓고 있음에도 녀석은 끄떡없이 다리를 휘두르고 있었다.

다행히 움직임이 굼뜬 녀석이라 그런지 심각한 인명 피해를 입진 않았지만, 슬슬 인원들의 체력이 한계에 도달하고 있었다.

과연 재해급 마물.

권좌만 해도 네 명, 그 밖에 수백 명의 인원을 동원해도 역시 버거운 상대인 것이다.

“저런 녀석이 도심 한가운데 나타나면 정말 끔찍하겠어.”

실베르는 그나마 녀석이 바다 위에서 설치고 있는 게 다행이라는 생각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고는 또다시 마력을 불어넣어 총을 장전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때,

띠리리링.

그의 허리춤에 달린 마력 통신기에서 알람음이 울리고 있었다.

물론 재해급 마물과 대치 중인 상황이었지만, 사실상 여유도 조금 있는 터라 실베르는 일단 통신기를 받아 들었다.

- 실베…르 차장…님!!

다급하게 실베르를 부르는 부하 직원의 목소리.

그는 칼루스 아카데미에 파견된 감시원이었다.

다만, 현재 실베르의 위치가 해상이어서 그런지, 아니면 칼루스 아카데미까지는 꽤 거리가 있어서 그런지, 통신이 원활하지 않았다.

따라서 실베르는 조금 큰 목소리로 되물었다.

“왜?”

- 지…금 이…곳에 마력…이 폭주…….

“응? 뭐? 마력이 폭주한다고?”

- 그 양…이 조…금 비정…상적.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내용이었다.

안 그래도 당장 눈앞의 크라켄을 몇 시간째 상대하고 있는 실베르 입장에서는 조금 짜증이 날 수밖에 없었다.

“뭐라는 거야?!”

- 그…….

띠링!

그러나 이내 연결이 끊겨 버렸다.

뭔가 이상함을 느낀 실베르가 다시금 통신을 보내 봤지만, 감시원은 받지 않았다.

“무슨 일 있나……?”

단순 통신 장애라기에는 뭔가 위화감이 느껴지고 있었다.

그러나 이내 실베르는 눈앞의 크라켄에 집중하기로 했다.

“뭐, 특별 사항이 있으면 다시 연락 주겠지.”

실베르는 다시금 총에 마력을 불어넣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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