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5화
* * *
“이 정도면 꽤 많이 모았네. 그런데 어째 예상한 거와는 좀 다른데…….”
감지 마법으로 위치를 전부 파악할 수 있었기에, 어느새 꽤 많은 버프를 모을 수 있었다.
그러나 사실상 실속 있는 버프는 그다지 없었다.
[받는 대미지 5% 감소 버프]
[마나량 10% 증가 버프]
[속도 10% 증가 버프]
그나마 이 정도가 활용 가능성이 있었고, 나머지는 시야를 넓혀 준다든가 공복감을 줄여 준다든가 하는, 그다지 쓸모없는 기능의 버프들이었다.
“분명 군주급 마물과의 밸런스를 위한 버프 시스템 아니었나……?”
애초에 평균적인 학생이라면 군주급 보스는 죽었다 깨어나도 이길 수 없었다.
그것은 아무리 학생들끼리 연합한다 해도 마찬가지.
그리하여 적어도 버프 쪽에 밸런스의 근거가 있으리라 봤는데 전혀 예상과는 달랐다.
이미 근처에 있는 버프란 버프는 전부 쓸어 모아 봤지만, 군주급 마물을 상대하기엔 어림도 없는 수준이었다.
“게다가 버프 하나 얻기도 드럽게 힘든데 말이지…….”
버프를 획득하기 쉽다는 것은 그야말로 감지 마법으로 인해 위치를 발견하기 쉽다는 이야기. 막상 버프 장치를 발동하게 되면, 이상한 문제들이 튀어나와 우리를 맞이했다.
예를 들자면 이런 거다.
[문제: 처음으로 게이트가 발생한 연도를 적으시오.]
버프 장치를 발동하게 되면, 그 앞에 이러한 텍스트가 나타나게 된다.
그리하여 학생들은 출제되는 문제들을 풀어야만 버프를 획득할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교수님들이 문제를 푸는 학생들을 모니터를 통해 실시간으로 확인하며 각자의 과목에서 추가 점수를 주는 시스템.
참으로 마법의 세계다운 중간고사였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나와 동행하는 것이 루비 버밀리온이라는 것이었다.
루비는 평소 우등생이어서 그런지, 이론에 빠삭하여 버프 장치가 나오는 족족 거침없이 문제를 풀어 댔다.
뭐, 문제를 푸는 사람에게만 추가 점수가 들어간다고는 하지만, 그건 어차피 나중 일이었다.
당장은 버프를 얻고 골인 지점에 들어가는 게 중요한 문제였으니까.
“아무튼 슬슬 안쪽으로 들어가 볼까?”
우리는 지금까지 섬의 외곽을 겉돌고 있었다.
그야 내부로 들어가면 갈수록 군주급 마물들이 튀어나오게 되니까, 그전에 버프를 잔뜩 파밍하여 준비할 심산이었다.
다만, 이곳의 버프는 별 의미가 없는 듯싶다.
결국 군주급 마물들이 즐비한 안쪽에 있는 버프들이 진짜인 것으로 생각되었다.
‘그럼 애초에 잘못 설계된 거 아닌가.’
일반적으로는 군주급 마물을 상대할 수 없는데, 군주급 마물이 있는 곳에서만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는 버프를 얻을 수 있다니.
모순이었다.
“뭐, 나한테는 별 상관없는 이야기지만.”
어쨌든 나는 일반적인 학생들과 달랐다.
군주급 마물이라도 얼마든지 자신이 있었다.
비록 편하게 가기 위해서 버프를 찾고 있었지만, 이젠 직접 몸으로 부딪치는 수밖에 없었다.
“그럼, 가자.”
“응.”
그렇게 나와 루비 버밀리온은 섬의 내부 쪽으로 진입했다.
그런데 안쪽으로 들어선 우리는 얼마 지나지 않아 누군가의 전투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콰광!!
콰과광!!
“누가 싸우나 본데?”
“그쪽으로 가 보자.”
소리의 근원으로 달려가자, 그곳에 보이는 것은 다름 아닌 제이드.
그리고 그런 제이드에게 혀를 날름날름하는 것은 바로 5m가 넘는 거대한 키메라였다.
사자의 얼굴과 몸통.
꼬리에는 뱀이 달려서 혀를 날름거리고 있었고, 등 위에는 괴상하게 생긴 염소의 얼굴이 솟아 있었다.
무엇보다도 키메라에게서 불쾌함이 느껴지는 이유는, 마치 가발을 쓴 것처럼 사람의 긴 생머리를 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 오빠… 놀자…….
키메라는 쉬익쉬익 혀를 꿈틀거리면서 사람의 목소리를 내고 있었다.
“으으, 기분 나빠.”
루비는 그 섬뜩한 외형과 말투에 몸을 부르르 떨었다.
“원래 키메라라는 게 대개 그런 법이니까. 아무튼 저 키메라, 역시 군주급이겠지……?”
말을 할 수 있다는 지능과 몸집의 크기로 봤을 때, 녀석은 군주급일 게 분명했다.
“…그런데 저런 녀석을 혼자 상대하고 있었다고?”
역시 괜히 원작의 주인공이 아니었다.
곧 우리를 발견한 제이드는 손을 흔들고 있었다.
“안녕! 왔어?”
군주급 마물을 상대로 여유 있어 보이는 그 모습에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러고는 이내 제이드 쪽으로 달려가 합류했다.
“저걸 혼자 상대하고 있던 거야?”
“응.”
“버프는? 버프는 좀 모았어?”
“하나 찾긴 했어. 빛 속성 마물 상대로 10% 추가 피해 버프.”
빛 속성 마물……?
그런 게 존재하긴 한가……?
“…그건 아예 버프가 없는 거나 다름없잖아……?”
“그런 셈이지?”
사실상 이 녀석은 맨몸으로 군주급 보스를 상대하고 있는 거나 다름없었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군주급 보스를, 그것도 혼자서 싸울 생각을 하다니.
역시 주인공의 사고 회로는 평범하진 않은 듯했다.
그런데 그때,
쉬에에에엑!!
키메라가 입에서 산성 물질을 내뱉었다.
그리고 그것을 가장 먼저 발견한 것은 다름 아닌 루비 버밀리온.
그녀는 이내 키메라의 공격을 보고는 주문을 외웠다.
「그라비타스 디스토르티오(grávĭtas distórtĭo)!!」
주문을 외우는 동시에 날아오는 산성 물질의 방향이 틀어지더니 근처의 수풀을 뒤덮었다.
그리고 이내 수풀 근처는 치이익 하는 소리와 함께 녹아내렸다.
“군주급 마물을 상대로 너무 방심하는 거 아니야?”
큰소리치는 루비 버밀리온.
그 모습에 나는 아까 전 공중에서 초록색 액체를 꼼짝없이 뒤집어쓰던 그녀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리고 동시에 웃음이 터져 나왔다.
“풉.”
“왜, 왜 웃는 거야?”
“그냥 뭐가 좀 떠올라서? 근데, 생각해 보니 루퍼스한테 배운 걸 잘도 써먹고 있네.”
“응? 배운 건 당연히 활용해야지.”
그러고 보니 이 녀석, 기억 소거 마법에 걸려서 축제 때 있던 일을 기억 못 했지.
‘뭐, 루비 말마따나 배운 걸 사용하는 건 당연한 일이니까.’
물론 루퍼스가 자신에게 한 짓을 떠올리게 된다면 상당히 꺼림칙할 테니, 모르는 게 약일 수도 있겠다.
나는 이내 루퍼스에 관한 생각을 거두고 제이드에게 넌지시 말을 건넸다.
“아무튼 우리도 저 키메라 사냥에 동참해도 되는 거지?”
“응. 당연하지.”
“그래, 그렇다면야…….”
나는 자연스레 손을 허리춤에 가져다 대었다.
우우웅!
이내 내 옆에는 매기와 파르가 소환되어 있었다.
“그럼, 가라!”
나는 곧바로 매직 미사일을 충전했다.
그와 동시에 신호를 주자 달려가는 매기와 파르.
각자 근육 폼과 사신 폼으로 녀석에게 공격을 시도했다.
그러나 키메라는 호락호락하게 당해 주지 않았다.
녀석은 이내 살아 움직이는 뱀 머리가 달린 꼬리로 근육 폼의 매기를 사로잡았다.
그러고는 앞발로 사신 폼의 파르를 능숙하게 상대해 냈다.
‘그렇게까지 압도적이진 않네?’
파르는 분명 군주급 마물 피닉스를 상대로도 여유로운 모습을 보여 줬었다.
그래서 당연히 키메라도 곧장 해치울 것으로 생각했는데, 예상과 달리 살짝 고전하는 모습이었다.
아무래도 피닉스가 불사의 신체나, 화염으로 뒤덮인 신체 등의 특수 능력이 부각된 군주급 마물이었다면, 저 키메라의 경우는 신체 능력 및 물리적인 스탯에 특화된 군주급 마물로 보였다.
그러나 나는 그다지 당황하지 않았다.
사실상 파르가 저 키메라에게 밀리지 않고 호각으로 버텨 줄 수 있는 것만 해도 대단한 무력이라고 평가했다.
위잉위잉위잉.
귓가에 울리는 소리.
나는 파르와 키메라의 전투를 보며 매직 미사일이 충전되길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그때,
우우우우웅!!
옆에서 제이드도 마나를 모으기 시작했다.
겉으로 티가 나지 않는 내 매직 미사일 충전과는 달리, 녀석의 남색 마나는 금방이라도 터질 듯이 휘몰아치고 있었다.
“…뭐야, 따라 하는 거야?”
“헤헤. 공격은 한 번에 집중하면 좋잖아?”
그러자 옆에 있던 루비 버밀리온도 질 수 없다는 듯 주문을 외웠다.
그녀가 주문을 외우는 동시에 키메라의 머리 위에는 주변의 작은 돌들이 뭉치기 시작했다.
그것을 확인한 나는 씨익 미소를 지었다.
“그럼, 동시에 갈까?”
“응.”
“그래!”
위잉위잉위잉…….
어느덧 귓가에 울리던 소리가 잠잠해졌다.
모든 준비를 끝마친 나는 신호를 주었다.
“지금이야!!”
콰과과과광!!
쏘아지는 거대한 매직 미사일.
방출되는 제이드의 남색 마나.
그리고 내리꽂히는 과중력 오브젝트까지.
단순해 보이지만 자그마치 세 명의 마법이 섞인 콤비네이션이었다.
그리하여 키메라는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었다.
끼에에에에엑!!
외마디 비명을 지르는 키메라.
이내 녀석의 몸은 번쩍하는 동시에 소멸해 버렸다.
“해치웠나?”
생각 외로 상대가 군주급 보스임에도 쉽게 처리할 수 있었다.
아마도 그만큼 제이드가 녀석의 체력을 많이 소모해 둔 탓이겠지.
그런데 그때,
“이게 무슨 소리지?”
루비가 뭔가를 감지한 모양이었다.
그리고 그 소리는 이내 내 귓가에도 들려오고 있었다.
쿵!
쿵!!
점점 가까워지는 소리들.
우리는 긴장을 늦추지 않고 소리의 정체에 대해 대비하고 있었다.
그리고 잠시 후 모습을 드러낸 것은,
“뭐야… 저게…….”
다름 아닌 엄청난 수의 마물들.
그것도 하나같이 전부 5m가 넘는 어마어마한 녀석들이었다.
스켈레톤 로드, 고블린 로드, 코볼트 로드 등등.
수많은 마물이 우리를 향해 달려오는 것이다.
“어, 어떻게 해야 하지?”
그 압도적인 모습에 루비 버밀리온은 당황한 듯 보였다.
“이, 일단 도망쳐야겠는데? 중력 마법을 걸어 줘!”
“아, 알겠어!”
“일단 내가 시간을 끌어 볼게!!”
제이드는 이내 마나를 방출하여 달려오는 마물들의 발을 묶었다.
그리고 루비는 황급히 중력 마법을 시전해 상공으로의 도주를 시도했다.
그런데,
휘유유우우우.
날아오는 거대한 솔방울.
그러고는,
콰과과과과광!!
그 솔방울은 우리의 바로 눈앞에서 폭발했다.
“꺄아아아아!!”
루비 버밀리온의 비명 소리.
정신을 차리자, 이내 우리 셋은 아까의 리스폰 지역으로 이동되어 있었다.
“뭐, 뭐지……?”
나는 조금 당황스러웠다.
분명 방금의 그 엄청난 수의 마물들은 일개 마물들이 아니었다.
하나같이 군주급에 가까운 녀석들이었다.
“이게, 말이 돼……? 이거 고작 1학년 중간고사 아니었나……?”
아무리 버프 시스템의 지원을 받을 수 있다지만, 조금 정도가 심해 보였다.
이 악랄한 난이도는 이미 학생의 시험 수준을 벗어나 있는 것이다.
그런데 그때,
“저게 말이 되나요?”
“그러게요. 뭔가 이상한데요?”
“왜 이렇게 군주급 보스가 많은 거죠?”
리스폰 지역 한쪽에 마련되어 있는 교수석에서 교수님들이 술렁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뭐야, 교수들도 당황했다고……? 본인들이 이 던전을 설정한 거 아니었어……?’
알 수 없는 불길함.
그러나 계속해서 머리를 굴릴 여유는 없었다.
쿵!
쿠웅!!
갑자기 들려오는 땅울림 소리.
그리고 보이는 것은,
“…말도 안 돼.”
순식간에 리스폰 지역을 포위하고 있는 수많은 군주급 마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