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아카데미의 무속성 마법사-88화 (88/175)

88화

* * *

- 풀렸다. 만세!

기쁨의 함성을 지르는 랑켄 슈타이너.

그 푼수 가득한 모습에 옆에 있던 이올렛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어휴, 정말이지…….”

그들이 아공간에 갇혀 있기 시작한 것은 자그마치 5일 전.

그 긴 시간 동안 이들은 아무것도 없는 칠흑의 공간에서 그저 하염없이 시간을 보내고 있던 것이었다.

그리고 드디어.

그들을 가둔 아공간의 마력이 다했는지, 칠흑 같은 마기의 공간이 걷히고 어느새 그들의 연구실이 보이고 있었다.

이올렛은 아공간에서 빠져나오자마자 연구실 서랍 안을 뒤져 초콜릿을 찾아 입에 털어 넣었다.

아무래도 5일 동안 갇혀 있다 보니 배고픔을 참을 수 없던 것이다.

물론, 계속해서 마나를 복용했기 때문에 영양학적으로는 크게 문제가 없었다.

다만, 영양과 허기는 별개의 영역이니까.

반면, 랑켄 슈타이너는 배고픔보다는 호기심이 앞선 모양이었다.

- 도대체 이 마도구는 누가 설계한 거지? 한번 발동하면 절대 빠져나갈 수 없는 아공간이라니. 참으로 놀라워.

랑켄은 나오자마자 바닥에 나뒹굴고 있는 검은 구체를 줍고는 요리조리 살피기 시작했다.

그 모습에 이올렛은 또다시 불안한 마음이 들었다.

“그러다 또 떨어트리면 진짜 가만 안 둬요. 그땐 정말 저한테 죽는 겁니다.”

- 그, 그래. 조심할게.

이올렛의 호통에 흠칫한 랑켄은 목을 잔뜩 집어넣었다.

그런데 그때,

쿵!

쿵!!

난데없이 연구실의 천장이 울리기 시작했다.

그 터무니없는 이변에 랑켄은 방독면을 쓴 머리를 갸웃거렸다.

- 뭐냐, 이건?

“글쎄요. 저희가 갇힌 사이에 지진이라도 발생했나 보죠.”

그러나 칼루스 아카데미 내부에 지진 같은 자연 현상이 일어날 리가 없었다.

이내 이올렛과 랑켄 슈타이너는 그 진원의 여부를 파악하기 위해 지하 연구실을 빠져나왔다.

그리고 그들이 지상으로 올라오자마자 발견한 것은 다름 아닌 거구의 사내였다.

마치 말의 허벅지처럼 우락부락한 팔 근육.

무려 3m가 넘어 보이는 거대한 신체.

그가 한 발짝, 한 발짝 걸음을 내디딜 때마다 마치 코끼리가 지나가듯 땅이 울렸고, 아무렇게나 뻗어 있는 그의 팔은 지나갈 때마다 아카데미의 건물 외벽을 파괴하고 있었다.

- 저 비주얼에 학생…은 아니겠지. 학부모도 아니겠고. 신임 교수는 더더욱 아닐 테고.

“동물원에서 탈주한 고릴라 같은 거 아닐까요.”

어깨를 으쓱하는 이올렛 테오니르.

그러나 랑켄은 이올렛의 농담을 받아 줄 여유가 없었다.

- 그러고 보니 다들 어디 갔지?

저 거한의 사내가 아카데미의 건물을 부수고 있는 동안 거리에는 사람 한 명 보이지 않았다.

그리하여 이상한 낌새를 눈치챈 랑켄은 멀리서 성큼성큼 걷고 있는 거한과의 대화를 시도했다.

- 어이!!

그러자 뒤를 돌아보는 거한.

녀석은 정말이지 인간과 고릴라를 뒤섞은 거 같은 외모를 하고 있었다.

이내 랑켄과 이올렛을 발견한 거한이 입을 열었다.

“너흰. 뭐냐.”

녀석은 말투조차도 느릿느릿하고 어색했다.

랑켄은 녀석의 말에 어이가 없었다.

- 그건 내가 할 말인데. 뭔데 아카데미를 부수고 있는 거냐?

그런데 거한의 남자는 대답 대신 몸을 잔뜩 웅크리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순식간에 우다다다 달려오기 시작했다.

- 뭐, 뭐야?!

랑켄과 이올렛은 황급히 옆으로 몸을 던졌다.

그러자 다행히도 남자의 몸통 박치기가 아슬아슬하게 그들을 스치고 지나갔다.

갈 곳 잃은 거한의 몸은 그대로 뒤쪽에 있는 건물을 들이박았다.

콰과과과광!!

순식간에 무너지는 아카데미의 회관.

그 모습에 랑켄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 무슨 몸통 박치기에 건물이 무너지는 거냐…….

“그러게 말이죠. 고릴라치고는 상당히 강하네요.”

- 그나저나, 도대체 정체가 뭘까?

“저 녀석, 위저드 협곡을 습격했던 자들과 같아 보이는데요.”

- 그 녀석들이 칼루스 아카데미를 침입했다고……?

지금껏 별생각 없던 랑켄은 갑자기 진지해지더니 방독면의 턱 부분을 쓰다듬었다.

그런데 그때,

쨍그랑!!

조금 먼 곳에서 유리창이 깨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 저긴 교장실 쪽이잖아……?

소리의 방향은 명백히 교장실이 있는 본관.

랑켄은 빠르게 머리를 굴리고는 이내 판단을 내렸다.

- 넌 서둘러 교장실 쪽을 체크해 봐라.

“교수님은요?”

- 난 당연히…….

랑켄은 거한 쪽으로 시선을 향했다.

어느새 거한은 무너진 건물의 잔해 속에서 일어나, 몸에 묻은 먼지를 털고 있었다.

- 저 녀석을 맡아야겠지.

“혼자 괜찮겠습니까?”

- 그럼. 너 나를 뭐로 보는 거냐? 먼저 가 있어라. 금방 합류하마.

“예에.”

이올렛은 랑켄의 몸을 스윽 훑더니 이윽고 교장실 쪽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애초에 이올렛은 별 걱정하지 않았다.

랑켄 슈타이너라는 인물은 그리 약하지 않았으니까.

랑켄은 이올렛이 멀어지는 모습을 확인하고는, 목 근육을 까딱까딱 풀었다.

그러고는 거한의 남자에게 소리쳤다.

- 어이, 너! 이름이 뭐냐!

그러자 바닥에 침을 퉤 뱉는 거한의 사내.

아무래도 건물의 잔해에 뒤섞인 먼지를 들이마신 모양이었다.

“다이아몬드다.”

무심하게 대답하는 거구의 사내, 다이아몬드.

랑켄은 그 이름이, 이전에 들었던 블랙잭의 간부들과 유사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이윽고 랑켄도 입을 열었다.

- 다이아몬드라. 나는 방출계 권좌 랑켄 슈타이너…….

치이이익!

랑켄 슈타이너의 방독면에서 남색의 마나가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 …칼루스 아카데미의 보건 교사다.

* * *

한편, 교장실.

히드라의 독니에 찔린 히로빈 그린월드는 소파에 누워 있는 채로 온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그러나 처음보다는 경련이 다소 가라앉은 모습이었다.

“그래도 역시 200년 전 마계대전의 영웅이긴 하신가 봐요. 한 방에 가실 줄 알았는데 다행이네요.”

그 끈질긴 생명력에 루퍼스 그레이엄은 살며시 미소를 지었다.

역시 상대는 괜히 200년 이상의 세월을 살아온 것이 아니었다.

히로빈 그린월드를 상대하기 위해 구해 온 전설급 아이템 ‘히드라의 독니’를 사용해도 죽을 기미조차 보이지 않는다니.

루퍼스는 순수하게 감탄했다.

그러고는 곧 히로빈이 누워 있는 소파의 앞쪽으로 다가가더니 쪼그려 앉아 히로빈과 시선을 마주했다.

“그럼, 순순히 ‘큐브’의 위치를 불어 주실까요.”

“헹……. 그리 쉽게 얻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으면… 오산이야, 루퍼스…….”

여전히 몸을 떨고 있음에도, 히로빈의 눈동자는 루퍼스 그레이엄을 노려보고 있었다.

그의 눈동자에는 절대 흔들리지 않겠다는 기백이 느껴지고 있었다.

“다 죽어 가는 영감탱이가 입만 살아 있군요. 뭐, 딱히 알려 주지 않으셔도 상관없습니다. 어차피 찾을 방법이야 많거든요. 굳이 당신에게 물어본 것은 마지막 예우 차원에서 그런 거였습니다.”

루퍼스는 그럼 그렇지, 하며 히드라의 독니를 다시금 스르륵 들어 올렸다.

“자, 그럼 이제 죽으시죠.”

그리고 루퍼스의 가슴팍을 향하는 히드라의 독니.

그런데,

챙!

갑자기 나타난 검이 히드라의 독니를 쳐냈다.

그러자 히드라의 독니는 튕겨 나가 먼발치에 떨어졌다.

“어떻게……!”

눈앞에 검을 들고 있는 것은 다름 아닌 아텔라 가스트로디아.

어디서 튀어나왔는지 모를 아텔라가, 그를 막아 낸 것이다.

분명 아무 전조도 보이지 않았다.

게다가 교장실의 문도 여전히 잠겨 있다.

뜬금없이 나타난 아텔라 교수에 루퍼스 그레이엄은 적잖이 당황스러웠다.

“히로빈 교장님! 괜찮으세요?!”

갑자기 나타난 아텔라는 모든 상황을 알고 있다는 눈치였다.

그녀는 멍하니 서 있는 루퍼스는 무시한 채, 당장 몸을 떨고 있는 히로빈 교장을 우선시했다.

이내 그녀는 히로빈 교장의 상태를 살피더니 그의 작은 몸을 품 안으로 안았다.

그러고는,

쨍그랑!

교장실의 유리창에 몸을 날려 그대로 지면으로 낙하했다.

탓!

교장실이 거의 3층 높이에 있었음에도 안전하게 착지한 아텔라 교수.

그런 아텔라 교수의 품에 안긴 히로빈은 살며시 눈을 떠서 그녀를 올려다봤다.

“자네는…….”

“괜찮으세요?!”

“괜찮아……. 조금… 회복이 필요할 뿐이야…….”

아텔라는 그런 히로빈 그린월드를 조심스레 풀숲에 뉘었다.

그러고는 루퍼스 그레이엄이 있을 3층 교장실을 경계했다.

잠시 후,

쿵!

이내 루퍼스가 3층에서 뛰어내렸다.

지면에 가뿐히 착지한 그는 옷매무새를 가다듬은 뒤 살며시 미소를 지었다.

“이런, 그곳에서 빠져나올 사람이 있다고는 상상도 못 했는데.”

녀석의 여유로운 모습에 아텔라는 살짝 눈살을 찌푸렸다.

그러고는 루퍼스를 향해 조심스럽게 검을 겨눴다.

“화장실이 많이 늦더라고요. 아니, 매우 늦었어. 스페이드.”

“…그걸 어떻게?”

여유 있던 루퍼스의 표정이 순간 일그러졌다.

본인이 스페이드라는 증거를 지금껏 철저히 숨겨 왔던 루퍼스였다.

아마 모든 정보를 관리하는 마경일지라도, 그가 스페이드라는 사실은 결코 알아채지 못했을 것이다.

그런데, 눈앞의 아텔라 가스트로디아는 자신이 블랙잭의 간부 ‘스페이드’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아텔라는 그런 루퍼스의 당황스러운 표정을 읽고는 이내 계속해서 그를 쏘아붙였다.

“지금껏 나한테 한 말들은 모두 거짓이었지? 안 그래? 블랙잭의 스페이드.”

아텔라는 침착하게 손잡이를 쥔 손을 가다듬었다.

눈앞의 상대는 마계대전의 영웅 히로빈 그린월드를 저 상태로 만든 녀석.

절대 방심할 수 없었다.

“아뇨. 저는 지금껏 교수님께 진실만을 말했습니다.”

루퍼스는 제 손목에 달린 위치 송신기를 슬쩍 살폈다.

그리고 그가 숲에 마련해 놓은 포탈에 모든 간부가 넘어온 것이 확인되자, 이내 여유를 되찾았다.

“…딱 하나만 빼고 말이죠.”

그리고 루퍼스는 곧바로 주문을 외웠다.

「트란세오 라이칸(tránsĕo Lycan)」

파직.

루퍼스의 셔츠가 찢어졌다.

그리고 점차 루퍼스의 몸이 거대해지기 시작하더니, 온몸에 털이 솟아나고 있었다.

“변신계인가…….”

그 모습에 아텔라는 다시금 자세를 잡았다.

이대로 히로빈 교장을 데리고 충분히 도망칠 수도 있었지만, 결국 녀석은 여기서 막아 내야 했다.

- 크르르…….

이내 온전히 변신한 루퍼스 그레이엄.

그의 모습은 영락없는 늑대 인간이었다.

- 대낮에 늑대 인간의 모습은 살짝 불쾌하군.

한껏 여유를 부리며 갈기를 부르르 터는 늑대 인간.

그러나 아텔라의 기세는 전혀 밀리지 않았다.

“너의 뜻대로 되진 않을 거다, 스페이드.”

- 과연, 그럴까.

그런데 그때,

콰아아앙!!

누군가의 전투 소리가, 먼 곳에서부터 들려오고 있었다.

그 소리를 들은 아텔라는 침을 꼴깍 삼켰다.

‘역시, 이 녀석이 전부가 아닌가? 그렇다는 것은 이게 제로가 말했던 ‘침공 이벤트’라는 걸까…….’

아텔라는 지금껏 제로의 말을 의심하지 않았다.

그러나 막상 눈앞에 현실로 펼쳐지자, 조금 새로운 느낌이 들고 있었다.

제로가 말했었던 블랙잭의 침공 이벤트가 정말 일어났다는 것은, 이 세계가 게임이라는 말이 진짜일 가능성도 있다는 거였으니까.

‘일단은 여기에 집중하자.’

이내 아텔라 가스트로디아는 잡념을 떨쳐 내고 눈앞의 늑대 인간에게 검을 겨눴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