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화
치이이이익.
남색의 연기가 랑켄의 방독면 뒤쪽으로부터 뿜어져 나왔다.
그리고 랑켄은 스읍 하며 그것을 들이마셨다.
그러자 둥실둥실 떠다니는 남색의 연기가 정화통을 타고 안쪽으로 빨려 들어갔다.
- 오랜만이군.
칼루스 아카데미의 보건 교사를 담당하게 된 이후, 긴 시간 동안 전장에서 이탈해 있던 랑켄 슈타이너였다.
그런 그가 전투 태세를 취하는 상황은 실로 오랜만이 아닐 수 없었다.
랑켄은 이내 다리를 벌리고 상체를 낮췄다.
그러자 그가 입고 있는 흰 가운이 펄럭였다.
- 와라!
다이아몬드는 그런 랑켄의 패기로운 목소리에 코웃음을 쳤다.
고작 저 왜소한 체구로 맞서려는 꼴이라니.
무모함을 넘어 미련함에 가까웠다.
다이아몬드는 이내 발을 굴러 랑켄에게 돌진하기 시작했다.
쿵! 쿵! 쿵!
녀석이 한 걸음, 한 걸음 발을 내디딜 때마다 지면이 거세게 울렸다.
심지어 콘크리트로 된 아카데미의 거리가 움푹움푹 팰 정도였다.
그것은 도저히 일반적인 인간의 상태라고 볼 수 없었다.
- 상시 강화? 강화계 마법사인가. 이거 영 상성이 별로군.
방출계는 강화계에 약하다.
이것은 ‘칠계’의 기본 법칙이었다.
칠계의 상성에는 그에 수반하는 속설이 전해진다.
예를 들어 정신계가 물질계에 약한 이유는 물질에는 정신이 깃들지 않아 지배할 수 없기 때문.
소환계가 정신계에 약한 이유는 사역마가 정신계에 쉽게 지배되기 때문.
변신계가 소환계에 약한 이유는 아무리 변신해 봤자 그 변신의 대상을 소환하여 사역할 수 있는 소환계에 못 미치기 때문.
보통의 속설들이 이런 식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속설 대부분은 상성에 맞게 억지로 끼워 맞춘 설정일 뿐이었다.
칠계의 계열 마법 간의 상성은 흔히 알려진 것과는 별개로, 별다른 이유가 없었다. 그저 ‘1+1=2’ 같은 하나의 자연 법칙일 뿐.
따라서 계열 마법 간에 상성이 존재하는 이유는 단지 낭설에 불과했다.
그저 같은 수준의 마법사라면 대개 상성으로 승부가 나기 때문에, 태초의 마법사들이 상성의 존재를 인지했던 것이다.
동급의 상대라면 방출계는 강화계를 절대 이길 수 없다.
결국 그것이 칠계의 기본 법칙.
그리고 랑켄은 방출계의 권좌, 상대방은 하필이면 강화계 마법사였다.
랑켄 슈타이너는 지금, 상성상으로 밀리는 전투에 임해야 하는 것이다.
- 가능하려나.
랑켄은 자신의 주먹을 살며시 쥐며, 달려오는 상대방의 힘을 가늠해 봤다. 그러더니 곧 계산을 끝마쳤다.
쿵! 쿵! 쿵!
엄청난 땅울림과 함께 돌진하는 다이아몬드.
그 모습이 마치 성난 멧돼지 같았다.
그러나 랑켄은 물러설 생각이 없었다.
그저 달려오는 녀석의 움직임을 좌시하며 최대한 다리를 벌리고 좀 더 자세를 낮출 뿐이었다.
이윽고 녀석은 랑켄의 주먹이 닿을 정도의 지근거리까지 접근했다.
그리고 곧 다이아몬드의 거대한 몸이 랑켄의 왜소한 몸을 여지없이 깔아뭉개기 일보 직전이었다.
그 찰나의 순간,
- 승룡권!!
퍼어어어억!
랑켄은 힘찬 도약과 함께 주먹을 다이아몬드의 턱에 꽂아 넣었다.
그와 동시에 다이아몬드의 몸이 순간 부웅 뜨더니 뒤쪽의 바닥으로 쓰러졌다.
콰아아아아앙!!
몸집이 몸집인지라 다이아몬드가 넘어진 바닥은 그대로 움푹 패며 큰 굉음이 울려 퍼졌다.
녀석이 완전히 바닥으로 쓰러진 모습을 확인한 랑켄 슈타이너는, 이내 통증이 느껴지는 주먹을 다른 손으로 어루만졌다.
- 아야.
랑켄의 방독면에서 흘러나오는 무미건조한 느낌의 통증을 호소하는 목소리.
땅바닥에 대자로 뻗게 된 다이아몬드는 다소 어이없는 랑켄의 목소리를 들으며 이게 어떻게 된 일인지 어리둥절할 따름이었다.
“뭐…지……?”
사실 다이아몬드가 실질적으로 입은 대미지는 없었다.
고작 이 정도의 충격은 다이아몬드에겐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럼에도 그가 당황한 것은, 저 왜소한 체구의 사내가 자신의 몸통 박치기를 막아섰고, 뿐만 아니라 자신의 몸을 일순간 공중으로 붕 뜨게 했다는 사실이었다.
다이아몬드는 방금의 신선한 충격에 벗어나지 못해, 쉽사리 몸을 일으켜 세우지 못했다.
랑켄은 이내 손목을 털며 다이아몬드를 지그시 내려다봤다.
거한을 쓰러트린 왜소한 체구의 남자.
그 모습은 마치 골리앗을 쓰러트린 다윗의 모습이었다.
- 왜인지 궁금한가? 그것이 바로 아드레날린 파워라는 거다. 내 고유 마법은 마나를 화학 물질로 변환하여 방출하는 거라고.
랑켄 슈타이너의 고유 마법은 바로 방출한 마나를 신경 전달 물질로 변환시키는 것.
게다가 방출계 권좌의 고유 마법인 만큼, 평범한 신경 전달 물질이 아닌 마나로 강화된 신경 전달 물질. 그 효과는 몇십 배, 몇백 배에 달했다.
다만, 아무리 마나로 이루어진 호르몬이 그의 몸을 강화한다고 하더라도, 기본적인 신체 능력의 한계는 어쩔 수 없었다.
따라서 조금 전 다이아몬드의 턱을 힘껏 올려 친 랑켄의 주먹은 미친 듯이 저리고 있었다.
- 큰일이군.
아직 다이아몬드는 제대로 된 마법을 사용하지조차 않았다.
그럼에도 힘의 격차가 상당했다.
게다가 녀석은 조금 전 랑켄의 일격에 전혀 타격을 입지 않은 것으로 보였다.
- 보통 턱을 맞게 되면 뇌가 흔들려서 정신을 못 차려야 정상인데 말이지. 애초에 고릴라라 뇌가 존재하지 않는 건가. 아, 실례. 물론 고릴라에게 실례. 고릴라의 뇌용량은 유인원 중 인간 다음인데 말이야.
랑켄은 짐짓 농담하며 여유를 부렸지만, 속으로는 긴장을 삼키고 있었다.
물론 아드레날린의 영향 탓에 그다지 감정의 동요는 없었으나, 그만큼 다이아몬드는 만만치 않은 상대였다.
‘이 정도의 힘이라면 거의 권좌급, 그 아래 정도는 되려나.’
제대로 된 마법을 사용하지 않았음에도, 다이아몬드의 신체는 너무나도 단단했다.
아무리 랑켄 슈타이너가 방출계의 권좌라고 하지만, 방출계는 어디까지나 비전투 마법 계열.
게다가 상대와의 상성도 있는 만큼 쉬운 승부는 아닐 것으로 예상되었다.
이윽고 녀석이 땅을 짚고 일어섰다.
녀석이 쓰러져 있던 자리에는 대자로 뻗은 사람의 자국이 남아 있을 뿐이었다.
“가소…롭군.”
그러더니 녀석은 일어나자마자 랑켄에게 손을 뻗었다.
그리고 랑켄은 주먹으로 그것을 쳐냈다.
퍼억!
녀석의 주먹과 랑켄의 주먹이 닿자, 뼈가 부러지는 소리가 들렸다.
실제로 랑켄의 주먹 뼈가 살짝 금이 간 듯도 싶었다.
- 체엣…….
랑켄은 다시금 몸을 낮추고 합기도의 자세를 취했다.
‘아무리 단단한 녀석이라도 급소는 통할 터.’
명치는 아무리 신체를 단련했어도 절대 강화할 수 없는 부위였다.
그리하여 랑켄은 녀석의 명치를 노리기로 했다.
신체 비율상 녀석의 명치는 랑켄이 노리기에 매우 적절한 위치에 있기도 했다.
- 하아압!
랑켄은 기합을 지르며 녀석의 명치에 정권 지르기를 날렸다.
그런데,
「두로(dūro)」
평소의 어투만큼이나 짧은 주문을 내뱉는 다이아몬드.
그리고 그런 녀석의 명치에 있는 힘껏 주먹을 꽂은 랑켄은,
- 끄아아아아아아!
곧 비명을 지르며 털썩 주저앉았다.
그러고는 그대로 앞으로 고꾸라졌다.
랑켄의 주먹은 이미 뼈가 단단히 부러진 듯 해괴망측한 형태를 취하고 있었다.
“고작 방출계 따위가. 나를 이기려 들다니.”
다이아몬드의 고유 마법은 경화(硬化).
고유 마법을 받은 신체는 경도가 제일 높다 일컬어지는 금강석보다도 훨씬 단단했다.
그런 다이아몬드의 몸에 고작 아드레날린으로 강화했을 뿐인 랑켄의 주먹이 통할 리가 없었다.
오히려 있는 힘껏 내지른 랑켄의 주먹이 다이아몬드의 몸에 닿아 박살 나고 말았다.
마치 바위에 내리쳐진 달걀 같았다.
치이이이익.
바닥에 쓰러져 누운 랑켄의 방독면 뒷면에서 남색의 가스가 흘러나왔다.
“최후의 발악인가.”
다이아몬드는 그 모습이 바위에 깨진 이후 줄줄 새는 달걀 노른자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독…일 테지?”
다이아몬드는 이미 상대의 고유 마법을 파악하고 있었다.
곧 주변을 뿌옇게 만든 남색의 자욱한 연기.
그러나 다이아몬드는 전혀 신경 쓰지 않고 오히려 그 연기를 한껏 들이마셨다.
애초에 방출계 마나로 이루어진 독 따위, 강화계인 그의 신체에 적용되지 않는다.
눈앞의 방출계 마법사는 자신을 이길 수 없는 것이다.
다이아몬드는 이내 바닥에 누워 있는 랑켄을 집어 들었다.
축 늘어진 랑켄은 반항하지 않고 힘없이 들릴 뿐이었다.
다이아몬드는 피식 웃더니 랑켄을 옆의 건물로 힘껏 던졌다.
콰아아아아앙!!
고유 마법을 사용한 지금.
그 힘은 일전의 것과도 차원이 달랐다.
방금의 힘이라면 랑켄의 몸은 거의 산산조각이 났으리라.
“시시…하군.”
다이아몬드는 이내 눈앞의 자욱한 안개들을 손으로 휘휘 저으며 시야를 걷어 내려 했다.
그런데,
- 쿨럭.
건물로 던져졌던 랑켄이 두 다리를 비틀대며 서 있었다.
그는 이미 서 있는 것도 고작인지 온몸을 발발 떨어 댔다.
“끈질기구나.”
다이아몬드는 이내 랑켄을 마무리하기 위해 자세를 잡았다.
그러고는 그를 향해 달려가 힘껏 주먹을 날렸다.
콰아아아앙!!
반파된 건물을 아예 무너트려 버리는 다이아몬드의 주먹.
그런데,
- 느려.
어느새 랑켄이 주먹을 피해 뒤쪽으로 가 있었다.
아무래도 아직 움직일 힘은 남아 있는 모양이었다.
물론, 그럼에도 그의 상태는 온전하진 않아 보였다.
다이아몬드는 랑켄의 끈질김에 질린 나머지, 단번에 숨통을 끊으려 또다시 달려들 준비를 취했다.
그런데 그때,
쿠웅!!
다이아몬드가 무릎을 꿇고 주저앉았다.
단순히 무릎을 꿇은 것임에도 비대한 신체로 인해 웅장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 모습을 바라보는 랑켄의 방독면에서 조소 섞인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 3분… 47초.
“무슨……!”
- 꽤나 걸렸군.
다이아몬드는 지금 상황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의 신체는 전혀 말을 듣지 않았고, 온몸이 점차 마비되고 있었다.
“독…인가? 그럴 리가… 없는데……?”
그는 강화계의 마법사.
고작 방출계의 마나로 이루어진 독 따위 통할 리가 없었다.
절대 이해할 수 없는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이윽고 잔뜩 일그러진 다이아몬드의 얼굴을 내려다보는 랑켄 슈타이너의 방독면에서 치지직거리는 음성이 흘러나왔다.
- 그건 무려 코끼리 수백 마리를 단숨에 죽일 정도의 지독한 맹독이다.
랑켄은 뚜벅뚜벅 다이아몬드에게로 걸어왔다.
어쩌면 아까의 비틀거림은 연기였을지도 모르겠다.
- 왜 강화계인 본인이 독 따위에 걸렸는지 궁금하지? 그야 그건 내 고유 마법으로 만든 게 아니라, 그저 평범한 독일 뿐이니까.
“평범한… 독이라고?”
- 강화계 마법사에 대응하기 위해 만들어 놓은 시제품이다. 네 녀석을 마비시키기 위해 1년 치의 여과량이 소모될 줄은 상상도 못 했지만.
다이아몬드는 어이가 없었다.
마법사를 상대로 평범한 독을 사용하는 녀석이라니…….
“네놈… 마법사가 맞는 건가?”
다이아몬드의 말에 방독면에선 또다시 조소 섞인 웃음소리가 흘러나왔다.
- 아아, 그건 분명 마법이다.
한껏 기지개를 켜는 랑켄.
- …과학이란 이름의 마법이지.
그것이 다이아몬드가 들은 마지막 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