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1화
풀썩.
다이아몬드가 완전히 눈을 감은 것을 확인한 랑켄은, 그대로 땅바닥에 주저앉았다.
- 꽤나 힘든 상대였군…….
잔뜩 허세를 부리고 있었지만, 이미 랑켄의 몸은 한계였다.
사실 그는 지금껏 입은 부상들을 방출계의 마법으로 자가 치유하고 있었다.
그리고 보통 자가 치유는 타인을 치유할 때보다 훨씬 더 많은 마나가 소모되기 마련이다.
그리하여 아까부터 모든 마나를 태우고 있었던 랑켄의 몸은, 이제 서 있을 수도 없을 만큼 아슬아슬한 수준이었다.
- 이 녀석. 상당히 강했는데 말이야.
분명 녀석의 힘은 권좌급에 살짝 못 미치는 정도.
일반적인 칼루스 아카데미의 인원이라면 상대하기 버거운 수준이었다.
게다가 아무래도 이런 녀석은 한둘이 아닌 것으로 추측되었다.
- 다이아몬드… 하트… 클로버…….
조금 전 그가 맞서 싸웠던 다이아몬드.
그리고 위저드 협곡을 습격했다던 하트와 클로버.
이내 랑켄 슈타이너는 그 네이밍에서 단번에 트럼프를 떠올리게 되었다.
지금까지의 녀석들 이름이 그랬다는 것은, 분명 스페이드도 있다는 것이다.
- 큰일인데.
아무리 비전투 요원이라고는 하지만, 나름 방출계의 권좌인 자신도 겨우 한 놈을 쓰러트리는 게 고작이었다.
그런데 이만한 녀석들이 아직 셋이나 남아 있다니.
- 이올렛… 괜찮으려나……?
랑켄은 곧바로 이올렛 테오니르가 걱정되기 시작했다.
그녀를 혼자 보냈던 게, 어쩌면 실수였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만큼 이올렛은 랑켄에게 너무나도 소중한 제자였다.
그러나,
- 에라, 모르겠다.
털썩.
랑켄은 이내 몸을 대자로 뻗어 누웠다.
아무리 소중한 제자가 우려된다지만, 어차피 지금 당장 그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도저히 방법이 없는데도 걱정만 하는 것은 쓸데없는 에너지 낭비다.]
그것이 랑켄의 좌우명이었다.
‘나름 나머지도 강하니까.’
그는 태평하게 생각하기로 했다.
- 그나저나 뒤처리가 문제네…….
거리를 자욱하게 메운 가스는 무려 코끼리 수백 마리를 죽일 정도의 치명적인 맹독.
누가 이 거리를 지나가기라도 한다면 매우 큰 일이었다.
그리하여 그는,
스읍― 하―
스읍― 하―
대자로 뻗은 채, 방독면의 정화통을 통해 열심히 호흡하기 시작했다.
오염된 주변 공기를 방독면으로 조금이라도 정화하겠다는 단순한 생각이었다.
* * *
챙!
채애앵!
검과 발톱이 부딪치는 소리가 적막을 깨고 있었다.
아텔라와 늑대 인간.
그리고 그 둘의 전투를 먼발치서 누워 지켜보고 있는 교장 히로빈 그린월드.
그 옆에는 어느새 합류한 이올렛 테오니르가 방출계 마법으로 히로빈의 상태를 살피고 있었다.
“괜찮으신가요?”
“그래……. 아까보다 조금 낫군.”
어느 정도 방출계 치유 마법으로 안정화된 그의 몸은 아까보다 한결 상태가 좋아 보였다.
다만, 그럼에도 히드라의 독니에 찔린 후유증 때문에 마법을 사용할 수는 없었다.
그저 그가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거라곤 먼발치에서 아텔라의 전투를 응원하는 것뿐이었다.
‘방심했어.’
설마 자신의 애제자가 이런 식으로 나올 줄은 상상도 못 했다.
‘세월이 흐른 건가.’
속칭 ‘저주받은 세대’라고 불리는 7년 전의 학생들.
그때 당시 기수에는 변신계 마법사가 매우 드물었다.
따라서 그때 당시 히로빈 그린월드가 담당하는 제자도 적을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 얼마 안 되는 제자 중에서도 루퍼스 그레이엄은 유달리 눈에 띄는 학생이었다.
그는 평상시엔 과묵하나 남에겐 친절하고, 항상 올곧은 생각을 하고 있는 사람이었다.
그런 그가 아카데미를 적대시하는 안티 매지션이 되어 돌아오다니.
‘역시 녀석들과 관련 있겠지……?’
마경에 보고받은 내용이라곤 ‘블랙잭’이라는 조직이 칼루스 아카데미를 노리고 있다는 것뿐.
거기에 ‘저주받은 학생’들과의 연관성은 없었다.
그러나 조금 전 루퍼스 그레이엄의 말을 상기해 볼 때, 둘의 관계는 충분히 가능성 있는 내용이었다.
‘녀석들은 200년 전의 마계대전을 다시금 일으키려 하는 것인가…….’
7년 전, ‘저주받은 학생’들이 히로빈 그린월드를 노렸던 것도.
그리고 지금 당장 루퍼스와 블랙잭이 그를 노리는 것도.
의도는 뻔했다.
7년 전에는 그저 학생들의 치기 어린 호기심이라고만 생각했었다.
그러나 지금, 녀석들은 명백히 ‘마계의 부활’을 도모하고 있었다.
‘어째서.’
히로빈은 이해가 가지 않았다.
200년 전 그를 포함한 일곱 영웅이 일궈 놓은 평화.
이 태평성대를, 왜 전쟁의 고통을 겪지 않은 지금의 어린 세대들이 망치려 드는 것인가.
‘결국 영원한 평화는 없다는 건가.’
이번 일도 결국 어찌어찌 막아 낼 수는 있을 것이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평화에 균열이 생겼다는 점이었다.
평화라는 글자에 새겨진 미세한 틈은 점차 걷잡을 수 없이 벌어질 것이고, 결과적으론 200년 전 마계대전과 같은 큰 혼란을 야기하게 될지도 모를 것이다.
‘결국 나는 안일했을 뿐인가.’
히로빈은 자책했다.
지금껏 평화에 안주해 왔던 자신을 꾸짖었다.
7년 전에도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던 자신이 어리석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이내 히로빈은 고개를 저었다.
‘반성은 나중에 하자.’
지금 당장은 아텔라와 루퍼스의 전투가 중요했다.
그리하여 히로빈은 머릿속의 잡생각을 떨쳐 내고 조용히 둘의 전투를 지켜보기 시작했다.
그런데 문득 머릿속을 스치는 생각이 있었다.
그것은 아까부터 드문드문 히로빈의 신경에 거슬렸다.
‘그러고 보니 저 신임 교수…….’
아까부터 아텔라의 모습이 너무나도 익숙하게 느껴지고 있었다.
분명 아텔라 교수가 처음으로 칼루스 아카데미에 들어왔을 때도 같은 생각을 했었던 기억이 났다. 다만 그때 당시에는 그다지 신경 쓰지 않고 넘어간 일이었다.
히로빈은 옆에서 그를 간호하는 이올렛에게 넌지시 물어봤다.
“저 교수의 이름이…….”
“아텔라 가스트로디아 교수님이에요.”
“아텔라……. 그렇구나…….”
3m에 다다르는 늑대 인간의 묵직한 공격을 검격으로 가볍게 받아 내는 아텔라 가스트로디아.
히로빈은 그 낯설지 않은 모습에 고개를 끄덕였다.
한편, 아텔라는 보이는 것만큼 크게 여유가 있진 않았다.
‘도대체 어떻게 돼먹은 힘이지?’
한 방, 한 방 들어오는 늑대 인간의 공격은 묵직했다.
심지어는 그 대미지가 온몸으로 조금씩 전달되는 게 느껴지고 있었다.
‘충격이 느껴지다니.’
그야말로 충격이 아닐 수 없었다.
고작 작은 대미지임에도 당황스러운 이유는, 바로 그녀의 검의 효과 때문이었다.
‘진동검, 이스텐 카르자.’
학창 시절 검의 길을 택한 그녀에게, 그녀의 검술 담당 교수가 준 선물이었다.
이스텐 카르자의 가장 큰 특징은 검날이 상시 진동 상태라는 것.
그리하여 진동하는 검날은 받은 대미지를 대부분 즉시 발산하고, 소유자에게 충격을 전달하지 않는다.
아텔라 가스트로디아는 강화계도 변신계도 아닌 물질계 마법사.
당연히 신체 능력에는 한계가 있었고, 그런 그녀에게 이 이스텐 카르자는 더없이 잘 맞는 검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런데 상대는 그런 이스텐 카르자의 충격 완화를 훌쩍 뛰어넘는 공격을 퍼붓고 있는 것이었다.
챙!
채앵!!
계속해서 부딪치는 검날과 늑대 인간의 발톱.
그러나 합이 계속될수록 손목에 둔탁한 충격이 전해지고 있었다.
- 아까의 자신만만한 기세는 어디 갔을까.
반면, 루퍼스 그레이엄은 한껏 여유가 있었다.
숨을 헐떡이는 아텔라와는 대조적인 모습이었다.
‘젠장, 저 녀석을 상대론 1형도 먹히지 않을 것 같은데.’
그녀의 차원류 검술 1형 ‘공간 베기’는 공간 자체를 베어 버리는 마검술.
공간 자체를 베어 버리기 때문에 그 어떠한 대상도 베어 버릴 수 있는, 그야말로 ‘필살’의 공격.
그러나 ‘공간 베기’는 긴 시간의 집중을 필요로 하기에, 눈앞의 상대와 같이 민첩한 대상에게는 들어맞지 않았다.
‘어떻게 저런 몸으로 저런 속력이 나오는 거지?’
늑대 인간으로 변한 루퍼스 그레이엄은 몸집에 맞지 않게 매우 민첩했다.
게다가 그 민첩한 기동력을 바탕으로 사방에서 그녀를 공격해 왔다.
아텔라는 그저 검격으로 루퍼스의 공격을 받아 내기에 급급할 뿐이었다.
‘상성이 좋지 않아.’
속도로 밀어붙이는 타입은 아텔라의 전투 스타일과 맞지 않았다.
그녀는 그 어떠한 방어력도 한 방에 베어 낼 수 있는 강력한 필살기를 가지고 있었지만, 이렇게 치고 빠지는 인파이트 형식의 전투는 곤란할 수밖에 없었다.
탓!
이내 아텔라는 뒤로 거리를 벌렸다.
이대로는 끝이 없다는 판단이었다.
결판을 내려면 어떻게든 결정타를 꽂아 넣어야 했다.
“차원류 검술 제2형…….”
몸에 조금 무리가 가는 검술이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
“…뒤틀린 우주!!”
푸욱!
아텔라가 허공에 찔러넣은 검날의 끝은, 순식간에 루퍼스의 등 뒤에서 튀어나왔다.
그것도 무려 다섯 군데에서.
아텔라의 검 끝이 차원을 통과하고 또 분열하여, 루퍼스의 등 뒤를 사방에서 찌른 것이다.
- …이런 고유 마법이었나, 그래서 그 던전을 빠져나올 수 있었던 거군.
그러나 루퍼스는 당황하지 않았다.
등에 박힌 다섯 개의 검날을 침착하게 뽑아낼 뿐이었다.
“…분명 깊게 들어갔을 텐데.”
아닌 게 아니라 녀석의 등에선 선혈이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검 끝이 녀석의 장기에 닿을락 말락 하는 감촉도 느꼈었다.
그럼에도 늑대 인간의 피부가 두꺼운 만큼, 치명상을 입히기엔 아슬아슬했던 모양이었다.
다만, 녀석은 여유를 부리는 것 이상으로 숨을 헐떡이고 있었다.
“뭐야, 허세였잖아? 스페이드.”
아텔라는 그럼 그렇지, 하며 씨익 미소를 지었다.
어느새 그녀의 이마에는 땀이 줄줄 흐르고 있었지만, 방금의 일격에서 희망이 보였다.
반면, 루퍼스 그레이엄은 여유가 없었다.
‘젠장, 여기서 시간을 끌면 안 되는데.’
서둘러 이곳을 마무리하고 ‘큐브’를 탈환하여 빠져나가야 했다.
아무리 던전의 설정을 단단히 해 놨다지만, 분명 지금쯤 탈출한 사람 한두 명이 나타날 수도 있었다.
게다가 이만큼 일을 벌인 이상, 마경 측에서 눈치챌 가능성도 있었다.
그러나 생각 이상으로 눈앞의 아텔라 가스트로디아를 뚫기가 쉽지 않았다.
작지만 단단한 그녀.
마치 아찔한 철벽처럼 느껴지고 있었다.
- 이젠 봐주지 않겠다.
조금 여유를 부려 버렸다.
그러나 이젠, 루퍼스 그레이엄도 모든 걸 쏟아부어야 하는 상황에 도달했다.
등 쪽의 상처도 벌써 회복되기 시작한 참이었다.
그리하여 늑대 인간은 참격을 준비했다.
상체를 낮추고 발톱을 모았다.
그리고 눈앞의 상대를 순식간에 도륙 낼 준비를 했다.
그 모습에 아텔라도 긴장하며 이스텐 카르자의 손잡이를 꽉 붙들었다.
그녀는 방금 전 ‘뒤틀린 우주’의 시전으로 상당히 체력적 손실이 난 상황이었다.
언제 그 최후의 1합이 발생할지 모를, 그 일촉즉발의 순간.
- 이런.
갑자기 루퍼스가 공격의 자세를 풀었다.
그러더니 어딘가를 보며 코를 킁킁거리기 시작했다.
- 불청객인가. 제길.
이내 루퍼스는 아텔라를 스윽 한 번 내려다보았다.
이미 루퍼스의 시선에서는 전투의 의지가 느껴지지 않았다.
- 운이 좋군. 승부는 다음으로 미루도록 하지.
그러고는 순식간에 어딘가로 달려 나가 사라져 버렸다.
늑대 인간이 전속력으로 달려가는 모습은 눈으로 감히 좇을 수 없을 정도의 속도였다.
그 모습에 안도한 아텔라는 털썩 무릎을 꿇고 주저앉았다.
사실 그녀도 이젠 한계였다.
그만큼 차원류 검술은 그녀의 몸에 무리가 가는 기술이었다.
그런데 그때, 멀지 않은 곳에서 그녀를 부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괜찮아요?!”
아텔라는 소리의 방향으로 고개를 살며시 돌렸고, 이내 목소리의 주인공을 눈으로 확인했다.
“네.”
상대를 확인한 아텔라 가스트로디아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