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아카데미의 무속성 마법사-92화 (92/175)

92화

* * *

아우레인의 기숙사 뒤편.

나는 눈앞의 사내를 부르짖었다.

“클로버……!”

그러고는 재빨리 양옆에 매기와 파르를 소환시켜 녀석의 공격에 대비했다.

녀석, 클로버는 이런 내 모습을 말없이 팔짱을 끼며 지켜볼 뿐이었다.

한편 나는 눈앞의 녀석을 견제하면서도 조용히 감지 마법을 시전하였다.

「프레시스코(præscísco)」

우우웅.

그리하여 눈에 들어오는 아카데미 내부의 마나 정보.

나는 곧 두 곳의 마나 격돌을 파악할 수 있었다.

‘랑켄 교수님과 아텔라 교수님인가……?’

랑켄 슈타이너 쪽은 아무래도 다이아몬드와 상대하고 있는 듯했고, 히로빈 교장 쪽은 아텔라 교수와 이올렛 테오니르가 스페이드를 상대하고 있는 것으로 보였다.

‘그 둘이면 일단은 안심이지.’

나는 둘을 믿기로 했다.

그렇다면 당장 중요한 것은 눈앞의 클로버를 저지하는 것.

‘내가 감당할 수 있을까.’

순간 머릿속을 스치는 의문.

그러나 상당히 자신 있었다.

오히려 근접 전투의 스페이드나 다이아몬드 쪽이 까다로운 상성이었다.

당초 예상했던 그 ‘도박수’가 먹혀들어 간다면, 클로버는 충분히 해 볼 만한 상대였다.

‘그나저나 저 녀석 뭘 멀뚱히 서 있는 거야?’

터틀넥을 코까지 뒤집어쓴 녀석에게서 느껴지는 음침한 분위기.

나는 녀석의 그 건방진 얼굴에 한 방을 먹이고 싶어졌다.

그리하여 나는 곧바로 조용히 주문을 읊었다.

「마지아 미실레(magía míssĭle)」

눈앞의 녀석이 들리지 않을 만큼 작은 소리.

그와 동시에 내 뒷짐 진 오른손에 마나가 몰려들고 있었다.

나는 매직 미사일의 충전 시간을 벌 겸 녀석에게 말을 걸었다.

“저번엔 무서워서 숨더니 잘도 다시 나타났네?”

그러나 녀석은 여전히 대꾸가 없었다.

그다지 싸울 의지도 없는 듯 보였다.

“왜 저번처럼 선뜻 공격하지 않는 거지? 아, 설마 쫄은 건가?”

조금 수위 높은 도발에도 녀석은 반응이 없었다.

그러다 문득 머릿속을 스치는 생각이 있었다.

“…그러고 보니 저번에 그랬지. 불살주의라고 했었나?”

“…….”

갑자기 눈썹을 치켜드는 클로버.

그 모습에 나는 옳다구나 싶었다.

“그럼, 그 불살주의 녀석이 왜 자라나는 학생들이 가득한 칼루스 아카데미를 침입했을까. 네 녀석의 목적이 도대체 뭐냔 말이야.”

클로버는 살인에 취미가 없다고 했었다.

그러나 분명 ‘아카마’에서의 침공 이벤트는 결국 아카데미 모든 인원의 몰살이라는 결과로 끝나게 됐었다.

이내 무거운 입을 여는 클로버.

“어쩔 수 없는 희생이다.”

“…어쩔 수 없는 희생?”

도대체 어린 학생들을 죽여 가면서까지 얻어야 하는 것이 뭐길래.

이 녀석들이 내세우는 정의가 뭐길래.

나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러나 녀석은 더 이상 말해 줄 생각이 없어 보였다.

“그렇다면 여기서 가만히 팔짱 끼고 있는 건 뭐지? 그 희생을, 아니 그 살육 행위를 방관하고 네 손에는 피를 묻히지 않겠다는 건가?”

“…….”

“아니, 너도 똑같아. 그저 자신은 불살을 지켰다는 위선과 도덕적 우월감에 사로잡혀 있을 뿐. 쉽게 말해 줄까?”

이미 클로버의 눈빛은 흔들리고 있었다.

그러나 녀석은 반박하지 않았다.

아니, 반박하지 못할 수밖에.

그야 녀석 스스로도 그 위선을 깨닫고 있어 보였으니까.

“너는 죽이지 않았다고? 같잖은 소리야. 위저드 협곡에서 결계를 해제한 것. 칼루스 아카데미를 침입한 것. 애초에 네가 블랙잭에 속해 있다는 것. 전부 다 살인 행위다. 이미 수많은 사람을 죽인 거랑 다를 바가 없다고. 애초에 불살을 주장하면서 살인을 돕는 것이 모순이야. 그저 스스로의 알량한 도덕심을 만족시키고 싶을 뿐인 거다.”

한순간에 쏘아붙인 말들.

그러나 틀림없이 정설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충분히 클로버의 마음을 흔든 모양이었다.

이내 묵묵히 듣고 있던 녀석의 표정에서 반응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곧 팔짱을 스르륵 푸는 클로버.

그러더니 코까지 덮고 있는 터틀넥을 살며시 내리기 시작했다.

“…뭔가 착각하고 있나 본데.”

나는 녀석의 태세 변환에 침을 삼킨 채, 대비했다.

위잉위잉.

귓가에는 이내 최대 충전에 가까워진 진동음이 울려 퍼지고 있었다.

“살인에 취미가 없을 뿐이지. 불살이라고는 하지 않았다.”

“아니. 너희들은 그저 살육에 미친 살인광일 뿐이다!”

나는 녀석이 반응하기 전에 재빨리 오른손을 조준했다.

그러고는 녀석을 향해 고출력 매직 미사일을 쏘아 내려 했다.

그런데,

「듀라투스(duratus)」

녀석의 반응이 좀 더 빨랐다.

쩌저적.

이내 내 몸은 녀석의 주문과 동시에 얼어붙기 시작했다.

그리고 옆에 있던 매기도 얼어붙어서 소환 해제되어 버렸다.

더욱 당황스러운 것은 녀석의 빙결 마법에 내 충전된 매직 미사일이 얼어붙었다는 점이었다.

‘매직 미사일이 얼어……? 마나를 얼렸다고?!’

녀석의 빙결계 마법은 마나조차 얼릴 수 있는 것으로 보였다.

게다가 엄청난 마나의 집합체임에도 불구하고 고출력 매직 미사일을 얼려 버렸다는 것은, 그만큼 녀석의 마력이 강력하다는 뜻이었다.

‘젠장. 이 녀석, 너무한 거 아니야……?’

클로버가 나에게 있어서 나쁘지 않다는 것은 어디까지나 상성의 이야기.

순수한 전투력으로 따지자면 어쩌면 이 녀석이 스페이드나 다이아몬드보다도 훨씬 강력한 녀석일 수도 있을 것이다.

이미 내 몸은 얼굴을 제외한 모든 신체 부위가 꽁꽁 얼어붙었다.

마나 자체도 얼어붙어 내 오른손에는 마치 커다란 솜사탕처럼 생긴 얼어붙은 마나가 덩그러니 달려 있을 뿐이었다.

‘아카마에서는 이 정도는 아니었는데.’

그건 어디까지나 제이드가 방출계라서 원소계인 클로버와 상성이 좋았기 때문인 것으로 보였다.

아무리 무속성이라고 하지만 마나를 얼어붙게 하는 녀석의 능력은 상상을 초월했다.

그러나, 나는 다 생각이 있었다.

“파르!!”

나는 곧바로 옆에 소환해 놨던 파르를 불렀다.

그러자 재빠르게 나에게 달라붙는 파르.

동시에,

쩌적.

내 몸을 감쌌던 얼음이 순식간에 녹아내리기 시작했다.

“…어떻게 한 거지?”

잔뜩 당황스러워하는 클로버의 모습.

녀석은 이내 다시금 주문을 시전했다.

「듀라투스(duratus)!」

그런 그를 보며 나는 불타고 있는 파르를 있는 힘껏 껴안았다.

그러자 녀석의 빙결 마법은 아무런 효과를 내지 못했다.

“…어이가 없군.”

“빙결계 마법이 통하지 않을 거라곤 상상도 못 했겠지?”

애초부터 내가 노린 도박수는 이거였다.

나는 예전에 우연히 파르의 불꽃이 나에게 영향을 끼치지 않는다는 것을 발견했다.

그리고 동시에 든 생각.

‘파르의 불꽃을 클로버의 빙결 마법에 써먹을 수 있지 않을까?’

그리하여 녀석을 만나면 줄곧 써먹어야겠다고 생각했었는데, 제대로 들어맞은 모양이었다.

“이제 네 녀석의 빙결 마법은 무용지물이다.”

- 파르.

파르도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클로버가 지금껏 보여 주는 마법은 주로 상대의 몸을 얼리는 형식.

그러나 파르의 불꽃이 있는 이상 같은 수는 통하지 않는다.

그러나 계속해서 파르를 안고 싸울 수도 없는 마당.

그리하여 머릿속에 번뜩 드는 생각이 있었다.

“…혹시 머리에다 써도 되지 않을까?”

- 파르……?

어차피 파르는 속이 빈 호박.

게다가 파르의 지옥불은 주인인 나에게 영향을 미치지 않으니 충분히 가능성이 있었다.

나는 머릿속에 떠오르는 생각을 즉시 행동으로 옮겼다.

쏘옥.

불타는 호박, 파르를 모자처럼 머리 위에 얹히자, 마치 핼러윈 코스프레를 한 듯한 모습이 되어 버렸다.

그런데,

슈우우웅!

갑자기 몸에서 빛이 나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퍼엉!

갑자기 몸에 거적때기가 걸쳐졌고,

퍼엉!

손에 기다란 낫이 쥐어졌다.

‘이건 또 뭐야……?’

갑작스레 내 몸은 사신 폼을 한 파르의 모습이 되어 버렸다.

어떻게 보면 파르와 융합했다고도 볼 수 있겠다.

“그렇단 말이지…….”

처음부터 파르가 이러한 용도였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어색함이 없었다.

이런 내 모습에 클로버는 짐짓 당황한 듯 보였다.

이미 녀석의 얼굴에는 평상시의 냉정함이 일그러져 있었다.

“그건 대체 뭐지? 변신계 마법인 건가?”

“…펌프킨 모드.”

그것이 나와 파르의 융합 상태에 대해 지은 명칭.

나는 동시에 낫을 들고 녀석에게 돌격하기 시작했다.

“하아압!!”

잔뜩 당황한 표정의 클로버.

이미 녀석은 나에게 빙결 마법이 통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는지, 빙결 마법을 자신의 발밑에 시전했다.

쩌저저저적!

그리고 그 얼음 기둥을 발판 삼아 나와 거리를 벌렸다.

“도망치는 건가?”

“아니.”

클로버는 이내 새로운 주문을 시전했다.

「글라시에스 글라디오(glácĭes gládio)!!」

그러자 클로버의 손에서 나타나는 반투명한 얼음의 도검.

녀석은 그 검을 들고 달려오기 시작했다.

“고작 얼음 검? 통할 거 같냐!”

나는 녀석의 검에 맞서 낫을 치켜들었다.

부딪치는 빙검(氷劍)과 낫.

콰아앙!

그와 동시에 어마어마한 충격이 손목에 전해졌다.

애초에 이 ‘펌프킨 모드’는 그저 파르의 외형과 융합한 것일 뿐, 파르의 근력과 힘을 물려받는 것은 아니었다.

게다가 녀석의 빙검은 파르의 낫에 닿아도 녹아내리지 않았다.

아무래도 먼 대상을 얼렸던 것과 아예 마력을 밀집해서 만든 얼음은 그 강도의 차이가 있는 것으로 보였다.

“결국 근접전인 건가… 젠장.”

무엇보다도 한 가지 간과하고 있던 사실이 있었다.

클로버는 마법에 의존하지 않아도 괴물 같은 힘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

녀석은 위저드 협곡에서 나를 한 손으로 던질 정도로 어마어마한 완력의 소유자였다.

아무리 내가 아텔라 교수님과 단련해 왔다지만, 녀석의 완력을 이길 정도는 아니었다.

이내 낫의 손잡이를 쥔 양손이 부들부들 떨리고 있었다.

녀석과는 대치조차 할 수 없는 것이다.

나는 슬슬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었다.

‘평범하게는 이길 수 없어.’

나는 빠르게 머리를 굴리기 시작했다.

그러나 녀석의 힘을 도저히 버틸 수 없었다.

촤아악!

이내 녀석은 내 낫을 튕겨 냈고,

푸욱!

빙검은 그대로 내 가슴을 찔렀다.

“커어억……!”

나는 입에서 피를 토해냈다.

그와 동시에 펌프킨 모드가 해제되어 내 창백한 몰골이 드러나게 되었다.

녀석은 그런 나를 하찮다는 듯 내려다봤다.

“살인은… 그다지 취미가 아니지만.”

이내 클로버는 내 가슴에 꽂힌 빙검을 스르륵 뽑았다.

그러자,

울컥!

동시에 검이 뽑힌 자리에서 새빨간 선혈이 쏟아져 내리기 시작했다.

제대로 심장을 찔린 것이다.

털썩.

나는 그대로 앞으로 고꾸라졌다.

그리고 녀석은 잠시 쓰러진 나를 내려다보더니, 동료들을 살피러 발걸음을 돌렸다.

그러나 녀석은 알지 못했다.

이미 내 오른손에는 불사조의 깃털이 쥐어져 있었다는 사실을.

우우우웅.

이내 내 몸에서 흘러나오는 하얀 빛이 주위를 감쌌다.

그 소리에 반응한 클로버는 뒤를 돌아보고는 매우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녀석의 일그러진 표정은 지금까지 중 과연 최고였다.

“어, 어떻게 된 거지? 분명 심장을 찔렀을 텐데?”

“뭐긴 뭐야…….”

나는 조심스레 몸을 일으켜 세웠다.

그런 내 손에는 어느새 마나를 발산하고 있는 언노운이 쥐어져 있었다.

“‘개같이 부활’이지.”

말을 마치자마자 나는 언노운을 있는 힘껏 휘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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