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3화
콰과과과광!!
언노운의 검기가 클로버를 덮쳤다.
그리고 그 거대한 마나의 집합체는 거기서 멈추지 않고 나아가, 아우레인 기숙사를 반으로 베어 버렸다.
쿠구구궁!!
굉음과 함께 무너지는 아우레인 기숙사.
그와 동시에 건물의 잔해가 클로버를 잔뜩 깔아뭉갰다.
그 모습을 확인한 나는 이윽고 거친 호흡을 내쉬었다.
“휴우……. 그나마 기숙사에 사람이 없어서 다행이네.”
무너져 내린 기숙사의 반쪽을 보니 살짝 죄책감이 들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어쩔 수 없다는 생각이었다.
애초에 ‘아카마’에서는 모두가 몰살당했다.
사람이 죽는 것보단 건물이 무너지는 게 천 배는 나은 결과였다.
- 개입하지 않으려 했건만.
머릿속에 울려 퍼지는 언노운의 목소리.
나는 그런 그녀에게 살며시 고마움을 표했다.
“매번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나저나 정말 다행이었다.
하마터면 침공 이벤트를 막기는커녕 그대로 숨질 뻔했으니 말이다.
조금 전.
녀석에게 힘으로 밀리는 것을 슬슬 직감한 순간부터, 나는 이미 ‘피닉스의 깃털’을 인벤토리에서 꺼낸 뒤 한쪽 주먹에 쥐고 있었다.
그리고 녀석의 검이 가슴을 꿰뚫는 순간, 죽은 자도 부활시켜 준다는 ‘피닉스의 깃털’을 동시에 발동시켰다.
심장을 꿰뚫린 사람이 사망에 이르기까지 걸리는 시간은 단 3초.
미리 죽음을 예측하지 않았더라면, 정말이지 비명횡사할 뻔한 것이다.
‘피닉스의 깃털’ 사용에 성공한 나는, 곧바로 언노운을 발동시키고자 했다.
애초에 언노운은 실체가 아닌 에고 소드.
그리하여 나는 육성이 아닌 텔레파시로 그녀에게 대화를 시도했었다.
무슨 일인지 언노운은 웬일로 곧장 응답하였고, 그리하여 나는 언노운을 일어나자마자 사용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나저나 상당한 녀석이었네.”
사실 펌프킨 모드를 시전했을 때, 나는 승리를 자만하고 있었다.
애초에 녀석의 고유 마법, 빙결은 이미 나에게 통하지 않는 상태였고, 고유 마법을 사용하지 못하는 상대라면 일반인과 다를 바 없는 수준일 테니까.
그러나 녀석은 마법을 사용하지 않아도 이미 일반인의 규격을 벗어난 괴물이었다.
원래 세계로 따지자면 거의 UFC 챔피언급이 아닐까 싶은 무력.
어떻게 원소계 마법사가 그 정도의 무력을 가지고 있는지 이해할 수 없었지만, 녀석의 타고난 골격과 근육을 보면 어느 정도 납득이 가는 부분이기도 했다.
무엇보다도 녀석의 빙검이 상당히 변수였다.
파르의 지옥불도 견뎌낼 수 있는 만년빙(萬年氷)을 만들어 낼 수 있을 줄이야.
녀석이 강하다고는 생각했으나, 이 정도 경지의 마법사일 줄은 상상도 못 했었다.
‘역시 제이드는 상성발이었잖아.’
물론 이곳의 제이드와 다르게, ‘아카마’의 제이드는 지금의 나처럼 마도구와 마법 주문서로 강화를 받기도 했었다.
그럼에도 그곳의 제이드가 클로버를 제압하고 나머지 셋도 제압할 수 있었던 건, 온전히 그중에서 가장 강한 클로버와 상성상 우위에 있었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가만. 생각해 보니 나도 강한 건가……?’
나는 부정하지 않았다.
어쨌든 ‘아카마’의 제이드만큼은 아니더라도 일단은 나도 블랙잭의 간부 하나를 상대로 승리를 거두었다.
이 정도면 스스로 흡족할 만한 결과였다.
“그럼 빠르게 다른 곳으로 합류해 볼까.”
나는 이내 몸을 돌려 다른 전투 지점에 합류할 생각을 가졌다.
그런데 그때,
부스럭.
무너진 건물 잔해 사이로 기척이 느껴졌다.
‘아직 멀쩡한 건가……?’
나는 빠르게 회중시계로 파르를 소환해 냈다.
그러고는 다시금 파르를 머리에 뒤집어쓰고 펌프킨 모드로 돌입했다.
“어…째서…….”
잔해에서 튀어나온 클로버.
이윽고 녀석은 돌무더기를 털어 내고 그 안에서 서서히 몸을 일으켜 세웠다.
‘어떻게 언노운의 공격에 버틴 거지? 설마 검으로 튕겨 낸 건가……?’
클로버는 한 손에 아까의 빙검을 들고 있었다.
그 멀쩡한 빙검의 상태로 보아 아무래도 클로버는 빙검의 검날로 언노운의 궤도를 빗겨 친 듯싶었다.
‘위저드 협곡에서 봤던 것과 같은 수준의 빙결인 건가……?’
그때 당시 클로버는 고출력 매직 미사일의 대미지를 흡수하기 위해 빙결 상태에 돌입했었다.
그리고 그 빙결 상태는 그 어떤 방식으로도 강제적으로 해제시킬 수 없었다.
아무래도 저 빙검은 그때의 빙결과 같은 수준의 마력인 것으로 보였다.
그러나 나는 그다지 걱정하진 않았다.
그야 상대방의 상태가 그만큼 멀쩡해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너는… 도대체 뭐냐……?”
뚜벅 뚜벅.
무너진 잔해를 빠져나온 클로버가 한 걸음, 한 걸음 발을 내디뎠다.
그런 그의 양발이 부들부들 떨리고 있었다.
“도대체가… 칼루스 아카데미의 학생이 맞는 건가……?”
도저히 지금 상황을 이해할 수 없다는 그의 얼굴.
평상시의 냉정했던 표정은 이내 온데간데없었다.
그는 아마도 난생처음 ‘무력함’이라는 감정을 느끼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생각해 보니 그랬다.
클로버는 나를 처음 만났을 때부터 지고 들어갔었다.
그는 나와의 첫 만남에서 고출력 매직 미사일을 회피하기 위해, 스스로의 몸에 제약을 거는 빙결 상태에 돌입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현재의 두 번째 만남.
이번에는 아예 그의 고유 마법 ‘빙결’이 통하지 않는 나와 상대해야 했다.
게다가 분명 심장을 꿰뚫은 줄만 알았던 나는 멀쩡히 살아 있었다.
또한 부활한 나에게 가늠조차 안 가는 거대한 마력의 공격을 맞아 버렸다.
이런 내게 무력감을 느끼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할 수밖에.
아마도 녀석은 내 계열 마법조차 짐작할 수 없을 것이다.
다만, 그게 정상이었다.
애초에 내 계열 마법이란 것은 존재하지 않으니까.
나는 무속성 마법사니까.
나는 그런 아연실색한 표정의 클로버를 보며 씨익 미소를 지었다.
한편으로는 좀 더 녀석을 절망시키고 싶어졌다.
그리하여 나는 살며시 운을 뗐다.
“그거 알아? 난 네 녀석들, 블랙잭의 침공을 알고 있었어. 아주 오래전부터 대비하고 있었지. 하트, 스페이드, 클로버, 다이아몬드. 너희 간부들의 고유 마법까지도 전부 알고 있었다고.”
내 말을 듣는 클로버의 동공이 점차 커졌다.
그는 진심으로 놀란 듯 보였다.
“…어떻게 고작 아카데미의 학생이 블랙잭의 정보를 알고 있는 거지?! 어떻게 오늘의 침공을 대비하고 있었냔 말이다! 그러고 보니 너는 첫 만남부터 나에게 공격해 왔었지. 설마…….”
잠시 침묵하며 고개를 떨구는 클로버.
이내 조용히 고개를 들어 나와 시선을 마주했다.
“예언 마법이라도 사용한다는 건가? 예언자라도 되냔 말이다!”
“예언자?”
멋대로 생각하라지.
나는 언노운의 손잡이를 살짝 쓰다듬었다.
그러고는 냉담하고 조소 섞인 눈빛으로 클로버를 바라보았다.
“예언자라기보다는 심판자. 너희의 그 알량한 계획을 하나같이 쳐부술 심판자다.”
나는 진심으로 녀석들에게 분노하고 있었다.
그만큼 나는 이곳 생활에 동화되어 있던 것이다.
캐서린, 아텔라, 루비, 달시 등등.
모두는 내 소중한 사람들이었다.
더 이상 게임 속 남 일이 아니었다.
이건 분명 내가 숨 쉬며 살아가는 현실.
그리고 그런 소중한 사람들이 있는 칼루스 아카데미의 평화를 해치려는 녀석들을 나는 용서할 수 없었다.
이미 이것은 진엔딩과는 별개로 내 사명이 걸린 문제였다.
“와라. 몇 번이고 쳐부숴 주겠어.”
“…젠장! 위대한 계획을 막을 생각 마라!!”
이미 클로버의 냉정함은 부서진 지 오래였다.
녀석은 이내 한 손으로 빙검을 치켜올리더니 내 쪽으로 달려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도 그 모습을 보며 언노운의 검신에 마나를 밀집시켰다.
우우우웅!
곧 언노운의 검신에 머금은 마나는 오러 블레이드의 형태를 띠었다.
탓탓탓탓!
달려오는 클로버.
나는 씨익 미소를 지으며 그를 향해 오러 블레이드를 휘둘렀다.
카앙!
부딪치는 언노운과 빙검.
분명 오러 블레이드 형태였음에도 상당한 충격이 손목으로 전해지고 있었다.
아무래도 완력으로는 절대 녀석을 이길 수 없는 듯싶다.
그러나,
쩌저적―
내 오러 블레이드에 닿은 녀석의 빙검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이, 이게 어떻게 된…….”
녀석은 당황하며 물러섰다.
아무래도 고출력 매직 미사일과 언노운의 검기마저 막아 낸 만년빙이었다.
그런 만년빙에 금이 가고 심지어는 부서지려 하다니.
지금 상황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도대체 어떻게 되어 먹은 힘이란 말이냐!”
녀석은 도저히 이 현실을 받아들일 수 없는 모양이었다.
어찌 보면 당연했다.
녀석의 완력, 그리고 빙결이라는 거의 원소계 최강이라 일컬어지는 고유 마법.
게다가 모든 것을 막아 내는 절대 방어의 만년빙까지.
그는 강력하다.
그리고 강력한 만큼 지금껏 완벽함을 유지해 왔고, 그 완벽함에 안주해 왔을 것이다.
그리고 지금.
그 완벽함이라는 벽에 균열이 생기기 시작했다.
“어딜 가려고!”
나는 클로버에게 기회를 줄 생각이 없었다.
녀석이 뒷걸음질 치는 순간을 놓치지 않고, 그대로 언노운을 내려 베었다.
클로버는 이미 머릿속이 무척 혼란스러운 듯하다.
그리하여 그는 언노운을 막아 내겠다는 최악의 판단을 내린다.
그는 빙검을 가로로 잡아 올려 오러 블레이드의 검날에 맞서려 했다.
물론 전혀 소용없는 짓이었다.
촤아아아악!
언노운은 빙검을 뚫고 그대로 클로버의 가슴팍을 베어 냈다.
“끄아아아악!”
클로버는 외마디 비명을 지른 채, 뒤로 털썩 쓰러졌다.
만년빙의 빙검은 생각보다 단단해서, 꽤 많은 대미지를 흡수한 모양이었다.
그리하여 녀석에게 들어간 오러 블레이드는 생각보다 얕았다.
그러나 그 정도로도 충분했다.
이미 녀석은 가슴팍에 피를 흘리며 쓰러져 있었다.
아무래도 죽지는 않고, 방금 입은 상처와 지금껏 소모한 마나 때문에 기절한 것으로 보였다.
나도 그런 녀석의 모습을 보고 이내 언노운의 마나를 거두고, 펌프킨 모드도 해제하여 파르를 소환 해제했다.
“휴우우…….”
그러고는 털썩 자리에 주저앉았다.
오늘 중간고사 던전 때부터 계속해서 마나를 소모해 댔으니, 아무리 나라도 지치는 건 당연했다.
“한 건 해냈네.”
나는 방심하지 않고 감지 마법을 사용하여 아카데미의 상황을 살폈다.
다행히도 다른 쪽의 전투 상황도 잘 마무리된 것으로 보였다.
“성공한 건가……?”
애초에 ‘아카마’와는 달리 학생들과 교수들이 대부분 던전 안에 갇혀 있으므로 인명 피해는 발생할 수 없었다.
게다가 현재 던전 외부에 나와 있는 사람들의 마나 반응도 정상적으로 보였다.
‘아카마’의 침공 이벤트와는 다르게 결국 사상자는 없는 것이다.
“다행이다…….”
애초에 이들을 지키는 것이 내가 이곳으로 온 소기 목적.
결국 나는 이들을 지켜 낼 수 있었다.
그런데 그때.
내 시야에 내 쪽으로 다가오는 누군가가 감지되고 있었다.
그리고 곧 그는 내게 상당히 접근해 왔다.
“어디 있으셨어요? 기다리고 있었는데.”
나는 그런 그에게 미소를 지으며 말을 건넸다.
“미안. 좀 사정이 있었다.”
대답하는 것은 장발의 은발을 휘날리는 남자.
바로 마경의 차장 실베르 라인하르트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