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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데미의 무속성 마법사-94화 (94/175)

94화

실베르는 바닥에 대자로 누워 기절해 있는 클로버를 얼떨떨한 표정으로 흘겼다.

“저거, 네 작품이냐?”

“그럼, 누가 그랬겠어요.”

나는 씨익 미소를 보였다.

그러자 실베르는 조금 믿기 어렵다는 눈치였다.

“…너 계열 마법을 못 쓰는 거 아니었어?”

“네……? 그걸 어떻게 아셨어요?”

실베르와는 위저드 협곡 사후 조사 때 만난 게 처음이었다.

그 이후에도 딱히 만난 적은 없었기에, 사실상 전화 통화가 전부였다.

그런데 내가 계열 마법을 사용하지 못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니?

‘내 뒷조사라도 한 건가?’

나는 실베르의 말에 고개를 갸우뚱했다.

그러나 실베르가 이내 화제를 돌렸기에 별생각 없이 넘어가게 되었다.

“아무튼 늦어서 미안. 조금 사정이 있었어.”

“괜찮아요. 뭐, 어찌저찌 대부분 마무리된 거 같기도 하고.”

사실 마경에는 별 기대를 하지 않고 있었다.

‘아카마’의 침공 이벤트에서도 마경은 오지 않았으니까.

그저 나는 지금이라도 와 준 실베르가 고마웠다.

게다가 결과적으로 침공 이벤트가 성공적으로 저지되었으니 굳이 탓할 이유도 없었다.

실베르는 정말 미안하다는 듯 어깨를 한 번 으쓱하고는 입을 열었다.

“나머지 이야기는 나중으로 미루자. 이제 뒷일은 나한테 맡겨라.”

“예에.”

그러더니 곧 실베르는 쏜살같이 숲으로 달려갔다.

아무래도 하트를 잡으러 간 모양이었다.

그 뒷모습을 보며 나도 바지에 묻은 흙먼지를 털어 내고 슬슬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럼 나도 가 볼까.”

아직 루비 버밀리온과 제이드가 전투 중이었다.

그들을 내버려 둔 채 이대로 쉴 수는 없었다.

휴식은 모든 일이 마무리되고 나서 해도 충분했다.

“좋아.”

나는 이내 실베르의 뒤를 쫓아 숲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 * *

아카데미의 숲.

하트, 아니 하이젤 트레이슨은 매우 당황스러웠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이지……?’

아까부터 반응이 없는 다이아몬드에 이어서, 이내 클로버의 마나 반응까지 옅어졌다.

다이아몬드 쪽은 그렇다 치더라도 클로버의 패배는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분명 클로버 쪽은 꼬마애 하나가 갔을 뿐일 텐데……? 설마 그 꼬마 녀석한테 당하기라도 한 건가?!’

클로버의 패배는 상상할 수 없었다.

그것도 그 소년에게 패배했다는 것은 더더욱.

‘뭔가 계획이 어그러졌어. 그것도 상당히 많이.’

상황은 최악이었다.

애초에 그들의 전력은 총 네 군데로 분산되어 있었다.

동쪽은 하트와 클로버.

서쪽은 블랙잭 소속 안티 매지션들.

남쪽은 다이아몬드.

북쪽은 스페이드.

그런데 그중에서 클로버와 다이아몬드는 마나 반응이 희미해졌고, 블랙잭 소속 안티 매지션들과 스페이드는 어떻게 된 건지 연락 두절이었다.

‘젠장! 스페이드 이 자식, 큰소리칠 때는 언제고…….’

칼루스 아카데미에 스페이드가 위장 취업을 하고, 중간고사를 빌미로 전 인원을 던전 안에 가두겠다는 계획.

거기다 ‘히드라의 독니’로 히로빈 그린월드를 무장 해제하고 ‘큐브’를 탈취하겠다는 계획.

말로만 들었을 때는 그럴싸했다.

그러나 그것이 막상 실행 단계에 이르자 여기저기서 잡음이 들려오고 있었다.

‘쓸모없는 녀석들…….’

하이젤은 땅바닥을 차며 화풀이를 했다.

그와 함께 흙먼지가 일렁거렸다.

그런데 사실 하이젤도 그다지 큰소리칠 건 없었다.

하이젤 본인도 아까부터 두 아카데미 학생을 상대로 고전하고 있는 처지였으니까.

비록 나중을 위해서 생체 마인을 아끼고 있다고는 하지만, 고작 학생 두 명을 빠르게 처리 못 해서 쩔쩔매고 있는 꼴이라니.

결국 블랙잭의 칼루스 아카데미 침공 계획은 완벽히 무너진 것이다.

“응……?”

계속해서 땅을 차며 화풀이를 하고 있던 하이젤은 뭔가 심상치 않음을 느꼈다.

숲의 입구 쪽에 있던 마인이 보낸 신호.

무언가 강력한 것이 다가오고 있음의 경고였다.

“젠장…….”

어쩔 수 없었다.

이미 작전은 실패였다.

그나마 할 수 있는 거라곤 도망쳐서 훗날을 도모하는 것일 뿐.

그리하여 하이젤은 데려온 생체 마인 둘 중 강력한 녀석 하나를 시간 끌기용으로 내보냈다.

뒤쪽으로 보낸 생체 마인은 이내 하이젤의 지배가 풀리자, 즉시 폭주하고 스스로 주변을 파괴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하이젤은 기동력이 좋은 쪽의 생체 마인에 탑승한 뒤 포탈 쪽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X발!!”

어쩌다 이런 꼴이 됐는지 모를 일이었다.

블랙잭은 대부분이 일반 마법사보다도 월등히 뛰어난 인재들로 이루어져 있었고, 간부들은 거의 권좌급에 살짝 못 미치는 수준으로 강한 자들이었다.

그런데 모든 계획이 틀어지고 막힌다는 게 어이가 없었다.

무언가 커다란 변수에 휘말린 것이 분명했다.

“젠장……. 우리의 유토피아를……. 우리의 ‘블랙잭’을…….”

그들이 블랙잭이라는 조직을 설립하게 된 이유.

그것은 다름 아닌 200년 전 봉인된 마족을 해방하기 위함이었다.

누군가는 재미로.

누군가는 신념으로.

또 누군가는 소망으로.

200년 전의 마계대전을 다시금 일으키고자 하는 저마다의 사람들이 모이게 된 것이 바로 블랙잭이었다.

그리고 그중에서도 하이젤이 블랙잭에 열광하게 된 이유는 다름 아닌 ‘엄벌주의’였다.

10년 전.

하이젤 트레이슨이 마경에 입사하면서 느끼게 된 것.

그것은 다름 아닌 이 세상은 ‘처벌이 너무 가볍다.’라는 것이었다.

죄를 지은 사람은 벌을 받아야 한다.

그러나 마경이 안티 매지션에게 집행하는 것이라곤 고작 구금뿐.

사형이 폐지된 이 세계에선 사기를 쳐도, 누군가를 협박해도, 심지어는 사람을 죽여도, 그저 감옥에 넣을 뿐이었다.

그게 과연 마땅한 응징이라고 할 수 있는가?

하이젤 트레이슨은 심각한 고민에 빠졌었다.

그리고 곧 그는 슬슬 인간이라는 종족에 환멸을 느끼기 시작했다.

그러던 와중, 마침내 그 일이 터지게 되었다.

7년 전에 있었던 ‘리베로 마을’ 사건.

마을 사람들이 한 소녀를 잔인하게 유린하고 죽인 잔악무도한 사건.

당시 하이젤 트레이슨과 케이든, 실베르 라인하르트는 그 ‘리베로’ 사건의 담당 수사관이었다.

당시 마을 사람들에게 선고된 것은 ‘무죄’ 판결.

검식 결과로 마을 사람들에게 정신계 마법이 사용됐다는 것이 알려지게 되었고, 정신계 마법사의 소행이라 판단한 재판부는 마을 사람들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그러나 당시 하이젤은 재판부의 판결에 불응하고, 진상을 밝히기 위해 마을 사람들에게 잔혹하게 살해당했던 소녀를 마인으로 부활시켰다.

그리고 그 소녀의 마인은 마을 사람들을 죄인으로 지목했었다.

그에 따른 재판부의 의견은 두 가지였다.

첫째, 마인의 의견을 의견이라고 볼 수 없다. 애초에 고인을 마인으로 만드는 것은 시체를 능욕하는 행위이며, 마인과 고인을 동일 인물로 간주할 수 없다는 것.

둘째, 정신계 마법사에 의해 마을 사람들이 지배되었고, 그 지배된 마을 사람들이 소녀에게 범행을 저질렀으므로, 마인이 그들에게 악감정을 가지는 것이 어찌 보면 당연하다는 것.

하이젤은 재판부의 입장에 어이가 없었다.

소녀의 억울함을 풀어 주려는 자신에게, 도리어 시체 훼손이라는 죄를 뒤집어씌우는 그들에게 환멸감을 느낄 뿐이었다.

그는 죽은 소녀를 대신해서 분노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리하여, 하이젤은 가해자인 리베로 마을 사람들을 모조리 죽여 버린 것이다.

그 여파로 하이젤은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다.

그리고 마을 사람들의 유죄가 판명 나서 감형된 것은 나중 일이었다.

아마 결국 사건의 진상이 밝혀지게 된 것은, 그때 당시 케이든이 사건을 끝까지 놓지 않고 캐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사면 후에 하이젤 트레이슨은 마경에 복귀할 수 없었고, 복귀하고 싶지 않았다.

따라서 그 이후로 하이젤 트레이슨은 방황의 시간을 보냈었다.

그런 그의 앞에, 어느 날 갑자기 한 소년이 나타났다.

이제 막 아카데미를 벗어났는지, 얼굴에 앳된 티가 어린 소년.

그 소년은 하이젤 트레이슨에게 이렇게 말했다.

- 세상을 바꾸지 않겠습니까?

그 말에 혹한 하이젤은 고개를 끄덕이고 제안을 받아들였다.

그리고 곧 그는 이 블랙잭이라는 조직과 사상, 그리고 그들의 원대한 계획에 열광하기 시작했다.

그들의 계획은 봉인된 마계의 문을 열고, 마족에 의해 지배되는 세상을 만드는 것.

소년이 말하길, 마족들이 지배하는 세상은 하이젤 트레이슨이 원하는 그대로의 유토피아였다.

악을 엄벌하는 세상.

죄를 지으면 그 배로 처벌받는 세상.

빈자와 부자가 없는 모두가 평등한 세상.

단지 그들 위에 마족이 있을 뿐인 것이다.

하이젤은 그러한 사상에 납득하고 말았다.

결국 환멸 나는 이 세상을 갈아엎기 위해선 그 위의 존재가 필요하다.

그리하여 하이젤은 결심했다.

설사 자신이 악이 된다 하더라도, 부서지고 패배하고 저주받은 자들의 구원자가 될 것이라고. 그들을 위한 세상을 만들 것이라고.

그런 그들의 원대한 꿈이 지금 좌절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하이젤 트레이슨은 포기하지 않았다.

“아니, 아직이다. 아직 끝나지 않았어.”

설사 이번 계획이 실패했다 하더라도, 그들의 의지와 신념은 계속될 것이다.

계속 나아갈 것이다.

모든 것은 ‘블랙잭’을 위해.

그것이 그들, 블랙잭의 ‘행진’인 것이다.

그런데 그때,

탕!

강렬한 총성과 함께 하이젤이 타고 있던 마인이 고꾸라졌다.

그와 함께 하이젤이 우당탕 소리와 함께 바닥에 널브러지고 말았다.

바닥을 구르는 순간 하이젤은 본능적으로 떠올렸다.

이러한 소리의 주인은 단 한 사람밖에 없다고.

“실베르……!”

그러자 그에 화답이라도 하는 듯, 나무 사이로 은색 장발이 휘날렸다.

그리고 곧 모습을 드러내는 실베르 라인하르트.

“여어, 오랜만.”

그의 표정에는 한껏 여유가 있었다.

하이젤은 황급히 바닥을 짚고 일어나 마나를 전개했다.

그러자 잠시 지배가 끊겼던 생체형 마인이 조종을 받고 실베르를 덮쳐 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또다시 울리는 두 번의 총성.

탕탕―!

그러자 생체 마인은 별 반항도 못 하고 한 번에 쓸려 나갔다.

눈앞의 상대는 강화계의 권좌.

10년 전 그 찌질했던 실베르 라인하르트가 아닌 것이다.

“끝이야?”

차갑게 내뱉으며 한 걸음, 한 걸음 다가오는 실베르 라인하르트.

그 모습에 하이젤은 본능적으로 뒷걸음질 쳤다.

“오, 오지 마!”

“잘도 일을 벌이셨겠다.”

딸깍.

실베르는 권총을 한 번 장전한 뒤에 하이젤을 향해 겨눴다.

하이젤은 이미 도망치긴 글렀음을 직감했다.

분명 녀석은 원한이 강할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이미 하이젤 트레이슨은 인간의 선을 넘어 버렸다.

무엇보다도 실베르와 그의 소중한 사람, 케이든을 반죽음 상태로 만들고 말았다.

케이든의 생사도 확인할 수 없는 지금, 녀석의 분노는 극에 치달았겠지.

하이젤은 눈앞의 사내에게 본능적으로 두려움을 느꼈다.

“나, 나를 죽일 건가!”

어느새 뒷걸음치던 하이젤의 등이 뒤에 있던 나무에 맞닿았다.

이내 하이젤은 꼼짝달싹 못 한 채, 이마에 총구가 들어오는 것을 멍하니 바라볼 뿐이었다.

“아니? 죽이긴 왜 죽여?”

그 모습에 어이가 없다는 듯 말하는 실베르 라인하르트.

“당연히 감방에 처넣어야지.”

그러면서 실베르는 뒷주머니에 있는 수갑을 스으윽 꺼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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