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5화
* * *
열심히 숲의 내부로 뛰어가자, 그곳에는 등을 맞대며 마인들을 상대하고 있는 제이드와 루비 버밀리온이 보이고 있었다.
나는 그들을 포위하고 있는 마인들을 확인하고는 조용히 주문을 외웠다.
「마지아 미실레(magía míssĭle)」
「마지아 미실레(magía míssĭle)」
……
주문과 동시에 순식간에 불어나는 매직 미사일들.
마법 주문서의 강화로 인해 한 번 주문을 외울 때마다 네 개씩 불어나는 웅장함을 자아낸다.
물리적으로 매직 미사일을 시전할 수 있는 회수는 2초당 3회.
그리하여 10초만 돼도 무려 60개의 매직 미사일을 소환해 낼 수 있는 것이다.
나는 내 머리 위를 뱅뱅 돌고 있는 매직 미사일을 제이드와 루비 버밀리온 앞에 있는 마인들에게 조준했다.
그러자 일제히 날아가는 수많은 매직 미사일.
퍼퍼퍼펑!!
경쾌한 소리와 함께 마인들을 쓸어 버린다.
그리고 그 일격에 제이드와 루비가 뒤를 돌아보았다.
“왔어?”
“늦었잖아.”
여유 있게 맞이하는 둘.
그러나 표정에는 살짝 힘든 기색이 내비쳤다.
어느덧 주변에 자잘한 마인들은 전부 처리했는지 보이지 않았고, 이제 남은 것은 우리를 내려다보고 있는 거대한 마인 하나뿐이었다.
녀석에게선 마치 캐서린의 마인화 때와 비슷한 엄청난 기운이 느껴지고 있었다.
나는 살짝 긴장한 채로 둘의 옆에 다가섰다.
그러고는 눈앞의 거대한 마인을 상대할 채비를 갖췄다.
그런데 문득 의문점이 들었다.
분명 먼저 숲으로 들어섰던 실베르 라인하르트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 것이다.
“실베르 차장님은?”
“그 은발의 마경분?”
“든든한 전력이 합류할 거니까, 저 녀석은 우리에게 맡긴다던데?”
“뭐?!”
아무래도 그 ‘든든한 전력’이 의미하는 것은 나인 듯싶다.
실베르는 저 녀석을 나한테 전적으로 맡기고 간 것이다.
조금은 과대평가 받고 있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랬단 말이지…….”
오늘 하루 종일 쉴 새 없이 달려오기만 한 나였다.
그리고 그것은 제이드와 루비 버밀리온도 마찬가지.
다들 지쳐 있는 게 당연했다.
그럼에도 나는 또다시 매직 미사일의 주문을 외웠다.
“…그렇다면 기대에 부응하는 게 마땅하지.”
앞으로 단 한 녀석.
저 녀석만 처리하면 모든 것은 종료된다.
이 빌어먹을 침공 이벤트도 드디어 마무리되는 것이다.
“다들 괜찮지?”
“응.”
“당연하지!”
그리하여 우리는 눈앞의 거대한 마인과 최후의 전투를 시작하였다.
* * *
한편 동쪽 숲의 깊은 곳.
실베르 라인하르트는 하이젤 트레이슨의 손목을 수갑으로 채웠다.
기본적으로 마경의 수갑에는 마나 억제의 효과가 있어서, 안티 매지션들은 대부분 이 수갑을 채우면 반항하지 못하게 된다.
그리하여 꼼짝달싹 못 하게 된 하이젤 트레이슨은 힘없이 고개를 축 늘였다.
“…정말 나를 죽이지 않는 거야?”
“죽일 순 없지. 물론 잔뜩 패 주고는 싶지만.”
하이젤 트레이슨의 뻔뻔한 말에 실베르 라인하르트는 주먹을 부르르 떨었다.
그러나 곧 삼켰다.
여기서 저 녀석에게 폭력을 가한다면, 결국 저 녀석과 동급이 되는 것.
하이젤 트레이슨을 체포할 자격이 없는 것이다.
그리하여 실베르는 참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고는 수갑을 채운 하이젤을 끌고 가려 했다.
그러자 갑자기 하이젤이 고개를 팍 들고는 히죽 웃었다.
“케이든… 케이든 선배는 어떤데? 아마도 그때의 일을 생각하면 무사하진 않을 텐데.”
콰악―!
순간 실베르는 하이젤의 멱살을 잡고 치켜올렸다.
지금까지는 그럭저럭 넘어갔지만, 대놓고 케이든 선배를 조롱하는 녀석의 말은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다.
그 모습을 하이젤은 큰 소리로 비웃기 시작했다.
“하하하하! 그래 너도 똑같아! 나를 죽이고 싶지? 죽이고 싶잖아?!”
“닥쳐라. 좋은 말로 할 때.”
“너도 어이가 없지 않아? 범죄자에게 회개하라니. 반성하라니? 고작 감옥에 가면 그만이라니! 그게 진정한 의미의 심판이야? 올바른 세상인 거냐고!”
“물론, 나도 너 같은 녀석들을 보면 죽이고 싶다. 다만, 이게 법이고 이게 정의다.”
하트는 실베르의 말을 듣고는 확신에 찼다.
자신은 틀리지 않았다고.
역시나 잘못된 것은 이 빌어먹을 세상이라고.
역시 블랙잭은 옳았던 것이다.
“세상은 곧 바뀔 거야.”
“그래. 열심히 노력하라지. 백 번이든 천 번이든 잡아 처넣을 거니까.”
“넌 잘못됐어. 너흰 틀린 거라고! 결국 이 세상에는 ‘철인’의 지배가 필요해. 진정한 의미의 정의를 그분들이 이루어 주실 거다!”
하이젤 트레이슨은 살짝 정신이 나간 듯 보였다.
무언가 잘못된 교리에 단단히 빠진 광신도 같기도 했다.
그리하여 실베르는 궁금해졌다.
녀석들, 블랙잭이 추구하는 것이 도대체 무엇인지.
“네 녀석이 말하는 그 철인이라는 게 도대체 뭔데?”
“훗……. 그게 궁금한가?”
하이젤은 슬며시 고개를 들어 실베르와 눈을 마주했다. 애초에 하이젤은 딱히 숨길 생각도 없어 보였다.
“마족님들.”
“마족……? 너 설마……!”
“이 빌어먹을 세상은 심판이 필요해! 그분들만이 이 어리석은 세계를 정화해 줄 유일한 구원자다!”
그제야 실베르는 이들의 목적을 깨닫게 되었다.
200년 전 영웅들이 봉인한 마족들.
블랙잭은 그 마족들의 봉인을 풀고 마계의 문을 열 생각인 것이다.
“미쳐도 단단히 미쳤구나.”
스스로 마족에게 통치받고 싶어 하는 인간들이라니.
어리석기 그지없었다.
어쩌면 역사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한 탓일 수도 있겠다.
또 어쩌면 마족의 잔인함과 추악함을 시간이 흘러 잊은 것일 수도 있었다.
확실한 것은 이들이 제정신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계속해서 하이젤의 멱살을 잡고 있던 실베르는 더 이상 할 말을 잃어 조심스레 멱살을 놨다. 도무지 녀석들의 정신머리를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런데 그때,
“응……?”
실베르는 무언가 살기를 느꼈다.
그 거대한 살기는 빠른 속도로 접근하고 있었다.
그리하여 실베르는 신속하게 하이젤과 거리를 벌릴 수밖에 없었다.
촤아아아악―!
순식간에 베어진 나무.
그리고,
우지끈―!
베어진 나무가 곧 쓰러졌다.
그와 함께 모습을 드러낸 것은,
“…늑대 인간?”
다름 아닌 루퍼스 그레이엄이었다.
루퍼스의 등장과 함께 땅바닥에 내팽개쳐진 하이젤은 발끈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왜 이제 온 거야, 이 쓸모없는 녀석아!”
- 잠시 서쪽 숲에 다녀왔다.
“물건은? 물건은 챙겼어?”
- ‘큐브’를 챙길 상황이 아니었다. 애초에 이 녀석들, 우리 계획과 정보를 알고 있던 눈치더군.
“우리 정보를 알고 있었다고? 그게 말이나 돼?! 애초에 이건 네가 설계한 거잖아, 스페이드!!”
하이젤은 묶인 두 손을 아등바등 움직이며 잔뜩 화를 표출했다.
애초에 이번 블랙잭의 침공 계획은 전부 루퍼스가 성공할 것이라고 호언장담한 계획이었다.
당연히 모든 것은 루퍼스 그레이엄의 책임.
게다가 계획과 정보가 유출되었다는 것도, 칼루스 아카데미에 위장 잠입한 루퍼스의 실책이 아니라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 미리 말하겠지만, 정보 유출은 내가 한 게 아니다.
“그럼 도대체 이 녀석들이 우리 정보를 어떻게 알고 있냔 말이야!!”
- 그건 나도 잘 모르겠다.
“뭐? 모르면 다야? 그게 말이 되는 소리라고 하는 거야 지금?!”
- 닥쳐라!
계속 듣고 있던 루퍼스가 갑자기 큰 소리로 호령했다.
그와 함께 늑대의 주둥이가 이빨을 보이며 으르렁거렸다.
- 지금 당장은 어떻게든 이곳을 빠져나가는 게 중요하다. 네 녀석의 찡찡거리는 소리를 들어 줄 시간이 없단 말이다!
그런데 그때.
잠시 뒤로 빠졌던 실베르가 그들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어이, 니들끼리 조잘조잘 말이 많은 거 같은데? 게다가 뭐? 이곳을 빠져나가겠다고?”
찰칵.
권총의 장전 소리.
그리고 실베르는 총구를 늑대 인간에게 무심하게 조준했다.
“…지랄도 작작 하시지. 누구 맘대로 여기서 빠져나가겠다고. 너흰 이곳에서 한 놈도 빠져나갈 수 없다!”
말을 마치자마자 실베르는 방아쇠를 당겼다.
그와 동시에 루퍼스는 빠른 속도로 몸을 회피했다.
탕!
총알은 총구를 벗어났고, 미리 반응했던 루퍼스의 몸은 이미 총의 궤도를 벗어나 있었다.
그런데,
퍼어억!
분명 피했을 터인 총알이 늑대 인간의 어깨를 꿰뚫었다.
그와 동시에 루퍼스의 어깨 아래로 붉은 피가 흘러내렸다.
- …유도탄인가? 게다가 강화계?
풋.
루퍼스는 상대를 비웃었다.
강화계는 변신계의 상성.
아무리 탄창을 마법으로 강화한다고 하더라도, 늑대 인간으로 변한 루퍼스에게 대미지를 입힐 수조차 없을 것이다.
상대방의 마법 계열을 확인한 루퍼스는, 이내 자신감을 얻어 몸을 한껏 털고는 실베르를 덮치려는 자세를 취했다.
그런데,
- 끄아아아아악!
순간 어깨에서 미친 듯한 통증이 전해졌다.
그리고 늑대 인간은 고통에 몸부림치며 바닥을 뒹굴었다.
“공교롭네.”
그 모습을 보며 씨익 미소를 짓는 실베르 라인하르트.
루퍼스는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그의 얼굴을 쳐다봤다.
“내 총탄은 ‘은탄’이거든.”
- 으, 은탄이라고?!
루퍼스는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당연히 칠계의 법칙은 항상 유효하다.
따라서 강화계는 변신계에게 마나 차원에서부터 절대적으로 불리하다.
그러나 예외는 있었다.
그것은 바로 ‘역상성’.
간혹, 드물게도 칠계의 법칙을 뛰어넘는 역상성이 존재하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지금과 같은 경우.
늑대 인간은 예로부터 ‘은탄’이 약점.
그리하여 지금 루퍼스에게는 실베르의 공격 하나하나가 치명타가 되고 있었다.
게다가, 실베르는 보통의 강화계 마법사도 아닌 강화계의 정점이라고도 볼 수 있는 강화계의 권좌.
아무리 루퍼스가 권좌급에 살짝 못 미치는 실력을 가지고 있다지만, 이렇게 역상성의 상대, 그것도 권좌의 마법탄을 직격으로 맞게 된다면 꼼짝도 못 하는 게 당연했다.
탕!
- 끄아아아아아악!!
또다시 실베르는 루퍼스의 어깨에 총탄을 맞췄고, 그와 함께 루퍼스는 비명을 질러 댔다.
그의 늑대 인간으로 변신하는 고유 마법은, 상상을 초월하는 회복력을 자랑한다.
그리하여 아까 전, 아텔라 교수의 검에 장기가 깊게 찔렸을 때도 순식간에 대미지를 회복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은탄에 맞은 상처는 회복은커녕 오히려 순식간에 상처를 곪아 들게 하고 있었다.
이것은 전혀 생각지도 못한 변수였다.
지금껏 은탄을 사용하는 마법사와 만나리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그런데 그게 하필 강화계의 권좌라니.
그것도 하필 마경의 차장이라니.
애초에 지금쯤 재해급 마물을 상대하고 있어야 정상일 마경이 이곳에 있다는 것부터 이상했다.
모든 게 엉망이었다.
블랙잭의 계획은 이상할 정도로 완벽히 실패한 것이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거지……?’
분명 철저히 설계된 완벽한 계획이었다.
그러나 무언가 강력한 존재가 그들을 막아서는 것 같은 기분이 들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은 그 강력한 기류에 조금도 저항할 수 없었다.
탕!
또다시 늑대 인간의 허벅지에 쏘아지는 은탄.
이미 루퍼스는 저항할 기력도 없었다.
그러더니 마법을 풀고 어느새 인간으로 돌아와 있었다.
그런 루퍼스에게 실베르는 씨익 웃으며 다가갔다.
“블랙잭이고 뭐고 간에…….”
바지춤에 있는 수갑을 꺼내 루퍼스의 손목에 채우는 실베르.
“너희들은 변호인을 선임할 권리조차 없다.”
그렇게 블랙잭의 칼루스 아카데미 침공은 저지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