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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데미의 무속성 마법사-96화 (96/175)

96화

* * *

“푸하아아!”

나는 잔뜩 한숨을 돌린 뒤에 흙바닥 위에 대자로 뻗었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제이드와 루비 버밀리온도 나를 따라 땅바닥에 뻗었다.

바닥에 누운 우리 뒤쪽으로는 방금 쓰러진 생체 마인이 보이고 있었다.

“해치웠다!”

나는 힘껏 하늘을 보며 소리쳤다.

드디어, 침공 이벤트가 종료된 것이다.

이것만을 기다려 왔다.

이날만을 꿈꿔 왔었다.

드디어.

정말로.

모든 것이 끝난 것이다.

온몸으로 느껴오는 전율, 짜릿함, 그리고 해방감.

이루 말할 수 없는 감정들이 북받쳐 오르고 있었다.

나는 힐끔 고개를 돌려 함께 싸운 동료들의 표정을 바라보았다.

제이드, 루비 버밀리온, 너나 할 것 없이 피곤에 찌든 표정이었다.

그럼에도 둘은 미소를 잃지 않고 있었다.

그 모습에 나도 씨익 미소를 지었다.

“다들 정말 고생했다!”

“응, 고생했어.”

“정말이지 오늘 하루가 이렇게 흘러가리라고는 상상도 못 했네. 어제까지만 해도 그저 시험 볼 생각에 머리가 지끈지끈했는데 말이야.”

루비 버밀리온의 말에 나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저 오늘 하루뿐만이 아니다.

나는 이 매일매일이 이렇게 흘러가리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그리고 이제 이들과 헤어져야 한다는 게 살짝 아쉽기도 했다.

‘드디어 집에 가는 건가…….’

결국 ‘아카마’의 침공 이벤트는 성공적으로 마무리되었다.

블랙잭, 그리고 하트, 클로버, 스페이드, 다이아몬드까지.

칼루스 아카데미를 위협하는 녀석들은 모조리 처리했다.

분명 감지 마법에도 녀석들의 마나가 수그러든 것이 확인되고 있었다.

더 이상의 변수는 없었고, 이젠 정말 끝인 것이다.

‘그런데 왜 이벤트 종료 알림이 뜨질 않지?’

그러고 보니 살짝 이상한 부분은 있었다.

먼저, 오늘의 침공에 대비하여 따로 시스템 창이 안내하지 않은 것.

그러나 그 점은, 애초에 메인 이벤트가 침공을 막는 것이기에 따로 알려 주지 않은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겠다.

그리고 두 번째로 현재 모든 블랙잭의 간부가 처리됐음에도 메인 이벤트가 종료되지 않는다는 점.

한참을 머리를 굴리던 나는 곧 신경을 끄게 됐다.

굳이 이미 해결된 사건으로 에너지를 낭비할 이유는 없었다.

‘뭐, 어쨌든 끝난 건 끝난 거니까.’

솔직히 이대로 끝나 버리면 아쉬운 점도 있었다.

아직 여기 있는 사람들과 작별 인사도 제대로 안 했는데, 급하게 메인 이벤트가 종료되고 원래의 세계로 전송되게 된다면, 곤란한 것도 맞았다.

그리하여 나는 지금의 여유를 즐기기로 했다.

크게 심호흡을 하고 하늘을 보자, 슬슬 노을이 아름답게 저물어 가고 있었다.

그렇게 우리는 하늘을 바라보며 성취감을 만끽하는 와중이었다.

그러던 와중, 루비가 상체를 젖히더니 곧 자리에서 일어났다.

“목말라.”

아무래도 하루 종일 전투에 임했던 우리였다.

갈증은 물론이고 배고픔도 당연할 수밖에.

“그럼, 슬슬 일어날까?”

“아냐, 됐어. 내가 빠르게 갔다 올게. 좀 더 누워 있어.”

여기서 기숙사까지는 나름 10분 정도의 거리.

왕복이면 20분 정도는 되겠지만, 아무래도 루비 버밀리온은 중력 마법으로 빠르게 다녀올 생각인 모양이었다.

사실 지금 당장 일어나기도 뭔가 아쉬운 부분이 있었다.

좀 더 이 기분을 만끽하고 싶은 나는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갔다 와. 아, 참…….”

“응? 왜? 뭐 필요한 거라도 있어?”

“그건 아니고……. 기숙사 상태를 봐도 놀라지 마.”

“왜? 무슨 일인데?”

“…그런 게 있거든. 가 보면 알아.”

루비는 무슨 말인지 알아듣지 못하고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그러더니 이내 알았다는 듯 끄덕였다.

“아무튼 갔다 온다?”

“응, 다녀와.”

“다시 말하지만 기숙사 상태 보고 놀라지 마!”

“알았어어!”

이윽고 루비 버밀리온이 시야에서 멀어졌다.

아무래도 반이 날아가 버린 기숙사를 보면 깜짝 놀라겠지.

그래도 나는 정당방위라고 생각한다.

그건 어쩔 수 없는 사고였다.

어쨌든 이렇게 모두가 멀쩡히 살아 있으면 된 거 아닌가?

“정말, 다행이네.”

나는 오랜만에 느껴보는 행복에 겨워 눈을 살며시 감았다.

그렇게 숲의 한복판에는 나와 제이드만 남게 되었다.

제이드는 딱히 말이 없었다.

나도 굳이 녀석에게 할 말은 없었고.

그렇게 꽤 긴 시간의 침묵이 우리 둘 사이에 흘렀다.

그리고 그 정적을 깬 것은 제이드였다.

“…이번엔 아무도 죽지 않았네.”

“그러게 말이야. 정말 아무도 죽지 않아서 다행이야.”

애당초 나의 목적이 그거였다.

아무도 죽게 내버려 두지 않는 것.

그리고 결국 그 목표를 해내고 말았다.

물론, 운이 좋았던 것도 없진 않았다.

애초에 녀석들의 계획 자체가 사람들을 던전 안에 아예 가둬 놓는 것이니, 사상자가 발생하기 어려운 구조이기도 했다.

‘메인 이벤트 이름이 뭐였지? 멸망의 구원자였나?’

웃기는 네이밍이다.

멸망의 구원자라니.

아무튼 결과적으로 나는, 이 칼루스 아카데미를 멸망으로부터 구해 낼 수 있었다.

‘잠깐……!’

갑자기 이상했다.

불현듯 무언가 놓친 듯한 느낌이 들었다.

분명 방금의 제이드의 말속에는 어딘가 위화감이 느껴지고 있었다.

“너… 뭐라 했어?”

똑똑히 들었다.

제이드는 분명 ‘이번엔 아무도 죽지 않았네.’라고 했었다.

‘이번엔’ 아무도 죽지 않았다고?

그렇다는 말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라는 말이다.

그런데 제이드의 입에서 나온 것은 내 질문에 대한 대답이 아니었다.

“생각해 보니 이상했어. 단둘이 있을 기회가 없어서 물어보진 못했지만.”

이 녀석이 대체 무슨 말을 하는 거지?

이 상황이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제이드는 이내 스르르 자리에서 일어나기 시작했다.

그러고는 내 얼굴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그의 조각 같은 얼굴이 어쩐지 조금 무섭게 느껴지고 있었다.

그리고 제이드는 내게 물었다.

“너, 정체가 뭐야?”

나는 그의 말에 입술을 쉽사리 뗄 수 없었다.

* * *

한편, 루비 버밀리온은 신난 발걸음으로 기숙사를 향해 가고 있었다.

“정말 다행이다.”

사실 오늘 아침 루퍼스 그레이엄이 블랙잭이라는 사실을 제로에게서 들었을 때만 해도 루비는 반신반의했었다.

어떻게 루퍼스 그레이엄이 블랙잭이라는 거지?

납득할 수 없었다.

그리하여 그녀는 루퍼스 그레이엄이 블랙잭이라는 사실을, 던전 외부에 블랙잭이 침략했다는 사실을 이해하려 들기보다는, 그저 단순하게 제로를 믿기로 했다.

제로는 절대 거짓말을 할 사람이 아니었으니까.

결과적으로 제로는 옳았다.

그리고 그를 믿은 루비 본인도 옳은 길을 택할 수 있었다.

결국 이 칼루스 아카데미는 그들의 손으로 지켜 낸 것이다.

그 사실에 루비 버밀리온은 조금 뿌듯해졌다.

사실 하루 종일 마나를 혹사했기 때문에, 지금은 간단한 중력 감소 마법조차 사용하기 힘들 정도로 체력이 부족했다.

당장이라도 침대에 가서 눕고 싶었다.

그러나, 그럼에도 오늘 하루 있었던 일의 뿌듯함을 생각한다면 지금의 피로쯤이야 아무렇지 않았다.

그렇게 루비 버밀리온은 아우레인의 기숙사를 향해 숲속의 오솔길을 사뿐사뿐 걸어갔다.

그런데 그때.

나무 사이로 누군가 그녀를 부르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루비.”

“응?”

정체 모를 누군가의 목소리.

그러나 어딘가 익숙하게 느껴지는 음성.

그리하여 루비는 발걸음을 멈춰 섰다.

그러나 목소리의 주인공은 보이지 않았다.

“제로가… 따라온 건가?”

루비는 한참을 멈춰 서서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자신을 부르는 누군가의 목소리를 들었다는 것은 분명했으니까.

그런데 그때,

툭.

뒤쪽에 있는 누군가가 그녀의 어깨 위에 갑자기 손을 올렸다.

빠르게 반응하여 고개를 돌리는 루비 버밀리온,

푹.

그러자 그녀의 볼이 손가락에 찔리고 말았다.

어렸을 때나 할 법한 유치한 장난이었다.

루비 버밀리온은 어리둥절하며 그 손가락의 주인공을 살폈다.

뒤를 돌아보자 보이는 것은 검은 로브를 입고 있는 남자.

전신을 검은 로브로 뒤덮고 있는 남자는, 체형에 맞지 않게 조금 오버 핏으로 보였다.

이윽고 남자는 얼굴을 가리고 있던 로브를 들어 올렸고, 서서히 남자의 붉은 머리칼과 얼굴이 보이기 시작했다.

“…오빠? 지크 오빠?!”

루비는 깜짝 놀라며 소리쳤다.

그러자 남자, 지크 버밀리온이 생긋 미소를 보였다.

루비의 분홍 머리와는 달리 지크는 아버지를 닮은 헝클어진 붉은색의 머리를 하고 있었다.

“잘 지냈어?”

“오빠…….”

루비는 영문을 알 수 없었다.

7년 전 실종됐던 오빠가 갑자기 내 앞에 나타나다니?

게다가 이곳은 칼루스 아카데미의 숲.

더더군다나 조금 전까지만 해도 루비는 전투에 임하고 있었다.

실종된 오빠와의 재회라고는 장소와 시기가 어울리지 않았다.

그러나 루비의 머릿속은 그런 생각을 할 겨를조차 없었다.

단지, 7년 전 실종되었던 오빠를 다시 만나게 되었다는 사실에 두 눈에선 이미 뜨거운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오빠… 도대체 지금까지 어디 있었던 거야…….”

항상 밝은 미소로 자신을 돌봐 줬던 지크.

먹고 싶은 거 없냐며 뭐든 말하라고 미소를 지었던 지크.

누구보다도 정의감 넘치며 불의에 대응했던 지크.

그런데 그 지크 버밀리온은 어느 순간 아카데미를 버리고, 가족을 버리고, 그녀를 버리고 사라져 버렸다.

그때 당시 루비는 열 살이라는 어린 나이였다.

그럼에도 어렴풋이 들려오는 오빠의 소문을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

마계대전의 영웅 히로빈 그린월드를 습격했다는 소문.

그 와중에 칼루스 아카데미의 건물들을 파괴했다는 소문.

그리고 안티 매지션이 되었다는 소문.

그러나 루비 버밀리온은 믿지 않았다.

믿을 수 없었다.

어떻게 그 상냥했던 오빠가 안티 매지션이 되었다는 것을 믿을 수 있겠는가?

그녀의 아버지이자 지크의 아버지이기도 한 협회장 아이작 버밀리온의 반응도 똑같았다.

그들 일가는 가문의 장남 지크 버밀리온을 믿고 있었다.

오히려 아버지 측은 지크 버밀리온이 뭔가 납치된 것이라고 생각했는지 협회장의 권력을 앞세워서 독자적인 수색에 나서기도 했었다.

그럼에도 7년이란 세월 동안 지크 버밀리온은 흔적조차 찾을 수 없었다.

그런 지크 버밀리온이 드디어 그녀 앞에 나타난 것이다.

“이건… 꿈이 아닌 거지? 분명 오빠 맞는 거지?”

“응, 맞아. 틀림없는 현실이야.”

“오빠……!”

지크 버밀리온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루비는 지크의 품 안에 와락 안겼다.

그러자 지크는 말없이 루비를 안고는 머리를 쓰다듬었다.

“많이 컸네.”

“왜… 왜 지금까지 오지 않았던 거야…….”

루비는 지크가 원망스러웠다.

한편으로는 소중한 오빠를 다시 만나게 되어서 너무나도 기뻤다.

그리하여 루비는 지크의 품속에서 한참 동안 눈물을 흘렸다.

지크는 말없이 루비의 머리를 쓰다듬을 뿐이었다.

그렇게 한참이 지났을까, 이내 지크는 조용히 그녀의 몸을 밀쳐 냈다.

“감동적인 재회도 좋지만, 이래서는 대화를 할 수 없을 테니까.”

지크는 말과 동시에 품 안에서 주황색의 보석을 꺼냈다.

뜬금없는 그의 행동에 루비는 아직 눈물이 마르지 않은 눈을 깜박일 뿐이었다.

파직―!

이윽고 지크는 꺼낸 주황색 보석을 한 손으로 으깼다.

그와 함께 보석에서는 주황색의 마나가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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