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화
바비큐 꼬치를 양손에 들고서 순식간에 먹어 치우기 시작한 달시 세이피어.
그 모습에 순간 기가 눌린 나는, 바비큐에 손도 대지 못하고 멍하니 달시를 바라볼 뿐이었다.
‘그러고 보니 루비가 없어도 별 신경 안 쓰네.’
아무래도 오지 않는다는 것을 루비한테 따로 들은 모양이지.
그나저나 참 저 녀석도 친구가 루비 하나뿐일 텐데, 루비가 있든 없든 마이페이스를 잘도 유지하는 듯싶다.
달시의 먹방을 보고 있자니, 나도 곧 배가 고파지기 시작했다.
그리하여 노릇노릇 익고 있는 꼬치 하나를 불판 위에서 집어 들었다.
오늘 하루를 쫄딱 굶어서 그런지 오히려 식욕이 떨어졌지만, 또 막상 바비큐 냄새를 맡게 되니 입맛이 살아나고 있었다.
그렇게 한 입 크게 베어 물려는 찰나,
“그래서, 어떻게 블랙잭의 간부를 이긴 거냐? 당장 말하거라!”
제페토 골드버그가 끼어들었다.
제페토는 아무래도 오늘 있었던 일에 제대로 꽂힌 모양이었다.
나는 일단 식사는 마저 하고 싶으니 오히려 녀석에게 화두를 던져 주었다.
“너희 쪽은 어땠는데? 군주급 마물이 계속 튀어나왔을 거 아니야. 뭐, 보나 마나 제페토 네가 활약했겠지?”
나는 말을 마치자마자 꼬치를 입 안으로 집어넣었다.
역시 제페토는 내 질문에 좋다고 나불대기 시작했다.
“당연하지! 군주급 녀석들 여럿이 계속해서 리스폰 지역을 침범하려 했으나 B 구역은 내가 앞장서서 녀석들을 막아 세웠다. 뭐, 이미 한번 군주급 던전에서 군주급 마물 보스를 처치했었기에 그다지 어렵진 않았다.”
나는 녀석의 말에 씹고 있던 고기를 뿜을 뻔했다.
‘지가 군주급 마물을 처치했었다고?’
이 녀석, 아무래도 아이큐가 두 자릿수 이하인 게 분명했다.
아무리 허세를 부리고 싶어도 그렇지, 그 군주급 마물 피닉스를 처치한 장본인 앞에서 터무니없는 허풍이라니…….
그러나 한편으로는 나름 녀석의 되도 안 되는 헛소리가 귀엽게도 느껴졌다.
이렇게 허세 부리기 좋아하는 녀석의 자존감을 굳이 꺾어야 하나 싶은 마음이 들었다.
그런데 제페토의 말을 가만히 듣고 있던 캐서린 골드버그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
“그냥 하루 종일 리스폰 구역에 있었을 뿐이에요. 애초에 군주급 마물이랑 싸울 일도 없었죠.”
“그, 그렇지만 나는 계속해서 군주급 마물과 맞서 싸웠다!”
“그건 오라버니가 바보라서가 아닐까요.”
제페토의 허세를 도저히 못 들어 주겠다는 듯한 캐서린의 어투.
그런 캐서린의 표정은 어딘가 평소보다도 더 무뚝뚝하게 느껴졌다.
그런데 문득 둘의 대화를 듣고 있자니 잊고 있던 사실이 떠올랐다.
“맞다 피닉스! 혹시 피닉스 봤어?”
“피닉스? 그러고 보니 용암 던전에서 봤던 피닉스가 시험용 던전 안에도 있었던 거 같은데?”
고작 몇 분 정도의 교류였지만, 그래도 피닉스는 엄연히 내 사역마였다.
물론 군주급 마물 사이에 던져 버린 사람으로서 이제 와서 행방을 찾는 것도 웃기긴 하지만 말이다.
‘그때는 상황이 여의치 않았으니까.’
나는 그것이 어쩔 수 없는 피닉스의 숭고한 희생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캐서린이 피닉스의 행방을 아는 눈치였다.
“안 그래도 저희가 던전 밖으로 빠져나왔을 때 피닉스도 같이 튀어나와서 교수님들이 당황하긴 했었죠.”
“같이 빠져나왔다고?”
역시 피닉스는 무사히 던전을 탈출한 모양이었다.
그리고 교수님들이 놀란 것도 이해가 가는 부분이었다.
애초에 커스텀 던전에서 설정한 마물은 시뮬레이션으로 만든 허상이기에 던전 밖으로 나오지 못하는 게 당연하니까.
그러나 피닉스는 내 사역마였기에 던전의 종료와 함께 밖으로 빠져나왔던 거고.
“그래서 어떻게 됐는데?!”
“이상하게도 피닉스는 딱히 사람들을 공격하지 않더라고요. 그리고 던전 밖을 빠져나온 이후로 숲속 깊숙이 들어갔어요.”
“숲속으로 들어갔다고?”
아카데미의 숲 깊숙한 곳에는 상상도 못 할 존재들이 서식한다.
그런데 피닉스가 그런 곳으로 들어갔다니.
“숲이 타거나 그러진 않았어?”
“네.”
그나마 다행이었다.
피닉스의 몸은 항상 불꽃으로 활활 타오르기에, 녀석이 숲으로 들어가게 되면 숲이 홀라당 타 버릴 줄 알았는데, 아무래도 피닉스의 불꽃은 녀석의 의지로 영향을 끼칠 대상을 설정할 수 있는 모양이었다.
‘지금은 그냥 내버려 둘까.’
매기와 파르와는 달리, 피닉스는 따로 소환 해제가 불가능했다.
일시적 사역마가 아니라 상시 사역마인 것이다.
따라서 데리고 다니려면 그 불타오르는 거대한 녀석과 함께 움직여야 하는데, 여의치 않을 게 분명했다.
게다가 어차피 칼루스 아카데미의 침공을 막는 것이 내 최우선 과제이기에, 아카데미 전역은 사실상 내 주 무대.
지금 당장은 녀석을 숲속에 풀어 놓고 방목해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뭐, 녀석이 숲을 돌아다니면서 대장 자리를 먹을 수도 있는 거고.’
물론 내가 봤을 때 피닉스는 맷집 원툴에 무력은 살짝 부족한 듯한 느낌이 없지 않아 있었지만, 내심 그런 점도 기대해 볼 수 있겠다.
대화의 주제가 별 관심도 없는 피닉스 얘기로 흘러가자, 제페토가 불만을 표출했다.
“지금 그깟 피닉스가 중요한가? 도대체 블랙잭의 간부는 어떻게 이긴 거란 말이냐?”
제페토는 아직도 미련을 떨치지 못한 듯 보였다.
그리하여 나는 씨익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뭐, 평소대로 운이 좋았던 거지. 그저 상성이 좋았을 뿐이야. 그 간부 녀석은 빙결 마법을 사용하는 원소계 마법사였고, 내 사역마는 화속성이었거든.”
이미 내 머릿속에는 녀석을 놀릴 궁리뿐이었다.
“그래도 아마 제페토 너였더라면 좀 더 쉽게 이기지 않았을까? 나는 고작 상성빨로 아슬아슬하게 이겼지만 비무제 우승자인 너라면 가뿐히 승리했을 듯해. 어쩌면 혼자서 블랙잭의 간부 네 명을 전부 막아 냈었을 수도?”
“당연하다! 그깟 안티 매지션들! 아무리 간부라 할지라도 나한테는 안 되지, 그럼!”
비행기를 태워 주자 곧이곧대로 받아들이고 우쭐대는 제페토.
나는 그런 녀석의 모습에 피식 웃음이 나왔다.
그리고 그것은 캐서린 골드버그도 마찬가지였다.
아까까지만 해도 무뚝뚝하게 앉아 있던 그녀는, 내 말에 놀아나는 제페토를 보고는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그런데 문득 살짝 멀리서 꼬치를 먹고 있던 샬롯 아메드가 입을 열었다.
“그나저나 이번 일로 당분간 아카데미를 폐쇄한다죠?”
역시 그런 건가.
사실 당연한 수순이긴 했다.
어쨌든 간 아카데미 입장에서는 전투로 인해 부서진 건물도 복구해야 하고, 이번 일로 아카데미의 보안에 적신호를 발견했기에, 또다시 학생들의 안전을 위해 내부 경비를 보강해야 할 것이다.
다만, 나는 한 가지 걸리는 점이 있었다.
‘아카데미도 아카데미지만 분명 블랙잭 녀석들은 우리 중 하나를 노리고 있었던 거 같은데…….’
그리고 그것은 왠지 모르겠지만 나일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녀석들이 내가 그들의 정보를 알고 있었다는 사실을 아는 것 같지는 않았다.
그럼에도 내 방문 앞에 설치했던 검은 구체가 너무 명백한 증거였다.
다만, 나는 아직도 그 이유를 알진 못했다.
아무리 블랙잭의 간부들이 전부 체포당해 사실상 궤멸 상태일지라도, 새로 등장하는 적 또한 블랙잭과 같은 목표를 가지고 있을 확률이 높았다.
따라서 항상 주의해야 하는 건 맞았다.
‘뭐, 어떻게든 되겠지.’
오히려 녀석들의 목표가 나인 것이 다행이었다.
나는 이제 상당히 자신이 있었다.
오늘 클로버와의 전투도 그렇고, 이젠 ‘버밀리온의 로브’도 얻었으니까.
“만약 휴교하게 된다면, 다들 뭐 하실 건가요?”
또다시 샬롯 아메드가 질문을 던졌다.
먼저 대답한 것은 제이드였다.
“나는 잘 모르겠네.”
이어서 달시 세이피어가 말했다.
“나는 본가로 복귀해야지.”
마지막으로 캐서린이 대답했다.
“저희도 마찬가지로 본가로 갈 예정이에요.”
나는 녀석들의 말을 듣고는 살짝 고민에 빠졌다.
‘나는 뭐 하지?’
아카데미가 휴교하게 된다면, 나는 딱히 할 게 없었다.
애초에 나는 이 세계를 ‘아카마’라는 게임으로 접했기에, 아카데미 밖의 세상은 잘 알지 못했다.
그렇다고 처음 이 세계에 왔을 때의 그 단칸방으로 돌아갈 수도 없는 마당이었다.
그렇게 한참을 생각하던 나는, 마침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달시!”
“응.”
“혹시 본가가 어디야?”
그러자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샬롯 아메드가 대신했다.
“세이피어 가문은 산속에 있지 않나요?”
“산속?”
“응. 우리 가문은 세오린 산의 중림사에 있어.”
“중림사? 절이라는 거야?”
“응, 그 비슷한 거지.”
절이라…….
그렇다면 더더욱 내가 원래 생각했던 계획과 들어맞았다.
“그럼 혹시 템플 스테이 같은 것도 가능해?”
“물론. 딱히 가문의 사람이 아니라도 중림사에는 얼마든지 외부인이 들어와서 가르침을 받을 수 있어.”
“그래? 그렇단 말이지…….”
어차피 휴교 기간 동안 딱히 할 것은 없었다.
그나마 의미 있는 거라곤 영웅의 아티팩트를 수집하는 것.
그중에서도 제일 만만한 것은 역시나 달시가 있는 세이피어 가문의 아티팩트였다.
게다가 본가에 직접 방문하게 된다면 가문의 아티팩트를 얻기가 좀 더 수월해질 것이다.
그리하여 나는 이번 휴교 기간 동안 달시의 본가에 얹혀살기로 마음먹었다.
“그럼 휴교 기간 동안 나 재워 줄 수 있어?”
“그래!”
역시나 달시 세이피어는 별 의심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게다가 내가 알기로 달시 세이피어는 현 세이피어 가문의 당주.
그런 녀석이 허락하는데 못 갈 이유도 딱히 없었다.
그때 갑자기 듣고 있던 캐서린이 다급한 목소리로 끼어들었다.
“무슨 일로 세이피어 가문에 가겠다는 거죠? 혹시 잘 곳이 없는 건가요? 그렇다면 저희 골드버그 가문에 오셔도 좋은데요.”
“무슨 소리냐, 캐서린! 평민을 데려왔다는 것을 알면 아버지가 얼마나 노하실지 알고!”
“당신은 좀 닥치세요.”
나는 갑작스레 시작된 둘의 신경전에 눈을 끔벅일 뿐이었다.
그러고는 이윽고 캐서린의 제안을 거절했다.
“미안, 안 그래도 이번 휴교 기간 동안 세이피어 가문의 무술을 좀 배워 보려고.”
물론 거짓말이었다.
애초에 내 목적은 세이피어 가문의 아티팩트였으니까.
“그런가요……. 그래도 휴교 기간 동안 한 번쯤은 골드버그 가문도 방문해 주세요…….”
“응? 알았어.”
어차피 세이피어 가문도 영웅의 아티팩트를 얻기만 한다면 그 이후로는 딱히 볼일이 없었다.
게다가 골드버그 가문은 일곱 영웅의 가문 중에서도 가장 재력이 뛰어나다 일컬어지는 가문.
아무래도 골드버그 가문의 본가에 방문하게 된다면, 그 명성에 걸맞은 대접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한 나는 아무 생각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어느덧 식사 시간은 마무리되어 가고 있었다.
그리고 꽤나 늦은 시간이었기에 다들 서둘러 뒷정리를 하고 취침 준비를 하고 있었다.
열심히 뒷정리를 돕고 있던 나는 문득 하늘을 올려다봤다.
오늘 달은 유난히 밝았다.
‘결국 어찌저찌 첫 번째 목표는 완수했네.’
내가 이곳에서 세운 가장 큰 목표.
블랙잭으로부터 모두를 구한다.
그리고 결과적으로 나의 행동과 판단들은 모두를 살릴 수 있게 되었다.
나는 그 뿌듯함에 씨익 미소를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