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1화
* * *
다음 날 아침, 강당으로 집합하라는 히로빈 교장의 목소리가 캠프장을 울렸다.
그 방송 소리에 하나둘씩 텐트에서 일어나기 시작한 학생들이 눈을 비비며 강당으로 향했다.
곧 강당은 순식간에 전교생의 인원으로 가득 메워졌다.
평소에는 한 학년씩 모이는 게 보통이라는 걸 생각한다면, 전교생이 모이는 풍경은 상당히 오랜만이었다.
- 아아.
마이크 테스트를 하는 히로빈 교장.
웅성거리는 전교생의 모습을 내려다보고 있는 히로빈 그린월드의 얼굴이 사뭇 진지해 보였다.
평상시에 항상 입 안에서 굴리던 사탕도 오늘만큼은 보이지 않고 있었다.
이윽고 히로빈 그린월드는 입을 열었다.
- 다들 아시다시피, 철통같은 보안을 자랑하는 칼루스 아카데미가 어제 안티 매지션들의 침입을 허락하고 말았습니다. 칼루스 아카데미의 최고 책임자로서 이 자리를 빌려 여러분들에게 사죄의 말씀을 드립니다.
히로빈은 잠시 마이크 옆으로 자리를 옮기더니 전교생을 향해 허리를 꾸벅 숙였다. 그러고는 다시금 마이크로 복귀했다.
- 침입자가 들어오게 된 가장 큰 경위는 안티 매지션 ‘루퍼스 그레이엄’이 신임 교수로 아카데미에 위장 침입한 영향 때문입니다. 이는 또한 인사 결재를 담당하는 제 잘못입니다. 다시 한번 사죄의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히로빈은 다시금 허리를 꾸벅 숙였다.
그러나 그의 말을 듣고 있는 나는, 한편으로 의문이 생기고 있었다.
‘결국 왜 녀석들이 침입했는지는 말해 주지 않겠다는 건가?’
보통의 학생들이야 안티 매지션이 왜 침입했는지에 대해서 그다지 궁금해하지 않을 것이다.
원래 안티 매지션들의 범죄에는 대개 이유가 없는 법이니까.
다만, 뭔가 있다는 것을 눈치채고 있는 나로서는 조금 수상하게 여겨졌다.
‘마경 측에도 입단속을 요청할 정도면 이 칼루스 아카데미에 뭔가 있는 게 분명한데…….’
그것도 엄청 무거운 진실이 숨겨져 있을 게 분명했다.
그게 이 칼루스 아카데미와 연관되어 있는 건지, 마계 대전의 영웅인 교장 본인과 연관되어 있는지는 모르지만 말이다.
아무튼 그 문제는 나중에 교장에게 따로 여쭙기로 했다.
일단은 블랙잭이라는 조직이 사실상 궤멸했으니, 나중으로 미뤄도 상관은 없는 내용이었다.
그런데, 이어지는 히로빈 그린월드의 입에서 나온 말은 전혀 생각지도 못한 말이었다.
- 이번 사건에서, 칼루스 아카데미를 위해 안티 매지션들과 맞서 싸운 학생들이 있습니다. 저는 이 자리를 빌려 그 학생들의 기개를 칭찬하고자 합니다. 루비 버밀리온, 제이드, 그리고 제로 학생. 잠시 단상으로 올라와 주세요.
‘에…….’
물론 어찌 보면 당연할 수도 있겠지만, 이렇게 대놓고 어제 일을 짚고 넘어간다는 것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굳이 학생들만 따로 부른다는 것은 어쩌면 어제 일의 책임에서부터 시선을 돌리겠다는 정치적 목적이 느껴지기도 했다.
그러나 뭐, 어쨌든 어제 일이 박수받을 만한 일인 건 맞으니까.
나는 어깨를 한 번 으쓱하고는 자리에서 일어나 단상으로 걸어갔다.
아우레인 기숙사 학생들 사이에는 우리가 어제 블랙잭을 상대했다는 소문이 자자하게 퍼졌었지만, 다른 기숙사나 2학년들은 오늘 처음 듣는 듯했다.
“쟤 그 1학년 수석 아니야? 그리고 나머지는 차석과 버밀리온 가문의 영애인 거 같은데?”
“저 애들이 그 안티 매지션들을 막아 냈다고?!”
“고작 1학년들이 어떻게?!”
반은 놀랐다는 표정, 또 반은 감탄하는 표정.
어쨌든 그들의 분위기는 적어도 부정적인 낌새는 아니었다.
이윽고 단상에 올라서자, 히로빈 그린월드가 다시 입을 열었다.
- 칼루스 아카데미를 위해 안티 매지션들에 맞서 싸운 이 세 명의 학생에게 다들 박수를 보내 줍시다!
와아아아아!!
짝짝짝짝짝!!
교장의 말이 끝나자마자 전교생은 우리에게 열렬한 환호를 보냈다.
어쩌면 우리는 이 칼루스 아카데미를 지켜 낸 영웅이 된 걸지도 모르겠다.
그들의 뜨거운 반응에 나는 조금 쑥스러워졌다.
‘아직 끝난 건 아니긴 한데.’
칼루스 아카데미에는 앞으로도 알 수 없는 미지의 침공 이벤트가 닥쳐올 것이다.
다만, 이번의 침공 이벤트는 다가올 침공 이벤트의 첫걸음.
나는 첫 단추를 잘 끼웠다는 생각에 나름 뿌듯해졌다.
- 자, 그럼 제로 학생이 대표로 한마디 할까요?
“제가요?”
갑자기 마이크를 넘겨주자, 막상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어색했다.
그렇게 망설이는 와중 옆에 서 있는 루비 버밀리온과 시선이 맞닿았다.
그녀는 나를 보고는 빙긋 웃어 주었다.
그리하여 나는 헛기침을 두어 번 한 뒤에 마이크에 입을 가져다 댔다.
- 이번에는 운이 좋았습니다. 저희뿐만 아니라 다른 교수님들의 노고와 마경의 도움이 없었더라면, 이렇게 아무런 피해 없이 안티 매지션들의 침입을 넘기지 못했을 것입니다.
내가 이들에게 할 만한 얘기는 하나였다.
그것은 바로 다가올 또 다른 침공 이벤트에 대한 경고.
- 그리하여 이번에는 결국 어찌어찌 아무도 다치지 않고 칼루스 아카데미를 지켜 낼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번이 끝이 아닐지도 모릅니다. 이제 평화만이 존재했던 시대는 끝났습니다. 작은 균열이 곧 다가올 커다란 재앙의 징조일지도 모른다는 겁니다.
나는 침을 한 번 삼키며 잠시 말을 멈췄다.
학생들의 표정을 살펴보니 그들은 사뭇 진지하게 내 말을 경청하고 있었다.
- 그리고 저는 ‘그때’가 찾아오게 된다면, 여러분 그 누구라도 저희 셋이 그랬듯이 피하지 않고 맞서 싸우리라 생각합니다. 그야 여러분들은 자랑스러운 칼루스 아카데미의 학생들이니까요. 그렇죠?
와아아아아!!
학생들은 내 말에 호응하듯 박수갈채를 보냈다.
나는 그런 학생들의 모습을 내려다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 아카데미를 위해 싸우는 것은 학생의 권리이자 의무입니다. 어제의 저는 누구나 했을 법한 당연한 일을 했다고 생각합니다. 이상입니다.
마이크를 내려놓자 옆에 있던 루비 버밀리온이 미소를 지었다.
제이드도 또한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옆에 있는 제이드에게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그때가 오게 되면 또다시 막아 내자고.”
“응, 당연하지.”
강당 아래로는 존경스러운 시선과 함께 박수를 보내는 전교생들의 모습이 보이고 있었다. 그런 그들의 모습에 나는 살짝 가슴이 벅차올랐다.
이내 학생들이 어느 정도 진정되자, 히로빈 그린월드가 마이크를 이어받았다.
- 다들 들었다시피 오늘부터 칼루스 아카데미는 약 한 달간 임시 휴교에 들어갑니다. 그동안 무너진 기숙사들도 복원하고, 아카데미의 경비 시스템도 더욱 단단히 구축하겠습니다. 그럼 다들 휴교 기간 동안 안전에 주의해 주세요.
그렇게 강당의 집합은 해산되었다.
그리고 저마다 본가에 내려갈 준비를 하는 듯했다.
나는 아카데미를 떠나기 전 달시에게 양해를 구한 뒤, 아텔라 교수님을 찾아뵈었다.
그러고 보니 어제 일 이후로 아텔라 교수님과 대화할 시간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감지 마법으로 위치를 찾자, 아텔라 교수님은 강당의 뒤쪽 구석 벽에 기대 있었다.
“여기서 뭐 해요?”
내 기척을 느낀 아텔라 교수님이 슬며시 벽에 기댄 등을 떼며 나에게 손을 흔들었다.
“왔어?”
평상시처럼 밝은 모습이었지만, 그 얼굴 아래에는 어딘가 그늘이 져 보였다.
나는 그런 아텔라 교수님에게 아무렇지 않은 척 말을 건넸다.
“뭐 하고 있었어요?”
“그냥. 이제 한 달간 백수잖아? 앞으로 남은 한 달 동안 뭘 해야 하나 싶어서.”
“애초에 학생이 저밖에 없으셨으니 사실상 백수나 다름없는 거 아니었어요?”
“뭐어?!”
내 말에 아텔라 교수님은 어이없다는 듯 웃었다.
나도 그런 그녀의 모습에 미소를 지었다.
“고마워요.”
“응?”
“절 믿어 주셔서요. 아텔라 교수님 없었으면 히로빈 교장님이 큰일 날 뻔했잖아요.”
“아아……. 들었어?”
“네, 실베르 차장님한테 들었어요.”
이 세계에 와서 가장 믿을 만한 사람을 뽑자면, 그것은 단연 아텔라 교수님이었다.
그만큼 아텔라 교수님이 없었더라면 이번 침공 이벤트는 최악의 시나리오에 다다랐을 수도 있었다.
“그나저나 나는 조금 혼란스럽네.”
“네? 뭐가요?”
“물론 네 덕분에 블랙잭의 침공을 막을 수 있었지만, 네 말이 사실이라는 것은…….”
아텔라 교수님은 말끝을 흐렸다.
그리고 나는 그녀의 말속에서 그 혼란스러움의 원인을 파악할 수 있었다.
아무래도 블랙잭의 침공이 사실이고, 내 말이 사실이라는 것은, 이 세계가 게임 속의 일부라는 방증이니까.
그것은 쉽게 납득하고 말고의 문제가 아니었다.
나조차도 내 존재가 그저 소설 속의 등장인물일 뿐이라면 충분히 혼란에 빠질 것이다.
‘그나마 이 세계가 게임이라는 것을 알게 된 두 사람이 워낙 낙천적인 성격이라는 것이 다행이려나.’
웬만한 사람의 멘탈이었으면 이러한 현실을 견디지 못했을 게 분명했다.
그런데 과연 이 세계가 정말 게임일 뿐인 걸까.
눈앞에 살아 숨 쉬고, 생각하고, 감정을 표출하는 아텔라 교수님이 과연 게임 속의 캐릭터일 뿐인 걸까.
고뇌하는 그녀의 모습에 나도 순간 의문이 들고 있었다.
그러나 아텔라 교수님은 이내 아무렇지 않은 듯 화제를 돌렸다.
“아무튼, 그건 그거고. 어쨌든, 다행이네.”
“그러게요.”
아직 침공 이벤트가 끝난 것은 아니었지만, 혼란스러워하는 그녀에게 지금 당장 알릴 문제는 아니었다.
“그럼, 너는 앞으로 어떡할 거야?”
“저는 휴교 기간 동안 세이피어 가문의 본가에 가기로 했어요.”
“세이피어 가문의 본가? 거긴 무술의 성지라 불리는 곳이잖아?”
“어, 아세요?”
“그럼. 당연하지!”
역시 영웅의 가문이라서 그런가, 일곱 가문의 웬만한 정보들은 외부인도 아는 것으로 보였다.
“거기 가서도 검술 훈련은 소홀히 하면 안 된다?”
“당연하죠. 한 달 뒤엔 좀 더 성장한 모습으로 찾아뵙겠습니다.”
“그래. 그럼 한 달 뒤에 보자.”
“네.”
나는 그렇게 아텔라 교수님에게 꾸벅 인사를 하고는 헤어졌다.
사실 좀 더 얘기하고 싶었지만, 달시가 기다리고 있기도 했고, 이 세계가 게임이라는 사실 때문에 혼란스러울 그녀에게는 지금 당장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할 테니까 배려하기로 했다.
그리하여 나는 강당 입구에서 기다리고 있을 달시 세이피어에게 가는 중이었다.
그런데 그때, 날 부르는 목소리가 들렸다.
“제로!”
목소리의 방향으로 고개를 돌리자, 그곳에는 한 손에 쇼핑백을 들고 있는 캐서린 골드버그가 있었다.
“응?”
“저… 이거…….”
꽤나 뛰어다녔는지 가쁘게 심호흡을 내쉬던 그녀는 손에 들고 있는 쇼핑백을 나한테 건넸다.
“이건……?”
“휴대용 마나 송신기예요.”
휴대용 마나 송신기.
사실상 이 세계의 휴대폰이나 다름없었다.
나는 뜻밖의 선물에 영문을 몰라 그녀의 얼굴을 살폈다.
“이걸 왜?”
“저번에 용암 던전에서 주신 나침반을 잃어버려서요. 그에 대한 빚 대신이에요.”
그러고 보니 나침반을 돌려받은 기억이 없었다.
물론 그건 애초에 케이든 교수님이 나눠 준 거기도 하고, 그에 대한 대가는 ‘누블랑’ 매장에서 1,000다트를 줬던 것으로 충분하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주는 것을 굳이 거절할 이유도 없었다.
“고마워.”
“그럼, 약속 지켜요.”
“응? 무슨 약속?”
“…휴교 기간 동안 저희 본가에 방문하시기로 하셨잖아요.”
“아아.”
어제 얘긴가.
나는 캐서린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응.”
“그럼, 이만.”
그리고 캐서린은 별다른 말 없이 후다닥 사라졌다.
나는 그런 그녀의 모습을 멍하니 쳐다보았다.
“그나저나 앞으로 한 달간 이 칼루스 아카데미와는 작별인가.”
이곳은 내가 이 세계에서 알고 있는 유일한 장소.
이제부터는 알지 못하는 미지의 세계로 나아가는 것이다.
“뭐, 딱히 문제는 없겠지.”
그러나 나는 앞으로 펼쳐질 미래에도 충분히 자신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