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아카데미의 무속성 마법사-110화 (110/175)

110화

* * *

어디론가 갔던 레온 선생은, 곧 내 또래의 남자 한 명을 데리고 왔다.

그는 민머리에 무도복을 입고 있었다.

“저분이랑 대련을 하라는 겁니까? 장난해요?”

레온이 데려온 남자는 나를 한 번 훑고는 어딘가 탐탁지 않다는 듯 말했다.

다소 건방진 태도였다.

다만 남자의 입장도 이해가 되는 게, 애초에 남자와 나는 체급부터 격차가 있었다.

남자의 키는 거의 180cm에 가까웠고 어깨가 매우 넓었다.

우락부락한 스타일은 아니었지만, 곳곳에는 잔근육이 엿보이고 있었다.

딱 봐도 고도로 훈련된 실전 압축 스타일의 근육일 것이다.

‘저런 걸 상대하라고?’

눈앞의 대련 상대에 당황스러운 것은 나도 마찬가지였다.

도저히 내 상대로는 적절하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레온 선생은 이내 나와 남자의 반응을 눈치챈 모양이었다.

“저를 믿으시죠. 제법 할 만할 겁니다. 오히려 제로 님 쪽에서 압도할 수도 있을 테고요.”

“그래도 이건 좀…….”

“제가 밀린다고요, 사부님? 그럴 일은 절대로 없습니다.”

단호한 어투의 대머리 남자.

눈앞의 남자는 나를 잔뜩 깔보고 있었다.

물론 그 누구라도 우리 둘의 대련의 승산을 점친다면 상대 쪽을 고를 것이 분명했다.

그만큼 둘의 격차는 객관적으로 봐도 심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그래도 뭐, 아무 생각 없이 맞붙이는 것은 아니려나.’

레온 선생은 이미 내 검술을 확인한 뒤에 상대를 데려온 것이다.

그렇다면 어느 정도 밸런스를 염두에 두고 데려온 것일 터.

어느 정도는 과대평가를 받았다는 느낌도 없지 않았지만, 이왕 붙을 거 최선을 다해 임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어차피 대련은 대련일 뿐이기에 승패는 그다지 문제가 아니었다.

다만 나를 잔뜩 깔보고 있는 상대와의 대련에서 변수 없이 패배하게 된다면, 살짝 자존심이 상할 것 같기도 했다.

적어도 제대로 된 반격은 한 방 먹여야 마땅했다.

‘게다가 저 녀석도 지켜보고 있고.’

아까부터 널찍이 떨어진 곳에 앉아서 우리를 지켜보고 있는 달시 세이피어.

달시는 나와 눈이 마주치자 이내 손을 흔들며 소리쳤다.

“제로! 이겨라! 응원할게!!”

저렇게까지 말하는데 꼴사나운 모습은 보일 수 없지.

나는 이내 달시를 향해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시작하시죠.”

레온 선생은 나와 상대의 위치를 잡아 주었고, 이내 우리 둘은 목검을 들고 서로를 향해 겨눴다.

“다쳐도 전 책임 못 집니다? 미리 잘못될 거 같으면 적당히 항복을 외쳐 주세요.”

“예예. 그쪽도요.”

웬만해선 넘어가려 했는데, 상대의 깔보는 수준이 도를 넘었다.

아무리 그래도 아텔라 교수님 밑에서 일대일로 두 달을 배웠던 나였다.

게다가 지금껏 수많은 강력한 상대와 싸워 왔던 실전 경험이 있었다.

고작 마법을 못 쓴다고 해서 꿀릴 이유는 전혀 없는 것이다.

“그럼, 갑니다!”

상대가 먼저 움직였다.

이어지는 일직선으로 내려 베는 단순한 공격.

깔보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내 눈에는 너무나도 느려 보였다.

나는 받아칠까 싶다가 아예 피하고는 순식간에 남자에게 가로 베기를 날렸다.

팅!

아슬아슬하게 내 베기를 막아 내는 남자.

내 검격을 받아 냈음에도 표정엔 여유가 엿보였다.

“의외로 제법 빠르신데요?”

“그쪽은 생각보다 느린 거 같네요.”

“뭐, 뭐라고요?!”

이내 내 도발에 넘어온 남자는 검을 힘으로 밀어붙이기 시작했다.

계속해서 검을 맞붙자니, 목검을 쥔 손목에 부담이 너무 심했다.

그만큼 남자의 근력은 내 수준을 아득히 초월하고 있었다.

‘힘으로는 도저히 안 되겠네.’

어차피 예상은 한 부분이었다.

그리하여 나는 있는 힘을 다해 남자의 검을 밀쳐 내고는 잠시 뒤로 물러섰다.

“역시 안 된다니까요? 체급부터가 도저히 상대가 안 되는데 어떻게 대련을 한다는 겁니까.”

거리를 벌린 내가 숨을 헐떡이자 남자는 여유롭게 미소를 지었다.

다만, 나는 남자를 노려보는 와중에도 이미 머릿속으로 계획을 세워 가고 있었다.

‘빗겨 베기.’

아텔라 교수님께 배운 검술.

그중에서도 근력이 압도적인 상대를 베어 내기 위한 기술.

‘그럼, 어디 한번 해 볼까.’

나는 목검을 쥔 두 손을 가다듬었다.

그러고는 깊게 심호흡을 내쉬며 이내 땅을 박차고 달려가기 시작했다.

“말했잖아요. 몇 합을 겨룬다 해도 결과는 달라지지 않을 거라고요.”

그러면서 이내 내 검을 받아 내기 위해 자세를 낮추는 상대.

‘상대는 아마 내가 전력으로 부딪치기 위해 달려들고 있다 생각하겠지.’

거기서부터 이미 ‘빗겨 베기’의 심리전은 시작되었다.

순식간에 거리를 좁힌 나는 상대의 위에서 아래로 내려오는 베기에 검을 부딪쳤다.

그러나 달려들던 패기와는 다르게, 내 검격에는 힘이 없었다.

“이게 무슨…….”

상대가 이상함을 눈치챘지만, 이미 늦었다.

자연스레 상대의 검은 내 검날에 과도한 힘을 내려찍어 밀고 들어올 뿐이었다.

그 모습에 나는 씨익 웃었다.

동시에 허리를 왼쪽으로 비틀었다.

그러면서 상대의 내려 베기를 회피한다.

그리고 순식간에 내 검이 상대의 왼쪽 어깨를 가격했다.

퍼어억!

“아아아아악!!”

목검이라 베어지진 않았지만 상대의 팔뚝에서 꽤나 둔탁한 소리가 흘러나왔다.

이내 상대는 들고 있던 목검을 바닥에 떨구고는 그대로 무릎을 꿇고 털썩 주저앉았다.

“몇 합을 겨룬다 해도 결과는 달라지지 않을 거 같네요. 물론 이번에는 두 합 만에 끝났지만요.”

나는 어깨를 부여잡고 고통스러워하는 상대에게 한마디를 던졌다.

상대는 어깨의 통증과 수치심에 어쩔 줄 몰라 했다.

“다, 다시 해!!”

결과를 승복하지 못하는 듯한 대머리.

그러자 그 꼴을 보고는 레온 스승이 혀를 찼다.

“그만! 승복하거라. 여지없이 이번 대련은 제로 님의 승리다!”

그와 동시에 달시 세이피어가 박수를 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짝짝짝짝!!

“믿고 있었다고!”

나는 그런 그녀의 얼굴을 보며 씨익 미소를 보였다.

“어, 어떻게 된 거지?”

대머리는 도저히 결과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듯했다.

분명 나와 대머리의 힘의 격차는 심했으니까, 아무래도 패배를 쉽게 납득할 수 없는 거겠지.

레온 선생은 아직도 무릎을 꿇은 채 일어나지 못하는 대머리를 향해 혀를 두어 번 차더니 이내 호통을 쳤다.

“그만하거라! 목검이어서 망정이지 진검이었으면 진즉에 죽은 목숨이었다. 게다가 애초에 목을 노릴 수 있었지만 어깨를 노린 것도 제로 님께서 배려를 해 주신 게다. 안 그렇습니까, 제로 님?”

“예, 뭐……. 맞긴 합니다.”

사실 이미 상대에게 파고든 순간.

목이든 어깨든 어디를 노리든 가능한 부분이었다.

다만, 아무리 목검이라도 목을 노리게 된다면 꽤나 큰 치명타가 될 수 있었기에 어깨에 그친 것이었다.

“제로 님의 검술은 잘 봤습니다.”

“운이 좋았네요.”

“아닙니다. 상대의 힘을 물처럼 흘려보내고 재빨리 반격하는 검술, 세이피어 가문의 검술과는 결이 다르지만 그럼에도 매우 훌륭한 검술이라고 생각합니다.”

“하하… 과찬이십니다.”

나는 레온 선생의 과도한 칭찬에 쑥스러운 나머지, 뒷머리를 긁었다.

‘그런데 내가 이 정도였나?’

사실 방금의 승리에 제일 놀란 것은 바로 나였다.

어차피 체급과 힘의 격차가 심해 이길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그저 유효타를 한 방 먹일 줄로만 알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어제 마을에서도 나름 검술이 유효했었긴 한데.’

이미 나는 열댓 명을 상대로 압도했던 전적이 있었다.

고작 두 달 동안 배운 검술치고는 놀라운 수준인 것이다.

게다가 마을 사람들이야 제대로 된 무술을 배워 보지도 않은 사람이니까 그렇다 칠 수 있는데, 세이피어 가문의 문하생을 이길 줄은 꿈에도 몰랐다.

‘나름 상대도 세이피어 가문의 무술을 배워 온 사람일 텐데.’

그만큼 아텔라 교수님의 일대일 지도가 내 검술 실력을 단기간에 끌어올린 덕분이리라.

게다가 지금까지 검을 겨룰 상대라고는 아텔라 교수님 본인밖에 없었기 때문에, 스스로의 실력이 가늠되지 않은 것도 있었다.

그야 아텔라 교수님에게는 매번 깨지기만 했었으니까.

‘어쨌든, 이젠 마법을 안 써도 꽤나 쓸 만하잖아?’

검술은 순전히 이곳에서 노력을 통해 성장한 것이기에, 어쩌면 마법 주문서에 의한 성장보다도 더욱 뿌듯함이 느껴지고 있었다.

* * *

그 뒤로도 나는 레온 선생의 지도하에 기초 체력 훈련과 격투기의 기본기 등을 배웠다.

그리하여 훈련이 모두 종료된 것은 벌써 오후의 시간이었다.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긴 한데.’

물론 세이피어 가문의 무술 대가에게 직접 배우는 훈련은 매우 도움이 되는 것은 맞았다. 그러나 그보다 중요한 것이 바로 세이피어 가문의 아티팩트 찾기였다.

정작 아티팩트는 뒷전이고 하루 종일 훈련만 받고 있던 것이다.

‘게다가 앞으로도 계속 훈련을 받을 거 같은 느낌이잖아.’

레온 선생은 이곳에 머무는 동안 매일같이 내 훈련을 봐주시겠다고 하셨다.

물론 마음이야 고맙지만, 나는 이곳에 그리 오래 머물고 싶진 않았다.

‘빨리 아티팩트를 찾아야 할텐데.’

분명 세이피어 가문의 아티팩트는 이곳에 있을 것이다.

그리하여 나는 훈련이 끝난 뒤에 달시의 허락을 받고는 중림사를 뒤적이기 시작했다.

그렇게 몇 시간 후.

여전히 아무런 소득은 없었다.

“아티팩트가 있긴 한 건가.”

중림사에서 꽤나 오래된 물건이라든가, 귀중해 보이는 물건은 하나같이 손을 대 보았다.

그럼에도 별다른 이상이 나타나는 것은 보이지 않았다.

“분명 이곳에 있는 것은 맞을 텐데…….”

가문의 아티팩트가 가문의 영지에 없을 리가 없었다.

지금껏 내가 얻은 아티팩트는 골드버그의 회중시계와 버밀리온의 로브.

각각 제페토 골드버그와 루비 버밀리온이 갖고 있었다.

반면 세이피어의 아티팩트가 달시에게 없는 것은 아무래도 달시가 이곳에서 자라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추측했다.

“이곳에서 감지 마법을 사용할 수도 없고.”

애초에 세오린 산의 마나 억제 때문에 마법을 사용할 수도 없었다.

특히 지금껏 감지 마법은 매우 유용하게 사용해 왔었기 때문에, 감지 마법의 부재가 조금 크게 다가왔다.

“일단 중림사에는 없는 거 같은데. 설마 아티팩트가 진짜로 키스는 아니겠지…….”

가능성이야 있었다.

키스로 가문의 마력을 전달한다든가, 아니면 가문의 문장을 이어받는다든가.

그러나 이내 나는 고개를 거세게 저었다.

“아니지, 지금 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

아무리 그래도 아닌 건 아니었다.

“중림사에 없다면… 한번 마을에서 찾아볼까.”

혹시 세오린 마을에 있을 수도 있었다.

어쨌든 세오린 마을도 세이피어 가문의 영지에 속해 있는 거니까.

세오린 마을의 골동품 가게에 나뒹굴고 있을지도 모르는 거였다.

그리하여 나는 마을로 발걸음을 향했다.

솔직히 어제의 일도 그렇고, 세오린 마을 사람들에게 살짝 꺼림직한 부분은 없지 않아 있었다.

다만, 어쨌든 마을 사람들이 더 이상 나에게 시비를 걸어 올 일은 없을 테니까.

나는 별 신경 쓰지 않기로 했다.

마을에 도착 후, 제일 먼저 찾은 곳은 마을의 골동품점이었다.

혹시나 해서 골동품점에 들른 뒤 먼지가 수북이 쌓여 있는 물건들을 이것저것 뒤적여 봤으나, 역시 소득은 없었다.

“흐으음… 여기도 아닌가.”

나는 이내 포기하고는 골동품점을 나왔다.

잔뜩 만지기만 해 놓고 빈손으로 나가는 나를 상점 주인이 이상한 눈초리로 쳐다보았지만 어쩔 수 없는 부분이었다.

그렇게 내가 골동품점을 나와서 다시 마을을 돌아다니고 있던 그때.

어디선가 걸걸한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그 소음의 중심은 멀지 않은 골목 어귀였다.

“뭐지?”

딱 봐도 또 누군가를 괴롭히고 있는 듯한 마을 사람들의 조소 섞인 웃음소리.

나는 이내 그곳을 향해 달려갔다.

그리고 그곳에서 보이는 것은 다름 아닌,

“카론……?”

마을 사람들에게 빙 둘러싸여 괴롭힘을 당하고 있는 카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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