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아카데미의 무속성 마법사-112화 (112/175)

112화

“세오린 산에서 발동되는 유일한 마법이라니……. 그게 무슨 소리야?”

도무지 카론의 말이 이해되지 않았다.

이내 카론은 피식 웃더니 내 쪽으로 몸을 돌렸다.

그러고는 나와 눈을 마주쳤다.

“이것은 주인이 노예에게 새겨 놓은 낙인이랍니다.”

“주인과 노예라니…….”

“혹시 세이피어 가문의 고유 마법이 뭔지 아십니까?”

“세이피어 가문의 고유 마법?”

아직까지 달시의 고유 마법을 본 적은 없었다.

원작 ‘아카마’에서도 달시는 그저 루비 버밀리온의 ‘친구 1’로 나타나는 엑스트라였기에, 딱히 알려진 정보도 없었다.

당연히 모를 수밖에.

카론은 내 표정을 스윽 훑더니, 아무래도 내가 모른다는 것을 눈치챈 모양이었다.

“세이피어 가문 출신 마법사의 고유 마법은 단순한 신체 강화입니다.”

“고작 신체 강화가 끝이라고?”

강화계의 고유 마법은 단순히 신체를 강화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는다.

신체를 강화하거나 무기를 강화하거나 특정한 대상을 강화하는 등, 다양한 방면에서 활용할 수 있는 게 바로 강화계 마법인 것이다.

그런데 그 강화계 영웅의 가문 ‘세이피어’ 출신의 고유 마법이 단순한 신체 강화뿐이라니.

조금 의아했다.

“다만, 세이피어 가문에는 또 하나의 고유 마법이 존재합니다.”

“또 하나의… 고유 마법?”

“예. 그것의 이름은 ‘계승’. 말 그대로 세이피어 가문은 본인이 평생을 수련한 ‘무(武)’를 후대에 계승할 수 있습니다. 후손은 ‘계승’을 사용함으로써 전대의 모든 세이피어 선조의 힘을 일시적으로 빌려 사용할 수 있는 것이지요.”

곰곰이 머리를 굴리던 나는 문득 ‘아카마’에서의 정보가 떠올랐다.

‘그러고 보니 세이피어 가문의 상시 강화 마법은 대대로 물려받는 거였지? 상시 강화 마법을 받았다는 것이 곧, ’계승‘의 힘을 물려받았다는 말인가.’

세이피어 가문은 강화계의 가문.

모든 선조의 힘을 빌려 사용하는 고유 마법이라.

아무리 일시적인 효과라고는 하지만 상상을 초월하는 마법이었다.

애초에 세이피어 가문의 선조들은 하나같이 무술의 달인들.

게다가 200년 전 마계 대전에서 마족과 맞서 싸운 영웅 ‘세이피어’의 힘도 포함되어 있는 것이다.

‘계승’이라는 이름의 고유 마법이 가진 가치는 어마어마했다.

“아무래도 이 ‘계승’이라는 고유 마법은 모든 마법사를 통틀어서도 가장 강력한 마법일 것입니다.”

“과연, 그럴 만하네.”

모든 마법 중에서도 가장 강력하다는 ‘계승’의 마법.

나는 그의 말에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이야기의 핀트가 조금 어긋나지 않았나?’

애초에 대화가 시작된 것은 카론의 등 뒤에 새겨진 ‘저주의 낙인’ 때문이었다.

그런데 어째서 흐름이 세이피어 가문의 고유 마법에 대한 설명으로 이어지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카론은 이런 내 영문을 알 수 없다는 표정에 설명을 이었다.

“그런데 이 ‘계승’ 마법에는 한 가지 제약이 있습니다. 바로 단 한 사람만이 이 ‘계승’을 부여받을 수 있다는 것이죠. 그리하여 그 ‘계승’의 힘을 물려받는 것이 바로 세이피어 가문의 당주인 것입니다.”

“그래서 그거랑 ‘저주의 낙인’이랑 무슨 상관인 건데?”

“애초에 모든 것의 시작은 그 ‘계승’의 힘이었습니다. ‘계승’의 힘은 세이피어 가문의 핏줄이라면 누구든 부여받을 수 있는 힘이란 말이죠. 그리하여 선대들은 겁을 먹은 겁니다. 혹여나 ‘계승’의 힘을 가문 내에 다른 사람이 탐내지 않을까 싶던 거죠.”

“설마, 그래서 낙인을…….”

“예, 맞습니다. 그리하여 세이피어 가문은 ‘계승’의 힘을 탐내지 못하도록 후계자를 제외한 모든 가문 사람에게 이 ‘저주의 낙인’을 새겨 놓은 것입니다.”

이제야 대화의 흐름을 눈치챘다.

그렇다면 어느 정도 저 검은 표식, ‘저주의 낙인’의 효과도 알 것만 같았다.

“이 ‘저주의 낙인’의 효과는 간단합니다. 혹여나 낙인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당주나 후계자를 노리게 될 경우, 그 사람은 즉시 사망합니다.”

“즉사라니.”

“예. 따라서 세이피어 가문의 방계 소속 사람들은 직계를 따를 수밖에 없는 겁니다.”

“그런 거였나.”

이제야 모든 비밀이 풀렸다.

그동안 왜 방계 소속 사람들이 마을 사람들의 행태에도 전혀 저항하지 않는지 이해할 수 없던 나였다.

물론, 아무리 귀족이 평민에게 폭력을 가하는 것과 평민이 귀족에게 폭력을 가하는 것의 사회적 인식이 다르다고는 해도, 일방적인 괴롭힘을 당하고만 있는 것은 이해할 수 없었다.

‘결국 모든 것의 시작은 세이피어 가문의 전 당주와 ‘저주의 낙인’ 때문이라는 건가.’

마을 사람들의 행태를 받아들이라는 ‘전 당주’의 말.

그리고 저주의 낙인 때문에 꼼짝없이 따라야만 하는 방계 소속 사람들.

“이거, 아무리 생각해도 세이피어 가문의 전 당주가 너무 쓰레기잖아.”

“뭐, 그렇게 생각해 주신다니 다행입니다.”

나는 조금 혼란스러웠다.

그래도 아닌 건 아니었다.

아무리 친구의 돌아가신 아버지라 하더라도, 그의 업을 이해할 수 없었다.

그리하여 나는 결심했다.

“내가 말할게.”

“말한다고요……?”

“잘못된 건 바로잡아야지. 게다가 지금의 당주인 달시는 이 마을의 행태를 아무것도 모르고 있다고.”

“알면 달라지나요?”

“응……?”

나는 카론의 냉소적인 태도에 당황했다.

이런 식의 반응을 기대한 것은 아니었다.

“그야 바뀌겠지. 물론 전 당주가 저질러 놓은 과오는 충분히 이해했어. 다만 현 당주, 달시 세이피어는 좋은 사람이야. 분명 이 마을의 잘못된 구조를 알게 되면 바꾸려 들 녀석이라고.”

“글쎄요. 이제 와서 개입한다 해도 이미 한참 늦은 것 같은데요. 어차피 저들, 마을 사람들의 생각은 변하지 않아요. 아무리 당주가 개입한다고 하더라도요.”

“변하지… 않는다라…….”

어쩌면 그럴지도 모르겠다.

나는 그의 심정이 조금은 이해가 갔다.

지금 상황은 마치 학창 시절의 집단 괴롭힘과 같았다.

아무리 집단 괴롭힘의 가해 학생들과 피해 학생 사이를 교사가 개입한다고 하더라도, 그 악의 고리는 끊어 낼 수 없었다.

가장 큰 해결책은 역시나…….

“…결국엔 누구 하나는 이곳 세오린 산을 떠나야 한다는 건가.”

“떠난다라. 맞네요. 그게 가장 바람직한 결말이겠죠.”

그것밖엔 방법이 없는 걸까.

표면적으로라도 마을 사람들에게 제재를 가하면 어떻게든 되지 않을까?

폭력엔 폭력으로 대응하면 되는 것이 아닌가.

머릿속이 조금 혼란스러웠다.

그렇다고 녀석에게 달시를 너무 미워하지 말란 말도 할 수 없었다.

아무리 달시에게 죄를 묻는 것은 연대 책임이라고는 하지만, 방계 사람들 입장은 또 다를 것이다.

그들 입장에서는 오히려 당주 편을 드는 나를 곱지 않은 시선으로 보겠지.

‘이래저래 많이 꼬여 버렸네.’

사실 카론에게도 그저 세이피어 가문의 아티팩트에 대한 정보를 물을 심산이었다.

그런데 그가 가지고 있는 악감정, 그리고 세오린 산의 갈등.

여러모로 이 마을의 꽤나 골치 아픈 진실을 알게 된 것이다.

카론은 이내 괜찮다는 듯 힘없는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러고는 젖은 상의를 어깨 위에 둘렀다.

“그럼, 저는 이만 가 보겠습니다.”

“으응…….”

“아, 그리고…….”

갑자기 뒤를 돌아서서 나를 뚫어져라 쳐다보는 카론.

나는 도저히 그의 얼굴을 볼 면목이 없어 시선을 회피했다.

“…앞으로 개입은 그만해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

나는 그에게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 * *

카론과 헤어진 뒤, 나는 중림사로 다시 올라왔다.

입구로 들어서자, 연병장 구석에서 소꿉놀이를 하고 있던 포비와 데이몬이 보였다.

“용사님!”

모래를 털고 일어서서 반갑게 손을 흔드는 포비.

반면, 데이몬은 나를 한 번 스윽 보더니 이내 고개를 돌리고는 모래성 만드는 데 관심을 돌렸다.

나는 그런 데이몬의 냉랭한 반응에 피식 미소를 지었다.

“거, 너무 쌀쌀맞은 거 아니야?”

그리고 몸 뒤에 숨기고 있던 염통 꼬치를 앞으로 내밀었다.

“자. 너네 생각해서 사 왔다.”

“우와아!!”

신나서 달려오는 포비.

그에 반해 데이몬은 마지못해 일어났다는 표정으로 다가오더니 터프하게 꼬치를 챙겨 갔다.

“…잘 먹을게.”

나는 그런 데이몬의 반응에 미소를 지었다.

이제는 데이몬이 반말하는 게 그다지 어색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오히려 두 꼬마의 반응이 참 귀여웠다.

한 놈은 영락없이 나를 용사라고 믿고 좋아하는 반면, 또 한 놈은 나를 은근슬쩍 적대하는 눈치라니.

‘귀여운 녀석들이야.’

나름 둘 다 제멋대로인 게, 어쩌면 달시를 닮은 거 같기도 했다.

둘은 이내 꼬치를 오물오물 먹기 시작했다.

그런 그들을 보며 문득 궁금한 게 떠올랐다.

“너희들, 혹시 저주의… 아니 아니, 삭월 문신을 본 적 있니?”

사실 아까 전부터 계속해서 카론과의 대화가 머릿속을 맴돌았었다.

그리하여 달시에게 말을 꺼내기 전, 먼저 녀석들의 반응을 알아보고자 한 것이다.

둘은 이내 안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알고 있다고?”

조금 의외였다.

혹시나 해서 물어본 거긴 하지만, 이 둘이 모르고 있으리라고 생각해서 한 말이었다.

‘그러고 보니 어느 정도 마을과의 관계도 눈치채고 있는 거 같고. 역시 아무것도 모르는 건 달시 세이피어뿐인가.’

나는 아까 카론의 말이 사실인지 확인하기 위해 꼬마들에게 다시 한번 ‘저주의 낙인’에 대한 정보를 물어보았다.

“그 삭월 문신이 어디다 쓰이는지 알고 있어?”

“네. 당주님을 지키기 위한 표식이라고 알고 있어요.”

당주님을 지키기 위함이라.

어찌 보면 틀린 말은 아니었다.

다만, 표식 자체가 당주를 지키기 위해 존재하는 게 아니라, 방계 사람들을 지배하려고 만들었다는 게 문제인 거지.

“표식이 있으면 당주님의 명령을 거역할 수 없다고 했어요.”

“아냐, 거역할 수 있어.”

“응? 그건 또 무슨 소리야.”

“보름달이 뜨는 날, 표식의 힘이 풀린 댔어.”

갑자기 시작된 둘의 대화.

거기서 나는 문득 이상한 점을 느꼈다.

“표식의 힘이 풀릴 수 있다고?”

보름달이 뜨면 저주의 낙인 효과가 없어진다는 건가?

“그렇단 말이지…….”

뭔가 낙인에 그러한 장치가 존재한다는 게 꺼림직했지만, 나는 대수롭지 않게 넘어갔다.

아무튼 간 표식이고 뭐고 참 세이피어 가문은 상당히 복잡한 것에 얽혀 있는 모양이었다.

* * *

늦은 새벽.

누군가 중림사의 뒤편 골목에서 접선을 시도하고 있었다.

그중 한 명은 다름 아닌 카론.

그의 회색 머리가 달빛에 비쳐 환하게 보이고 있었다.

카론은 이내 등만 보이는 눈앞의 백발노인을 향해 넌지시 말을 건넸다.

“이제 곧 다음 주면 보름달이네요.”

“준비는 됐겠지, 카론.”

“아무렴요. 준비야 10년 전부터 하고 있지 않았습니까.”

당주를 죽이고 세이피어 가문의 ‘계승’의 힘을 탈환하겠다는 그들의 계획.

그러나 그 계획은 새 당주가 아카데미에 입학하게 되면서 틀어지게 되었다.

그리고 마침 그 새 당주가 세오린 산에 돌아왔고, 또다시 기회가 찾아온 것이다.

“…군자의 복수는 10년이 걸려도 늦지 않는다.”

“글쎄요. 많이 늦은 거 같긴 한데요.”

카론은 지난 10년간 인고의 세월을 상기했다.

아직 성인도 채 되지 않은 그에게 수차례 쏟아졌던 많은 비난과 폭력.

그 고통을 떠올리며 카론은 주먹을 거세게 쥐었다.

“이제 평민이든 귀족이든 모두가 평등해질 시간이 찾아온 겁니다.”

카론이 추구하는 ‘평등’

그것의 또 다른 이름은 바로 ‘죽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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